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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9-07-20 21:13:56, Hit : 14, Vote : 1
  토요 살롱 269회 " 配 役 "

지난 화요일 새벽부터 아침나절까지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간 후
연일 쨍쨍한 햇빛에 낮 기온이 급격히 올라가 대지가 메마른데다 바람도 없다보니까
그저께부터 공기가 무척 나빠져 어제 오전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기준치의 4배 가까이 치솟아 대기 질이 최악 상태에 이르기도 했지만
오후부터 불어오는 동풍으로 저녁 무렵에는 정상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었다.

아무리 대기 질이 나쁘더라도 이 한여름 더위에  문을 다 닫고 있을 수는 없어
낮에는 문을 다 열어두고 있는데 그러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와 같이 어김없이 불어오는 동풍이 먼지를 시원하게 날려 보내기에
무더운 삼복더위를 나는데 설상가상인 경우는 없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더더욱 다행인 것은 그저께부터 낮에는 기온이 30도를 넘고 있지만
일교차가 10도 가까이 벌어질 정도로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해
금년 들어 열대야가 단 하루도 없었다는 거다.
지난해에 6월 말부터 시작한 열대야가 7월 한 달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았던 걸 비교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또 지난해는 장마기간이라는 6월말부터 7월 한 달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지만
금년에는 그래도 지금까지는 양의 다소간에 주간 단위로 비 구경을 하고 있는 즐거움이 있다.

게다가 태풍의 영향으로 어제 밤부터 강풍이 불고 오늘 아침에는 강풍에 빗방울까지 흩뿌렸고
다음 주도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이 없다는 예보다.
다음 주 수요일에는 확률 70%의 종일 비소식도 있다.
아직 선풍기도 틀지 않고 있는데 다음 주가 지나면 8월이다.
이 조시라면 열대야도 없고 선풍기도 틀지 않고 7월을 보낼 수 있다는
경이로운 경우를 체험하게 된다.

공원 마루로 올라가는 산책로 한 쪽 연도에 언제부터인가 진자주색, 연자주색,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천일홍이 포기마다 대여섯 송이의 꽃잎을 다닥다닥 달고
앙증맞게 피어 있다.
7월부터 10월까지 장장 4개월을 피어 있어 천일홍이라고 한단다.
하늘 공원 가운데 사분의 일 등분씩 차지하고
애기 주먹만큼 큼지막한 송이를 자랑하는 노란색, 붉은색의 봉숭아, 다알리아, 백일홍,
주황색의 금선화의 둘레를 이름 없는 들풀처럼 불 품 없이 나지막한 줄기에
꽃송이가 제일 작은 동전보다 작은 천일홍이 에워싸고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붉은 기가 도는 진보라, 연보라의 관능적이고 고혹적인 꽃잎 색 때문인 거 같다.
멀리서보면 원색의 빨강, 노랑이 칸을 나누고
그 둘레를 강약이 반반쯤 섞인 보라색이 둘러싸고 있어 묘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천일홍과 산책로를 경계로 산마루로 향한 언덕 맨 아래는
벌써 불그스레 퇴색하기 시작하는 이파리가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하는 철쭉이
길 따라 쭉 자리를 잡고 그 위에는 해바라기가 철쭉 따라 열 지어 노랗게 피어있어
철쭉 숲 위로 풀만 무성해 단순하고 심심하던 언덕과는
노란색 해바라기로 두른 띠 하나만으로 비교가 되지 않게 언덕이 화려하게 꾸며졌다.

오늘 새벽에 운동하러 나온 아줌마들의 수다 중에,
‘나, 매미 소리 들었어.’ 라는 말이 얼핏 들어왔다.
매미는 보통 8월 뙤약볕이 쏟아져야 울기 시작해 더위가 사그라지며 울음도 사라진다.
아줌마가 무슨 찌르러기 같은 풀벌레 소리를 착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벌써 여름이 그만큼 무르익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전화를 받는 종정이 부인의 목소리는 예전의 금방 툭 튀어나올 듯이 카랑카랑하고
힘이 실린 목소리가 아니었다. 쇳소리가 섞이고 탁하게 갈라져 있었다.
순간 가슴이 덜컥했으나 목소리에 슬픔이나 좌절 같은 애절한 기색이 전혀 없고
단지 감기기가 있거나 좀 지친 기운만 느껴지는 거 같아 조심스럽게,

‘감기 드셨는가 보지요?’

‘아이라예, 택이 아빠 퇴원했거든예. 그래서 긴장이 풀렸는지 몸살기가 있네예.’

‘종정이가 7개월 만에 드디어 퇴원했군요. 정말 수고도 많고 고생도 많으셨습니다.
어떻게 병원에서 환자와 24시간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7개월을,
엄두도 나지 않고 상상도 안 됩니다. 그런 힘, 용기, 인내가 어디서 나올까요?
대단하십니다.‘

두어 달 전 일이다.
대화 중 마찬가지로 오래 투병 중인 우리 동기 누구 예를 들며,
‘너무 힘들 텐데 간병인을 잠시라도 쓰는 게 어떠냐’ 니까 금방 정색을 하며,
‘아입니더. 다른 사람은 그렇게도 하겠지만 저는 지 남편을 남의 손에 맡기지 못 합니더.’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갑자기 엄숙하고 어색해져 한참을 전화통을 들고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아이고 어디 가서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됩니더. 다들 하는 거 가지고 웃을 겁니더.’

‘무슨 말씀을요. 저는 다니면서 틈만 나면 부인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종정이 녀석 복이 터진 놈이라고.
이렇게 마누라한테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으니 여한이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깁니더.
마누라한테 그런 대접 안 받고 벌떡 일어나 돌아다니길 바랄 기라예.’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벌써 내일 모래면 일흔이네요. 그럭저럭 오래 살았습니다.
이 나이에 뭐 어떻게 되더라도 크게 여한은 없을 겁니다.
우리 동기들 10%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송 종호씨도 우리 택이 아빠와 같은 용띠시지예?
그런데 요즘 100세 시대라는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꺼?
아직 한창 나이라예. 저는 택이 아빠 팔십 전에는 못 보냅니더. ‘

‘하하, 제가 잘못 말 했네요. 그러고 보니 팔십이래야 이제 10년 밖에 안 남았네요.
그러려면 택이 엄마가 건강해야 됩니다.
택이 엄마가 어디 아프거나 힘이 딸려 돌 볼 상황이 안 되면
종정이가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식사 꼭 챙겨 드시고 조금이라도 무리다 싶으면 만사 제치고 쉬고 그러세요.
이제 애들도 다 졸업하고 군대도 갔다 오고 제 몫들 하고 있잖습니까?‘

‘고맙십니더. 앞으로 그러려고예. 그래서 지금 일도 안 나가고 있습니더.
며칠 더 쉬었다 정신 좀 차리고 나갈려고예.
송 종호씨도 혼자 계신데 건강 잘 관리하셔야 됩니더.
점점 힘도 체력도 떨어질 텐데 특히 여름에 보양식 자주 드셔야 합니더.
혼자 해 먹기 귀찮으시면 나가서 사서라도 드셔야 됩니더.‘

얼마 전 평상시대로 새벽에 공원 트랙을 슬슬 걷고 있는데 가끔씩 봐 안면은 있지만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이 없는 한 아줌마가 일부러 다가와,

“아저씨, 아저씨는 매일 뛰시더니 오늘은 왜 걸으세요?“

파마머리에 몸매가 퉁퉁하고 작달막한 키에 얼굴이 푸석푸석한 데다
오늘 따라 마지못해 끌려나온 거처럼
뭔가 짜증을 내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거 같이 불평이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한
50대 후반으로 별로 이뻐 보이지 않는 아줌마였다.

‘아, 예, 지난번에 하프 마라톤을 뛴 후 며칠 쉬어야 했는데 별로 지장이 없는 거 같아서
그 다음 날부터 바로 뛰었더니 무리가 갔는지 발목이 붓고 시큰거려
뛰지 못하고 걷고 있습니다.‘

‘나이를 생각해야지. 마음이야 아직 청춘이겠지만 몸은 아니잖아요?
뭐든 나이에 맞게 해야지 오버하면 탈이 나지 않을 수 없지.‘

이 아줌마의 표정이 굉장히 고소해 하면서도 마침내 짜증을 해소할 데를 찾은 거 같았다.
말을 걸어오기에 성실히 대답해 주었는데 느닷없이 한마디 듣게 되고 말았다.
거의 반 말조로 아랫사람 훈계하듯이 강약이 들어간 톤이라 내심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어머, 그러세요? 불편하시겠네요. 빨리 나으셔야겠어요.”
이게 답이다.
누가 좋지 않은 일을 당했으면 위로해주고 격려해줘야 할 텐데
잘못을 들춰내 뭐라 응징하려고 하고 가르치려고 한다.

한마디 더 응수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아이고 뭐, 다들 지 잘났다고 하는데 그런가보다 해 줘야지.’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 없이 지나쳤지만 일단 새벽부터 잡친 기분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하기야 우리 나이 또래의 주변 인간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안부 하나 제대로 물어 볼 줄 아는 인간들이 없다.
모두 지 중심적이고 지밖에 몰라 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무정하고 매정한 인간들뿐이다.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인정머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 되었는지
뭔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반면에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이면 매일 새벽에 나보다 더 많이, 훨씬 더 빨리 한 시간을 뛰는
40대 초반의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오래 가시네요. 저도 그런 적이 있는데 한의원 가서 피를 뽑았어요.
피가 뭉쳐 순환이 안 돼 그런 거라고 하더군요. 죽은 피 뽑아야 빨리 회복 될 겁니다.
걷기만 해서는 땀도 못 빼고 몸도 근질근질하실 텐데 빨리 나아 뛰셔야지요.‘
얼마나 고무적이고 긍정적인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우리 주변에 몸이 불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 선배, 후배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노환의 일환으로 여기저기 빵꾸가 나기도 한다.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 있을 정도로 병종도 다양하다.
통풍이란 병이 있다는 걸 몇 년 전에야 겨우 알았는데
생소하던 대상포진, 근저족막염, 이런 병명도 자주 듣게 된다.
귀속의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겨 몸의 균형을 못 잡고 심한 어지럼증 때문에
순간적으로 혼절도 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병도 있는데
병명도 경우에 따라 이명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형, 나 죽는 줄 알았어. 119에 실려 갔었어.’

‘아니, 왜? 바로 얼마 전에 필리핀에 스쿠버 다녀왔다고 이빠이 자랑하고
엊그제까지  멀쩡하게 술 잘 퍼마시고 다니더니?’

‘술 마시다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빙빙 막 돌면서 속이 다 뒤집어지는 거 같은 거야.
그러고는 기절해버렸어.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겼다는데 불치인 이명은 아니고
내 경우는 신경 때문이라 고칠 수가 있대. 술이 절대적인 원인이라는 거야.‘

‘이 참에 잘 됐다. 술 끊어라. 너는 술 약속이 없으면 혼자라도 마시는데 그게 문제야.’

‘형, 이 나이에 술 끊으면 나는 무슨 낙으로 살아?’

‘그럼 혼 술이라도 끊어. 혼자서 마시다 이번같이 쓰러지면 주변에 아무도 없고 어떻할래?’

이 후배는 우리 직접후배가 아니라 경기고등학교 출신으로
우리로 치면 우리보다 한해 아래인 25회인데 나와는 아주 오래 전부터 형 동생 하는 사이로
딸 둘 중 큰 딸은 영국으로 시집갔고 둘째 딸도 독립한데다 부인과 이혼하고
노모 모시고 홀아비로 산지가 오래되었다.
격의 없이 만나 술 한잔하는 후배다.

우리 동기 중 한명도 얼마 전 술 마시다 이런 경우를 당해 119에 실려 갔었다.
날짜를 넉넉하게 잡고 둘이서 술 한잔하기로 했었는데 약속 날을 며칠 앞두고 전화가 왔다.

‘종호야, 나 죽는 줄 알았어.’

후배와 똑 같은 경험담이었다.

‘그러니까 날짜를 좀 연기하자. 의사가 무조건 안정하라니까 두 주정도 연기하자.’

‘두주는 무슨,
약속은 나중에 나 나으면 하는 거로 무기한 연기하고 우선 치료하는데 전념하고
그 병은 절대안정을 취해야 한다니까 당분간은 나다니지 말고 꼼짝 말고 편하게 쉬거라.‘

‘야, 무슨 소리야. 약 먹고 있으니까 두주 정도 쉬면 괜찮을 거야.’

그러고 보니까 이런 증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직 간접적으로 꽤 여러 번 들었던 거 같았다.

며칠 전 내가 제일 아끼고 오랜 세월 가깝게 지내며 한 때는 막역한 술 대작 친구이기도 했던
우리 고교 후배가,

‘형님, 이제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민간요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어제 밤에도 거의 잠을 못 잤습니다. 수면제를 복용할까 했으나 버틸 때가지 버텨보려고요.
그래서 커피도 자제하고 있습니다.‘

여러 명이 저녁을 같이하고 일찍들 파하자
그냥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워 둘이서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와 차 한 잔으로
마주한 자리였었다.
옛날 같았으면 하다못해 포장마차라도 찾았을 거다.
보통은 이 친구가 워낙 양주 폭탄주를 좋아해 무조건 단골 카페였다.

‘잠 못 자면 엄청 힘들 텐데 그래도 수면제라도 좀 복용하지 그래.
그래, 양약에서 포기했지만 민간요법으로 건강을 되찾은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
체질에 잘 맞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도 보니까 술 한두 잔 하던데 술을 일단 딱 끊지 그래.
알코올이 아무래도 우리 몸에는 이물질 아니야?
건강할 때는 몰라도 지장을 주지 않겠어?‘

‘며칠 전에도 포도주 한 병을 마셨거든요. 그게 또 타격을 준 거 같기도 하고요.
다들 다 그만두고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하는데
저는 그러면 병이 더 악화 될 거 같아요. 평생 사람들 속에서 분주하게 살았는데
그러지 못하면 숨이 막힐 거 같아요.‘

‘맞아, 그럴 거야, 오히려 평상대로 분주하게 활동하면서 아픈 걸 잊어버리는 거가
더 나을지 몰라.‘

이 후배의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며칠 전에는 한 때는 권력의 핵심에 있었고 현재는 인기 있는 정치 논객으로
TV와 라디오 방송국에 수 개의 고정프로에 출연하며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전직 3선 국회의원이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다.

고인이 정치인으로 전성기 시절이었던 1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고인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도 하고 몇 번 사적인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어
나로서는 아닌 밤에 홍두깨로 그야말로 눈을 의심할 정도로 충격이었다.

내가 만나보고 느낀 고인은 체구는 자그마했지만 잡티가 하나도 없는 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잘 생긴 귀공자 생김새로 처음 대하면서부터 호감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정치인이라는 선입관에 맞지 않게 예민하고 섬세하고 매너가 부드러운 신사였다.
또 감정도 풍부하다고 느꼈다.

나를 소개해 준 분이 포항 유지 집안 출신이면서 고인의 지역구에 오래 거주한 지역 유지로  
고인의 정치적 버팀목 중 한 부분을 차지하던 분이었는데 폐암 수술 후 몇 년 만에
급성 폐렴으로 갑자기 사망하게 되어 부고를 받자마자 마침 그 때 시간이 비어 있어
그 길로 부랴부랴 빈소를 찾아 갔었다.
빈소를 차린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어수선하고 조문객도 별로 없었다.

조문을 마치고 유가족 외 딱히 아는 사람도 없어 쭈삣거리다 그만 일어날까 하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럽더니 고인이 보좌관 등 몇 명에 둘러싸여 뛰어 들어오다시피
황망히 들이닥쳐 아직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여
영정사진을 쓰다듬으며,
‘위원장님,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하며 눈물을 쏟아내 주변이 순식간에 숙연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짧은 순간 감동도 받았었다.

그렇게 영정을 부여안고 뚝뚝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절대 연기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한 고인은 연기를 절대 못 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고인의 정치인으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었나 싶다.

정치인으로서는 특이하게 상황에 맞는 주제로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해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의 처음 직장으로 승헌이, 순업이와 함께 다녔던 제세산업의 창업주와 고교 선후배 사이로
제세 창업주가 운영하고 있던 사설 연구소에 고인이 초창기부터 깊이 관여해
아주 희박하지만 공동 관심사도 있을 수 있었다.

지난 해 재혼 후 부인을 앞세워 고급 일식집을 차렸다는 보도가 있어 의아해 했는데
이유가 ‘돈이 없어서’ 라고 해 고인에 대한 이미지가 일순간에 사라지기도 했었다.
오랜 공직 생활에 3선 의원이라 연금도 만만치 않을 거고
여러 매스컴에 고정 출연을 하고 있어 그 수입만도 상당할 거고
여기저기 강연도 다니고 평판이 있어 어디든 맨입으로 다니고
가는 곳마다 공짜로 다니지는 않아 수입이 보통 월급쟁이 수준은 아닐 거라는 건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비록 이혼을 하고 재혼을 했다지만 겉보기에 절대 생활을 걱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운전기사까지 두고 일반인들에게는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한 걸로도 보인다.

그런데 일식집에 먹으러 다니기는 했겠지만 일식 셰프는커녕
요리라고는 해 본 적도 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도 자영업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견디다 못해
자기의 전부이자 가족의 생계수단이기도 한 가게를 피눈물을 흘리며 접고 있는 마당에
아무런 기술도, 경험도 없이 오로지 자기 이름 하나 내 걸고 그 판에 끼어들어
그런 사람들과 경쟁해 돈 더 벌겠다고 하는 생각을
최 상위 지도층의 한사람이자 불의와 왜곡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한 술 더 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가게를 동네방네 선전하고 다니는데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이 사람도 결국 이렇게 맛이 가는 구나.’

우울증 증세가 심했다지만 고인의 성격이나 성향으로 봤을 때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역할이고
자기에게 맞는 역할은 이제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
앞으로 나에게 맞는 배역이 주어질 가망이 없다면
내가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허무함,
그러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돌아보니
자기가 존재해서 더 이상 크게 책임을 져야할 대상도 별로 없다는데 대한 안도감,
뭐 이런 거가 고인을 압박하기도 하고 결심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 않았을까.
재혼한 부인에게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무대 위로 올려 져 바로 분장을 하고 세월을 지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분장의 두께가 점점 더 두꺼워지며 평생을 무대 위에 있다
죽어서야 무대에서 내려와 그 제서야 분장을 지울 수가 있다.
무대 위에서 주어진 배역이 자신에게 잘 맞으면 관중의 갈채를 받을 수 있고
잘 맞지 않으면 관중들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소외를 당하게 된다.
잘 맞지 않는 배역이라 아무 관심도 못 받거나 심지어 욕을 얻어먹고 있는데도  
구차하게 꾸역꾸역 무대 위에 빌붙어 있을 수도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으로서의 역할이 끝났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올 수도 있다.

다음 주 주말에는 여러 일이 겹쳐 토요살롱 건너뛰게 되니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하고
무더운 여름 건강 유의 바라며,
2019.07.20. 송 종 호.




토요 살롱 270회 " 羨 望 "
토요 살롱 268회 " 驕 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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