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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5-09 21:10:29, Hit : 270, Vote : 41
  토요 살롱 300회 " 아름다운 정을 남기고 떠난 박 철 순 동기의 명복을 빕니다. "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동녘에 붉은 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월 초 며칠간 기온이 10도 가까이 오르며 낮에 30도에 육박할 정도로 때 이른 더위가 찾아와
전철에 냉방을 가동하는 수선을 떨고
걷다보면 겨드랑이와 등에 땀이 삐질삐질 베어 춘추용 콤비가 거추장스럽기도 했으나
그 이후로는 새벽에는 15도 이내, 낮에도 25도 미만, 낮에는 좀 덥게 느껴지기도 하나
하늘은 푸르고 공기도 맑아 청정하고 쾌적한 봄날이 이어지고 있다.

희한하게도 금년에는 황사도 있었는지 없었는지 예년이면 사흘이 멀도록 문자로 날아오던
황사주의나 경고 한번 없었다.
황사는 중국 발 미세먼지와 전혀 관계가 없다.
내몽고와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이다.
보통 3,4월에 극성을 부리다 5월 중순을 넘어가며 남풍이 불어오면서 사라지는데
벌써 5월도 중순에 접어들고 있으니까 금년에 더 이상 황사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다.
황사가 없는 봄, 상상도 못하던 변화다.
이런 좋은 징조도 이상기후라고 해야 하나.
코로나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다보니까 이렇게 숨 쉬는 환경이 훨씬 더 좋아진 걸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간과하고 있었던 감이 없지 않은 거 같다.

허지만 우리 만성 비염환자들에게 황사는 거의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
황사가 날아오던 말든, 꽃가루 날리는 5월 한 달 동안
자고 일어나면 눈곱이 끼어 눈이 침침하고 줄줄 흐르는 눈물, 콧물과
끈 금 없이 코를 간질이다 느닷없이 터져 나와 멈추지 않는 재채기,
코가 막혀 잠을 설치는 바람에 하루 종일 머리가 띵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기도가 좁아져 호흡 곤란에 천식 비슷한 증상까지 나타난다.

경험상 술이 상극이다.
과음은 기도를 쪼그라들게 하여 호흡곤란으로 숨이 막힌다.
10년 전 쯤에 후배들과 한참 술을 마시다 갑자기 호흡곤란과 현기증으로 쓰러져
119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천식인가 했지만 병원에서 알레르기라며 지어 준 약 한 두 번 먹자 바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때 입안에 뿌려 기도를 확장하는 ‘벤토린’ 이라는 손바닥에 따 들어오는 크기의
소형 분무기처럼 생긴 도구를 처방 받았는데 내재 된 약의 용량이 100g 으로
100회 정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2개를 구비하였는데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넘어가는 해도 있고
사용하더라도 5월에만 몇 번 사용하기 때문에 10년이 지난 지금도 하나가 남아있어
술 약속이 이틀연속 이어지면 둘째 날부터는 비상용으로 휴대를 하고 나가고
새벽에 일어나 조시를 봐서 호흡이 조금이라도 원활하지 않으면
운동을 나가기 전에 들이마셔 우선 기도를 확장하고 나간다.

며칠 전 인천에서 랭킹 1,2위를 다툴 정도 규모의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20여 년 전부터 호형호제하고 지내는 사회 후배와 뭐 상의 할 일이 있어
그 친구 사무실을 방문하고 점심을 같이 하였는데
100kg이 넘는 거구에 평소에는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한 피부에다
비록 숱은 별로 없지만 흰머리 하나 없이 새까만 머리에 불그레한 혈색으로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동안에 건강미와 힘이 넘치는 모습인데
꽃가루 알레르기가 나보다 훨씬 심한 이 친구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camouflage 용으로 쓰고 있는 도수 없는 안경 너머로 눈가에 눈곱이 덕지덕지 끼어 있고
눈곱 가장자리로 눈물이 줄줄 흐르고 눈도 시뻘겋게 충혈 돼 제대로 뜨지도 못하며
번갈아가며 안경 들고 눈물 닦고 마스크 들고 콧물을 닦아내는 모습이
영 가련하기가 짝이 없어 보였다.
‘형님 어서 오세요.’ 힘이 하나도 없는 쉰 목소리가 더욱 측은해 보였다.

그래서 이 친구는 꽃가루 날리기 시작하는 5월 초만 되는
만사 제치고 축축한 필리핀으로 휴가 겸 피신 갔다 보름 쯤 있다 돌아온다.
비가 많이 내리는 습한 곳에서는 비염 증상이 없어지거나 훨씬 완화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같이 건조한 날이 계속되면 이 친구는 더 죽을 맛이다.
꽃 피는 화창한 봄날이 이 친구에게는 지옥이다.
비 오기만 학수고대하며 눈곱에, 눈물에, 콧물, 재채기를 달고 살아야 된다.
게다가 금년에는 코로나로 꼼짝 할 수 없게 되어 산탄총 맞아 날개 부러진 참새처럼
비실비실 온 몸을 축 늘어뜨린 처참한 꼴로 악몽 같은 하루하루를 견뎌야만 한다.

하늘 정원과 공원으로 통하는 모든 산책로를 온통 빨강, 노랑, 자주, 하양,
빨강 바탕에 노란 가장자리, 노랑 바탕에 빨간 테두리,
형형색색 화려하게 장식했던 튤립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룻밤 꿈처럼
시들시들하다 하루 밤 자고나니 다 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일장춘몽’‘화무십일홍’ 이다.
튤립은 다른 꽃들과 달리 꽃잎이 벌어지지 않고 잔득 힘주고 꼿꼿이 서 있을 때가
가장 싱싱하고 가장 아름답다.
힘을 잃고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윤기도 잃고 생기도 잃으며 쭈글쭈글 시든다.
그리고 다 벌어지기도 전에 조각조가 떨어지고 만다.
그 피고 지는 과정이 대략 열흘쯤 되는 거 같다.

대신 철쭉이 만발했다.
진홍색, 주황색, 보라색, 연보라, 색깔별로 무더기를 이뤄 둔덕을 덮고 있고
같은 모양새지만 철쭉보다 꽃잎이 크고 하얀 색의 개 벚도 철쭉과 섞여 피어 있거나
별도의 무더기로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 저 꽃 들 좀 보세요. 활짝 벌어지지 못했잖아요?
  날이 너무 가물어서 윤기도 없고 다 피지도 못하고 있는 거예요.“

천문, 기상에 일가견을 가진 전직 이발사 할아버지다.

거의 두 주간 비 한 방울 구경 못하다 어제 저녁부터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리고 있다.
오늘 오후 들며 비록 빗줄기가 가늘어지며 내리다 말다 하고 있지만
내일 새벽까지 이어진다니까 여태 내린 거만 하더라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산이고 들이고 밭이고 논이고 정원이고 충분히 해갈은 되는 양인 거 같다.
내일 아침에 만날 물을 흠뻑 머금은 싱싱한 꽃잎들의 활짝 핀 모습이 궁금해진다.

지난 주 금요일인 5월 1일은 노동절이라 공휴일이나 마찬가지 날이었다.
은행 등 노조가 있는 곳은 다 쉬고 관공서도 문은 열었지만 부서의 반은 휴무였다.  
그리고 석가탄신일인 30일부터 시작한 황금연휴의 둘째 날이었다.
그날은 또 오래 전부터 일 관계로 만나는 10년 사회 후배와 일박 이일 일정으로
가평에 들렀다 강원도 삼척에 다녀오기로 한 날이었다.

연휴로 곳곳에 정체가 예상되는 데다 일정이 빡빡해 아침 식사는 가는 도중에 하기로 하고
아침 일찍 후배가 인천 집으로 픽업하러 오기로 했었다.
서둘러 출발했기 때문에 다행히 막히지 않아 가평에 도착하여
양평해장국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주문한 해장국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여니 총무 대진이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 대진이가 보내는 문자는 다 심상치 않은 내용이다.
‘설마, 또?’

“ *서울 고 24
   박 철 순 동기 별세
   수원 요양병원 장례식장 3호
   발인 5월 2일(토) 13시
   급성폐렴으로 4월 30일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4월 10일 하늘나라로 떠난 기선이를 마지막으로 금년만이라도
더 이상 이런 비보를 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불과 20일 지난 4월 마지막 날에 철순이가 또 하늘나라로 떠났다.
금년에 벌써 6번째 동기 부고다.

동기들이 문상을 가면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 아빠의 고등학교 친구라
유가족들이 받아들이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반갑고 고맙다.
그래서 가주는 거만이더라도 유가족들에게 다소나마 위로가 되리라 싶어
잘 알던 모르던 친소 관계에 상관없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동기 문상은 다니고 있는데
5월 1일 가평에서 일을 본 후 오후 무렵에 삼척으로 출발 해 미리 가 있는 팀과 합류해
삼척에서 일박하고 다음 날 오전에 현장답사 후 부지런히 출발해도
서울에는 오후 늦게 나 도착할 수 있어 철순이 빈소에도 갈 수 없었고
발인 시간에도 맞출 수가 없었다.

나는 철순이와 학교 다닐 때는 전혀 몰랐다.
같은 문과였으니까 오다가다 마주치기야 했겠지만 그런 기억조차 없다.
졸업해서도 몇 년 전 동기 봄 소풍 때 까지는 이름조차 생소했었다.
4,5년 전 쯤 봄 야유회에서 였던 건  확실하지만
매년 목적지를 바꾸니까 어디로 갔을 때였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때 처음 철순이를 알게 되었다.

동기회 행사에는 반드시 명패를 준비하고 행사 내내 명패를 목에 걸고 다닌다.
나의 경우로 본다면 졸업한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아직도 얼굴은 물론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동기들이 있다.
명패를 보지 않으면 50년 동기들이 서로 통성명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동기회 봄 야유회는 항상 제법 긴 걷는 코스가 포함 된다.
대체로 아침 일찍 관광버스 몇 대를 몇 군데 출발지에서 나누어 타고
오전 10시 전 후하여 목적지에 도착해서 구경도 하고 걷기도 하다 점심식사 후
단체로 할 수 있는 놀이 좀 하거나 걷다가 서울에 저녁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도록
오후 서 너 시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그 날도 목저지에 도착해 여럿이서 무더기로 걷고 있는데
바로 뒤 쳐져 오던 친구 하나가 슬쩍 앞으로 나오더니 나와 보조를 나란히 하며
불쑥 말을 건네 왔다.
머리가 겨우 내 어깨 위로 올라올 정도의 작은 키에 몸매도 호리호리하고
모자를 쓰고 안경도 쓰고 있었는데
마음씨 좋고 정 많은 순박한 시골 아저씨 같은 얼굴에
수줍어하는 거 같기도 하고 어색해하기도 하는 표정으로
눈길이 내 딛는 발끝에 가 있는 모습이 아무리 더듬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슴아래 걸려 있는 명패를 슬쩍 곁눈질하니 이름이 박 철 순 이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기도 한데 가물가물했다.

“ 하프면 21km를 뛰는 거잖아. 연습을 얼마나해야 되는 거야?”

목소리 톤이 경상도 억양인데 내가 하프 뛰는 걸 아는 걸 보면
토요살롱을 읽어 봤다는 이야기였다.

“ 평소에 꾸준히 뛰는 거지 뭐. 일주일에 서 너 번, 새벽에 10키로 뛰어.
  한 시간 10분에서 15분 정도 천천히 뛰는데 이렇게 조깅한지는 오래 됐어.“

“ 와이프가 같이 뛰자고 하는데 나는 안 되더라구.
  일 이 백 미터만 뛰어도 숨이 차고 다리가 헛 놀아서 말이야. “

“ 처음부터 옛날 생각하고 뛰면 안 돼. 그러다 다칠 수가 있어.
  처음에는 그냥 폼만 뛰는 시늉하고 속도는 걷는 정도로 해야 해.
  그러면서 천천히 속도도 올리고 거리도 늘이고 해야지 무리하면 절대 안 돼.“

“신발은 어떤 신발이 좋아?”

“ 그냥 가벼운 조깅 화,
  바닥이 너무 푹신푹신하고 두꺼운 건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으니까
  신발 바닥이 두껍지 않은 게 오히려 좋아.“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 30여분 같이 걸은 게 철순이와의 유일한 추억이다.
  
그래서 철순이의 추모사를 쓰려니 막막했다.
문상이라도 갔으면 유가족들과 철순이와 가깝던 친구들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총무 대진이도 철순이가 동기회 모임에 거의 나오지 않아 잘 모른다고 하는데
나만큼이나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어떡하나 여태 동기들 추모사는 거의 써 왔는데 스킵하자니 뭔가 내키지가 않고
쓰려니 아는 게 없고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중
거의 한 달간 심한 독감으로 고생하다 이제 겨우 회복기에 접어든 채욱이와  
안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채욱이가,

“ 철순이도 말이야, 내가 철순이를 잘 몰라 나도 들은 이야기지만
  코로노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열이 나고 기침이 나 병원에 갔더니
  코로나 검진부터 받아오라고 해 그거 받고 어쩌고 하느라 제 때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해
  때를 놓쳐 결과가 그렇게 됐다니까 코로나가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바로 입원 치료 받아 살 수 있었다는 거거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 때는 무심코 지나쳤다가 채욱이에게 전화를 다시 하여,

“ 너, 그 이야기 누구한테서 들었니?”

“ 양 형곤이, 형곤이가 철순이를 잘 아는가 봐.”

바로 형곤이에게 전화를 했다.

“ 형곤아, 니가 철순이와 친했다며?‘

“ 아니야, 나는 수지 가서 탁구 같이 몇 번 친 거밖에 없는데
  철순이는 한양 대 법대 같이 다닌 흥렬이와 절친이야.“

“아, 그래, 흥렬이 전화번호 좀 줘 봐. ”

그러는 사이 혜열이가 철순이 조문 가서 찍어 신우 회 단 톡 창에 올린 사진에
신우 회 담임 목사이자 신촌 창천 교회 담임 목사인 구 자 경 목사가 보낸 조화가
눈에 띄던 게 떠올라 구 자경 목사가 철순이와 친분이 두터웠던 게 아닌가 하고
철순이에 대해 좀 이야기해 달라고 했더니,

“친분이 두터웠다기보다 공연스레 마음이 아파서...
졸업 후 한참을 못 보다 언젠가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고
  그 이후로도 전화도 한 번 하고 했는데 막상 그렇게 갑자기 떠났다니까
  속도 상하고 마음도 아픈데 상가로 찾아가는 거도 사정이 어렵고
  또 무리해서 가 봐야 가족도 전혀 모르니까....
  그래서 마음을 담아 조화라도 보낸 거예요.
  기선이에 이어서 마음이 몹시 아프네요. “

조문을 다녀 온 혜열이에게도 물어봤다.
혜열이는 김 계환이와 함께 철순이와 서울 고 수원지부에서
지난 20년간 우정을 돈독히 나누어 왔다고 했다.
혜열이에 의하면 철순이는 경북 안동이 고향으로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졸업 한 후
중학은 부산에서 사업을 크게 하고 있던 둘째 형님을 따라 부산 중학으로 진학했다고 한다.
혜열이가 조문할 때 윤섭이와 같이 있었다고 하며 윤섭이가 철순이와 일 년에 한번씩은
부부 동반으로 모임을 가질 정도로 친했다고 하여 윤섭이에게도 전화를 했다.

“친했다 기 보다 나도 흥렬이 땜에 흥렬이 부부와 세부부가 같이 만난 거야.  
철순이가 참 순박하고 순진하고 착했거든.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어.
성격이 내성적이고 활발하지 않아 교우관계가 별로 없어 빈소가 너무 쓸쓸할 거 같아
와이프와 같이 갔었지.
혜열이와 같이 있다 혜열이는 둥문회 수원지부 후배들이 올 거라
더 기다린다고 해서 나는 먼저 왔어. “

흥렬이에게 전화를 했다.

“ 대학을 같이 다녔으니까 친했었지. 고시 반에서 같이 고시 공부했고.
  참 뭐랄까, 착하다고 해야 하나, 순박하고 순진하고 원석이라고 해야 하나,
  고지식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퇴직할 때 더 진급해서 할 수 있었는데도 못 했던 거야.
  그런 면에서는 안타까움이 좀 있어.  
  
  대학 다닐 때 고시공부 하러 충북 진천에 가서 거기서 예쁜 마을 처녀를 만나 결혼했지.
  순억이, 나, 셋이서 고시 공부하러 같이 갔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이 그렇게 됐더라구.
  
  퇴직하고는 수지에 와서 같이 탁구 쳤고.
  정준이, 종원이, 나, 철순이 이렇게 고정멤버였는데 형곤이가 가끔 조인했고.
  형곤이가 탁구를  참 잘 치더구만. 날아다녀.
  그런데 철순이가 여기저기 몸이 안 좋은 데가 많았어.
  전립선도 수술하고 뇌종양 수술도 하고.
  그래서 몸이 밸런스도 못 잡고 해서 탁구도 못 치게 되었는데
  또 종원이도 어디 일 나간다고 못 나오고 해서
  수지 탁구모임은 그렇게 흐지부지 해산하게 되었어.
  
  그런데 그 이후에 우리가 탁구 치던 곳에 들렀는데 거기 라커에
  철순이가 탁구 칠 때 갈아 신던 운동화가 있는 거야.
  탁구 치고 신발을 갈아 신고 깜박하고 운동화를 두고 간 거지.
  그래서 그거 나중에 만날 때 가져다 준다고 벼르기만 하다 결국 못 줬어.
  그래 이번에 이걸 부인에게 전해줘야 하나 어쩌나 하고 망설이다 이야기를 했더니
  가져다 달라고 해서 가져다 줬는데 마음이 얼마나 찡한지.
  그리고 나보다 순억이가 진짜 철순이 절친이니까
  더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순억이에게 물어 봐.“

순억이와 정말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 물론 철순이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철순이가 제일 친한 친구야.
  철순이가 표현을 안했지만 나는 철순이도 그렇게 여겼으리라 생각해.
  고1때 만나 지난 51년 간, 고향이 같은 안동이라 그런 점이 가미되기도 했겠지만
  가족들도 다 잘 알고 서로 집 내왕은 물론이고 형님, 누나들, 조카들, 다 잘 알지.
  철순이가 5난3녀 중 아들로 막내인데 원래 유복한 집이었지만 형님들이 다 괜찮았거든.
  
  철순이가 공부도 잘 했는데 시험 운이 안 따랐던 거 같아.
  고등학교 다닐 때 중간고사나 기말 고사 때 일등해서
  조회시간에 불려나가 상도 받고 했으니까.
  처음 서울 대 정치학과 떨어지고 재수해서 한 대 법대 장학생으로 왔으니까
  바로 들어간 흥렬이와 나보다 한 해 아래로 들어왔어.
  그래서 셋이서 공부도 같이하고 놀러도 같이 다니고 항상 같이 움직였으니까 친했지.
  
  몇 년 전, 철순이가 수술하기 전에 셋이서 강원도 일박 이일 다녀온 게
  마지막 여행이 돼 버렸네.
  자주 다니자 그랬는데 이듬해 바로 철순이가 수술하고 하니까 더 이상 기회가 없었고.
  철순이가 술 담배 안 하고 요가도 하고 테니스도 치고 하면서 나름대로 체력관리를 잘 해
  우리끼리 이야기 할 때는 철순이가 제일 오래 살 거라고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먼저 갈 줄 누가 알았나.
  죽기 20일 전쯤에 통화했을 때도 멀쩡했었는데 참 어이가 없어서.
  
  밤 11시 반 쯤 시집 간 딸내미한테서 전화를 받았어.
  아빠가 한 시간 반쯤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저씨한테는 알려야 될 거 같아서 연락했다고.
  병원에 들어가서도 멀쩡했대. 처음부터 중환자실에 들어간 거도 아니고.
  저녁 잘 먹고 검사 받으러 가며 ‘나, 금방 갔다 올게.’ 하고 가서는 못 돌아왔다는 거야.
  
  나는 철순이를 위하는 일이라면 내 목숨도 기꺼이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만큼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인데 이렇게 졸지에 보내니
  정말 내 몸 한 쪽이 떨어져 나간 거 같아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히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철순이 장례식에는 참석 못 했는데 고향에 내가 안 가면 안 되는 일이
  이미 오래 전에 날이 잡혀 있었거든.
  그래서 삼오 제에 갔었는데 철순이 부인이 이러는 거야.
  자기 남편 생각나면 나한테 전화하겠다고.  
  하기야 철순이 부인은 철순이와 결혼하기 훨씬 전인
  우리 옛날 대학시절 진천에 공부하러 갔을 때부터 다 같이 알고 지냈으니까.    
  종호, 니가 철순이 추모사 써 준다니까 고맙다. 잘 좀 써 다오.“

철순이와 인연이 있던 친구들의 철순이에 대한 기억은 한결 같았다.
51년 지기 친구 순억이부터 철순이가 화를 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순박, 순수, 속 된 말로 진국이라고 해야 하나.
또 고시공부 하러 시골 절간에 간 대학생이 그 동네 처녀와 정이 들어 결혼했다는
옛날 영화나 동화 같은 이야기가 감동적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멀리 떠난 후 이제야 가루 늦게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철순이라
과연 철순이 답다, 철순이니까 그럴 수 있었겠다 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장 놀랍고 감동적이고 그 무엇보다도 너무나 부러운 건
철순이에게 자신을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게 여기는 친구가 있었다는 거다.

이 속 된 세상에 인생의 아름다움을 남기고 떠난 철순이의 명복을 빈다.

2020.05.09.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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