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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6-13 21:36:10, Hit : 134, Vote : 25
  토요 살롱 303회 " 강원도 번개 여행 "

6월 들어서면서부터 실망스럽게도 예보대로 금년 여름 찜통더위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낮 온도가 연일 30도를 넘나들고 있고 전주인가 어딘가는 기상관측을 하기 시작한 이래
초 기온으로는 100년 만에 처음으로 기온이 35도를 넘는 등
폭염주의보까지 내린 날도 있었다.
제주도는 벌써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이곳 중부 지방은
그저께 밤에 몇 시간 찔끔 비가 내린 외 잔뜩 흐리다말기만 하지
이 달 들어 비도 제대로 내리지 않고 있다.
중부 지방도 곧 장마가 시작될 텐데 예년처럼 마른장마로
비 한 방울 없이 후덥지근하기만 하지 않을까 지레 겁난다.

구청에서 코로나 방역 겸해서인지 방충, 방역 연기를 부지런히 뿜고 다니는 거 같은데도
새벽에 산모기가 왱왱거리고 20층 아파트를 어떻게 올라왔는지
자기 전에 모기 매트 꽂는 걸 깜빡 잊으면 잠들기가 무섭게 여기저기 왕창 뜯겨
잠을 설치게 된다.
여름이 쓰나미 덮치듯이 확 덮쳤다.

그나마 새벽 최저 온도가 아직 20도를 넘지 않고 있어
새벽에는 홑이불이라도 덮을 걸 찾을 정도라 아직은 견딜 만 한데
낮에 이런 식으로 대지가 달구어지면 곧 열대야가 닥칠게 뻔하다.
아직 선풍기를 틀지는 않지만 동쪽 베란다, 서쪽 현관문은 완전히 개방하고
새벽에는 좀 쌀쌀하지만 그래도 잘 때도 다 열어 두고 잔다.
그래서 집에 있는 시간은 밤이나 낮이나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 통풍이 막히지 않게 하고
옷차림도 아주 간결하게 팬티 한 장이다.

하루가 다르게 흰색, 분홍색, 노란색, 진분홍, 진홍, 자주색, 가지각색 장미가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다.
일찌감치 핀 놈들은 벌써 떨어져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그러나 풀 섶 더미 속에 군데군데 수줍게 가려 있던 보라색 붓꽃도 자취를 감추었고
정원 한 켠을 오렌지색으로 물들였던 금잔화도 줄기가 끝이 꺾여 꼬부라지고
꽃잎은 시들시들 매가리가 없어졌다.

하지만 지는 꽃 아쉬워하고 그 공백을 쓸쓸해 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수많은 종류의 기화요초들이 정원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산책 길 옆 풀 섶은 손톱만한 크기의 앙증맞은 하얀 쌍떡잎의 개망초가  하얗게 덮었고
정원 둔덕에는 개망초 꽃잎의 서너 배쯤 되어 색만 하얄 뿐 해바라기를 연상시키는 구절초가,
둔덕 위 쪽 길을 사이에 두고 그 위로는 핏빛 새빨간 장미가,
그 위로 숲과 맞닿아서는 오렌지색 금계국이 각각 색깔 별로 도드라지어 경계를 짓고
나름 보는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튤립이 지난 자리에 잠시 막간에 오렌지 색 꽃밭을 이루었던 금잔화는
일찌감치 시들시들 천덕꾸러기가 되어 가장자리 한쪽 구석으로 밀려났고
정원 한 가운데는 한 움큼 손바닥을 덮을 정도로 탐스럽게 만개한
하얀색, 연분홍색, 연보라색 수국을 센터로 하여 빨간 달리아, 노란색 잎 짧은 백일홍,
진 주황 베고니아, 진분홍 페튜니아가 치레로 띠를 두르며
아름답고 화려한 화환을 만들고 있고 그로부터정방형 정원을 팔방으로 나누어
노란색, 오렌지 색 천수국, 빨간색, 노란색 백일홍,
매 꽃마다 노란색과 붉은 색의 비율이 현란하게 다른 서광 꽃등이 균등하게 영역을 나누고  
정원 가장자리 산책길과 닿아서는 괜히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는 연홍색 개양귀비꽃이
가느다란 줄기 위에 요염하게 매달려 스쳐가는 산들바람에도 위태위태 하늘거리고 있다.
후덥지근하지만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여 눈과 마음을 어지럽히는 농염한 계절이다.  

지난 5월 16일 밤에 대진이가 갑호 모친의 부고를 알렸다.
5월 16일 오후 5시에 운명하시고 18일 발인한다는 내용이었다.
16일은 이미 늦었고 17일이 일요일이었는데 다음 날인 월요일 발인이라
일요일인 17일밖에 조문할 날이 없었다.

갑호는 치매환자인 어머니를 8년 간 혼자 모셨다.
장남인 갑호 아래 사회적 지위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남동생도 있고 여동생도 있지만
갑호가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어머니를 모셨다.
그러는 동안 가까운 친구들 길흉사에만 잠깐 틈을 내 들렀지 모임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비교적 가까운 사이인 나도 지난 8년간 갑호 얼굴 본 게 몇 번 되지 않는다.
그것도 잠깐 얼굴만 보고 미처 안부도 제대로 못 나눈 채 악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나 먼저 갈게’ 하고 부리나케 자리를 떠버려 무슨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었다.
갑호를 가장 최근에 본 게 2년 전 구 재수 딸 결혼식에서였다.

갑호는 고3때 3학년 3반 나하고 같은 반이었을 뿐 아니라 짝이었다.
한성이가 지하 신문 ‘한성순보’를 발간할 때 혜인, 재효 등과 더불어 동지이기도 해
그 이후 돈독한 우정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내가 2008년 발목뼈가 산산조각 나 김포의 한 병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을 때
청량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문병 오기도 했었다.
갑호는 겉보기에는 덩치도 골격이 굵어 우람하고 얼굴 생김새도 우락부락하여
사나이 중의 사나이로 보이지만
쌍꺼풀 진 커다란 눈은 눈물이 많고 마음이 여리고 감성이 풍부해
서정적이고 정이 많은 친구다.
갑호는 글도 잘 쓴다. 특히 시작에 재능이 있다.
갑호가 쓴 글은 정이 뚝뚝 떨어지고 자신의 감정과 진심이 한자 한귀에 그대로 배어 있다.

그래서 같은 날 동 희권이 모친이 갑호 모친과 같은 나인인 90세를 일기로 별세 하셨다는
부고를 받았지만 희권이 상가는 갈 수가 없어 위로의 말만 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희권이네 집에 가 본 적이 없어 희권이 모친을 뵌 적은 없지만
우리 동기들 사이에 희권이 모친은 유명하다.
외아들인 희권이에 대한 정성이 대단하셨다고 하고
집에 찾아오는 희권이 친구들에 대한 대접 또한 극진하셨다고 한다.

부고를 받고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이 지철이었다.
지철이와 갑호는 고교 시절이후 오랜 세월 운명 같은 우정을 나누어 온
유별나게 각별한 사이다. 그만큼 둘 사이에 기적 같은 사연도 많았다.
갑호가 종종 연락이 두절되었지만 지철이를 통하면 언제나 연락을 할 수가 있었다.

“ 갑호 어머님 돌아가셨는데 가 봐야지? ”

“그럼 당연히 가야지.
사실 말이야 두어 달 전에 폐렴이 걸려 고생하다 이제 겨우 다 나았어.”

“아니, 그런 일이 있었어? 고생했겠구나. 크로나 땜에 난린데 놀랐겠다. ”

“그래서 우려했는데 다행히 코로나는 음성이었고 아직 약간 후유증이 남아 있지만
거의 다 나았으니까 문상하러 가 봐야지. “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말끝에 아직 잔기침이 묻어나왔다.

나이 들어 폐렴 걸리면 쉬이 낫지도 않고 자칫 위험한 상태로도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영철이, 철순이도 결국 폐렴이었다.
김 대중 대통령도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내가 옛날 데리고 있던 직원 중에 몇 년 전 겨우 50넘긴 아까운 나이에
고1, 중2, 한참 커가고 있는 예쁜 두 딸을 두고 급성폐렴으로 생을 마감한 경우도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려다 심한 기침을 하고 쓰러져 119에 실려 갔으나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바이러스가 폐를 완전히 잠식해 그 길로 사망하고 말았다.

갑호 모친 상 조문을 하고 돌아 온 다음 날 지철이에게 전화를 했다.
지철이를 만난 지도 오랜만이었다.
지난 1월 정준이 막내아들 결혼식에서 잠깐 본 후 몇 번 통화만 했었다.
3월에 지철이가 영식이와 저녁을 하자고 했으나 그 때는 코로나가 한참일 때라
독거노인인 나야 아무 상관없지만 철저하게 마누라 관리 하에 있는 영식이가 나오기 어렵고
지철이도 마누라한테 거짓말하고 나올 거라고 해 코로나가 좀 누그러지면 만나자고 하고
두어 달이 흘러버렸는데 그 사이 지철이가 폐렴으로 고생하게 됐다는 거였다.

지난해도 지철이를 거의 못 만났다.
지난해 11월 무슨 일로 강원도 둔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마침 용인을 지나게 되어
지철이가 요 몇 년 전화를 안 받고 잠수 타는 경우가 많아 전화하기가 꺼려지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고 지철이에게 전화를 하니 마침 받기에
저녁에 시간이 어떠냐니까 또 마침 비어있다고 하여 도착시간을 알려주고
둘이서 막걸리하기가 좀 뭐하니까 종원이 시간 되는 지 알아보라고 하니까
또 마침 종원이도 시간이 된다고 하여 정말 오랜만에 셋이서
당일 오후에 연락하여 그 날 저녁에 만난 그야말로 번개 팅으로 막걸리 마신 게
지난 해 유일한 만남이었다.

지철이는 내장이 여러 군데 빵꾸가 나 막걸리 외에는 어떤 종류의 술도
마신 후 역류 등 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고 하고
종원이도 얼마 전 평소 주량이던 소주 2병 비운 후 전용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다
사고를 내 다친 적이 있다고 하여
지철이는 막걸리 한 병, 종원이는 소주 한 병으로 제한하여 마셨지만
그 날 오랜만의 만남이라 6시에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소를 옮겨가며
이야기에 흠뻑 취하고 막걸리에 푹 젖다 보니  
11시를 넘겨 인천까지 돌아오는 데 지하철, 버스를 몇 번인가 갈아타고
결국에는 택시에 의지해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지철이가 폐렴을 앓았다는 소식에 그동안 자주 못 만난 게 연유가 어쨌든 아쉬웠다.
‘앞으로 얼마나 자주 볼 수 있을 거라고’ 자주 연락하지 못한 자책감도 들었다.
영식이와 저녁 같이 하자고 했는데 코로나 핑계를 댄 거도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수지로 가서라도 밥이라도 한 끼 같이해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철아, 내가 수지로 갈 테니까 점심 같이 하도록 하자.”

“점심도 좋지만 말 나온 김에 강원도 2박 3일 다녀오자.”

“그래? 그것도 좋겠네. 누구랑 갈래? 멤버는 니가 편한 친구들로 정해라.”

“ 이 명식이 하고 한성이하고 우선 그렇게 하자.”

“그럼 니가 명식이한테 연락하고 한성이는 내가 연락해볼게.
그러더라도 우선 같이 만나 일정을 상의해봐야 하지 않을까? “

“뭘 또 만나고 그래? 그냥 날 잡아서 떠나면 되지.
일요일이나 월요일 콘도 예약이 편하니까 일요일 떠나 화요일 오던지
월요일 떠나 수요일 돌아오는 걸로 일정을 잡도록 해.“

지철이가 말 나온 김에 빨리 가자고 하며 자기는 아무 날이나 좋다고 하여
명식이와 맞춘 날이 31일 떠나 2일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잠정적으로 정하고 한성이에게 연락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아
한성이 막내 여동생과 한성이 바로 아래 매제인 우리 동기 필성이에게 영문을 알아보니
한성이도 두어 달 심하게 폐렴을 앓다가 이제 겨우 회복중이라 전화를 못 받는다고 하였다.

“ 지철아, 한성이는 안 되겠다. 너처럼 폐렴이래.
  이제 거의 회복되었다지만 전화를 못 받는 거 보니까 아직은 아닌 거 같으니
  다른 친구로 대체하도록 하고 니가 추천해봐라.“

“ 그럼, 구 재수, 재수는 명식이하고 친하고 너하고도 친하니까.“

“재수한테 바로 연락해볼게.”

지철이와 전화를 끊고 바로 재수에게 톡을 보낸 게 저녁 7시쯤이었는데
8시쯤에 일정에 맞춰 여행 가능하다는 답신이 왔다.

지철이 차가 포드 토레스로 내부가 넓고 편해 지철이 차로 가려고 했으나
3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석태의 KC.TECH.에 3년 차 근무하고 있는 지철이 아들이
야근 때마다 아빠 차를 이용하는데 하필 그 때가 야근을 해야 해
명식이가 13년 끌고 다니며 23만km를 뛴 고물 그랜저를 끌고 가기로 했다.

사실 나로서는 강원도 여행이 한두 번째가 아니다.
지철이하고만 네 번째다.
첫 번째는 승종이, 최영식이와 넷이서 다녀왔고 두 번째는 승종이와 셋이서 다녀왔는데
이 두 번의 여행기는 2013년 4월에 올린 토요살롱 85회 ‘철지난 바다’에서 대충 정리했었다.
그러고 채인이와도 다녀왔다.

거슬러 올라가면 졸업하던 해인 1972년 한성이, 혜인이, 재효와
숙명 대 갓 입학한 여학생 4명을 동반하고
북평 해수욕장, 설악산, 속초로 일주일간 텐트 치고 밥해먹으며 다녀온 게 시발이었다.
이 때 이야기도 토요살롱에 비교적 상세하게 올려놨다.

2014년에는 정준이, 정준이 중학교 동창이자 절친 남 길우와 셋이서 2박 3일 다녀왔고
제수씨 생전에 숙모님 모시고도 여러 번 강원도 동해안을 다녔었고
내가 인천에서 건설 회사를 창업, 경영할 때 마침 노동절과 겹치는 회사 창사 기념일에는
전 직원들, 가족들을 모두 관광버스 두어 대에 태우고 일박으로 야유회를 갈 때도
강원도였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맺은 사람들과 당일 또는 일박, 2박 일정으로
수도 없이 강원도를 유람했었다.
부친 고향이 영월이고 모친 고향은 정선인데다 아직도 숙모님이 원주, 안창에 계셔
매년 두 번은 원주를 다녀 강원도가 나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만큼 많이 다녔기 때문에 강원도는 나에게는 정겹고 익숙한 곳이다.

일요일인 31일 오전 11시에 용인 성복 역에서 집합하여 기착지인 삼척으로 가는 도중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히 점심을 하고 숙소인 삼척 솔 비치 콘도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좀 넘어 있었다.

그런데 체크인을 하려고 로비로 들어가자 놀랄만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체크인 카운터 7개를 다 열었는데도 입실하려는 투숙객들로 그 넓은 로비가 인산인해였다.
대기 번호를 받았는데 우리 앞에 40여 팀이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상행선이 거의 주차장을 방불케 해 일요일 오후라 다 빠져나가고
한산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체크인 하는 데만 30분을 기다려야했다.

지철이와 같이 갈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항상 지철이에게 숙소 예약을 부탁하고
맛 집도 지철이에게 의뢰를 해 왔기 때문에
이 번에도 숙소와 먹거리는 지철이에게 일임을 하였는데
지철이가 솔 비치로 온 이유가 있었다.
강릉에 별장이 있는 지성이 형을 제외한 나머지 지철이 형제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솔비치의 제일 비싼 회원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지성이 형이 마련해줬다는데 회원권만 2억이 넘는다고 했다.
지철이 아래 해군 대령 출신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다.

마침 문일 목사도 부인과 금년에 대학을 졸업한 막내와의 가족여행 일정이 우리와 겹쳐
지철이 주선으로 같은 콘도에 묵게 되었는데 우리가 체크인을 마치고 여장을 풀고
무릉계곡으로 다녀오기 위해 내려오자 마침 도착한 문일이 가족과 반갑게 해후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약 20분 거리인 무릉계곡에 도착해 아직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지철이와
지철이 동무해주려는 재수는 계곡 초입 물가에서 쉬고
명식이와 나는 4km 거리인 용추폭포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며
지철이, 재수와 헛갈리는 바람에 우리가 먼저 내려와 기다리는 막간에
파전 안주 삼아 양양에서 주조했다는 지방 막걸리 송정 막걸리 한 병을 시원하게 비웠다.
그런데 이 송정 막걸리가 특이하게도 알코올 도수가 일반 막걸리의 6도와 다르게 7도였다.
지방을 갈 때마다 그 지방 막걸리를 마셔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마셔봤지만
7도 막걸리는 처음이었다.

지철이가 저녁을 게살 상어지느러미 탕이 푸짐하다는 중국집으로 선택 했으나
일요일이라 문을 닫아 유명한 막국수 체인인 근처의 삼계 리 막국수 집으로 변경하고
문일이에게 조인할 수 있는지 문의 결과 흔쾌히 같이하겠다고 하여
문일이 가족과 막국수에 사리를 더하고 만두에 메밀 부침개를 깨끗이 비우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소고기, 돼지고기, 1.8리터 한 되들이 송정 막걸리 3통,
편의점에서 외산 맥주 4캔, 새우깡 등 안주거리 얼마를 사들고 숙소에 들어와
고기 굽고 본격적인 술판을 벌였다.
술을 다 비우는 동안 온갖 이야기가 쏟아졌다.
나이가 들며 양기가 다 입으로 올라왔는지 노인들이 수다를 더 뜬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이튿날은 아침을 간단히 먹고 가는 길에 명승지도 들러볼 겸 일찌감치 고성으로 향했다.
삼척에서 한 시간 반 거리다.
속초 거주 동가들인 희근이, 수택이, 현익이, 영철이와 고성에서 점심 약속이 되어 있었다.
약속장소인 고성 아야 진 동해활어횟집은 자연산 전문 횟집으로
2014년 정준이, 길우와 왔을 때 희근이 안내로 한번 와 본 곳이다.

그 때도 횟집 주인 내외가 희근이를 버선발로  튀어나오다 시피 맞아주었으니
6년이 지난 지금이야 오죽하랴 싶은 생각이 들었다.
2012년에 지철이, 승종이와 왔을 때는 속초 시내 한 복판에 위치한  
속초에서 제일 유명한 횟집으로 안내했었는데
그 집이 문을 닫자 이 집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생선회 중 최고라는 자연산 줄돔, 참돔 위주에
동해 앞바다에서 잡히는 잡어가 사이드로 나오는 최상급 상차림이었다.

고1때 자기 반 반장이 명식이었다는 현익이가 특히 반가워했다.
고교 졸업 후 50여년 만에 둘이서 처음 만난다며
현익이가 감격에 겨워하며 그 날 식대를 전액 부담했는데
그래서 우리는 예기치 않게 명식이 덕분에 덩달아 나팔 불게 되었다.

반가움을 진하게 나누고 최상급 요리에 웃고 떠들며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긴 곳이
영철이가 터를 가꾼 농막이었다.
말이 농막이지 200평의 텃밭 제일 안 쪽 가운데에 자리 잡은 조립식 건물은
겉은 검은 색으로 칠해 온통 초록색 풀과 나무와 숲인 주위와 두드러지게 하고
건물 내부는 오밀조밀하게 가꾸고 아기자기하게 장식하여 분위기 넘치는
클래식한 품위와 격조를 갖춘 고품격의 아름다운 카페를 방불케 했다.

외손자들 사진이 눈에 띄었다.
영철이 외동딸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결혼하여 뉴욕 브롱크스 바로 위쪽
접경지역에 살고 있는데 영철이 부부는 일 년에 두 번 손자들 보러 가
매번 한 달 반씩 머문다고 한다.
딸 부부가 아들만 셋을 두었는데도 더 낳겠다고 하여
영철이 부인이 질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영철이 부인이 미리 다과를 준비해 두었고 커피까지 얻어마셨다.
어떻게 이런 데다 이런 걸 꾸밀 생각을 했냐니까,

“ 오래 전부터 ‘이런 곳에다 이런 걸 꾸미고
  와이프하고 둘이서 호젓하게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
  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거든.
  그래서 이 곳을 처음보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계약을 해버렸어. “

정원에는 부인이 심어 가꾸는 과수나무가 열 가지도 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일 나무는 총 망라한 거 같았다.

둘째 날 숙소는 양양의 솔 비치였다.
숙소로 돌아오며 속초 중앙시장에 들러 살아있는 백 고등,
막 제철이 시작하는 생물 오징어, 새우튀김, 다음 날 아침에 먹을 해장용 소머리 국,
한 되들이 설악 막걸리 3통, 과자 몇 봉지, 페트병 맥주 한 통을 쇼핑하고
숙고에 들어오니 벌써 저녁때였다.
그 날도 새벽 3시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고성 아야 진 동해활어횟집에서 현악이가 우리를 보자 싱글싱글 웃으며,

“너그들 다 늙은 노인들이 그거도 남자들만 같이 놀러 다니는 게 그렇게 재미있냐?”

출발점인 성복 역으로 돌아와 명식이 단골이라는 칼국수 집에서 늦은 점심 겸 저녁을 하며  
강원도 번개 여행을 마치는 조촐한 해산식을 가진 후 다들 단톡 창에 한마디씩 남겼다.
명식이는 너무나 즐거운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라며 특히 속초 4인방과의 만남이
화룡점정이었다고 하였고 재수도 즐거운 여행 추억으로 넘겨야 하는 게 아쉽다고 했고
지철이는 가을에 시간 내 또 가자고 했다.
2020.06.13. 송 종 호.




토요 살롱 304회 " 일상의 변환 "
토요 살롱 302회 " 맹꽁이 우는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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