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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9-08-10 20:47:02, Hit : 58, Vote : 8
  토요 살롱 271회 " 쉼 터 "

일주일이 넘도록 행정안전부에서 보내는 폭염 주의 경보가 매일 문자로 날아오고 있다.
주초에 태풍의 영향으로 수도권에도 비가 오고 바람도 불거라는 예보에
더위를 잠시나마 식혀줄 거라 기대했으나
태풍 8호라나 뭔가가 남해안에 상륙 후 일찌감치 소멸되는 바람에
남쪽에는 강풍을 동반하여 와장창 비를 쏟아냈지만
중부 이북은 여름철 잠깐 쏟아지는 그 흔한 소나기에도 훨씬 못 미치게
옷도 젖지 않을 정도의 가랑비가 아침 일찍 살짝 지나가는 정도로 흩뿌리다 그치고 말았는데
그게 오히려 지열을 덥혔는지 낮에는 37도를 넘어 올 들어 최고의 폭염지수를 나타냈었다.

하지만 그저께가 입추였고 일요일인 내일이 말복이다.
주간 단위 예보는 여전히 찜통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껏해야 앞으로 한 주다.
모래 월요일에는 비소식도 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찜통더위가 쉬이 가시지 않겠지만 최소한 열대야는 없을 거다.

매일 새벽 공원에서 만나 운동을 같이 하는 이발사 출신 할아버지는
어제 아침 운동을 마무리 지을 무렵 하늘을 올려다보며,

‘벌써 뭔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잖아요? 저 하늘 보세요. 푸르고 높잖아요?
  아무리 덥다 해도 절기는 못 속이는 거예요.‘

이 할아버지는 자그마한 키에 몸매도 날렵하고 아직도 피부가 탱탱하고 안색이 불그레해
나이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물어보기가 뭐하다.
노인들은 스스로 자기 나이를 밝히기 전에 누가 자기 나이를 물어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누가 ‘금년에 어떻게 되십니까?’ 물어오면 무조건 기분이 나빠져
무의식중에 상대방을 언짢게 쳐다보게 되는데 나보다 나이 더 든 분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 성별, 학력, 출신학교, 고향,
직업, 사회적 지위, 재력 등 그 사람의 환경적이고 정황적인 back ground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나잇살이나 먹어 가지고.’
‘노인네가 주책이야.’
‘젊은 놈이 버르장머리 없이.’
‘젊은 여자애가 줄 담배에 술고래에, 참 말세네.’
‘걔, 경기 나와 서울 대 나왔어’
‘아, 그 사람, 우리 동문인데 학교 때 짤렸어.’

이런 한마디로 대충 그 사람의 등급이 매겨지고 그 등급이 기억 속에 입력되어 버린다.
이렇게 입력된 데이터는 좀체 바뀌지 않는다.
데이터를 변경하려면 먼저 입력된 데이터를 삭제하고
새로운 내용의 데이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다.
그래서 몇 살이라고 알려주면 그게 그대로 판단기준이 되고 자기와 비교 기준이 될까봐
그게 싫은 거다.

그렇다고 이발사 할아버지의 나이를 미루어 짐작할 필요가 없는 게
내가 이 동네에 9년 전인 2010년 봄에 이사 와 처음 안면을 튼 이웃이자
일 나가지 않는 휴무일에는 어김없이 새벽에 같이 뛰던 개인택시 하시던 분이
자기가 여든 살에 일을 그만 두고 그때까지는 뛸 거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입버릇처럼 이야기 했었는데
금년 봄에 일을 그만 두고 뛰기를 걷는 거로 바꾼 걸 보면
이분이 금년에 여든이 된 건 분명하고,
‘내가 이야기 했잖이여? 내가 80에 일 그만 둔다고.
그만 두니까 게을러져서 6시에 아침 먹고 7시나 돼야 나오는 거여.‘
이렇게 본인이 확인도 해 줬는데
이 분이 이 전직 이발사 할아버지를 형님이라고 칭하는 걸 보면
이 할아버지의 나이가 최소한 여든이 넘은 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인천은 토박이가 거의 없다 .
전체 인구의 10%도 안 되는 9% 정도라고 하는데 그 비율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천은 텃세가 덜하고 지방색이라는 게 없다시피 한다.
외지인 중에서도 충남, 호남 출신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인천에 연고를 둔 정치인들 거의가 이 양 지방 출신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수십 년 전에 터를 잡고 아이들이 인천에서 태어나 교육 받고 장성했기 때문에
이제는 토박이나 다름없다.
이 할아버지들도 어릴 적에 인천으로 이주해 와 한 동네에서 여생을 같이 보냈기 때문에
뻥이 통하지 않는 사이다.

이발사 할아버지의 말은 항상 조용조용한 톤인 반면에 어투가 단정적이고
말끝에 반론을 거부하는 힘이 실려 있다.
우리 60대 이상 노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기 입력된 데이터를 고수하기 때문에 누구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절대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변경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강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입력된 데이터와 유사한 데이터만 welcome이고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자동 아웃이다.

가을에만 하늘이 높고 푸른 게 아니다.
봄에도 비 온 뒤 구름 없는 날은 하늘이 푸르고 높고
여름이든 겨울이든 계절에 관계없이
공기가 깨끗하고 맑은 날은 언제나 푸르고 높은 하늘이다.
가을에 유난히 맑은 날이 많아 우리가 그렇게 배우고 느꼈지만
미세먼지가 수시로 가을 하늘을 덮는 요즘은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게 아니라며 대들 수 없다.
뭐라고 한마디 했다가는
‘그게 아니에요.’ 로 시작하는 실교를 한바탕 들어야 한다.
그래서 얼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 예,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하지만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높고 푸른 하늘과 관계없이 여전히 무지 덥다.

그러나 이 은근히 고집이 센 할아버지가 절대 밉지가 않다.
비록 자기가 하는 말에 무조건 수긍을 하고 장단을 맞춰줘야 하지만
항상 싱글거리는 미소로 먼저 안부를 물어주고 덕담도 먼저 건네 줘
어쩌다 새벽에 못 만나면 걱정이 되어 다음에 만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물어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어디를 가게 돼 며칠 못 나오게 되면 반드시 사전에 이야기를 해 주고
미국을 다녀 올 때도 일정을 미리 알려 준다.

지난 4월에 하프를 뛰고 쉬지 않고 뛰었더니 무리가 갔는지 발목에 피가 뭉쳐
내 디디면 발목이 시큰거리고 뻐근해 결국 뛰기를 포기하고
트랙을 걸어야만 했을 때,
‘미림극장 아시지요? 그 옆에 중앙 약국이라고 있는데 거기서 맨소래담 에어졸을 사서
하루에 몇 번씩 발목에 뿌리세요.
맨소래담 연고도 있고 파스도 있는데 에어로졸이 제일 잘 들어요.
다른 데는 한 통에 3천원, 어떤 곳은 3천5백 원도 받는데 중앙약국은 2천5백 원이에요.‘
무심결에,
‘아, 예.’ 했지만 중앙약국에 가서 맨소래담 에어졸을 사 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매일 새벽 만날 때마다  한마디씩 꼭 들어야 했다.
‘에어졸 샀어요?’
‘들어오는 길에 산다는 게 또 깜빡했네요.’
이런 대화를 거의 2주간 매일 아침 계속하다 더 못 견디고
결국 중앙약국에 가서 사야만 했다.
매일 듣는 할아버지의 잔소리였지만 전혀 불쾌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 잔소리가 정겨웠다.

이렇게 새벽에 만나 운동을 같이하는 운동 객중에 서로 통성명조차 하지 않고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도 대충 눈대중으로 짐작만하고
이처럼 아무 격의 없이 안부를 주고받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된 사람들이 몇 있다.
연령대가 40대부터 80대까지 범위가 넓은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벽의 시원한 바람과 신선한 공기도 좋고 초록의 싱그러운 숲도 좋고
예쁘고 화려한 꽃 무더기로 단장한 정원도 좋지만
하루의 시작을 열어 주고 하루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건 바로 이 사람들과
눈 뜨자 새벽녘에 처음으로 나누는 정겨운 대화들이다.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상념에 시달리고 과거를 돌이키며 회한에 젖어 잠을 설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키지 않는 새벽길을 나서서도
그날 처음으로 부딪치는 이 사람들이 밝은 표정과 환한 미소로 맞아주며 나누는 인사들이
실타래처럼 뭉쳐 복잡하고 괴롭던 마음을 단숨에 풀어 준다.
지친 다리를 쉬어갈 수 있게 해 주는 쉼터 같은 사람들이다.
  
‘대구는 태풍 때문에 비가 와서 그래도 좀 시원한데 서울도 덜 덥지예?’

‘서울은 겨우 비 한 두 방울 찔끔거리다 말았는데
낮에 37도도 넘어 숨이 헉헉 넘어갈 정도라 혓바닥 내밀고 다니는 개가 따로 없습니다.
지금은 대구보다 훨씬 더 더워요.‘

‘어머, 우짜노.’

지난 십 수 년 동안 일 년에 두 번 성묘 길에 대구에 가면 남철이와 대식이와
의례히 만나 저녁도 하고 술도 한잔 하던 생고기 전문 식당 ‘거기’ 가
지난 4월에 문을 닫는 바람에 새로운 아지트를 찾아야만 되었다.

지난 4월 초에 들렀을 때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이 영업 마지막 날이라고 하여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갑자기 왜? 장사도 잘 되는데?’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거동도 불편하시거든예. 아버님은 아흔이 넘으셨어예.
그러신데도 딸이 걱정 돼 매일 지팡이 짚고 가게에 나와 들여다보고 가십니더.
얼마나 더 사실 거라고. 그래서 마지막 가실 때까지 제가 모실라고예.
가게 하면서는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야 하니까 그게 마음 같이 안 되거든예.‘

경상도 사투리가 억세기도 하고 보통은 톤이 높아 시끄럽기도 해
짜증이 날 정도로 그슬릴 때가 더 많지만
여자가 이렇게 느릿느릿 조근조근 높낮이 없이 속삭이듯이 말하면
정겹기도 하고 비록 간들어진다 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애교가 묻어 있는 거처럼 들릴 때도 있다.

지난 십 수 년 간 매번 갈 때마다 우리가 항상 마지막 손님이었다.
술잔을 따라주거나 취향에 따라 자작하거나 하며 수다 내지 회포를 풀다보면
어느새 주변 자리가 텅 비었다.
밤 10시쯤에 주방이 문 닫는다는 재촉을 받고서야
마지막으로 그 집의 일품인 국수를 주문했다.
그리고 언제나 여주인이 문밖까지 배웅을 했었다.

그 마지막 날은 날이 날인지라 술도 얼큰해지고 여주인이 서비스로 추가로 내온
생고기 한 접시도 다 비우고 국수까지 퍼 먹고 밤도 제법 이슥해져서야 자리를 일어났는데도
홀이고 방이고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북적였다.
여사장은 양손에 주문지 들고 주방에서 진두지휘 하느라
다른 곳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사장님이 그 동안 고마웠다고 특별히 서비스로 내 주신 거니까 남기시면 안 됩니더.
다 드셔야 됩니더.‘
서빙하는 아줌마들이 처음 보는 세련된 차림들이었는데
모두 여 주인의 친구, 후배, 지인들로 그 날 특별히 자원 봉사자로 동원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팁도 극구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그렇게 부산하고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여사장이 손을 털고 배웅하러 나왔다.
눈 위로만 내 놓고 그 밑의 얼굴을 완전히 덮은 마스크를 하고 있기에
혹시 주방의 냄새 때문인가 하고 영문을 물었더니,
‘감기가 심하게 걸렸어예. 그래서 옮길까봐 가까이 못 가고 이만큼 떨어져 있는 겁니더“
목소리가 잠기고 코맹맹이 소리도 섞였지만 마스크 위의 눈은 생글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문 닫아버리면 우리는 이제 어디 가서 얻어먹고 다니나?’

‘아이고 무슨 말씀을.
저희 같이 변변치 못 한 곳에 때 되면 언제나 찾아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데예.
오시는 날이 항상 정해져 있어서 그 근방이 되면 기다려지기도 했거든예.
그날 안 오시면 딴 데 가셨는가하고 서운해 하기도 했는데 그 다음 날에는 꼭 오셨거든예.
그러면 말씀을 못 드렸지만 참 반가웠어예.‘

‘그럼, 앞으로는 우리하고 주인과 손님 사이가 아니라 친구로 만나도록 합시다.
우리 만날 때 연락드릴게요. 연락처 주실래요? ‘

‘제 명함 가지고 계시지예. 제 전화는 제 명함에 있는 번호 그대로 입니더.’

‘아. 예, 가지고 있습니다.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다음에 다른 관계로 만나더라도 오늘 여기서는 마지막이니까
작별인사로 한번 안아봅시다.‘

‘아이고 안 돼예. 감기 옮길까봐 안 그래도 멀찌감치 있었는데예.’
그러면서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는데 마스크위로 유난히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불빛에 반짝이며 여전히 생글거리고 있었다.

막상 8월 30일 대구에서 저녁을 하기로 했지만 장소를 정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여사장에게 전화를 해 봤다.
알고 지낸지는 십 수 년이지만 처음 해 보는 전화였다.
다행히 반갑게 받아 주었다.

‘제가 운영하던 ’거기‘는 다른 사람이 인수해서 막창구이 전문 집으로 바뀌었어예.
막창구이 드셔도 되고 아니면 그 일대에서는 생고기 원조인 ‘두산 일 번지’ 가
옛날 가게 건너편에 새로 지어 오픈했는데 주인도 같고 메뉴도 옛날 그대로라예.‘

두산 일 번지는 남철이가 단골이던 ‘거기’로 옮기기 전에
20여 년 전부터 대식이와 주로 만나던 곳이다.
남철이는 대구의 대표 먹거리 중 하나인 막창이나 대창 같은 무지막지한 음식은 먹지 않는다.
생선 회 같은 날 거도 좋아하지 않는다.
생고기도 대식이 때문에 처음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대구에서 만날 장소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이달 말에 ‘거기’의 여 사장이 모임에 동참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대구 지산 동 생고기 전문집 ‘거기’의 여사장은 이제는 추억이 되어
기억 속에 어쩌다 떠올라 머무를 새도 없이 휙 스쳐갈 망정이라도
그 때마다 시원한 청량제가 되고 잠깐이나마 지친 마음을 쉬게 해 주는 쉼터가 되고 있다.

며칠 전 오랫동안 격조했던 25회 후배 몇 명과 자리를 함께 했다.
7월 초, 비교적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일 년에 몇 번은 만나기도 하면서
오랜 세월 가까이 지내던 25회 후배와 선후배가 섞인 어느 모임이 일찍 파한 후
헤어지기가 아쉬워 둘이서 근처 찻집에서 차 한 잔으로 뒤풀이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현 듯,
‘형님은 25회 중에 누구 보고 싶은 후배 없으세요?’
‘아, 있지. 있네, 있어. 오랜 세월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립고 보고 싶네.’
‘아, 그래요? 저도 그 친구들 본지 꽤 됐는데 말 나온 김에 바로 연락해서 날 잡을 게요.’

이렇게 해서 만든 자리였다.
한 후배는 거의 25년 만에 만났고 한 후배는 10년 만에 만났다.
‘종호 형은 원래 머리가 하얬어요?’
시종 꽤 비싸게 보이는 멋진 패션의 도리우찌 모자를 벗지 않는 한 후배는
머리 숱 보다는 백발만 들여다봤고
아직도 새까만 머리숱이 풍성한 다른 후배는,
‘그래도 머리털이 좀 붙어있네요.’

술들을 예전만큼은 하지 못했지만 옛 추억을 더듬으며 시종 유쾌했고
쉬이 헤어지기가 아쉬운 자리였다.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이제는 자주 연락도 하고 종종 막걸리 한잔씩도 하도록 하자.’
25년 전 아무 이해 관계없이 주량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분위도 비슷해
그냥 술친구였던 후배는,
‘종호 형, 왜 이제야 저 찾았어요?
형님 이야기는 형님 동기들로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미안하다.
앞으로 자주 연락하고 종종 대포도 한잔씩 하도록 하자.‘

이튿날, 7,8년 연락을 못하고 지내던 또 다른 25회 후배로부터 득달같이 전화가 왔다.
이 친구는 성대를 같이 다녀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내던 후배다.
‘종호 형, 어제 우리 동기들 만났다면서요? 왜 저한테는 연락 안했어요?’
‘어, 그렇게 됐나? 갑자기 뭐 하다 보니 그렇게 됐나 보네.
다음에 보도록 하고 우선 너하고 둘이서 조만간 막걸리 한잔 하도록 하자.
내가 9월 초에 미국 다녀오려니까 그 전에 연락할게.‘
‘막걸리 좋지요. 언제라도 편하실 때 연락 주십시오.’

오래 잊고 있던 후배들을 만나고 옛 추억을 되살리며
이렇게 또 한 곳의 쉼터가 마련되게 되었다.
2019.08.10. 송 종 호.




토요 살롱 272회 " 그 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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