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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3-14 21:10:19, Hit : 58, Vote : 5
  토요 살롱 293회 " 故 이 동 옥 20 주기에 "

“송 종호 어르신 맞으시지요? 여기 동구 노인복지회관인데요,
  119 비상 전화 달아드리려는데 아버님 댁에 계세요?”

지난 해 11월 주민 센터에서 참치 캔 몇 개와 두유 두 통 들고 독거노인 실태 조사차 방문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독거노인임을 확인 후 약속한 무료지원 사항중 하나이었는데
그러고는 몇 달이 지나도록 별 소식이 없어 까맣게 있고 있던 터였다.

장비를 잔뜩 짊어지고 현관을 들어 선 설치공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생김새로 나이를 분별할 수 없었으나
숱이 빽빽한 헤어스타일과 타이트한 차림이 어울리는 길쭉한 몸매와
선해 보이는 초롱초롱한 눈 빛, 탁하거나 갈라지지 않은 맑은 목소리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른 어투로 비추어 아직 20대의 새파란 청년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노인복지회관이 문을 닫아 작업을 중단해야 하나 했는데 몇 집 남지 않아
  마저 마치기로 겨우 복지관과 합의했거든요. “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니까,
“저희가 설치할 데가 580군데나 되어 일이 밀렸어요.”

그러면서 능숙하게 이것저것 달아주었는데
119 및 노인복지회관과 버튼만 누르면 직통하는 전화기는 침대 맡에 두고
화재감지기와 가스감지기는 천장에다 달고
목에 걸고 다니는 행동 추적 기는 침실 옷걸이에 걸어두는 등 도합 5가지를
각 기능에 근접한 소켓을 찾아 꽂고 달아주며 용도와 사용법을 설명해주었는데
말이 얼마나 빠른지 반도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되물어보았다가는 말이 더 빨라질 거 같아
고개를 끄떡여주며 아는 채 하는 바람에 한 가지는 뭘 달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 노인네들 나이 들면 빨리 가게 둬야지 이렇게 살리려고 하면 어떻게?
  젊은 사람들에게 짐만 지워주잖아. “

“ 아이 아버님도, 더불어 사는 거지요 뭐,
  어르신들 덕분에 우리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됐거든요 . “

성용이 문상을 다녀온 다음날인 지난 주 토요일, 토요살롱 두 편을 올리고
11시가 다 되어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데 지철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철이는 좀체 지가 먼저 전화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워낙 찾는 사람이 많아 지가 먼저 전화할 틈도 없다.
전화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누구에게 폐가 되는 걸 극도로 싫어해
어지간해서는 절대로 밤늦게 전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밤중에 지철이가? 또 뭐야? 불길한 생각이 확 덮쳤다.

“ 자는 데 깨운 거 아니니? ”

무슨 소리를 들어야 하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니야, 방금 토요 살롱 올리고 자려고 하던 참이었어.”

토요 살롱을 마무리하고 나면 눈은 피곤하지만 그 여운 때문에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의자에 대여섯 시간을 앉아 화면만 바라보고 독수리 타법으로 타이핑을 하니까
시야가 침침해지고 감아도 아리고 깜빡이면 따끔거리기까지 하는 눈 뿐 만아니라
등, 허리, 어깨, 팔, 다 뻐근하고 뒤틀리고 쑤시기도 하여 어떤 자세로 누워도 편치가 않아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런 상태로 밤새 전전반측하다 새벽에 눈을 감고서라도 한바탕 뛰고 와서야 풀린다.
그래서 일요일 새벽 운동은 필수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그런데 말이야, 종호야, 너 성용이가 1학년 때 우리 반이었던 거 아니?
민수 다 같은 반이었어. 넌 모르겠지만 학교 다닐 때 나는 성용이와 친했어.
성용이 따라 성용이가 다니던 서클에도 갔을 정도야.
성용이가 쾌활하고 명랑하고 스마트해 내가 굉장히 좋아도 하고 또 부러워도 했거든.
그런데 빈소에 못 가서 말이야, 꼭 가봤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 참.
성용이 빈소에 누구누구 왔었니? “

그 제야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지만
지철이의 어투에는 지난 세월 성용이와 보다 가깝게 지내지 못해 아쉬워하는 마음과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주지 못한 자책감이 짙게 배어있었다.

지철이와 한 밤중에 30여 분간 긴 전화 통화를 마치자
잠은 이미 멀찌감치 싹 달아나 버려 항상 머리맡에 두고 있는 kindle을 펼쳐들고
읽는 척만 하다 눈이 따가워와 이내 내려놓고 뒤척뒤척 이런 저런 생각 속에
과거를 되돌아보며 성용이와 만난 경우를 다시 되짚어 보다 성용이와 마지막 만난 게
3년 전 여름 영희 추모 모임에서가 아니라 그 후에 한 번 더 만난 게 떠올랐다.

바로 그해 12월 초 지철이 부친 돌아가셨을 때였다.
지철이 부친이 동훈이와 같은 날 돌아가셔
나는 지철이 부친 문상을 마치고 일찌감치 동훈이 빈소로 갈 요량으로
점심 무렵 좀 지나 지철이 부친 빈소가 차려진 삼성병원으로 갔는데
어정쩡한 시간이라 아무도 못 만날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성용이가 나와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해 조문도 같이 하게 되었고
지철이 식구 외에 아는 이 아무도 없는 접객 실에서 그래도 자리가 덜 어색할 수 있었다.

나는 동훈이 빈소에 가 봐야 돼서 더 있을 수가 없었지만
성용이도 다른 일이 있어 가 봐야 된다며 금방 일어나는 바람에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빠른 시일 내 지철이와 셋이서 소주 한 잔 하자는 기약 없는 약속만 한 채 헤어진 게
성용이와 마지막 만남이었다.

성용이가 대림산업 그룹 오너 일가와 4촌지간이란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던 거 같다.
몇 년 전 이수 역 근방 횟집에서 술이 몇 순배 돌자
모두가 하나같이 다른 사람이 뭐라고 떠들던 간에 지 이야기 하느라 바빠 목청이 높아져
자리가 시끄러워지고 어수선해질 때쯤 방문 쪽 입구 맨 끝에 앉아
조용히 술잔만 기울이고 있던 성용이에게,

“ 성용아, 그런데 내가 어디선가 지나가는 말로 언 듯 들은 이야기인데
  그 때는 그럴 리가 하고 지나쳤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음. “

하고 말끝을 흐리자 성용이가 대뜸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아무렇지도 않게,

“ 응 대림 산업? 몰랐구나. 같은 용자 돌림, 준용이가 내 사촌이야.”

성용이 빈소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자 민수만 씩 웃으며 아무도 눈치 채지 않게
나를 슬쩍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였지
성용이와 수 십 년 같이 술 퍼 마시고 다녔다는 다른 친구들은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성용이가 선경화학에 입사하여 부장까지 진급하고
퇴사하고도 선경과 관련된 일을 하였고 말년에는 외국 계 회사에 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어려움도 겪었다는데 대림산업 쪽은 쳐다보기는커녕 입에 담지도 않았다니까
이것만 보더라도 성용이의 고집, 지조, 명랑하고 쾌활한 겉모습이지만
대쪽 같고 칼날 같은 성격을 짐작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언젠가 몇 명이서 을지 로에서 무슨 전골과 냉면을 곁들여 한잔들 하고
내가 식대를 지불했다가 성용이한테 혼난 적이 있었다.
니가 왜 돈을 내냐면서 엄청 야단맞았었다.
이런 성용이의 성벽과 기질이 아마 모든 친구들에게 적용되었을 거다.

사실 성용이 빈소로 가며 성용이와 서강 대 출신 동기들 중에
나와 그래도 가까이 지내는 용모는 돌봐줘야 되는 손자, 손녀가 넷이나 돼 못 오겠지만  
용모보다 안부는 더 자주하고 지내는 재선이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다.
재선이가 사강대 동기들 이야기를 하면서  
성용이를 거론한 적이 몇 번 있었던 기억이 나서였다.
재선이가 있으면 할 이야기도 많고 같이 술 한 잔하며 덜 무료할 텐데 라고 생각했으나
한편으로는 재선이가 2월 말에 서울을 떠나
경상북도 봉화로 귀촌한지 며칠 되지 않아 교통편도 그렇고
올라오기가 여의치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빈소에서 재선이를 만나지 못했지만 지찰이와 통화한 다음 날 아침 재선이가 톡을 보내왔다.

“ 종호, 성용한테 다녀왔구나.
  멀리서 애썼다.
  고마운 일이여....“

전날 저녁에 성용이 추모사를 써 올렸으니 재선이가 그걸 읽고 톡을 보낸 거였다.
재선이는 토요 살롱을 거의 빠지지 않고 읽는 토요 살롱 애독자다.
‘성용이하고 대학을 같이 다녀 각별했겠구나.’ 라고 답을 하니까,

“김 성수가 정 용모랑 같이 SK 입사하여 100명 중 선경화학 1지망은 깁 성수 1명뿐.
하도 열심히 일하는 게 기특하여 당시 이 기동 사장이 성수에게 1명 추천하라고 해서
가을 학기 졸업 예정인 성용을 특채.
통상 6년 만에 과장 진급을 야들은 4년 만에 처음으로 승진했었지.
난 성수와 각별하여 그 인연으로
아스티가 있던 한양투자 11층 중 2개 층에 입주하였었고. “

성수의 근황을 묻자,

“성수는 천안에 내려 간지 오래되었고...
밤 시력이 안 좋아서 6년 전 내게 다녀갈 때도 마눌이 운전하여 함께 왔더라...
발인에는 다녀오려 했는데...
시외버스도 하루3편으로 확 줄여버렸고...
또 봉화가 요새 난리 통이라 다녀오지 못 했는데
요 며칠 맘이 참으로 무겁고 안 좋구나. “

성용이가 떠나며 곳곳에 남긴 발자취가 비록 많지는 않지만
그 흔적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가 너무나 뚜렷이 새겨져
설사 그 자취가 세월이 흐르며 희석 되고 풍파에 마모되더라도
누구나의 가슴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금년이 우리의 영원한 樂童 故 이 동옥 20주기가 되는 해이다.
동옥이는 21세기를 연 해인 2000년 3월 8일 새벽 교통사고로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동옥이가 세상을 떠나고 10년 후인 2010년, 동옥이 10주기를 맞이하여 동옥이를 회상하며
동옥이 추모사를 5회 연속으로 토요살롱에 올린 게 벌써 10년 전이다.
동옥이 10주기 때 동옥이와 가까웠던 친구들이 동옥이가 늘 다니던 피맛 골,
청진 동 뒷골목 어디 주막에 모여 추모 모임을 가졌고
15주기 때도 대동소이한 친구들이 비슷한 장소에서 추모 모임을 가졌었다.

그래서 금년에도 해가 바뀌자마자 1월 중순경 15주기 때 참석했던 멤버들과 통화를 했다.
우선 우성에게 전화하고 차례로 정규, 중하, 동신이, 찬선이, 재억이, 최 종호,
15주기 때 잠수 타 연락이 안 돼 불참했던 지철에게도 전화해 내용을 알리자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갑호와는 연결이 안 돼 우성에게 부탁했더니
우성이가 갑호와 연락되어 참석 동의를 받았다고 했다.

15주기 멤버 중 혈관성 치매로 거동을 못 하는 혜인이가 제외됐고
15주기 후 언젠가 치삼이가 자기도 동옥이와 잊지 못할 추억이 있으므로
앞으로 그런 기회가 있으면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하여 톡으로 알려줬으나
아직 날이 많이 남아 참석여부 결정하기 어렵다고 알려왔다.

10주기 때 연락을 맡았던 지철이가 15주기 때 잠수 타는 바람에
부득불 내가 연락을 취했는데 기준은 졸업 40주년 문고 집에 실린 동옥이의 시와
자가 해설에 등장하는 동기들 중 동옥이와 술 한 잔이라도 하며
비교적 친했으리라 짐작되는 동기들이었다.
거기에 송 기복이가 새로 포함되었다.
항규 빈소에서 기복이를 만났는데 기복이도 범 청량리 출신으로 동옥이와 친했다고 하여
동옥이 20주기 이야기를 들려주자 자기도 참석하겠다고 하였다.

3월 8일이 일요일이라 다음날인 3월 9일로 정하고
우리가 이야기도 좀 나눌 수 있도록 좀 조용한 곳으로 하자고 하여
장소도 값은 좀 있지만 방으로 다 나누어져 있어 조용하고 격조가 있는
강남의 한 한정식 집으로 정했다.

10주기 때나 15주기 때나 오픈된 저렴한 주점이라 얼마나 시끄러운지 한사람만 건너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서로 악만 쓰다 헤어졌었다.
약속 날이 다가오며 치삼이가 회사 이사회와 겹친다며 불참을 통보해 왔고
기복이도 참석할 수 없다고 알려와 다시 한 번 일일이 참석 확인을 하던 중
중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중하의 비상연락망인 지철이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자기도 다른 일로 여러 번 전화했지만 연결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고 며칠 후 지철이가 중하 소식을 알려 왔다.
중화와 직접 통화는 못하고 가까스로 중하 부인과 통화를 했는데 지금 건강이 안 좋아
모든 대외 접촉을 피하고 치료 중이라고 하더라며 중하는 못 나올 거라고 했다.
불과 얼마 전 통화를 할 때만 하더라도 예의 투박한 경상북도 북부지방 억양으로,

“내 요새 백수다. 정년하고 논다. 그런데 혜인이는 좀 어떠노?
종호 니 혜인이 아프고 나서 혜인이하고 한 거 보면 한 편의 영화더라.
내 마음 속에 그게 다 그려지는 기라.
동옥이 20주기라, 벌써 그렇게 됐나. 니가 또 수고 많다. 그 날 보자. 회포도 풀고. “

했었는데 얼마나 중한 병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중하는 유서 깊은 양반 집안인 안동 문화 유씨 종손이다.
지철이 왈,
“술은 얼마 전에 끊었는데 담배를 하루에 한 갑 이상씩 피웠어.”

중하가 그 좋아하던 술을 끊다니!
동옥이는 술을 그냥 들이붓듯이 마시고 바로 취해버리지만
중하는 식도락가에 진정한 애주가였다.
술과 안주를 입맛을 짝짝 다셔가며 음미하는데 시종 그 자세 그대로
밤새 마셔도 취하지가 않았다.
술을 못 마시는 중하, 상상이 안 된다.
중하가 쾌유하여 어느 날 느닷없이 예의 그 짙고 걸쭉한 투박한 사투리로
‘야, 내, 종호 니 못 보는 줄 알았다.’ 하고 전화오길 학수고대한다.

약속 날이 다가오자 역시 코로나가 문제였다.
우성이가 먼저,
‘약속 연기하는 게 어때?’ 하고 물어왔고 잇따라 갑호의 불참 소식도 알려줬다.
동신이도 영재 모친 상 다녀와서 와이프한테 쿠사리 들었다며 미안하다고 하고
최 종호도 참석 못하겠다고 하자 찬선이, 정규도 후일 천천히 날을 다시 잡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이 동옥 20주기 추모 모임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서 10년 전 동옥이 10주기 때 올린 추모사에서도 인용한 바가 있지만
우리 동기들 중 동옥이를 추모하며 졸업 40주년 기념 문고 집에 올린 글 중
일부를 인용함으로서 故 이 동옥 20주기 추모를 대신하고자 한다.

제목: 이 동옥 군을 추모하며,

哥砲 유갑호

예전에
푸른 하늘 나라
靑天에서
한 왕자님이
이 지구의 한쪽 끝
동방에 내려 와
한 생을
살다가 갔으니

그 왕자님은
언제나 제 것을 지니려 하지 않았으면서도
언제나 가장 넉넉한 품의 소유자,
그의 품안에는 이끼마저 낄 줄 몰라
무소유자라는 말의 참 뜻을 그대로 알았던
참된 소유자

행인지 불행인지
남녀의 합을 공식적으로 이루지 않았던
그 왕자님에게는
아이가 없었으나
자신의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실은
그의 아이들
아버지 노릇을 할 줄 안
이 세상의 유일한 아버지
그 왕자님은
산 사내
아내의 몸인 산을 오르내리며
그녀에게
한 점의 오점도 남기지 않은
깨끗한 바람둥이

그 왕자님은
시인
그는 예삿 시인이 아니라,
언어로 세상을 장식한 시인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을 늘 새로운 언어로 빚어낸
시인
왕자님이 토해 낸
육성은
청천벽력이었나니

그러나
무엇보다
그 왕자님은
노래꾼

남인수의 現身
현인보다 더한 진짜배기 현인
도미보다 더 멋들어진 왕자 도미
가거라 삼팔선, 신라의 달밤, 인도의 등불, 페르시아 왕자,
도봉산은 부른다, 청포도 사랑,
그가 남긴 주옥으로 빚어진 이들 노래,
낭랑한 그 목소리는
영롱하게 우리 귓전을 아직도 맴돌고 있나니
영원토록 우리의 가슴 속에서
이슬방울처럼 맺혀 있으리니

동옥이 영정 앞에서의 갑호를 동신이는 이렇게 묘사했다.

“연락을 누가 해야 할 것인가를 망설였던 유갑호가 늦게 나타났다.
영정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그를 내가 살짝 밀었다.
‘문상객이 계속 밀려오는데 눈치 없이...’
그 사이 갑호는 발밑에다 눈물을 떨구어 미끄러질 뻔했다.
중년사내 눈에서 왠 눈물이 이리 흔할까? 갑호는 자꾸 울었다.“


제목: 작은 거인 李 東 玉
육동신

그가 남긴 번역물 중 “세계로 향한 열린 창” 은 번역, 출판, 광고, 발송 등을 혼자서 도맡아
경비를 최소화하여 3년을 간행했는데, 그의 전 직장 유네스코 직원들은
불가능한 일을 한다고 하여 그를 “작은 거인” 이라고 부르며
그의 무모함, 자존심, 沒경제적인 활동에 경의를 표하였다.

어느 독자가 독자 후기에 일본어판이 왜 없는가를 묻는 대목이 나오는데
일본은 독자 수가 10만에 이르지 ㅇ낳아 수지와 명리가 맞지 않아 폐간 되었으며,
한국은 정기독자 5천에도 이르지 못하지만 35개 언어, 110개국에서 간행하는 잡지이므로
교양적 자존심을 위해 발간한다고 대답했단다.
게다가 맹인용 점자판까지 출간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술 먹는 틈틈이 일 한 게 아니라
일을 하면서 틈틈이 먹은 술의 양이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번역을 하다가 전문적인 용어가 나오면 여기저기 전화를 해댔는데
내게도 한번 전화로 물었다. 대강 번역하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았다.
따라서 그이 번역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그의 편집 후기에는 이런 글도 썼다. 아마 여러 가지로 힘들 때이리라.

보들레르라면 이렇게 말하리라.
“이토록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시쉬포스여, 그대의 용기가 필요하다.” 고.
나는 쉽게 말해 버린다.
“아틀라스여, 그대의 형벌은 견딜만한 것이다.” 라고.

이젠 안식을 취하라. 그리고 내 눈물을 받아다오.
그대가 그리우면 남긴 글들을 찬찬히 읽어볼 것이다.


제목: 靑天으로 떠난 童骸
이정규

동옥이의 역곡 시절, 가까운 부천에 살던 나는 그를 수시로 방문하였다.
신문지가 바닥에 깔리고 벽을 따라 몇 겹으로 도열한 소주병들,
그러나 그는 작업 시엔 한 방울의 술도 대지 않는다 하였다.
뇌의 핏줄이 터져 입원했을 때, 친구들의 주선으로 일부러 어환의 병원으로 옮겼지만
금방 도망쳐 나온 그로 인해 나는 점점 불안감이 커져 갔다.
조 일환의 장례 때도 그는 하염없이 맨 소주를 들이켜서,

“동옥아, 난 너를 오래 보고 싶다. 그러니 술만 먹지 말고 안주도 먹으라.”
아무리 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올해 초 육 동신의 집에서 오랜만에 본 그는 술이 도도해지더니,
“우리 엄마가 너는 21세기도 넘기지도 못하고 죽으려느냐? 하더라면서 웃었다.
그게 마지막 대화가 되었고 결국 예언이 된 셈이었다.
아니, 죽기 일주일 전, 전화가 와서 동기 회보 원고에 대하여 나눈 대화가 마지막,
“잘 지내, 또 보자!” 이리라. 그리곤 김 수영처럼 떠났다.

술로 인한 속병이 아니라 사고였지만 결국 술 때문이었고
어쩌면 그 다운 청천벽력의 갑작스런 마침표일지도 모르겠거니와,
그 순간 나의 불안감도 일시에 해소된 것인가?
장례식과 49제에서는 그의 지상 소풍 길에 동행했던 여러 인연의 사람들이 몰려 와
술 먹고, 울고, 웃고, 장고치고, 노래 부르고, 싸우고, 영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부러운 친구, 이제 그는 靑天으로 떠나간 童骸가 되었다.
지금 푸른 하늘 한 곳에서 호탕한 웃음을 웃으며, 남겨놓은 소주병을 그리워 할 동옥이,
시 몇 편과 ‘악동 일기’를 남긴 너,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하시라.

靑天은 동옥이가 설립한 출판사 이름이었고
童骸는 동옥이가 고2때 처음 완성한 단편 제목이었다.

2020.03.14. 송 종 호.





토요 살롱 294회 " 봄을 기다리며 "
토요 살롱 292회 " 고집쟁이 핸섬보이 성용이를 떠나 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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