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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19-09-07 21:47:38, Hit : 123, Vote : 15
  토요 살롱 274회 " 성묘 다녀오는 길목에서 "

가을장마라나.
화요일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쏟아졌다 멈췄다 를 반복하며 어제 밤까지 계속되다
저녁 늦게 비는 멎었지만 아침 일찍부터 마른하늘에
천둥에다 번개에다 번갈아가며 요란하게 쳐대며 미리부터 잔뜩 겁을 주다가
베란다 창문이 터지지 않을까 덜컥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동쪽으로부터 강풍이 불어대더니  
오후 들어서는 여전한 바람에 많은 비는 아니지만 빗발까지 날리고 있다.

나가기가 겁이 나 점심으로 라면 하나 끓여먹었으나 커피 생각이 간절해
지난 번 미국 가서 커피 사 오는 걸 까먹은 걸
벌써 수도 없이 자책했지만 다시 한 번 더 후회막심하며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온갖 욕을 다 중얼거리다
우산을 챙기려고 우산대를 보니 어제 가지고 나간 우산이 없었다.
나갈 때는 비가 왔는데 들어올 때는 비가 오지 않았었다.
어디에 두고 왔는지 짐작은 가지만 이미 어쩔 수가 없다.
이번 여름에 벌써 두 개째다.

따따블로 짜증을 내며 집에서 제일 가까운 커피 집에 들러 테이크아웃을 하여
우산은 챙겼지만 정작 우산이 날아갈까 봐 우산을 펴지도 못하고
빗발을 그대로 맞으며 다녀왔는데
이런 강력한 바람을 직접 맞아본 건 아마 내 평생에 처음 인 거 같았다.

그런데 한산하리라 생각했던 커피 집은 뜻밖에도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기야 이런 날, 잔뜩 흐린 잿빛 하늘에 바람 불고 빗방울 날리는 날,
창 넓은 찻집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진한 블랙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홀짝홀짝 맛을 음미하면서 커피가 다 식도록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시는 걸
나도 무척 좋아한다.
혼자라도 좋고 누구와 같이 라도 좋고.

그런데 주로 혼자다. 혼자서 책을 읽는다.
주로가 아니라 아예 그런 분위기를 누구와 같이 공유해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우선 주변에 커피를 즐기는 사람도 없고
그런 우중충한 날을 배경으로 무드에 젖으려는 사람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금요일이라 원래 차량이 많은데다 T-map 이 안내한 중부내륙이 도로공사로 체증이 심해
영천 호국원에 예정보다 한 시간도 넘게 지연 도착했다.
그런데 창성공방 아줌마가 보이지 않아 가게 안을 서성이고 있는데,

“ 아줌마 찾으시능교? 아줌마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어예.
  제가 도와드리겠십니더.“

지난 한식 때 살이 많이 불어 있어 돈 배가 나왔다고 놀렸더니
허리가 아파 운동을 못하니까 살만 찐다며 눈을 내리깔고 수줍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선 큰 병이 아니길 빌고 쾌유하여 내년 한식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언제나처럼 맨발로 뛰어나오다시피 환하게 웃으며,

“ 아이고 어서 오이소. 차는 안 맥혔능교?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렸어예.”

하며 반겨주길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오후 2시가 훌쩍 넘은 어정쩡한 시간이라 그런지 석계 칼국수 집은 한산했다.
나 외에 손님이 한 테이블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두 자매는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좀체 밖에 모습을 들어 내지 않다가,

‘어머, 오셨어예?’

무릎 위 한 뼘도 더 올라가 허벅지가 다 들어나는 짧은 빨간 미니스커트에
분홍색 반팔 티 차림의 언니가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띄우며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아래윗니를 다 들어내는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준다.
이 집 둘째 며느리로 들어온 지 4,5년은 됐을 거 같은데 아직 출산경험이 없어서인지
나이가 아직 어려서인지 뽀얀 피부에 소녀티가 그대로 남아 있고
뒤로 한 번 묶은 적당히 긴 새카만 생머리와 어떤 옷도 어울릴 거 같은 알맞은 키에
가녀리지만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온 몸매도 변함이 없다.

“어이구, 어떻게 된 게 결혼한 지 한참 지난 아줌만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이뻐져?
신랑이 잘 해 주는 거야? 일이 재미있는 거야?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미스 영천에 도전해야 되는 거 아니야?”

‘아이라예. 놀리시는 거 다 알아예. “

말은 그러면서도 귀까지 빨갛게 붉히며,

“힘들어예.”

한 팔을 들어 올려 어깨를 주무르는 척하며 눈은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얼굴의 붉은 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채 콧등에 주름이 지게 찡그리는 모습이
귀엽고 애교가 철철 넘친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칼국수 드릴까예?“

기계로 뽑은 맨들맨들한 면을 사다가 맹물에 소금만 넣고 끓여주니 말만 칼국수다.
파도 쓸어 넣고 당근도 쓸어 넣었지만 국물도 쌀 뜬 물이 아니라서
이 맛도 저 맛도 없이 그저 밋밋하다.
멸치 한 마리도 우려내지 않아 비릿한 냄새조차 없다.

그러나 고춧가루와 소금만 넣고 삭혀 짜고 맵기만 했던 예전의 김치가 아니었다.
지난해 젓갈을 살짝 섞어 담든 김장김치가 지난 한식 때에 먹어 봤을 때보다
맛이 훨씬 짙게 벤 푹 삭은 묵은 김치가 되어 면과 국물의 무미를 충분히 보완해주고 있었다.
양념간장도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에 파와 청양고추를 잘게 쓸어 넣고
참기름을 충분히 첨가하여 고소한 맛을 더해
김치와 간장양념 맛으로만 넘치게 가득 담아 온 칼국수 한 그릇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울 수 있었다.

“ 워낙 잘 드셔서 곱빼기로 담아왔어예. ”

막 들어 올 때는 텅 비었었는데 내가 자리를 잡자
띄엄띄엄 손님들이 한 두 쌍식 들어오는가 하더니 국수를 퍼먹기 시작할 때쯤에는
이도 저도 아닌 시간대인데도 어느 듯 빈자리가 꾸역꾸역 반쯤은 채워져 있었다.

“ 장사 잘 되네. 젊고 예쁜 자매 둘이서 하니까 더 잘 되는 거 아니야?
  음식 맛 보다 미인계로 손님 홀리는 거 같은데?
  하기야 아직 어린 동생까지 데려다 고생시키고 있는데
  옛날 어머님이 하실 때 보다 훨씬 잘 돼야지.
  야, 그러고 보니 우선 부엌이 확 달라졌네. 주방 분위기가 밝고 환하고. “

불 때던 아궁이와 그 위에 걸려 있던 커다란 가마솥이 사라졌고
밀가루 부대 저장하던 곳, 반죽하고 칼로 썰던 다이, 싹없어지고
최신식 싱크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바닥도 타일을 깔아 깨끗하고 산뜻해졌다.
부엌에 공간이 나지 않아 부엌입구 한켠에서 며느리가 파를 다듬곤 했는데
이제는 부엌이 확 틔어 모든 일을 주방 안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동선이 짧아져 움직임이 줄어들었고 두 자매가 보기에 시원할 정도로
워낙 날래고 잽싸 더 이상 보조원이 필요 없어 보였다.
돌아가신 아줌마가 일 할 때는 아줌마에 아저씨, 할머니, 주방에서 서빙하는 아줌마,
며느리, 혹은 딸 이렇게 여러 명이었는데도 다들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지금은 자매 달랑 둘이서도 활기차게 쌩쌩 잘 돌아가고 있었다.

“ 또 뵙겠습니다.”

눈과 입이 다 생글거리는 싱싱하고 예쁘고 애교 넘치는 두 어린 자매의 인사를 뒤로 하고
차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들리는 곳이 옥외 화장실이다.
여기서 대구 산소까지 국도로 한 시간 반 거리다.
벌초하고 호텔에 체크 인 할 때까지 4시간 가까이 화장실 볼 데가 마땅치 않다.
그런데 옥외 화장실이 정화조도 묻지 않은 완전한 재래식이라
냄새가 거의 질식시킬 정도였었다.
그래서 화장실 문 열기 전에 심호흡을 하여 공기를 입빠이 폐에 저장하고
소변보는 내내 숨을 참아야 했다.

어떤 때는 소변 다 보기 전에 숨을 참지 못 할 경우도 있어 이럴 때는
중도에 소변을 참는 고통이 그래도 나아 시원하게 쏟아져 나오는 소변을 끊고
밖으로 나와 숨을 고르고 공기를 빈 폐에 재 저장한 후 다시 들어가 마저 소변을 보곤 했다.
그래서 이 번에도 한번 크게 숨을 들이 키고 숨을 참은 채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싹 달라진 분위기에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화장실 내부가 현대식 변기와 바닥 타일로 싹 바뀌어 있었다.
약간 코끝을 스치는 소독약 냄새 외에 악취도 없었다.
그냥 흔히 접하는 지하철역, 고속도로 휴게실 수준의 화장실이었다.

숨을 다 내 뱉고 느긋하게 소변을 봐도 되게 되자
생글생글 늘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채 잽싸고 날렵하게 종종걸음 치는
두 자매의 모습이 떠오르며 흐뭇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기분에 업혀 일순 혼탁하던 머리가 맑아지고 무겁던 몸이 가벼워지며
오늘 일정도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마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확 번지고
새로운 신선한 기운이 돋아 온 몸의 구석구석을 휘감아 돌며
아침 일찍부터 천리 길을 달려오는 동안 쌓인 피로를 싹 몰아내는 거 같았다..

더위가 한풀 꺾인 데다 날이 맑고 좋아서인지
두류산 모포부대 할머니들의 숫자가 더 늘어나 보였다.
산소 앞 남쪽 대로로 내려가면서는 아카시아 숲과 경계로 약간의 공간이 있지만
산소를 중심으로 사면이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숲을 이루고 있는데
산소 옆 숲 속의 작은 공터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할머니들이
낫과 막걸리 한 병, 마른 오징어 한 마리, 수건과 바르는 모기 퇴치 제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터벅터벅 산소로 다 올라갈 때까지 힐끗 한번 행색을 훑어보며 손님인지 아닌지 확인하고는
아닌 게 확실해 보여 금방 눈길을 돌리더니 그제야 알아보고
무거운 엉덩이를 아주 굼뜨게 일으키기까지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 아이고 오셨능교? 오늘 금요일인데다 벌초 가는 사람도 많아 차가 마이 막혔지예?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더. 시원한 물 한잔 드릴까예?
  돗자리 안 가져 오셨지예? 이거 쓰이소.“

그런데 산소 앞이 훤하다.
산소로 올라가는 기슭에서부터 소나무 숲이 이어지다 산소 앞에 다다르기 바로 전
산소와 사이에 겨우 돗자리 깔 정도의 간격만 두고 아카시아가 제법 밭을 이루고 있었는데
아주 종적도 없이 제거되고 그 자리에 자라고 있던 야생초마저 깨끗하게 제초가 되어있었다.

“ 시원하게 잘 깎았지예? 관리소 직원들이 아카시아 다 베고 뽑고 했다 아입니꺼.
  며칠 전에 묘만 빼고 주변에 풀도 다 뱄어예. “

그러고 주위를 둘러보니 앞뿐만 아니라 사방에 아카시아가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벌초 할 때면 아카시아 뿌리가 무덤으로 뻗지 않도록 주변의 아카시아를 쳐 내고
무덤 위에 막 뿌리를 내린 어린 아카시아를 뽑아내는 일이 거의 전부였는데
아카시아가 싹 사라지고 무덤에도 아카시아가 뿌리를 내린 흔적이 없으니
예년보다 일이 훨씬 수월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무덤에 풀도 무성하지가 않다.
가위 낫으로 몇 번 왔다갔다 깎은 겨우 몇 움큼 풀을 오히려 시뻘건 흙이 들어난 부분에
덮어줘야 할 정도다.
점점 맨살이 들어나고 있다. 풀이 난 자리보다 흙더미가 더 눈에 띈다.
15,6년 전 잔디를 입혀봤지만 잔디도 자라지 않았다.
금년이 58년,
봉분의 흙도 풀이 자랄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을 잃고 수명을 다 했는가 보다.
30년쯤 전에 누군가가 우리 묘지 옆에 몰래 매장한 주인 모르는 옆의 묘가
오히려 언 듯 봐서는 봉분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풀이 무성했다.

봉분을 다시 입혀 단장을 새롭게 해 볼까도 생각해봤으나 애들이 모두 미국에 있고
앞으로 생활기반도 미국일 거고 따라서 한국에 나올 일도 별로 없을 거라
혹시 잠깐 무슨 일로 오더라도 할아버지 산소를 들여다 볼 만큼 한가하지도 않을 거라
나 외에는 와 볼 사람도 없어 그 생각을 접어 버렸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것도 이렇게 두발로 다닐 수 있는 동안,
그렇게 따지면 부친 산소를 성묘하고 벌초하러 다닐 시간이
앞으로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을 세월일 테니까 이대로 두는 수밖에.

다행히도 날이 그렇게 덥지 않아 비록 그것도 노동이라고 땀은 많이 흘렸지만
긴팔과 목장갑이 버겁지가 않았고
잊지 않고 준비해 간 모기퇴치 제 덕에 모기에게 뜯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아주 편안하게 그리고 훨씬 빨리 두기 묘소의 벌초를 마칠 수 있었다.

벌초를 마칠 때 즈음에는 할머니들이 알아서 자리를 숲 안쪽으로 더 멀찌감치 비켜 주고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도 죽여주고
내가 제를 올리며 신경 쓰지 않도록 애써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려도 준다.

할머니들이 하나 둘 돗자리와 커피포트, 소주병, 커피 잔, 소주잔,
간단한 마른안주 몇 가지가 든 바구니를 들고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는
물론 그렇지 않았다.
내가 뭐를 하던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바로 무덤 옆에 전을 펴고
소리소리 지르며 호객 행위를 하고 어쩌다 낚인 할아버지 손님을 앉혀 두고
소주도 따르고 커피도 따르며 웃고 떠들고 했었다.

그러나 올 때마다 산소 잘 지켜줘서 고맙다며 다들 같이 식사나 하시라고
얼마간의 사례금을 건네 준 영향도 있었겠지만 제를 올리며 눈물을 훔치는 걸 본 후로는
할머니들도 숙연해 져 예의를 차리는 거 같았다.
그 이후로는 뭣도 모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묘소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로 가면 안 된다는 수신호를 강력하게 보내 우회시키는 등
내가 오징어 다리 안주로 막걸리 한잔하며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보초역할까지 해 주고 있다.

호텔 체크인하고 벌초하며 흠뻑 흘린 땀을 씻으러 대충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하니까
잠깐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이 벌써 약속 시간인 7시가 다 되어 있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남철이가 벌써 와서 자리 잡고 무료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 죄송합니더. 제가 간다고 약속해 놓고 못 가게 됐어예.
  아버지가 치매라서 낮에는 요양원에 가 계시다가 저녁 7시에 오시거든예.
  그래서 아버지 오시면 좀 챙겨드리고 바로 가려고 했었는데
  하필 오늘 요양사하고 같이 오셔서 상담하고 하다보니까 너무 늦어졌어예.
  우짭니꺼 죄송해서예. “

“ 늦도록 연락이 없으셔서 대충 그럴 거라 짐작은 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참 대단하십니다.
  나이 들어 병든 부모님 봉양 하려 하던 일 다 팽개치고 현대판 심청이라고 해야 하나
  나라에서 표창장이라도 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  

“ 아이라예, 다들 그 정도야 합니더. 더 잘 해야 하는데 제가 많이 부족합니더.
  그러고 바로 밑에 동생이 가까이에 살거든예. 그래서 많이 도와줍니더. ‘

생고기 집 ‘거기’ 여사장은 6남매의 맡이라고 했다.
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고 정작 본인은 환갑이 넘은 나이가 되도록 시집도 못 갔다고 한다.
애완견 몇 마리 키우고 있다고 하기에,

“ 하기야 지금 이 나이에 더럽고 냄새나고 이거저거 다 챙겨 줘야하고
  각종 병 치다꺼리 다 해 줘야 되고 옹고집에 뻑 하면 삐져
  시도 때도 없이 비위 맞춰 줘야 하는 늙어빠져 힘도 없는 영감 하나 데리고 사는 거 보다
  말 잘 듣고 고마워할 줄 아는 개 몇 마리 데리고 사는 게 훨씬 나을 지도 모르겠네요. “

했더니 수화기 너머로 숨 죽여 웃느라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겨우 숨을 되찾아,

“그렇십니꺼?”

하는데 말에 아직도 웃음기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남철이와 소주 한 병과 맥주 몇 병 비우고 안주로 생고기 한 접시를 다 비울 때쯤
대식이가 들어왔다.
셋이서 일 년에 두 번 만나다보니까 할 이야기들이 많아 주제가 중구난방으로 튀고
그러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남철이가 상당한 지식을 갖추었고 대식이의 관심사이기도 한 우리나라 역사 이야기와
시국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다.

대식이는 고등학교와 대학은 서울에서 나왔지만 대구에서 태어나서
그 외 나머지 기간은 대구에서 보낸 대구 토박이나 마찬가지이고
남철이는 부모님이 이북에서 피난 온 이북 출신에 대구에서 교수로 삼십 몇 년을 재직하다 보니까
지역 정서와 잘 부합 돼 둘은 정치적이나 시국을 보는 관점에서 의기투합이 된다.
그래서 별 이견 없이 이야기가 술술 점입가경으로 잘도 흘러간다.
술도 몇 순배 돌고 스스로들 이야기에 어느 정도 만족해지자
남철이가 문득,

“ 그런데 말이야, noblesse oblige 라고 하는데 말이야.
  oblige를 하려면 noblesse 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noblesse가 없으면 oblige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우리나라는 말이야, 좆도 noblesse가 없잖아. “
  
다음 주 화요일인 9월10일에 미국으로 출국해 추석 연휴를 미국 집에서 보내고
한 달 가량 더 머물다 10월 중순경 돌아 올 예정이지만
여기 상황에 따라 9월 말 전에 돌아와야 할지도 몰라 귀국일은 오픈 상태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미국 체류 기간 동안은 토요 살롱도 휴무다.
이 점 미리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모쪼록 우리 동기들과 가족들, 토요살롱 독자 여러분들 모두가
즐겁고 풍성하고 화목하고 행복이 넘치는 추석 명절 보내기 기원하고
우리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토요 살롱을 통해 다시 만나길 소망하며,
2019.09.07. 송 종 호.




토요 살롱 275회 " 中 秋 "
토요 살롱 273회 " 어슬픈 피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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