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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5-16 21:19:04, Hit : 208, Vote : 38
  토요 살롱 301회 " 反 轉 "

월 초에 잠깐 30도에 육박하는 때 이른 더위가 찾아와 에어컨과 선풍기 주문량이 폭주하고
아이스크림 매출이 급증하며 이번 여름은 유례없는 폭서가 될 거라고
매스컴 등에서 지레 오두방정을 떨었으나 이후 바로 평년 기온을 되찾아
오히려 이번 주 내 최저 온도 15도 내외 최고 온도 20도 근방으로
그야말로 활동하기 더 좋을 수 없는 최적의 날씨가 계속 되고 있다.

공기마저 맑다가 지난 목요일 황사 현상으로 아침부터 종일 대기의 질이 나쁨 상태였으나
그 다음날인 어제 바로 새벽부터 내린 비로 먼지를 말끔히 씻어냈다.
금년 봄 들어 거의 처음 나타난 황사였지 않나 싶다.
건조하다싶으면, 먼지가 과하다 싶으면 이렇게 시의 적절하게 비가 내려 준다.
다음 주 월, 화요일에 또 비 소식이 있다.

비가 어제 오전까지는 제법 세차게 내리다 오후부터는 내리다말다 하다
오늘 새벽에는 안개비로 바뀌어 내린 양이 많지는 않지만
물기 머금은 숲의 나무와 둔덕의 풀들을 살지게 하고 짙푸르게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산책길 양 옆 제법 아치를 이루고 있는 가지의 나뭇잎들이 잔뜩 품고 있던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둔한 소리가 새벽부터 재잘 대고 있는 새들의 청아한 울음소리에
간간히 장단을 넣으며 묘하게 거슬리지 않는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다.

장미나무 줄기는 아직 메마르고 퇴색해 있으나 아직 생기가 없는 줄기에서
싱그러운 새 가지가 뻗어나고 있고
아직은 가녀린 새 가지에도 메마른 줄기에도 초록색 이파리가 새파랗게 돋아나고 있다.
넝쿨마다 새파란 잎이 돋아나고 있는 넝쿨 장미도 넝쿨을 더듬이처럼 뻗어내며
슬슬 채비를 하고 있다.
장미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철순이 추모사를 올린 다음날인 지난 일요일 이른 아침
철순이의 둘도 없는 친구 순억이가 톡을 보내왔다.
‘장문의 철순이 추도사를 써 줘서 감사!’
순억이가 우리 동기 홈페이지에 들어가려니까 ID와 비밀 번호 입력을 해야 하는 등 복잡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하기에 그 전 홈피 주소를 알려줬었는데
올린 다음 날 새벽같이 읽어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에 다시 톡이 왔다.
순억이가 철순이 가족에게 추모사 전달했더니
추모사 잘 써 줘서 고맙다며 감사의 말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철억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막상 쓰려니 너무 막막해
여러 친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추려 인용한 거뿐이라
내가 뭐 별로 노력한 바도 없어 그런 감사의 말을 들으려니 괜히 쑥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서없는 졸필에 빈약한 내용이라 고인에게 누가 되지나 않았을까
전전긍긍 조바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올린 지 이틀 만에 첫 번째 홈피 seoul24.or. kr 에서의 조회 수가 28회,
두 번째 홈피, 24.old.seoulgo.net 에서의 조회 수가 33회,
최근 홈피에서의 조회 수가 20회로 도합 80회가 넘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철순이 가족뿐 아니라 친지들이 다 읽어봤는지 어제 날짜로 치면 일주일도 안 돼
조회 수가 130회가 넘는다. 가히 토요 살롱 역사상 기록적이다.

그리고 순억이 외에도 몇몇 동기들로부터 동기들 추모사를 도맡아 쓰느라 수고가 많다는
격려의 전화를 받았다.
특히 철순이와 대학을 같이 다니고 공직 생활을 같이 한 흥렬이는
고인과 가장 친했던 친구 중 누군가로 하여금 추모사를 쓰게 해야지
왜 니가 그런 힘든 일을 혼자서 하느냐며 분개도 하고 걱정도 해 주었다.
이런 고무적인 일들로 혹시나 하는 조바심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안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철순이 추모사가 공교롭게도 토요 살롱 300회였다.
용혁이의 권유와 격려와 독려로 2009년 6월에 첫 회를 쓰기 시작해 금년이 만 11년째다.
2010년 3월부터 2012년 3월까지 2년의 공백기를 제하면 9년 동안 300회를 썼으니까
년 평균 33회 정도를 올린 셈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 년에 채 30회를 넘기지 못한 경우가 많았었다.

그래서 분발해서 금년에 30회를 쓴다 할지라도 지난 해 284회로 마감했기에
300회까지는 16회 분량이나 남아 있어
금년 상반기는 훨씬 넘겨 8,9월에나 300회를 쓸 수 있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작고한 동기들 6명의 추모사를 7회나 올리다보니까 예상보다 두 달 이상이나 앞 당겨서
5월 초에 300회를 쓰게 되었다.

200회를 쓸 때는 197회쯤부터 토요 살롱의 직접적인 산파역을 한 용혁이가
카운트다운을 하며 주변 친구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등 요란을 떨었으나
이번 300회는 299회를 올리고서야 용혁에게만 다음 회가 300회라는 사실을 알렸다.

물론 많은 축하와 격려 문자를 받았다.
그런데 이제 그만 쓰라는 이야기는 없어 의아할 뿐이다.
오히려 용혁이는 ‘500회를 향해!’ 하고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과장법의 달인 진규는 ‘ 계속 힘내서 2,000회까지 가자!’ 하고 있다.
500회까지 200회를 더 쓰려면 앞으로 최소 7년이 더 걸린다.
70대 중반이다.
그 때가지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글을 쓸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물론이고
제 정신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독자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 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그런 먼 장래의 일은 그 때 가 봐야 아는 일이고
내 몸과 마음이 아직 불편하지 않고 사고력과 기억력이 어느 정도 받치고 있는 한
응원하고 격려하는 동기들이 있고 토요 살롱이 조금이라도 흥밋거리가 되거나
위안거리로 삼고 있는 독자들이 있는 한 게으름 피우지 않고 쓸 생각이다.

기선이가 4월 10일 하늘나라로 떠나고 한 달여 후인 지난 5월 12일
신우 회 5월 정기 모임을 기선이 가족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기선이 추모예배로 치렀다.
한동 대에서 정년퇴직하고 부부가 함께 멀리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사역을 하다
3월 초 일시 귀국했다 3월 말 출국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발이 묵인 배 건웅 선교사가
거주지인 멀리 포항에서 일부러 상경 참석하여주었고
이사불이지만 종교의 영역을 초탈해 신우 회 행사 때마다 빠짐없이 찾아주는 우성이와
총무 대진이가 참석해 주었다.
동기 김 문일 목사 집례로 진행 되었는데 설교 시작머리에 문일 목사가
출가한 기선이 딸을 단상으로 불러 아버지에 대한 회고를 이야기하게 했는데
기선이 딸이 슬픔에 겨워 울음이 반 이상 섞인 목소리로
생전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 중에 우리가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 있었다.

“ 아빠가 마지막으로 입원하시고 아버지의 핸드폰을 정리하다가
  아빠가 9년 전인 2011년에 이미 폐가 서서히 석화되어 기능을 상실해가는  
  불치의 희귀병에 걸렸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투병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 아빠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진작 알았다면 캐나다 유학 기간을 단축하고 달려와
  보다 많은 시간을 아빠와 함께  할 수 있었을 거고
  좀 더 잘 보살펴드렸다면 이렇게 일찍 가시지 않아도 될 텐데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왜 그런 병을 얻으셨는지 아빠가 하나님 사업을 한다며 Habitat의 일원으로
  원래 몸도 약한데 네팔, 필리핀, 세계 오지, 산간벽지를 다니며
  열악한 환경에서 격심한 노동을 하다 그런 병에 걸린 게 아닌지,
  왜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봉사활동 하며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 온 아빠가
  그런 불치의 희귀병에 걸려 고통 속에 생명을 거두어야 하는지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마지막에 의사들이 호흡기 절단 수술을 하자고 했을 때
  그 때는 아빠가 의식이 또렷했는데도 수술을 거부 하셨습니다.
  의사가 저희들에게 아빠를 설득해 수술을 하자고 권유했지만
  저희들은 아빠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아빠 친구 분들에게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프시면 혼자서 앓거나 숨기시지 말고 꼭 가족들에게 이야기 해 주십시오.“

그런 일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 병색이 완연한 기선에게 안부를 물을 때마다 본인이,
‘잘 낫지를 않지만 일종의 천식 같은 거야. 채식 위주로 식단이 중요하대.’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런 희귀병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도 없었다.
.
기선이는 학교 다닐 때부터 호리호리한 몸매라 체질이 약해 보였다.
그러나 항상 짓고 있는 웃음과 미소가 착하디착한 천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병마로 육신의 고통을 당할 때나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나
그 특유의 선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떠날 때도 온 얼굴 가득한 그 미소 그대로 눈을 감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50여년을 같이 지내면서도 기선이에 대해 정말 잘못 알고 있었던 점은
기선이가 이와 같이 겉으로는 마른 체구에 누구와도 다툴 줄 모르고 씩 웃기만 해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킬 만큼 연약해 보였지만
내면에 누구보다 강한 의지와 고집을 장착한 사나이 중 사나이였다는 거다.

이로서 난초 멤버 중 영록이가 먼저 떠났고 기선이가 그 뒤를 이어
재미중인 이 장식, 장 연수, 연락이 잘 안 된다는 김 택중이를 제외하고
재만이, 홍순이, 제갈 성, 허 용, 문 성근 등 댓 명만이 남아
두 달에 한 번 모이는 난초 모임이 너무 쓸쓸하지 않을까 싶다.
영록이 빈소에서 방명록과 부의금 함 앞에 기선이가 앉아 있었는데
기선이 빈소는 우성이가 자리를 지켰다.
    
10여 년 전부터 소개, 소개로 알게 된 10년 년 하의 사회 후배가 있는데  
한동안 연락이 전혀 없다 지난 해 늦여름 몇 년 만에 전화를 받았다.
서로 공, 사적으로 아무 것도 걸린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전에도 둘이서 만난 적은 없었고
여럿 모인 자리에서 서로 안부나 하고 지냈기에 연락이 없으면 없는 대로 까맣게 잊고 지내다
느닷없이 전화를 받으니까 일단은 반가웠다.

그 이후로 한 달에 한번 꼴로 만나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데
주량도 비슷하고 공통되는 주제도 있어 아주 편안하게 만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선배든, 후배든, 동료든, 친구든 주변에 술 한 잔 같이 나눌  사람이
점점 귀해 진다.

나의 경우는 학창시절 이후로 어울려 퍼마시고 다니던 친구들 중
지금도 술 대작을 하는 친구는 한명도 남아 있지 않다.
최 영식이가 최근까지 대작해 줬으나 영식이가 2차는커녕
일차도 술잔만 만지작거리며 깨작거리다 자리를 파하기 무섭게 ‘나, 먼저 갈게’ 하고
뒤도 안 돌아버리고 가버리는 아주 가정적인 인간으로 변해 약속하기가 꺼려진다.

어쨌든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금주 내지 절주를 하고 있어 아예 저녁 약속을 하지 않게 된다.
어쩌다 저녁 약속을 하더라도 다들 절제하는 분위기인지라 분위기 따라가야지
나 혼자 신나 하며 디립다 퍼 마시고 있을 수가 없다.

이 후배에게 그런 하소연을 했더니,
‘ 형님 저도 그렇습니다.
  형님하고나 편안하게 마음 놓고 술 마시지 저도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직원들하고 회식을 하거나 대표들이 자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런 자리야 더 불편하지 않습니까. 요즘은 오너라고 술 강제로 권하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젊은 세대들부터 술 문화 자체가 변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저하고 술 마시는 게 또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 형님, 저하고 오래 친분이 있는 선배가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빌딩을 관리하는 사람이 마스크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답니다.
  운영난으로 생활이 안 돼 도와주려고 밤에 그 선배 빌딩 청소도 하고 안전 점검도 하고
  야근도 하게 해 줬는데 몇 잘 전에 코로나로 바빠졌다며 그만두고 소식이 끊겼답니다.
  그러다 며칠 전 코로나로 떼돈을 벌어 빌딩을 샀다며
  어려울 때 도와 줘 고마웠다고 인사하러 왔더랍니다.“

반면에 이 친구는 대부분의 사업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아 회사 영업이 마비되어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다.

“ 금년 말까지 이 상태가 계속되면 저도 사업을 접어야 할 거 같습니다. ”

옛날에 내가 데리고 있던 직원 중에 독립하여 지방정부에서 발주하는 공공 공사 입찰 위주의
토목설계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코로나로 지장은 없냐.’ 라는 안부에,

‘저희는 별 영향이 없고요, 오히려 더 바빠졌어요.
관에서 금년 물량을 조기 발주 하는 바람에 그거 다 쫒아 다니느라 정신없습니다.
낙찰되면 빨리 돈 받아가라고 해서 귀찮을 지경이에요.
선급금도 50%나 줘요. 하하.
저녁 약속이 없어 영업비도 덜 나가고 일찍 집에 들어갈 수 있어 마누라도 좋아하고
더 좋아졌습니다. 벼락 맞을 소리겠지만 이 조시로 계속 갔으면 합니다. 하하.
코로나 좀 진정되면 제가 제대로 한 번 모실게요.‘

코로나가 처음 창궐했을 때 우리나라의 확진 자 수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였다.
매일 확진 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출입국을 제한하고
심지어 우리나라에 거주 중이던 외국 근로자들은 줄을 이어 자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두 어 달이 지난 지금 상황이 전혀 180도로 달라졌다.
외국에 거주하던 재외 국민들이 전세기로 귀국하고 있고
우리나라 검진기, 마스크, 관련 의약품 방역 시스템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오늘 현재 확진 자 수는 코로나가 발생한 185개국 중 4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인구 당 발생 율은 100위권 밖으로, 확진자당 사망률은 110위 권 밖이다.

해외 거주 국민들이 고국이 더 안전하다고 다투어 귀국하는 모습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을 포함해 인도, 이란, 탄자니아, 페루 등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교민들이 원한다면 어떻게든 전세기를 띄웠다.
이렇게 전 세계에 전세기를 띄워 자국민을 데리고 온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세계에서 전염병에서 가장 안전한나라’ 가 되었고
‘우리 국민의 안전은 우리가 지킨다.’는 우리 정부의 들어나지 않은 자신감의 발로였다.

뿐만 아니다.
어떤 봉쇄조치도 하지 않고 경제활동을 제한하지 않고 이동을 제한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뉴저지에 거주하는 순구가 얼마 전 사람은 물론 차 한 대 없고 가게는 모두 문을 닫은
텅 빈 주말 오후의 맨해튼 거리를 사진 찍어 보내왔다.
평상시면 가장 붐빌 토요일 오후였다.

“ 난리도 아니다.
  친척 한 분이 4월 10일에 돌아가셨는데 장례 일을 5월 15일로 받았어.
  장례가 밀려 대기 순번을 받아야 해.
  관 값 등 장례비가 폭등하고 장의사에 의하면
  뉴욕 시에서 관을 15만개를 준비하라고 했다는 거야.
  이런 내용 좀 토요 살롱에 써라. “

코로나로 앞으로 엄청난 경제적 고통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겪으며 우리 국민들이 역으로 가지게 된 자신감, 정부에 대한 신뢰,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의 극복은 그 이상의 보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인류에 동등한 영향을 미쳤다면 그런가보다 했겠지만
대처하는 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 캐나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우리와 대비 비교하게 되고
그러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니, 우리나라가 이 정도였나?’ 할 정도로
우리의 위상이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방과 베끼기로 먹고 사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이라고
자신 있게 슬로건을 내 걸 수 있게 되었고
누구도 밟아보지 못 한 길을 가는 부분도 있는 나라가 된 거다.

미세먼지 주의에 경보에 그렇게 마스크를 쓰라고 매스컴과 SNS를 총 동원해 달달 볶아도
잦은 기침에 콧물 범벅인 심한 감기 환자 외에 마스크를 한 사람이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콧방귀도 뀌지 않더니 이번 사태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은 찾을 수도 없고
특히 전철 안에서는 쓰지 않고 있다가는 눈치가 보일 정도로 100% 다 쓰고 다니고 있다.
또한 어디 가면 반드시 손을 씻고 소독한다.

사실 서울 인구 1,000만 명 중 코로나로 사망한 경우는 현재까지 단 한 명인데
그것도 폐암말기의 기저 환자였고
인천은 인구 300만 명 중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적다.
코로나가 별로 치명적이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그런데도 당국의 지시에 너무나 잘 따르고 있고
정부의 당부 이상으로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조심들 하고 있다.
정부가 뭐라고 하면 죽으라 말 안 듣고 일단 무조건 반대로 가고 보는
청개구리 근성을 가진 국민들임을 감안할 때
코로나가 정부와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는 이상한 역설이 성립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 우리 동네에 확진 자가 한 명 발생했다.
시간 별로 경고 문자가 날아오고 보건소, 경노 복지관에서는 전화가 오고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온갖 경고, 지시사항을 방송해 온 동네가
지진이라도 난 듯 난리를 떨었다.
그 와중에 인천에서 건축사업을 하는 사회후배가 집으로 찾아 와
이 동네 이사 오면서부터 10년 단골집인 순천 댁이 30년 혼자서 운영하는 천량 집으로
밴댕이회에 병어조림 곁들여 막걸리 한잔하러 오랜만에 찾아갔지만
문전에서 쫒겨 나고 말았다.
“ 솔빛 사시는 분 출입 안 됩니다.”

이렇게 외출 시에는 반드시 마스크 쓰고 손 자주 씻고 소독하며 몇 달 지내다보니까
이런 일들이 이제 거의 습관화 되고 생활화된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감기 환자가 확 줄었다고 한다.
예년 같으면 환절기에 감기 환자로 병원이 바글바글할 텐데 환자가 없다고 한다.
애들 감기가 주요 진료인 소아과 같은 경우는 문 닫게 생겼다고 한다.
호흡기 질환, 폐렴으로 인한 사망률도 줄어 전체적으로 사망률도 줄었다고 한다.
따라서 코로나 때문에 공기가 맑아지는 등 삶의 질이 더 좋아지고
국민들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오히려 더 좋아졌다는 역설도 성립된다.

전체적으로 저녁 외식을 자제하고 집에서 식사를 하다보니까 외식 업체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남아 돌고 있는 쌀 소비가 늘고 야채가게, 반찬가게, 생선 가게, 정육점 등 재래시장은
찾는 손님이 오히려 더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돼지고기 값도 오르고 달걀 값도 오르고 잘 되는 야채가게는
몇몇 품목은 오전에 이미 그날 가져 온 물건이 동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야채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는 진풍경을 이 동네 이사 온 지 10년 만에 처음 봤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로 인해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국가 간에,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기존의 질서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질서로 재편될 만큼 엄청난 변화가 예상 된다.
  
다음 주말에는 지방을 다녀와야 할 일이 있어 토요 살롱 쉬게 되니
이 점 미리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하며,
2020.05.16. 송 종 호.
  




토요 살롱 302회 " 맹꽁이 우는 소리 "
토요 살롱 300회 " 아름다운 정을 남기고 떠난 박 철 순 동기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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