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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9-06-08 20:51:31, Hit : 54, Vote : 10
  토요 살롱 264회 " 여수 밤바다 "

현충일이라 공휴일이었던 그저께 목요일 저녁 늦게부터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오후 들자 일찌감치 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바람에
저녁 약속이 없어 비 오기 전에 일찍 들어올 수 있을 거 같아
아침에 나갈 때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니면서 적잖이 곤욕을 치러야만 했었다.
이렇게 시작한 비는 점점 거세진 바람과 함께 밤을 지나며
저 멀리에서 포탄이 연발로 터지는 소리처럼 천둥소리가 깊게 울리고
반쯤 열어둔 참문을 통해  깜깜한 방안을  갑자기 하얗게 밝히며
번개도 희번떡 스쳐지나갔다.

지난 두어 주 동안 주 단위로 이렇게 제법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진 바람에
미세먼지를 주기적으로 씻어내기도 하고 비와 함께 동반한 동풍이
서쪽에서 몰려오는 미세먼지를  막아내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여
모처럼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지난 겨우내 그리고 봄 가뭄에 이어지며 바싹 마른 낙엽과 깡말랐던 대지에서
풀풀 일어나던 먼지를 촉촉이 가라앉히고
산과 숲과 가로를 뒤덮은 무성한 초록 잎과 풀들에 윤기와 생기를 더해 주고 있다.
주일인 내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중부지방 중심으로
이틀 만에 또 제법 많은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다.

불과 한 주 사이에 장미가 만발하였다.
새빨간 장미는 그 자극적이고 고혹적이고 농염한 꽃잎이
세상사 이해타산에 몰두하다보니 사물에 무심하게 되고
인간관계에 시달리고 지쳤던 몸과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야하게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는 그 향과 더불어 원초적 본능을 꿈틀거리게 한다.

1년 반 만에 본 혜인이의 모습이 많이 변해 있었지만
혜인이 부인도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겉모습은 혜인이가 살이 쭉 빠져 왜소해진 반면에 부인은 살이 많이 불어 보였다.

“살이 많이 쪘지예?
거울을 보면  얼굴이 넓적하고 둥글둥글한 게 각이 다 없어지고 두 배로 커져 있는 거라예.‘
전보다 많이 먹는 거도 아닌데 종일 집에서 살림만 하다 보니까 그런가 봐예.
제가 살림만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할 수 없으니까 하게 되대예.
아줌마들 나이 들면 살 찌잖아예. 저도 그렇게 된 거 같아예.“

말은 그렇게 체념한 듯이 쉽게 하면서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쓸쓸하고 자조적인 기색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겉으로 들어난 모습은 그렇다 치더라도
표정이야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지만
말투, 제3자를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었다.
훨씬 부드러워지고 세련되어 보였다.

혜인이 부인은 중 고등학교 때 공부만 하느라 이성교제는커녕 친구들을 사귀지도 못 했고
학교와 집 이외에 어디 다녀 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대학 진학해서는 과가 과인지라 과 정원 20명 중 외교관자녀로 특례 입학이 7명이었고
나머지도 다들 집안이 대단한 상류층인데다 여학생 6명 중 지방 출신은 자기 혼자라
같은 과 동기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해 대학에서 그렇게  친밀하게 지낸 친구도 없었고
기타 별 다른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학 생활은 몇 번 한 미팅도 추억거리가 될 만 한 게 없었고
딱히 에피소드나 이벤트가 없이 중 고교 시절과 별 차이가 없는 연장선으로
무미건조하게 보낸 거 같다.
더구나 친인척 한명 없는 서울에서 외톨이로 다소 외로운 생활을 했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서도 집안에서의 기대는 엄청났었던 모양이다.
공무원 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위로 언니가 셋에 막내 남동생을 둔
4녀 1남의 막내딸인데 언니들은 여러 형편 상 대학 진학을 못 해
딸 중에는 유일하게 대학을 진학한대다 그것도 최고 명문 서울대의 유명 인기학과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로 가히 짐작이 된다.
딸 중 막내라 어머니와 언니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대신
집안에서 서울 대 출신이 나왔으니 곧 집안을 일으키고 식구들이 모두 팔자가 필거라
지레 기와집도 짓고 김치국도 먹으며 한껏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고 한다.

다니던 경산여고에서도 경산여고 역사상 서울 대 가정 대와 간호학과에 입학한 선례는 있어도
최고 경쟁률과 인기를 자랑하는 서울 대 문과대에 합격은 처음이어서
플래카드가 나붙을 정도로 학교의 자랑이었다고 하고 지금도 legend로 기억 돼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case study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고 한다.

중고 시절에는 공부만큼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 할 만큼 특출 나 버렸고
대학 시절에는 180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혼자서 미국,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서울에 정착하고서도 조직이나 집단이 아니라
혼자서 하는 일을 하다보니까 대인관계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의 언행이 어떨 때는 깜짝 놀라고 어리둥절할 정도로
어색하고 서툴렀었다.
그럴 때마다 혜인이가 황급히 수습하느라 쩔쩔 매며 아내를 윽박지르거나
눈을 있는 대로 부라리곤 해,
‘천하의 조 혜인도 장가가더니 별 수 없구나.’ 하며 놀림거리가 되곤 했었다.

그렇다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싫어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보통 마누라들은 설사 부부 동반 모임이라 할지라도
젊었을 때는 그래도 그래야하는 가보다 하고 멋모르고 고분고분 따라다녔지만
나이 들어서는 남편 친구들 만나는 자리에 가기를 꺼려하기 마련이라
한번 데리고 나가려면 무슨 빚이라도 지는 거 같이 눈치를 봐야하고  
더구나 부부 동반이 아니라 남자들 모임에 여자가 혼자라면 절대 따라나서지 않는데
혜인이 부인은 그런 내외는 하지 않았다.
남편 친구들만 있는 자리라고 불편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분위기에 집중하고
어울리려고 노력했고 분위기를 즐기려 했다.  

그런데 어휘 선택도 그렇고
갑자기 끄집어내는 이야기도 이미 대화하고 있는 내용과 멀리 빗나간 경우가 다반사였고
누구 이야기를 듣고 대응하는 말도 영 어색했었다.
그래서 혜인이는 부인이 불쑥 ‘그런데요.’ 하고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면
미리 정색을 하고  손사래를 치며 ‘야야, 그만 .’ 하며 아예 입을 막아버렸다.
우리가 오히려 민망해서 ‘아니, 왜 말도 못하게 하냐.’ 하며 부인 눈치를 보기도 하고
심지어 한성이는 언론 탄압이라며 강력 항의를 해도,
‘야, 그게 아니야, 너희들도 알잖아? 얘가 말을 잘 못 해. “
해 버려 분위기를 벌쭉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부인은 희한하게도 혜인이가 제지하면 고분고분 말을 듣고
‘아,예.’ 겸연쩍어하며 하려던 말을 삼켜버렸지만  
그러다 갑자기 먼저 간다며 가방을 들고 자리를 뜨려고 해 혜인이를 혼비백산케 하기도 했다.

그런데 못 보던 1년 반 사이에 그런 부조화가 말끔히 사라졌다.
적절하게 예의도 잘 지키고 오히려 상대방이 어색해지지 않도록
적당한 수준에서 배려도 하고
무엇보다 화제를 결코 멀리서 또는 자기중심에서 꺼내지 않고
혜인이의 일상이나 다들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일반적인 관심사에 국한함으로
대화가 갑자기 중단되고 어설픈 침묵이 흐르는 일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도 싹싹하고 표현이 솔직했지만 훨씬 싹싹해진 반면에
표현은 시의 적절하게 다듬어도 지고 절제도 되었다.

혜인이 부인은 혜인이와 결혼 전에 살림을 해 본 적이 없다.
할 기회가 없었다고 하는 말이 맞는 말일 게다.
혜인의 병명이 밝혀진 후 언젠가,

“교수님이 제가 요리한 음식이 마음에 들고 맛있다고 하셨어예.
아시겠지만 어머님이 전라도 분이라 음식을 참 잘 하셨거든예.
그래서 교수님 입맛이 어머님 음식에 길들어 엄청 까다로운데
제가 해 주는 음식이 입에 맞고  맛있다고 하시며 외식을 잘 안하시려고 했어예.
어지간해서는 저녁 약속을 잘 안 하시고 나가셨다가도 저녁 먹으러 들어오셨어예.
그런데 제가 언제 음식이라고 해 본 적이 없거든예.
라면도 안 끓여봤어예.
교수님하고 결혼하고 그 때부터 인터넷보고 하나씩 배워가지고 요리한 거라예. “

무엇보다 현관에 들어서자 깨끗하게 잘 정리 정돈된 집안이 한눈에 들어 왔다.

‘조 박사, 집이 좋구나. 잘 이사 왔다. 지대가 높고 산등성이라 공기도 좋은 거 같고.
부인이 밝고 환하게 잘 꾸몄네? 북아현 동 집보다 훨씬 좋다.‘

“이 집? 저 집?”

“물론 이 집이지. 이 집이 훨씬 좋아. 훨씬 넓고 환하고.
마누라가 혼자서 이사하고 집 꾸미고 힘들었겠다.“

“ 흐흐, 그래?”

집이 더 좋다는 거보다 마누라를 칭찬해주는 거가 더 기분이 좋은 거다.

반가워서 두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혜인이의 손을 맞잡고
나도 모르게 불쑥 나온 말이,

“조 박사, 여수 가 본지 오래 됐네? 우리 여수 가자.’  

갑자기 혜인이가 눈을 크게 뜨고 찬물을 확 뒤집어쓰고 정신이 버쩍 든 듯이
표정이 또렷해지며 맞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그래, 가자.”

“ 그런데 조 박사, 여수 가려면 차를 대여섯 시간 타야 되는데 그러려면 힘이 좀 있어야 돼.
  힘을 좀 길러서 가도록 하자. “

“ 저거 타고 가면 되잖아.” 옆에 둔 휠체어를 가리키며 똑바로 쳐다보는 눈에
너무나 절절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 송 선생님, 일어서지도 못하고 몸도 못 가누는데 차타고 여수는 안됩니더.  무리라예.
  다음에 송 선생님 오시면 근처 가까운 곳에 꽃이 많이 핀 곳에 잠깐 다녀오는 거
  정도라도 좋겠어예. “

옆에서 듣고 있던 두환이, 진규, 남환이 모두 펄쩍 뛰었다.
무리가 아니라 불가능이라며 그러다 큰 일 날 수도 있으니 아예 꿈도 꾸지 마라는 식이었다.

나름대로 요량도 있었고 대책도 있었지만 그쯤에서 입을 다물어
다들 혜인이 데리고 여수 가는  이야기는 종호가 그냥 즉흥적으로 꺼낸 해프닝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더 이상 그 이야기가 거론되지 않았다.

저녁 9시가 넘고 있어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혜인이가 다시 내 손을 잡으며 우물우물 뭐라고 하기에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다.

“ 조 박사, 뭐라고?”

옆에 있던 부인이,

“송 선생님보고 주무시고 가시라네예. ”

고개를 끄덕이며,

“ 자고 가.”

“ 조 박사, 내가 내일 일도 있고 준비도 안하고 왔으니까 오늘은 그냥 갔다가
  다다음주인 5월 5일에 와서 자고 갈게.
  그 동안 밥 잘 먹고 힘 길러야 돼. “

마지못해 손을 놓아주었지만 시무룩해하며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혜인이를 두고 나서는 발걸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5월 5일 오후 4시 반쯤 도착할 거라고 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벨을 누르자
부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혜인이도 침대에 누운 채 온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우고
두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반겨주었다.

미리 부인이 차려 둔 과일을 들며,

“ 행주산성 가 봤어요?
  여기서는 행주산성이 가까운 거 같은데 행주산성에 가서 강변으로 산책이나 할까요?“

“ 예, 저는 가봤는데 조 박사님은 안 가봤을 거라예. ”

“ 차가 안 막히면 한 30분쯤 걸릴 거 같은데 조 박사 태우고 한번 시험해 보도록 합시다. ”

휠체어를 트렁크에 싣고 혜인이를 뒷좌석에 눕혀 머리는 베개로 고이고
부인이 다리 쪽으로 앉아 혜인이 다리를 들어 무릎 위에 올리고 안게 했다.
반대로 머리를 부인이 안으면 좀 더 안전하게 고정시킬 수 있으나 머리가 무거워
장시간 그러고 가려면 부인이 힘들다.
다행히 교통이 원활해 도착지에 30여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때요? 불편하지 않았어요?”

“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어예. ”

“그럼 그 자세로 대여섯 시간 갈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있을 거 같긴 한데예.”

“조 박사, 불편하지 않았어? 그렇게 대여섯 시간 누워서 여수까지 갈 수 있겠어?”

“ 그래, 갈 수 있어.”

“그래도 예.”

부인은 아직도 수긍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 산책하고 저녁도 먹고 좀 놀다가 집에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마침 어린이날이라 날이 어두워지자 행주대교를 조명이 환하게 밝히고
어디선가 가까운 강변에서 잇달아 터지는 폭죽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불꽃놀이가 거의 반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여기 어디야?”

“행주대교 앞 한강 변이야. 저기 다리가 행주대교고.”

헤인이는 행주대교를 돌산대교로 착각하고 있는 거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혜인이를 침대에 누이고,

“ 어때요, 이만하면 여수 갈 수 있지 않겠어요? ”

“ 그런데예, 아무래도...”

“ 이 번이 조 박사가 고향 방문하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서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인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푹 숙이는데
벌써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 잘 알겠십니더. 많이 힘드실 텐데. 그럼 언제 가는 거로 잡을까예.”

“ 내일요. 내일이 연휴 마지막 날이라 다들 올라오지 내려가는 차는 없을 거고
  숙박도 다들 체크 아웃하지 체크인하는 사람 없어 덜 번잡할 거고.
  우선 숙박부터 예약해 보시지요. 내일부터 2박 하는 거로.
  그리고 조 박사가 큰 침대 하나를 혼자서 차지해야 할 거니까  
  방 하나는 침대가 두 개 있는 큰 방을 얻어야 할 겁니다.“

‘내일요?’ 하며 놀란 눈을 크게 뜨는데 어느새 눈물은 다 마르고 흔적도 없다.

혜인이 부인은 일단 동의만 하면 행동은 엄청 빠르다.

“예약했어예. 평소보다 훨씬 싸네예. 거의 반값입니더.
침대 두개 방도 가격 차이가 없어 그냥 큰 방 두 개로 예약했어예.”

다음 날 아침 10시쯤 집에서 나와 여수에 오후 3시경 도착해
혜인이 부부가 여수에 오면 의례히 묵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시내 쪽에서 돌산 대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해 해안 따라 쭉 2km쯤 가다 다시 좌회전하면
해안 쪽 언덕 마루에 지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깨끗한 7층 높이의 호텔이 나타난다.
8층 옥상에는 저녁에만 여는 오픈 레스토랑이 있고
일층 로비에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뷔페가 있고 편의점도 있고 커피숍도  있어
편의시설이 제법 잘 갖추어진 호텔이다.
무엇보다도 베란다 형 통유리 문을 열면 바다와 연 이어 호텔을 떠받치고 있는
가파른 절벽에 동백 숲이 무성하고 바다를 가로 지르는 돌산대교와 케이블카,
유유히 다니는 어선과 통통배가 한 눈에 들어와 view가 그야말로 끝내준다.

돌산 대교에 장식한 형형색색 조명등,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에 떠 있는 배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대교 건너 육지에 점점이 박혀 있는 불빛, 불을 밝히고 밤하늘을 나다니는 케이블카 등,
야경도 못지않게 일품이다.

“조박사, 제일 먼저 어디부터 가고 싶어? 여수 항 앞에 낭만 포차?”

“응, 그래.”

둘째 날은 혜인의 모교 여수 서 초등학교를 둘러보고 향일 암을 다녀왔다.
아침에,
‘조 박사 어디 또 가고 싶어?’ 묻자,
‘언덕 있는데.’
향일 암이다.
향일 암 주지스님이 특별히 허락해줘 차가 올라갈 수 있는데 까지 올라갈 수 있어
정상 전망대까지 갈 수 있었다.
물론 차에서 내려 고 바위를 휠체어 밀고 올라가느라 땀을 한바가지도 더 흘려야만 했다.

호텔로 돌아와 좀 쉬고 있는데 병규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수에 와 있다니까 깜짝 놀랐다.
저 간의 혜인이 소식은 전혀 모르고 있어 연대별로 쭉 이야기 해 주었다.
몹시 애석해하고 안타까워했음은 물론이다.

“ 조 박사, 저녁에 어디갈까? 또 낭만포차 갈까?
  조 박사, 낭만포차 앞의 밤바다는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야.
  두 번째가 향일 암에서 바라다보는 전경이고. “

“ 그래, 흐흐, 가자.”

여수 앞바다의 낭만포차는 총 18개 점포로 여수 시에서 매년 추첨으로
운영자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권이 어마어마해 일 년만 운영해도 30평짜리 아파트가 떨어진다고 하여
경쟁이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여수 시에서 나름 기준을 정해 자격자를 엄선하여 그 중에서 추첨을 한다고 한다.
자격요건이란 국가 유공자 가족, 극빈자 등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하니까
운영자 선정에 불만도 없고 잡음도 없다고 한다.
지난 해 9월에 추첨 결과 기존 운영자 중 14명이 바뀌었다고 하니까
2년 이상 운영하기는 그야말로 로또 당첨이나 마찬가지다.

헤인이 부부가 낭만포차에 오면 꼭 들리는 단골집이 있었다.
나도 같이 올 때면 덩달아 들리던 곳이다.
주인이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서구적 미모에 키가 늘씬하고 붙임성이 대단하고 싹싹하고
일 할 때는 날아다니다시피 몸이 잽싼  혜인이의 여수 서 초등학교 까마득한 후배였다.
혜인이 부부가 오면 그야말로 버선발로 뛰어나오다시피 뛰쳐나와
깍듯이 인사하고 반겨주고 자리를 마련하며 부산을 떨곤 했었다.

“ 조 박사, 정 미영이 찾아?  아마 없을 거야. 지난해 18개 중 14개가 주인이 바뀌었대.”

혜인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듣는 둥 마는 둥 18개 점포를 하나하나 점포 안을 들여다보며
구석구석 세밀히 살펴보고 있었다.
낭만포차는 영업시간이 오후 6시 반부터 밤 12시까지다.
그 전에는 열 수도 없고 이후에는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한다.
아직 6시도 안 돼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점포들은 손님 맞을 준비하느라 한참이었다.

그렇게 휠체어를 천천히 밀며 점포마다 들여다보고 있는데,
저 앞에서 ‘교수님!’ 허공을 가르며 찢어지는 금속성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한 50m 앞 아직 시간이 일러 인적이 한산한 바다와 포차 사이 보도 한 복판으로부터
흰색 티셔츠 바탕에 느슨한 황토색 자켓과 같은 황토색 헐거운 바지를 걸치고
허리에 전대를 두른 정 미영이 이 쪽을 향해 급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정 미영이는 휠체어를 타고 빡빡 깎은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무엇보다 왜소해진 혜인이의 몰골에 바로 울음을 터뜨리며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번에는 걸어서 오셨는데.”

헤인이도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바로 쏟아질 듯이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입술을 실룩거렸다.

“ 아직 영업시간 안 됐으니까 우리 가까운데서 차 한 잔 하고 올게요.”

음식을 주문하고 내가 좋아하는 여수 막걸리도 두어 병 시켰다.
언제부터인가 지방을 가면 기회가 될 때마다 그 지방 막걸리를 시음해 보고
나름대로 내 기준에 의거 평가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여수 막걸리, 제주 막걸리, 원주 치악산 막걸리, 속초 설악 막걸리, 춘천 왕수 막걸리,
강화 이화 막걸리 등이 내가 정한 top-list 에 올라가는 막걸리들이다.

“ 교수님, 언제 다시 오세요?”

혜인이 부인이 고개를 숙였다가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말없이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쩍 고인 눈물이 불빛에 스쳐지나갔다.
여수 바다는 파도가 없어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없다.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가 평화롭기도 하지만 깊숙이 밀려오는 애잔함도 있다.
케이블카가 밤하늘에 유유히 떠다니고 돌산대교를 장식한 휘황찬란한 조명등 불빛이
반사되어 바다 위에 반짝이고 고요한 바다는 미동도 하지 않는 거 같지만
여수의 밤바다는 그렇게 또 흘러가고 있었다.
2019.06.08.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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