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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9-07-13 20:15:27, Hit : 19, Vote : 1
  토요 살롱 268회 " 驕 慢 "

이번 주는 예보대로 지난 수요일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빗줄기가 오락가락하였고
오늘 새벽부터 아침나절에 걸쳐 많은 양은 아니지만 빗방울이 흩뿌린 덕에
일주일 내 큰 더위 없이 지나갔다.
다음 주 월요일에도 종일 비가 내린다고 하고
주내 30도가 넘는 무더위는 없다고 예보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주가 지나면 월말로 접어든다.
7월 한 달을 열대야 없이 보낼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사항이 슬슬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정년 후 소일거리로 일인 출판사를 차린 두환이는
토요 살롱을 이렇게 3군데 동기회 홈피에만 연재하고 저장할 게 아니라
50회씩 묶어 우선 전자책으로 내고 300부 정도가 최소 출판 부수니까
그 정도 부수를 발행해 동기들에게 강매라도 하자고 성화다.
전자책으로 내는 건 비용이 별로 안 든단다.

“ 최근 거부터 내는 거로 하고 최근 50회 분량만이라도 우선 다운받아 나한테 보내줘.”

“요즘은 동기들도 잘 안 보는 거 같던데 이걸 누가 본다고 책을 내?
그리고 책으로 꾸미려면 교정을 봐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없고.“

“야, 송 종호, 너는 생전에 책 한 권도 내지 않으려고 그래? ”

“내가 무슨 책을 내? 너 같은 학자나 각 분야에 그래도 대가를 이룬 전문가들,
그리고 소설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책을 내는 거지
내가 무슨 재주가 있고 뭐 했다고 뻔뻔스럽게 책을 내?
더구나 별 생각 없이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잡다하게 쓴 잡문을.
동기들이 읽어주니까 그냥 습관적으로 계속해서 쓰는 거고
특히 해외 거주 동기들 중에는 일요일 아침에 제일 먼저 토요 살롱 올라 왔는가 확인하고
그거 읽는 거가 일과가 됐다고 하기도 하니까 의무감으로도 쓰고
무엇보다 쓰다보니까 흐트러지기 쉬운 오랜 독거노인 생활을 타이트하게 조여 주기도 하고
또 보통 같으면 떠올랐다 그냥 스쳐지나가며 이내 잊고 말 상념들을 정리하여
구체화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하고.
그러니까 우리 동기들이나 보고 내가 쓴 거지만 나도 가끔 들여다보며 당시를 회상하고
그러면 됐지 동기들 외 누구 볼 사람도 없는 데 뭐 하러 책으로 내?
책으로 낸 다니까 창피해서 얼굴이 다 뜨끈거린다.“

“아니, 무슨 소리야? 송 종호가 겸손을 다 떨고 있네?
니가 쓴 거중에는 깜짝 놀랄만한 내용도 있어. 문장력도 대단하고.
니 말 대로 어디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장사꾼인데 말이야. 희귀한 케이스야.
동기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거라고 봐.
빼지 말고 빨리 보내.
교정할 시간 없으면 원본을 그냥 보내.“

두환이 이전에도 몇몇 동기들로부터 책으로 출판해 보라는 권유를  받아 왔지만
그럴 때마다 그냥 흘려들었지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從心所慾不踰矩.
논어에 의하면 공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물론 이 말만 한 게 아니라 15세에 학문에 뜻을 둔 이래
30, 40, 50, 60세, 등 10년 단위로  자신의 인격의 도약과
마침내 인격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각 과정마다 한마디로 요약했다.
공자가 나이 70이 되어 이룬 인격 수양의 최종 단계가 바로 ‘從心所慾不踰矩’ 라는 건데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72세에 타계했다고 하니까
자신이 이런 경지에 오르기는 했지만 오래 누려보지는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일 공자가 더 오래 살아 80세를 넘기고 90세를 넘겼다면
그 때마다 또 뭐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이런 단계까지 만 해도
‘아, 참, 공자가 그런 말을 했지.’라는 정도지 감히 흉내는커녕
그런 말을 절대 자신에게 적용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주제넘게 누구에게 적용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공자의 말 자체가 어디 먼 나라 이야기나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아무렇게나 떠들고 있는 걸
아무 관심 없이 듣는 둥 마는 둥 생각은 다른 데 가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공자가 더 오래 살아 더 높은 도를 터득해 더 엉뚱한 말을 하지 않고
70갓 넘어 그 정도에서 돌아가신 게 우리 후대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또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즉, 공자가 나이 70이 넘어 임종이 다가오자 몸도 마음도 기능이 떨어져 만사 귀찮아지니까
욕정도 욕망도 사라지고 세상사 모두 부질없어져
뭐 딱히 하고 싶은 거도 없고 원하는 거도 없어지지 않았나
그러니까 당연히 법도에 어긋나거나 과도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라는 보다 인간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從心所慾不踰矩’의 단계는 도를 닦아 터득 했다 기 보다 나이 들어 늙고 병들어
몸이고 마음이고 운신이 힘들어지면 자연스럽게 되는 현상에 더 가깝지 않을까 라는
가정도 해 본다.
왜냐하면 정력이 넘치고 욕망을 주체 못하는 젊어서는
절대 씨도 먹히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경구가 말이 되던 안 되든 현실적이던 아니든 좋은 말임에는 틀림없는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나뿐만아니라 우리 동년배의 거의 대부분이
공자가 나이가 들어가며 단계적으로 터득한 인격수양의 단계와는 오히려 반대로
40 대에 대체로 인생에서 가장 세상사 유혹에 취약했고 50에 천명을 알기는커녕
자신과 제일 가깝다는 지 마누라나 자신의 절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내지 않았나 싶다.

‘야, 그 친구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 내가 제일 잘 알아.’
같이 술 몇 번 마셨다거나 그 친구가 들어내기 꺼려하는 환경이나 과거지사를 좀 안다고 해서
기고만장해서 지가 제일 잘 아는 거처럼 떠벌리는 거야말로 교만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다.
‘나하고 50년도 넘는 부랄 친구야.’
세월을 같이 보냈다고 절친 이라고 할 수는 없고
세월만 가지고 서로 교감하고 이해하는 관계라고는 더더욱 할 수 없다.

이유는 인간은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자신을 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 하면서 다른 사람은 자기에게 솔직하길 바라기 때문에
절대 자기 이외의 누구를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이렇게 제일 가까이에서 매일 접하는 인간들도 잘 모르는데 천명을 안다고?
인간의 수명이 100년이 아니라 500년으로 늘어나도
무슨 천지변화로 돌연변이가 몇 대를 걸쳐 인간의 본성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 한
천명을 아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천명을 알아야 ‘耳順’ 에 도전이라도 해 볼 텐데 지천명은커녕 불혹도 못했으니
이순은 턱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최종 단계인 ‘從心所慾不踰矩’는 말 해 무엇 하겠는가.

우리 나이가 바로 공자가 인격 수양을 완성한 나인인 70의 문턱에 와 있다.
그런데 나이가 이렇게 많아지면서
논어에서 공자가 한 우리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지고
터무니없이 과장된 경구인 ‘從心所慾不踰矩’를 구지 인용하지는 않더라도
뭔가 그래도 나이 값을 해서 보다 진중하게 인내도 좀 하고
남의 말에 경청하는 척이라도 하고 억지로라도 타인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을 좀 가지고
누가 불행한 일을 당하면 위로도 할 줄 알고 좋은 일 있으면 진심으로 축하도 해 주고 해서
젊었을 때보다 마음이 보다 너그러워져야 할 텐데  
오히려 그 반대로 조그만 일에 더 잘 상처 받고 더 잘 삐지고 더 좀팽이가 되고
소갈머리가 더 밴댕이같이 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인천과 강화 앞 바다에서 5,6월에 많이 잡히는 밴댕이는 이쪽 지방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흔해빠진 서민 생선이다.
젓갈로도 담그고 구워도 먹고 지져도 먹고 기름기가 많아 고소해 회로도 즐겨 먹는다.
그런데 이 밴댕이가 성질이 얼마나 급한지 그물에서 갑판에 올라오자마자
지 성질을 못 이기고 그새를 못 참아 바로 죽어버린다.
그래서 인내심이 제로로 조금도 못 참는 인간들을 밴댕이 소갈머리라고 부른다.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일곱 가지 죄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일곱 가지 죄악은 종교개혁 이전 교황청에서 규정한 거라
신, 구교 같이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만, 시기 질투, 분노, 낙태 등 일곱 가지 죄 중에
뭐가 가장 으뜸가는 죄인지는 다들 잘 알고 계시지요? 맞습니다. 바로 교만입니다.
어찌 보면 나머지 죄는 다 이 교만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교만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너무나 잘 배웁니다.
그리고 바로 몸에 속속들이 배게 됩니다.
성인 남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거라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는데 아침에 면도 하시지요?
자가도 모르는 사이에 수염이 자라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깎습니다.
이와 같이 교만은 제어가 되지 않습니다. 매일 자랍니다.
수염을 매일 깎듯이 매일 잘라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회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만의 대응어는 겸손입니다.
우리를 한 없이 낮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조심해야 할 건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런 경우가 더 빈번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겉모습 속에 더 가증스런 교만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바로 지도자라고 자처하고 있는 인간들이
교만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성경에 예수의 제자들이 수석 제자 자리, 즉 2인자 자리를 다투다가
예수께 어떤 사람이 리더로서 자격이 있는지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리더가 되려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지도자라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이와 반대의 인간들,
리더로서 최소한의 덕과 소양은커녕 뭐든지 아는 체하고 어디든 나서기 좋아하고
남의 건 무조건 헐뜯고 자기 건 어떻게든 자랑하고 싶어 하는 교만의 아이콘들에다가
입신양명과 부귀영화에 눈이 뒤집힌 시정잡배보다 못한 철저한 속물들이다.
어느 한 구석에도 존경하거나 모델로 삼을 만 한 점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아니, 어떻게 저렇게 뻔뻔스러울 수가.’
‘아니 , 어떻게 저렇게 무지하고 교양이 없을 수가.’ 하고 어처구니 없어할 때가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시선도 많다.
그런 자리가 부러워 동경하고 그런 사람들과의 교분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언젠가 우리 동기는 아니지만 우리와 같은 학번의 한 친구가,

‘야,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들이 너 보다는 잘 난 사람들 아니야?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국회의원도 되고 했지만 너는 아무 것도 아니잖아.‘

더 이야기를 끌어가면 논쟁이 될 거 같아,

‘그럼 당연히 나보다는 낫지. 나보다 못하면 그게 말이 되겠냐?
그래도 우리가 기대치라는 게 있으니까 그런 거지.
우리가 스포츠 중계보다 선수 욕하고 감독 욕하고 하는 거와 같지 뭐.
우리보다 못 뛰어서 욕하는 거 아니잖아?‘

5.18 기념 식사 중 대통령이,
‘5.18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독재자의 후예’ 라고 말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논란이라기보다 야당의 반발이라는 말이 맞을 거 같다.
그런데 대통령의 그 말이 나에게는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추모를 하며 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을 위로하면 될 것이지
그런 독단적인 말을 왜 집어넣었을까.
설사 자기가 5.18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더라도
함부로 그렇게 단정하면 안 될 텐데 그렇지도 못 한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권위를 앞세워
추모사에 그렇게 단정한 건 오만불손의 대표적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5.18에 대해 달리 생각한다고 꼭 독재자의 후예가 될 수는 없다.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서는 민주주의의 절대 신봉자도 달리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야당 대표의 반발은 더 가관이었다.
‘이북의 김 정은이를 독재자라고 부르지 못하면서 왜 자기를 독재자라고 하느냐.’

독재자, dictator는 원래 고대 로마 공화정에서 유래 되었다.
고대 로마 공화정 때 로마는 시민들이 2년에 한 번씩 광장에 모여 직접선거로
귀족들의 의결기관인 원로원에 대항하는 민회를 구성하고 두 명의 호민관을 선출해
한 호민관이 일 년씩 통치하게 했다고 한다.
한 호민관이 통치하는 동안 다른 한 호민관은 아무 권한은 없지만
유고시 대행하는 역할을 했다니까 지금 미국의 정부통령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미국 건국 시 로마 공화정을 국가 통치 시스템의 모델로 삼았다니까
미국의 정부통령제와 상하 양원제가 로마공화정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보면 될 거 같다.

그런데 예외 규정을 두어 국가적 위난이 발생하거나 전시에는 원로원에서 한 호민관에게
임기에 제한을 두지 않고 계속 통치하게 했는데 이게 바로 dictatorship, 독재권이었고
이를 행사하는 호민관을 독재자, dictator라고 불렀다.
이를 악용한 시저는 호민관에 선출된 후 끊임없이 정복 전쟁을 일으키며 독재권을 연장한 후
결국 황제가 되면서 로마공화정은 종말을 맞게 된다.

그러니까 독재는 주권재민 하에 헌법에 규정된 권력 분립을 국가적 재난이나 전시를 구실로
한사람이 독식하는 걸 말한다.
국가적 재난, 전쟁의 임박, 또는 전시 상태 등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국민을 떨게 하고 협박해
헌법에 보장된 권력의 분립을 한 사람이 모두 장악한 과거의 독재자들이 다 그 유형이다.
전제군주제의 왕과 독재자가 구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제군주제하의 주권과 모든 권력은 왕에 귀속 된다.
처음부터 자기 거였지 왕이 뭐 어떤 구실을 대 나누어져 있던 걸 빼앗은 게 아니다.
이북은 바로 사회 구성이 봉건 계급 신분제도로 이루어진 세습적 전제군주국가이고
그 군주가 깁정은이기 때문에 김정은이를 독재자라고 부를 수는 없는 거다.
그러니까 야당대표의 비유는 아주 잘못 된 거다.

게다가 이 야당 대표는 자기를 독재자의 후예라고 빗대었다고 발끈했는데 이는 결국
자기는 5.18에 대해 달리 생각하고 있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그러면 그렇게 성질을 낼 게 아니라 자기는 5.18을 어떻게 생각한다고 분명하게 밝히는 게
떳떳하다.

이 대표는 5.18 묘지를 참배하러 가는 도중에 시민들에 제지당하고 봉변도 당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기자회견을 하며 앞으로도 5.18묘지를 방문할 거냐는 질문에,
‘물론 갈 거다.
광주 시민들의 마음이 바뀔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가겠다.‘
이 말을 실천할 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겠지만 광주 시민들의 마음이 바뀔 때까지 라는 말에
경악을 금 할 수 없었다.

광주시민들이 5.18에 대한 생각을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한다는 이야기다.
5.18에 대한 자기의 생각이 다르다는 건 간접적으로 표현했지만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밝히지도 않았지만 자기 생각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이 사람의 교만은 어디까지가 끝일까.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피해자라고 법적으로 인정된 광주시민들의 생각을 바꾸려면
인위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천지조화라도 빌어야 될 것이다.
뭘 믿고 이런 무대포가 될 수 있을까.
더구나 이 양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2019.07.13.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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