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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3-07 20:41:47, Hit : 58, Vote : 5
  토요 살롱 291회 " 서울 고 24회 김 우 중 동기의 명복을 빌며 "

항규의 빈소를 다녀 온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3월 3일 오후 느지막이 대진이가
또 다른 우리 동기 부고 소식을 알려왔다.

“서울 고 24
김 우종 동기 별세
서울 삼성병원 장례식장 5호.“

김 우중?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이름은 낮 설지가 않은데 모습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2012년에 발간한 동기 회 명부의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보고서야
어렴풋이나마 저 멀리 망각의 늪 깊숙이 처박힌 곳에서 가까스로 기억을 불러 올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타교 출신 중에서도 지방 중학 출신에 12개 반 중 4반뿐이었던 불어 반에
4반뿐이었던 문과라 재학 중에는 교우관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1학년 때 일 년을 같은 반을 하며 겨우 얼굴 익힐 만해지니까
2학년 올라가며 1개 반이 문과 2개 반이 이과로 나뉘어져
불어 문과반일 경우 늘 보던 얼굴만 3년을 함께 하게 되는 꼴이 되어
우리끼리는 대단히 친해질 수 있었지만 majority였던 독어 반이나 이과 반 친구들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나마 나의 경우 거의 3년을 같은 반으로 또는 나누어지더라도 바로 옆의 반이라  
쉬이 들락거릴 수 있었던 불어 문과 반원들 외에 신문 문예반에서 만난 친구들, 그리고  
대구에서 중학을 졸업하고 서울 고에 진학한 친구들과 교우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홍표, 병채, 영호, 기선이, 우창이, 혜열이, 영재, 정규 등이 같은 신문반원이었고
영식이, 대식이, 석인이, 병준이, 진식이, 의식이가
대구에서 중학을 졸업하고 상경하여 서울 고에 진학한 친구들인데
대구에서 초등학교 만 졸업하고 서울 중에 진학한 수영이도 초창기부터
같은 대구 멤버로 어울리게 되었고 서클활동도 함께 했었다.
그 외의 대부분의 동기들과는 졸업 이후에 친교를 맺게 되었다.

2002년 7월에 가족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일 년 가량 지난 후인 2003년 9월 말경
압구정동 집을 정리하고 6호선 종점인 봉화산역에 근접한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겼다.

그 때만해도 결혼 후 20년 만에 혼자 살게 돼 홀아비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
집에서 밥 해 먹을 엄두를 못 내 매끼 외식을 하는 바람에 근처 음식점과 술집은
이사간지 며칠 되지 않아 줄줄이 꾈 수 있게 되었다.

1968년 11월에 무작정 상경하여 1978년 취직하여 안정적으로 하숙을 할 때까지 10년 동안
하숙, 자취, 입주가정교사, 독서실, 심지어 노숙까지
혼자 궁상떨며 기거하는 방법은 다 섭렵해 봐서
혼자 사는 데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났다고 자신했으나 막상 닥치니까 천만의 말씀이었다.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누구 시켜먹거나 그거마저 여의치 않으면
돈으로 쉽게 해결한 20년 세월이
그 전의 생활방식 매뉴얼을 깨끗이 지워버려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집에 들어가면 누군가 있어야 되는데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현관을 들어서며 불을 켜면 아침에 나갈 때 있던 공간 그대로에
저 멀리 간간히 들리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 외 정적만이 흐르는 고요와
기력이 없이 뭔가 맥 빠진 생명력 없는 분위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었다.
그래서 저녁 약속이 없더라도 밖에서 괜히 시간을 질질 끌다
근처 술집에서 어느 정도 취기가 돌 정도로 마신 후에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간지 그럭저럭 한 달여 지나
주변 분위기와 환경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새벽에 봉화 산에 올라 운동을 하며 만나는 운동 객들,
기웃 기웃거리며 알 게 된 가게 주인들,
엘리베이터에서 어쩌다 마주치며 얼굴이 익게 된 입주민들과
오며가며 스칠 때마다 한두 마디씩 말을 건네거나
눈인사라도 나누게 된 가을이 한참 깊어갈 때쯤이었던 거 같다.

그날따라 태웅이가 우리 동기 중 누가 내가 사는 오피스텔 건너편에
생맥주 집을 개업했다고 하면서 거기서 저녁 겸 술 한잔 하자고 했다.
위치를 들어보니까 바로 우리 오피스텔 건너편에 ‘쪼끼쪼끼’ 프랜차이즈 로 신장개업한
치킨 생맥주 집이었다.

명함을 건네받은 생맥주 집 사장이 김 우중이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처음 대하는 얼굴이었다.
태웅이와는 학교 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던 사이였던 거 같은데
얼굴이 넓적하고 퉁퉁한 몸매에 중키였다.
당뇨, 고혈압 등 지병이 있어 술은 사양한다고 했고
자기는 집도 멀고 해서 가게는 직원들에게 맡기고
며칠에 한번, 일주일에 한두 번 낮에 잠깐 와서 결산만 해 준다고 했다.
그게 김 우중이와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몇 번 가게에 들렀으나 자리에 없었고 한두 번 전화를 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았다.

“ 대진아, 우중이는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 글쎄, 나도 잘 몰라. 2월 말에 폐암 수술을 하고 수술이 잘됐다고 했다는데
  갑자기 며칠 사이에 이렇게 됐다네? 나도 이제 연락 받아가지고. “

“ 우중이는 2003년에 봉화산역 근처에서 우중이가 ‘쪼끼쪼끼’ 프랜차이즈 생맥주 집을 할 때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동기회에서도 볼 수 없었고 통 안타났던 거 같던데?“

“ 전혀 안 나왔어.
  나는 중고 6년간 우중이와 두 어 번 같은 반을 했는데도 졸업 이후 한 번도 못 봤어.
  학교 다닐 때도 우중이는 키가 작아 맨 앞자리였고 나는 뒷자리라
  같이 어울리지 않았었거든. “

“ 총무 인 니가 같은 반을 몇 번했는데도 졸업하고 한 번도 못 봤다면
  누구 만나거나 친하게 지낸 동기들도 거의 없었겠구나.
  그런데 우중이가 그렇게 작은 키가 아니던데? 몸집도 있고 중키는 되는 거 같았는데?“

“ 졸업하고 컸는가보지. 영정 사진 보니까 학교 때 모습 전혀 아니야. 퉁퉁하더라구.
  남병욱이 봐. 그렇게 쪼끄마했었는데.
  이 성이는 어떻고. 대학 다니면서 컸데. 나는 중1때 그대로야. 그 때는 반에서 제일 컸지. “

“ 그럼 가족관계나 뭐 전혀 모르겠네?”

“ 이 번에 가서 들었지 뭐, 결혼 앞 둔 아들 하나와 딸이 있는데 딸은 출가를 했다고 하고.”

“ 동기들 좀 다녀갔대?”

“우중이가 학교 다닐 때도 성격이 내성적이라 사교적이지 못 됐고
워낙 동기들과 내왕이 없던 데다 요즘 상황이 그래서.
나도 아침에 잠깐 다녀왔는데 두 어 명 다녀갔더더만. “

학교 다닐 때 같은 반 한 적도 있었다는 기영이는 거꾸로 나한테 물었다.

“ 우중이는 어떻게 된 거래?. 우중이가 키가 작아 맨 앞 줄 이었던 데다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고 얌전하고 조용해 친구도 별로 없었을 거야, 아마.”

자각증상이 없어 본인도 몰랐다고 한다.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하고 며칠 만에 세상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서울 고 24회 김 우중 동기의 명복을 빈다.

2020.03.07.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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