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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4-25 21:39:53, Hit : 5913, Vote : 44
  토요 살롱 299회 " 4월의 情趣 "

새벽 5시 반이면 벌써 밤새 어둠에 묻혀 있던 주위 형체가 어렴풋이 드러나며
서서히 어두운 기가 걷히면서 희끄무레 사방이 훤해지기 시작한다.
저녁에도 7시가 지나야 어둑어둑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한다.
해가 부쩍 길어졌다. 하기야 춘분이 지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청명, 곡우도 지나 여름의 시작이라는 입하를 바라보고 있다.
순식간에 계절이 바뀌어 가고 있다.

지난 주 두어 번 비가 내린 후 벚꽃도 다 져버렸다.
대신 튤립이 만개 했고 철쭉도 꽃 봉우리를 마구 터뜨리고 있다.
하늘 정원은 노란색, 빨간색, 자주색 튤립이 칸을 나누어 완전히 점령했고
가장 자리 둔덕으로는 붉은색, 자주색, 연보라색 철쭉이 밭을 이루고 있다.
넝쿨 장미가 타고 올라갈 목책 길 안쪽으로는
노란색 바탕에 꽃잎 가장자리만 붉은 띠로 장식한 튤립이,
목책 바깥쪽으로는 자주색 튤립이 촘촘히 심어져 보는 이의 눈을 황홀하게 한다.
산책 길 연도를 따라 한쪽으로는 노란 튤립이, 반대쪽으로는 빨간 튤립이 가지런히 피어 있고
연도 위 둔덕에 꾸려놓은 화단에는 노란색, 자주색, 하얀색 이름 모를 앉은뱅이 꽃들이
가슴을 간질이고 눈을 어지럽힌다. 봄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러나 4월치고 날씨가 심상치 않다.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대륙성 기류 때문이라는데
주초부터 주간 내내 아침에는 5,6도, 낮에도 10도 근방에 머무르고 있다
오늘에야 새벽에 겨우 10도를 넘기고 낮에도 강풍 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도
기온이 좀 올라갔지만 여전히 쌀쌀했고
며칠 전에는 새벽에 심지어 3도까지 내려간 데다 하루 종일 찬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한겨울을 방불케 했었다.

화사한 차림과 함께 잠깐 눈길을 끌던 맨 종아리도 당연히 사라졌다.
다들 옷을 다시 꺼내 입고 한겨울에도 쓰지 않던 마스크를 쓰고 종종 걸음을 치고 있어
강풍에 바르르 떨어대는 새파란 나뭇잎과 함께 그런 모습들이 더욱 시리게 한다.
느닷없는 한기, 한풍에 성질 급하게 먼저 확 피어버린 꽃잎들은
온몸으로 냉기를 받아들이느라 입을 악 다물듯이
활짝 펴지 못하고 이파리마다 힘을 잔뜩 주고 있고
늑장 부리다 이제 겨우 꽃잎을 열려고 하던 게으름뱅이 꽃잎들은
봉오리를 벌리다 만 채 움츠리고 있다.

북풍, 서풍이 지 마음대로 방향을 바꾸어가며 시도 때도 없이 불어 제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로 중국 공장들이 올 스톱해 미세먼지가 날아오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둘 다가 그 원인인지 지금까지는 청정공기를 유지하고 있다.
예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황사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황사는 코로나와 관계가 없을 텐데 황사의 근원지라는 고비 사막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무슨 조화인지 그야말로 희한한 일이다.
시야도 확 트이고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른 하늘이 가을하늘처럼 높다.

그러니까 예년의 4월이 아니다.
4월은 미세먼지에 황사에 뿌연 하늘의 잔인한 달이었는데
금년의 4월은 청명, 청정, 청량, 상쾌, 화사,  
한 달 내내 겨우 하루 이틀 얻어걸리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을
매일 맞이하고 있는 축복의 달이 되었다.
미세먼지도 없고 황사도 날아오지 않고 비록 바람 불고 쌀쌀하지만
공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어 운동하기도 나들이하기도 최적의 날씨의 연속이다.

맑은 공기가 너무 아까워 마스크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전철 속에서만 주위의 눈총 때문에 할 수 없이 쓰고
한번 쓴 거라도 빨아서 몇 번 더 쓰고 하니까 통장 아줌마가 매주 2개씩 가져다주는
마스크만으로도 집안 여기저기 굴러다닐 정도라
이번 사태 동안 마스크를 별도로 사지 않아도 되었다.    
집에 있을 때는 가급적 문도 열어두고 지낸다.
쌀쌀한 바람이 으스스하지만 폐부 깊숙이까지 전달되는 시원함이 그 정도의 냉기가
가져다주는 몸의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매일 아침 운동 마치고 들어오면 청소부터 하기 때문에
먼지 양으로 그 날의 공기 청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데 요즈음은 먼지 양이 극히 소량이다.
집안 먼지의 70%는 집안 식구들의 인체에서 발생하는 거라고 누군가 그랬던 거 같은데
내 경우로 봐서는 70%는 미세먼지 때문이지 않나 싶다.

지지난주에 거푸 두 번의 동기 부고장을 받았다.
7일에 박 선호, 그리고10일에 김 기선 부고였다.
이로서 금년 들어 아직 4월도 채 가지 않았는데 동기 5명의 부고장을 받았다.
우중이 빈소는 못 찾아봤지만 그 외 네 명 동기들의 문상을 하고 추모사를 다섯 번을 썼다.
기선이에게 편지 내용으로 쓴 거까지 더하면 여섯 번이다.

토요 살롱을 빠짐없이 읽고 있는 애들 엄마가 언젠가,
‘우리 남편이 친구들 추모사를 거의 독점으로 쓰고 있는 거 같은데
우리 남편 추모사는  누가 써 줄라나? ‘ 라고 하기에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어
흠칫 아픈 데를 찔린 거 같아 우물쭈물 겸연쩍은 웃음으로 우물우물 넘기고 말았는데
그 이후로는 추모사를 쓸 때는 가끔 과연 누가 내 추모사를 써 줄까? 하고
여러 동기들 중 비교적 친한 친구들 얼굴을 떠올리며 장난삼아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내 추모사를 쓰려면 우선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높은 친구들을 추렴하고
그 중에 그래도 송 종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해 줄 수 있는 친구들로 또 압축해 본다.
그러고도 추모사를 쓰려면 좀 뻔뻔스러워야 되고 좀 부지런해야 된다.
글을 안 써 본 사람에게는 글을 쓴다는 게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글을 많이 썼더라도 자기 전공분야의 글만 쓴 사람들에게는 이런 글을 쓴다는 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 이성과 감성의 차이라 전혀 다른 차원이다.
나하고 학교 때부터 친하던 친구들은 대체로 자기중심적이지만 수동적이고 이성적이고
게을러터진 선비 타입들이다.
과연 누가 써 줄까? 그렇다고 꼭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궁금은 하다.

박 선호 상가에서 인숭이가 오기 전에 정준이와 둘이서 술을 마시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정준이가 싱글싱글 웃으며,
‘니가 나 보다 먼저 죽고 정 써 줄 사람이 없으면 나라도 꼭 써 줄게.’

공기가 맑아진데 코로나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사실인 거 같다.
중국에서 지역 간 이동을 봉쇄하고 공장 가동이 멈추니까 금방 효과가 나타났다.
우리나라에 미세먼지가 현저히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중국내에서도 실로 오랜만에
스모그의 대명사인 베이징에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2,3년전 까지만 해도 2000년 대 초반이후 십 수 년 간 서해 건너편 칭따오에
일 때문에 혹은 인천 동문회 단체로 매년 최소한 한 번씩은 다녀왔는데
4계절 중 어느 계절이고 맑은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구름이 없는데도 해가 가려 항상 흐릿하고 칙칙하고 매캐한 날이었다.
숨을 들이키면 기관지에 뭐가 쩍쩍 들러붙는 느낌이라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옥외 조깅은 꿈도 못 꾸고 호텔 내 피트니스 센터에서도
운동량이 많아 호흡이 가빠지는 러닝머신은 타기가 꺼려졌다.
칭따오가 그 정도였으니 그보다 훨씬 인구가 많고 공장 밀집 배후 지역으로 둘러싸인
중국의 제일 도시 수도 베이징은 어떠했겠는가.
그런 베이징 하늘이 파란색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해 맑아진 공기가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는 역설이
성립된다고도 한다.

어쨌든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어느 날 급작스레 들이닥친 코로나 사태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많은 희생자를 내며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당하고
사회적 타격을 입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 한 편으로는 우리 한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던 거 같다.

코로나 진원지인 우한에 처음으로 전세기를 띄워 우리 국민들을 데리고 올 때는
거기가 워낙 심각하니까 그래야 되겠지 더구나 곧 선거도 해야 하니까
전시적으로 한두 번 그러다 말겠지 정도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이후 세계 각지로 전세기를 보내 고립된 우리 국민들을 데리고 오는 걸 보고서야
이제야 우리도 국민 한명 한명의 생명을 중시하고 보호하려고 하는 정부를 가졌구나 라는
새삼스런 그리고 조금은 감격스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폐쇄된 공항에 비행기를 보내려면 그 한 대 때문에 관제탑부터 출국심사, 안전 검사,
공항의 전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
게다가 출국자들을 접하는 종사자들은 방역 복장을 갖추어야 한다.
상대국 정부에 양해를 구하고 허가를 득해야 하는데 대부분 후진국들이라
그냥 공짜로 해주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많은 뒷이야기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정부의 의지와 현지 공관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끈질기게 노력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인데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어 떠들썩하게 이슈화 할 수 있을 법 한데도
국민들에게 아무 생색도 내지 않고 당연한 일인 듯 조용히 해 냈다.
이렇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국민들이 귀국을 원하면 전세기를 보내 데리고 온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이런 일은 우리 역사상 없던 일이다.
청정한 공기와 더불어 이번 봄에 겪어보는 새로운 경험들이다.

나의 4월은 언제나 성묘로 시작한다.
금년에는 4월 5일 한식이 마침 일요일이라 그 전날 성묘하기로 하고
한 달 전에 미리 남철이, 대식이에게 일정을 알리고
생고기 집 ‘거기’ 여 사장에게도 메시지를 남겼지만
과연 저녁에 만나 같이 저녁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자신할 수가 없었다.
다들 그 때 가서 보자 였고 ‘거기’ 여사장도 ‘코로나가 진정되면’ 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대식이가 대구의 대부분의 음식점이 모두 문을 닫아 먹을 데가 없어 밥 한 끼 사먹으러
골목을 다 뒤져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만일 친구들과 저녁을 할 수 없으면
이번에는 해외에서 돌아와 일 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성묘를 다니기 시작한 1989년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성묘 마치고 혼자서 저녁을 먹어야 할지도 몰라
그렇다면 구지 대구에서 일박할 이유가 없으니까 성묘 마치는 대로 상경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하게 되었다.

성묘 예정일인 4월 4일이 가까워 갈수록 그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친구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그냥 알리지 않고 다녀올까 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래도 혹시나 해서 3월 말에 남철이, 대식이에게 4일 저녁 같이 할 수 있는지
완곡하게 물어봤더니 남철이는 좀 주저하는 기색이었지만
대구에 코로나가 급증하자 병원 문도 일시적으로 닫고 산으로 피신해 있던 대식이가 오히려
무슨 일이 있냐는 듯이 이번에는 생고기 대신 숯불구이 집으로 장소도 바꾸고
토요일이니까 약속시간도 6시로 당기자고 제안해왔다.  
‘거기’ 여사장은 아흔 넘은 부모님들 모시고 있는데 아직은 나들이를 조심해야 할 거 같으니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뤄야 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못 만날 줄 알았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신바람이 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로 저녁 술 약속이 대폭 줄어 저녁에 심심은 하지만
덕분에 몸속의 알코올 농도가 낮아져 몸도 가볍고 날씨도 좋고
성묘 간다는 목적 이전에 오랜만의 나들이라 기분도 좋고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도로도 한산했다.
영동 고속도로가 일 년 365일 정체라 보통은 직선거리인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제2경인에서 영동 고속도로 진입 후 정체가 시작되는 안산 분기점 이전에서 분기되는
시흥-평택 간 고속도로로 빗겨 가,
평택에서 평택-제천 고속도로, 제천 못 미쳐 음성에서 중부내륙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상주에서 상주-영천 고속도로로 진입해 북 영천 IC를 통과해 영천 호국 원으로 가는데
이번에는 정통 코스인 제2경인, 영동 고속도로, 여주에서 중부 내륙 고속도로,
상주에서 상주-영천 고속도로를 주말인데도 한 군데 정체 구간 없이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떠날 때 우리 동네 벗 나무들은 아직 아무 기척이 없었다.
앙상하게 헐벗어 겨울을 나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중부 내륙을 따라 충주쯤 이르자 산기슭, 고속도로변 벚나무에
드문드문 하얀 꽃잎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문경에 이르자 만발한 연분홍 벚꽃이
산과 들과 시골 길 가로를 뒤덮고 있었고 벚나무 사이사이
주먹만 한 크기로 탐스럽게 만발한 하얀 목련도 도드라지게 조화를 이루며 섞여 있었다.

보다 남쪽인 영천에 접어들자 길바닥은 하얀, 연분홍 벚꽃 잎이 눈처럼 쌓여 바람에 날리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난겨울 별 추위가 없던 탓인지 절기도 빨라졌다.
조금 일찍 출발한데다 체증이 없어 중간에 두 번 쉬고도 평상시보다 두어 시간 일찍
호국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아이고 놀래라, 오셨능교. 어서 오이소.
  이번에는 못 오시는 갑다 했거든예. 코로나 땜에 성묘 오는 사람도 없어예. “

“ 성묘 오는 거야 어때서요. 쭉 차 속에 있다 이렇게 툭 트인 야외에 오는데 뭐 어때서.
  그런데 지난 번 보다 건강해 보이네요. 허리가 안 좋다더니 어떠세요? “

“ 좀 좋아졌다 아프다 말다 그만그만 합니더.
  하루 종일 뙤약볕에 돌아다니다 보이까 새까매졌다 아입니꺼.
  그런데 오라버니야말로 허예지셨네예. 신수가 훤하십니더.
  뭐 좋으신 일 있으신가 보지예?“

그런데 이 아줌마가 갑자기 오라버니라고 칭하는 데 잠시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줌마가 아침부터 어디 또 잔치 집에 가서 술 한 잔 했나하고  슬쩍 낌새를 보니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았다. 술 냄새도 술기운도 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고.
이것저것 능숙하게 챙겨 주는 걸 우물쭈물 받아 들도 나서는데 뒤통수에 대고 또,

“ 오라버니, 그럼 살펴 가이소.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예,”

아니, 이 여편네가? 지난 18년간 깍듯이 사장님이라고 부르다가 오라버니라니?
그러고 가만히 되짚어 보니까 18년 전 장인어른 안치할 때
이 아줌마가 30대 초,중반 나이였으니까 지금은 확실히 쉰은 넘은 나이였다.
그러고 보니 처음 볼 때 그 때만 생각하고 이 아줌마도 세월 따라 나이 먹어가는 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영천 호국 원 입구의 창성공방 아줌마는 내 마음 속에 언제나
30대 초 중반의 전형적인 촌부였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시골에서 쉰이 넘으면 할머니다.
가꾸지를 않는데다 농사 일로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
남자고 여자고 피부가 빨리 노쇠해지고 몸매도 마음대로라 더 늙어 보인다.
창성공방 아줌마가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으니 슬슬 막 먹어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저러나 그 힘 좋고 젊었던 좋은 시절 별 볼일 없이 다 보내고
어이없게도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할머니, 준 할머니로부터
오빠, 오라버니라고 불리게 되니 이거 좋아해야할지 상심해야할지
지난 날 아쉬워해야할지 이제라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웃기지도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조금은 재미있기도 하고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진공 포장한 수입산 오징어가 너무 딱딱해
이번에는 두 달에 한 번 꼴로 이 마트에서 쇼핑할 때 안주를 미리 준비해뒀었다.
일찍 도착한 탓에 시간이 널널해 장인어른 산소에 꽃을 갈고 인사를 마치고
퍼지고 앉아 막걸리 한 병 비우며 장인어른과 이런저런 대화도 하다가
눈앞에 탁 트인 산야를 한 눈에 담고 지난 18년 세월 차곡차곡 회상에도 젖어보며
느긋하게 일어났는데도 석계 손칼국수 집에 도착하니 겨우 오후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2시간 단축이었다.

점심 피크 시간이 지났는데도 홀이 거의 만원이었다.
빈자리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동생이 긴 생머리에 마스크를 쓰고
초롱초롱 맑고 커다란 눈을 치켜뜨고 바로 코앞에 서 있다.
고개를 까딱 숙여 인사를 하며,

“오셨어예? 저기 뒤채도 있거든예. 거기로 가실랍니꺼?”

“뒤채? 별채네. 확장했구나.  
예쁜 자매가 시어머니 하던 칼 국수집 이어 받아 미인계로 떼돈 버는 구나.“

“어머, 아이라예. ”

그러면서 부리나케 잽싼 걸음으로 뒤돌아 가는데 지난 해 8월 말에만 하더라도
부끄러워 얼굴만 빨개지고 한마디 대꾸도 못 하던 아이가 불과 반 년 만에
제법 교태도 부리고 있다.
뒤채도 빈자리가 몇 개 남아있지 않았다.

“많이 담아왔어예.”

그릇이 넘치도록 담아왔는데 곱빼기보다 더 많은 양이다.
차림표를 보니까 값도 올렸다. 2천 원 하던 칼국수가 3천 원으로 무려 50%를 올렸다.
밀가루 반죽하고 썰고 하던 과정이 싹 생략되었으니까 노동의 양도 확 줄었다.
기계로 뽑은 맨질맨질한 국수를 끓는 물에 데쳐 옆 솥에서 육수를 퍼 담고
파와 당근 몇 조각 얹으면 끝이다.
물론 맛은 완전히 맹탕이다. 양념장과 김치 맛으로 먹는다.
얼마나 바쁜지 언니는 주방에 들어박혀 주문 소화하느라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동생이 주문 받고 나르고 치우고 하는데 숙달되고 날랜 자태가 보는 거만으로도 즐겁다.

영천에서 국도를 따라 대구로 들어서자 벚꽃은 이미 끝 무렵이었다.
색이 바래고 시들어 쭈글쭈글 오그라든 꽃잎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무도
더러 있기는 하나
대부분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새파란 새 잎이 돋아나 가지를 초록으로 덮어가고 있었다.
길바닥을 덮고 아직도 바람에 날리고 있는 연분홍 꽃잎만이
막 지나간 벚꽃의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두류공원에 도착해 차를 주차하고 산소 입구에 도착하자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깜짝 놀라 잠시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텔레포트로 전혀 다른 세계에 나타난 기분이었다.
입구부터 산소 쪽으로 올라가는 둔덕이 행락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대구에서? 공원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전경을 휘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형 파라솔에 조립식 간편 텐트에 가족 단위로 친구들끼리 음식을 펼쳐두고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완전히 휴일 날 놀이 동산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대구가 이제는 안심해도 될 정도가 되었나? 하고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기야 대구로 진입하면서 휴일인데도 체증이 있을 정도로 거리마다 차량이 북적거려
뉴스로 보던 거리와 판이하기는 했었다.
곳곳에 오토바이로 음식물이 배달되는 모습도 보였다.

산소로 올라가면서 혹시나 하고 사방을 두리번 거려봤지만
예상한 바대로 모포부대 할머니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고객이 할아버지들인데 할아버지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있어
할머니들도 휴업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예상이 맞았던 거 같았다.
그러나 막상 할머니들이 한 분도 보이지 않자
왠지 뭔가 빠진 거 같고 서운하기도 하고 코로나에 다들 무사하셨는지 얼마간 걱정도 되었다.

다음에 왔을 때 다들 무사하여
‘오셨능교. 오시느라 욕 봤지예. 우리가 마 아버님 친구 잘 해 드렸다 아입니꺼.’
눈웃음치며 주섬주섬 돗자리 깔아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대식이가 안내한 식당은 고기 전문집이었다.
대구의 이름난 맛 집 중 하나라는데 우선 고기질이 좋았고 푸짐한 양에 비해
값이 터무니없이 쌌다.
2,3백 명은 수용할 수 있는 넓은 홀인데도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예약을 하지 않고 오면 자리가 없다고 한다.

다들 마스크는 필수적으로 쓰고 다니고 있지만 외관상으로는 이렇게 대구에서
코로나로 인한 불편은 없었다.
휴일인데도 가게를 다 열고 성업 중이었고 거리는 차들도 가득 차
서울이나 인천과 비교해 별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중 일이지만 영식이가 대구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는지,

“이 와중에 대구를 다녀왔다니?
교도소 접견 가면 열도 재고 소독도 하지만 설문지에 최근 해외여행 다녀 온 여부와
대구 다녀왔는지를 반드시 기재해야 되는데. “

셋이서 만나면 언제나 즐겁다.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셋 다 독거노인으로 처지가 비슷해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늘었다.
그래서 고기 집에서 배불리 먹고 마시고도
2차로 대식이 10년 단골 맥주 전문점에서 자정이 넘도록 마시며
중구난방으로 있는 수다 없는 수다 다 떨면서도
부지 간에 옷깃을 여미고 몸을 움츠릴 정도로 바람 불고 쌀쌀한 봄밤의 정취에
깊어가는 밤과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세 독거노인들이 더욱더 지나간 추억과 함께 이심전심 젖어들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아직은 이렇게 마음과 술잔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
밖으로 나오니 술을 순간 확 깨게 하는 찬바람과 함께
비스듬 기운 보름달이 컴컴한 밤하늘 한 가운데에서 조용히 내려 보고 있었다.

다음 주는 지방에 갈 일이 있어 토요 살롱 게재 못하므로 미리 양해 구하며,
2020.04.25. 송 종 호.




토요 살롱 300회 " 아름다운 정을 남기고 떠난 박 철 순 동기의 명복을 빕니다. "
토요 살롱 298회 "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천국의 강을 건넌 기선이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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