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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2-15 21:01:17, Hit : 106, Vote : 6
  토요 살롱 289회 " 서울고 24회 故 조 항 규의 명복을 빌며 "

날이 포근하다 못해 오늘은 영상 15도까지 올라가 베란다 겹창 중 하나는 열어야 할 정도로
봄날을 방불케 하고 있다. 외투를 벗어버렸는데도 오히려 가볍게 느껴지고
걸어 다니는 파카 차람이 갑갑해 보인다.
그러나 영하의 혹한에는 추운 대신 공기가 비교적 깨끗하고
날이 풀리면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로 공기가 탁해지는 새로운 겨울철 풍속도가
공식처럼 규칙적으로 되풀이 되고 있는지
지난 수요일 종일 비가 오락가락 한 후 저녁 무렵 비가 그치자 이내 다음날부터
미세먼지, 초 미세먼지가 밀려와 대기 질의 나쁨 상태가 오늘 오전까지 이어지다
오후 들어 날이 잔뜩 흐려지며 남풍이 불어오면서야 비로소 공기가 맑아지고 있다.
어제는 미세먼지 주의 경보까지 떴었다.
주초에 운동을 빠뜨렸다면 일주일 내 운동을 못 할 뻔 했다.

4월 18일 동문 가족 마라톤 대회에 이번에도 하프에 도전할 요량으로 슬슬 준비를 시작해
이번 주부터 운동량도 끌어올리고 운동 횟수도 늘이려고 했는데
문자로 날아 온 대회 시간표와 내용을 보니까 하프가 빠져 있었다.
마라톤 총무에게 알아본 즉, 하프 출전 인원수도 격감해 10여명밖에 되지 않고
이번에는 뚝섬유원지 임대시간이 짧아 하프 출전 동문들이 뛰고 와서
점심도 변변히 챙길 시간조차 여의치 않은 거 같아 하프 종목을 생략했다고 한다.

매년 하프를 완주하는 거가 년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목표 중 하나였는데
순간 맥이 쭉 빠지며 아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준비를 했지만 당일 미세먼지 농도 등 사정이 여의치 않아 참가를 못 하는 거와
종목이 없어져 아예 준비조차 할 필요 없는 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맥이 풀리고 운동이 게을러진다.

대회 참가를 앞두고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도중에 날씨나 미세먼지 때문에
준비에 차질이 생기면 조바심도 나고 짜증도 나지만
뭐 달성할 목표가 없어지니까 마음도 만판이 된다.
전날에 예보가 있지만 혹시나 해서 새벽에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해 보고는
쉽게 포기하고 이내 다시 잠을 청해버리고 만다.
며칠 동안 잠만 늘었다.
오늘 저녁 무렵부터 내리다 말다 찔끔거리고 있는 비가 내일 오전까지 이어질 거라는데
모쪼록 이 비가 먼지를 깨끗이 씻어줄 정도로 충분한 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제 아침에 총무 대진이가 조 항규 별세 소식을 알려왔다.
지난해는 새해 벽두인 1월 초 오랜 기간 연락이 두절됐던 종우가 이미 2016년에
간암 투병 중이다 별세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려 주었고
이어 3월에는 미국 요양원에서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던
뉴욕 거주 손 영규의 사망 소식을 알려왔다.
그러고 한동안 뜸하다 10월에 뜬금없이 박 영철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어
우리 모두를 비탄에 빠뜨리게 했는데
사망 소식만으로만 따진다면 세 명의 동기가 지난 해 우리 곁을 떠난 셈이다.

이렇게 먼저 떠나는 우리 동기들의 부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개인적인 친소관계를 떠나 옛날 경희궁 터에서
세상에 대한 고민과 세상을 향한 꿈을 함께하던 청소년 시절을 떠올리며
뭔가 아쉽고 서운한 마음과 이렇게 빨리 가다니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남겨진 유가족들과 슬픔을 교감하며 잠시나마 울적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동기회에서 통계를 내지 않아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으나
여태까지 약 60여명의 동기들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가 대략적인 중론이다.
거기다 연락이 두절된 동기들이 60여명 된다고 한다.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 하고 우리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금년 한 해만큼은 더 이상 부고 소식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항규는 학교 다닐 때는 전혀 몰랐다가 30여 년 전 동기 송년회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었었다.
그렇게 얼굴을 익힌 후로는 동기 회 행사나 경조사에서 오다가다 만나면
반갑게 악수나 하고 안부나 묻는 정도였는데
이십 몇 년 전인가 인천에 있던 내 회사 사무실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구경 차 왔다며 한담을 나누다 무슨 건설회사 명함을 건네주며
자기도 건설 관련 일을 하고 있고 거주지도 인천이니까 자주 연락하자고 했었다.

그러면서 동기회 행사나 경조사에 가면 거의 반드시 항규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항규는
당시에 우리 동기 일에 열성적이었던 거 같다.
그러다 항규를 포함한 동기들 몇이서 석태가 발주한 공장 건설을 도급 맡아
공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그 와중에 어쩌다 항규와 부딪쳐 안부를 물으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현장에서 살다 시피 해 바쁘다며 의욕과 활기에 찬 모습이었다.

당시에도 항규는 몸이 상당히 나 있었다.
자주 만나면 변화가 잘 안보이지만 어쩌다 만나니까 만날 때마다
몸이 더 불어난 모습을 쉽게 알아 챌 수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는,
‘항규야, 전부다 몸이 더 난 거 같네? 일이 잘 되는가 보지? 그거 다 돈 배 아니야?’
가 건네는 인사말이 되었고 그럴 때마다 쑥스럽게 씩 웃으며  
‘그러게 말이야, 체중을 좀 줄여야 되는데 술하고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가 늘 하는 대답이었다.

그러다 무슨 연유인지 몇 년간 항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20 여 년 전 쯤,
그러니까 1997,8년 경 압 구정 동 전철역 입구에서 우연히 항규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1997년 초에 세상의 이목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한보 부도 사태 후
한보의 채권단 회장을 맡아 일주일에 두 번은 채권단 사무실로 가서
채권단 간부회의를 주재했었는데 회장단과 간부들이 모두 회사 사장들이라
이른 아침에는 각자 회사에서 일을 보고 오전 11시에 회의를 했다.
그 날이 마침 그 중의 한 날이라 시간에 맞춰 오전 느지막이 집에서 나와
한보 채권단 사무실로 가려 전철역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항규가, ‘어 종호 아니야.’ 하고 불러 세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항규를 못 알아 볼 뻔했다.
배가 터질 듯이 불어난 몸에 행색이 초라했고 초점이 흐린 눈은 충혈 되어 있었다.

‘어, 항규구나, 아침나절에 여긴 왠 일이야? 사무실이 이 근방이야?
나는 집이 여긴데 지금 한보에서 회의가 있어 가는 중이라 시간이 없어
차 한 잔도 같이 못하겠구나. ‘

“ 참, 니가 집이 여기지. 몇 동 몇 호니? 응, 거래처 좀 들리느라고.”

그러면서 주섬주섬 명함을 꺼내 주는데 전에 받은 명함이 아니었다.
회사가 바뀌어 있었다.
직함이 부사장이었다.

“ 뭐 하는 회사야? ”

“인테리어 하는 회사야. 나는 영업을 하고.”

항규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내 눈치를 살피며 주저주저하는 거 같았는데
내가 회의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또 보자.’하고 서둘러 작별을 하고 헤어졌지만
뭔가 꺼림칙하고 뒤가 켕기는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때 항규의 그 모습과 표정이 또렷이 남아 있다.

그리고 몇 해 지나 어디 동기 누군가의 상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분향을 마치고 접대실에 들어서자 이미 몇 명의 동기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항규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러나 항상 커다란 목소리로 떠들썩하고 활기에 차 있던 항규가 아니었다.
굵은 몸매는 여전했지만 안색이 밝지가 않았고 항상 짓고 있던 웃음기도 없었다.
싱글 벙글은 커녕 어딘가에 주눅이 든 뭔가 포기한 거 같이 자조적이고 침울한 표정이었다.
조용히 사이에 끼어 앉아서 말없이 떡만 집어 들고 있었다.
식사를 주문하며,
‘항규야, 식사를 안했으면 같이 먹자.’ 하니까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잠깐 나를 쳐다보곤 바로 눈을 아래로 깔고
‘아니야, 나는 밥보다 떡을 더 좋아 해. 떡이면 돼. 그래서 어렸을 때 별명이 떡보야.’

이게 내가 항규를 본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동기회든 경조사든 어디에서고 더 이상 항규를 볼 수 없었다.

나는 항규와 그렇게 친한 관계도 아니었고
속 된 말로 최소한 술 한 잔 같이 한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누가 항규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않는 한 내가 먼저 항규에 관해 물어 볼 일이 없었다.
설사 어떤 자리에서 항규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내가 아는 바가 없어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 그냥 흘려듣고 말았었다.
그래서 항규의 근황에 대해서는 깜깜 무소식이나 다름없었다.

어제 아침에 부고 문자를 받고 대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 대진아, 항규 별세 문자를 봤는데 어떻게 된 거야?”

“ 글쎄 나도 잘 모르는데 지난 해 허리 수술을 하고 못 일어나 오래 누워 있다 보니까
  욕창이 심해지고 당뇨하고 합병증 등으로 한 일주일 전에 갑자기 나빠졌다나 봐.
  사인은 혈전증이래. “

“ 아니 허리 수술은 왜? 디스크야?”

“ 디스크가 아니고 사지가 굳어가는 거래. ”

“ 대잔아, 그런데 나는 못 가 볼 거 같다. 오늘 금요일이라 이것저것 시간이 좀 그렇고
  내일은 주말이고.“

“ 그래, 넌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뭐. 나도 오늘은 못 가고 내일도 봐야 해.”

그러다 오후 느지막이 대충 일을 마치고 나니까 항규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게다가 빈소가 인천 성모병원으로 부평 역에서 도보로 5,6분 거리라는데
부평역이면 서울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래서 오늘 누가 가는지 알아보러 대진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대진이 전화가 꺼져 있었다.
할 수 없이 옛일을 곰곰이 되 집어 보니까 항규가 석태 공장을 지을 때
‘영손이와 같이 일하고 있다.’ 라고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바로 영손이에게 전화를 해,

“ 영손아 너 항규와 친하지 않았어?‘

“ 그럼 친했지, 동원이와 낚시도 다니고 했으니까.
  일주일 전에도 통화를 했어. 한 번 보자고 하기에 신종 바이러스도 있고 날도 춥고 하니
  좀 있다 봄에 낚시 같이 가자고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돼서
  안 그래도 그게 영 마음에 걸려 가지고.”

“ 들리는 이야기로는 부인과도 헤어지고 아이들과도 소원하다고 하던데?”

“ 그래 맞아, 그런데 최근에 병세가 악화되니까 부인이 다시 받아들였나 봐.
  위로 아들하고 아래로 딸이 있는데 둘 다 출가를 안 했고
  수협에 다니는 아들하고는 오늘 통화를 했는데 친가 쪽에서는
  아직 아무도 안 왔다고 하더라.
  이해가 되는 게 항규가 3남 1녀의 장남인데 지난 8월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간암 말기 투병 중인 막내 동생이 모시고 있었으니 오죽했겠냐.‘  

“나 지금 가려고 하는데 너 올 수 있어?”

“지금? 나 지금 둔촌동이야. 지금 출발해도 오늘 가면 자고 와야 돼. ”

혹시나 해서 영식에에게 전화를 했지만 학교 다닐 때 한두 번 본 정도라
얼굴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가기가 뭐 하다며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그래도 가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데는 항규가 오랫동안 동기들과 소원했기 때문에
빈소가 너무 초라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물론 자녀들의 손님들로 채워지겠지만 대부분 아빠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다.
아빠의 친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구나 항규는 서울 중 고등학교를 다녀 우리 동기들이 친구의 전부였을 거다.

7시쯤 도착하니 오른 팔에 깁스를 한 부인과 아들, 딸이 맞아주었다.
분향을 마치고 접대실에 자리를 잡자 맞은편에 아들이 따라 앉았다.

“ 지난 해 허리 수술을 한 후 안 좋아졌다며? 수술할 정도로 안 좋았던가 보지?”

“ 예. 병명이 경직성척수염이라고 몸이 굳어가는 병이었거든요.”

“ 아니 그럼, 수술하면 좋아져야할 텐데 오히려 자리에서 못 일어나게 되었다면
  수술을 잘못 했다는 거 아니야? 의료 사고 같은 거.“

“ 예.”

대답을 조심스럽게 하는데 충혈 된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입이 실룩거렸다.

“오래 누워 있다 보니까 욕창이 생기고 당뇨가 심한데다 합병증까지 와서.”

차려준 밥상을 다 비울 때가지 우리 동기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맞은 편 벽에 걸린 시계가 거의 8시를 가리키고 있고 혼자 있기가 너무 어색하고 무료해
잠시만 더 있다 가야겠다고 하고 있는데 최 종호와 송 기복이가 들어왔다.

“ 들어오면서 방명록 난을 처음부터 다 뒤져봤는데 아는 이름이라고는
  송 종 호 하나밖에 없잖아.“

기복이는 항규와 초등학교부터 알았고 중학교 다닐 때는 100m 도 안 떨어지는 데서 살아
수시로 오가며 들락거려 두 집안 간 부모님들, 형제들 모두 잘 알고 지냈다고 한다.
그야말로 부랄 친구 사이였다.
기복이에 의하면 청량리 일대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서울 중으로 진학한 친구들은
모두 각별히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3부제 수업까지 하던 전농 초등학교에서 전곡 초, 답십리 초 등이 분교 되었는데
이 동옥이가 전농 초등학교 전교 일등, 박 찬호가 전교 이등으로 서울 중에 진학했고
같은 시기에 항규가 전곡 초등학교 전교 일등을 해 서울 중에 입학했다고 한다.
이 외 청량리 근방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갑호, 서 현, 광석이, 김 종헌 등이 모두
청량리파의 일원이었는데,

“ 그런데 말이야. 다 죽어버렸어. 동욱이, 찬호, 종헌이, 이번엔 항규.
  몇 명 안 남았어.“
이렇게 농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기복이는 청와대 옆 청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 때 청량리로 이사를 가서 청량리 패들과 어울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면서 셋이서 소주와 맥주를 한참 비우고 있는데 인상이가 들어왔다.
인상이는 항규와 학교 다닐 때 숙명여고가 파트너였던 서클 청파의 멤버였다고 한다.
한 상호, 홍 인수, 이 호우, 오래 전 타계한 이 승원 등이 같은 청파 멤버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항규의 교우 관계는 초등학교 시절 본거지였던 청량리 파,
고등학교 때 서클 청파 멤버들,
영손이, 동원이 등 사화활동하면서 사귄 서건 회 멤버들,
그 외 최 종호, 이 동국 등이었던 거 같다.

지난 해 수술을 하고 운신이 여의치 않아 줄곧 침상에 누워 있게 되고 부터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자주 했다고 한다.
오밤중에도 전화를 해 짜증을 내기도 하고 전화를 받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최 종호에 의하면 동국이는 그렇게 오밤중에 오는 전화를 안 받은 걸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며 그거 하나 못 들어줬다고
몹시 후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고 했다.

10시가 가까워지며 빈 소주병과 빈 맥주 캔이 제법 수북이 쌓여가고
학창 시절 이야기, 동기들 이야기로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중년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평범한 작업복 같은 국방색 외투 차림으로 황급히 들어오더니
느닷없이 기복이를 붙들고 눈물을 쏟아내는 바람에 다들 대화를 중단하고
놀란 마음으로 그 장면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기복이도 같이 붙들고 잠시 울먹이다가 진정시키더니
우리를 일일이 소개하는데 항규의 동생이었다.
항규는 바로 아래가 여동생이고 그 아래로 남동생 둘을 두었다고 했다.

“ 동생 삼 오제 치른 지가 이틀밖에 안 되는 데.”

항규 동생은 붙들고 있는 기복이를 놓지도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면서도
우리일행과 일일이 목례를 나누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 목에 걸려있었다.
암 투병 중이면서도 어머니를 모셨다는 막내는 결국 5일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독신이었다고 한다.

서울 가는 전철이 끊길까봐 일어서는데 부인과 아이들, 항규 동생이 배웅을 해 주었다.
기복이가,
“ 나는 내일 다시 와야 할 거 같다. 항규 대구 친구들이 있거든.
  내가 안내도하고 접대도 해야 할 거 같아서.
  우리 동기들은 오늘도 이런데 내일이라고 더 올 거 같지 않고. “

최 종호가,

“ 그럴 거야. 나도 오늘 뭐 좀 화제를 꺼내 봤는데 다들 별 반응들이 없더라구.
  그러게 옛말에도 있잖아,
  죽은 정승 상가는 썰렁해도 산 정승 개가 죽으면 문상객으로 들끓는다고 말이야. 하하하.“

씁쓸한 마음 금할 수 없었지만 부평 역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헤어지며
그래도 한 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이 조금이나마 홀가분해지고
조금이나마 개운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문상하기를 잘 했다는 안도와 함께.

우리 서울 고 24회 동기 조 항규가 힘든 인생을 살다
말년에 외로움에 지치고 병든 육신의 고통으로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보냈겠지만
부디 저 세상에서나마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외로움을 잊고 편히 쉬기 바란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20.02.15.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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