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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6-27 20:58:35, Hit : 107, Vote : 9
  토요 살롱 305회 " 한 여자를 순정을 바쳐 사랑한 자유 영혼의 소유자, 영훈이의 명복을 빌며. "

지난 월요일인 22일 오전에 미국 애틀랜타에 거주하고 있는 영훈이의 부고를 받았다.
6월이 채 다 가기도 전에 금년 들어 벌써 일곱 번째 동기 상이다.
대진이가 보내 온 내용이,

“서울 고 24
김 영훈B 동기 별세
미국 Atlanta Ga에 거주하며
4년 정도 투병생활 중
6월 22일 아침(한국시간)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동기 중 김 영훈이 두 명이라 A, B로 구분하는데 의사인 김 영훈A는 기억에 없고
김 영훈B는 내가 알고 있는 영훈이다.
‘안다.’라고 하기보다 2011년 12월 뉴욕에서 치른 용모 둘째 딸 민주 결혼식에서
영훈이 부부를 난생 처음 만난 후로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일생에 딱 한번 만난 사이다.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도,
‘아니, 내가 본 적이 없고 이름도 생소한 동기인데 어떻게 용모 혼사에?’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뜻밖에도 영훈이는 우리 동기 사이에 전설적인 모임인
원지 회(속칭 용자 모임)의 일원이었다.

영훈이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무래도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있어야 될 거 같은데
당일은 뭐가 좀 바빠 왔다 갔다 하느라 짬을 못 내다
다음날 용자 중 먼저 용모에게 전화를 했다.

“ 용모야, 어제 영훈이 부고 날아 왔는데 놀랐겠구나.
  그리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

“ 그러게 말이야, 재복이는 부고 받은 어제 아침부터 울고 있대.
  아픈 건 알고 있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통 연락이 없었거든.
  우리 모임의 단톡 창이 있는데 거기도 몇 년 동안 전혀 안 올리고.
  어제 새벽에 부인한테서 느닷없이 사망 소식을 받아 얼마나 놀라고 경황이 없던지.
  지난 해 미국 갔을 때 찾아보지 못 한 게 후회막심하고 말이야. “

“ 그럼 니가 대진이에게 소식을 알려줬구나.
  그런데 영훈이 추모사를 내가 써야할지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영훈이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어야지.
  너 둘째 딸 민주 결혼식에서 잠깐 만나 본 거 뿐이라서.
  처음 만났지만 사람이 워낙 순수하게 보여 그 때 그 인상이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

애틀랜타에서 뉴욕까지 직선거리로 1,400km다.
영훈이 부부가 도중에 일박하며 식 마치고 친구들 태우고
애틀랜타의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갈 거라고 밴을 몰고 왔다고 했다.
용모 둘째 딸 결혼식에 참석하러 용자들 대표로 용혁이와 재복이가 서울에서 날아왔는데
식 마치고 이 둘과 용모까지 영훈이 밴을 타고 도중에 일박하며 애틀랜타로 갔었다.

“ 그래, 그 때 봤지?
  식 끝나고 우리는 영훈이가 몰고 온 밴에 같이 타고 애틀랜타까지 갔었잖아.
  영훈이가 팔방미인이었어. 운동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고. 특히 농구를 아주 잘 했어.
  용혁이가 기억력도 좋고 하니까 용혁이에게 물어 봐.
  일단 영훈이 부인이 보내 온 메시지는 보내 줄게.
  2년 반 전에 먼저 간 양 세희 하고도 언니, 언니 하고 따르며 굉장히 친했었어.“

첫 번째 메시지가,

“ 영훈씨 오늘 아침에 고통 없이 운명했습니다. ”

두 번째 메시지는,

“ 고맙습니다.
  4년 전에 이미 오늘 내일 죽을 수 있다 했는데
  그래도 4년 더 살다 갔어요.
  양 세희 언니 돌아간 날 그 날 사망 선고 이미 받았었어요.
  그 때도 중환자실에 있었어요.
  자기가 가면 친구들한테 연락해주라고 단단히 부탁했어요.
  그리고 너무너무 보고 싶어 했어요. “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는,

“ 별 말씀을요.
  우리가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연락 못 드렸어요.
  그리고
  영훈 씨가 자기 죽은 후에
  화장해서 큰 나무 밑에 뿌려 달라 해서  
  본인이 원하는 대로
  식구들끼리 의논해서 결정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

영훈이 부부에게 슬하에 자녀가 없다는 이야기는 9년 전 뉴욕에서 처음 만났을 때 들었지만
다른 가족들에 대하여 들은 바가 없어 물으니까 부인 쪽,
그러니까 영훈이 처가 식구들은 모두 미국에 거주하고 있고
장남인 영훈이 아래로 남동생 여동생도 미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전날 부고 받으면서부터 울고 있다는 재복이에게 전화를 했다.

“ 마음이 착잡하고 울적해서 뭐가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힌다.
  하도 연락이 없어 지난 해 가 보려고 했거든.
  그런데 극구 못 오게 하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무조건 가 봤어야 하는데.
  이렇게 보내고 나니까 얼마나 아쉽고 후회가 되는지.“

“ 아마 자기는 친구들이 몹시 그립지만 자기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기 싫었던가 보구나.
  친구들 마음속에는 자기의 건강하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너희들 중1때 만났다고 했는데 영훈이도 그 때 만난 거야?

“ 아, 우리는 7반이었고 영훈이는 옆 반이었어, 6반.
  그 때부터 알았지.
  영훈이가 용혁이하고 갈월 동 같은 동네 살아 같이 다니며 용혁이가 데리고 왔어. “

“ 그럼, 용혁이가 영훈이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겠구나.”

“ 그렇지, 그리고 영훈이 부인과 용혁이 부인은 이화여고 이화여대 동기 동창이야.
   7년 간 같은 학교 다녔으니까 그리고 남편들이 친한 친구들이라 둘이 굉장히 친했어.
   그래서 용혁이 하고는 보통 인연이 아니야. “

“ 그럼 용자들은 영훈이 와이프하고도 안 지가 오래됐겠네? ”

“ 영훈이가 처음 사귈 때부터 우리 모임에 데리고 왔으니까 결혼 전부터 알고 지냈지.
  영훈이 와이프가 대한항공 승무원이었거든. 얼마나 예뻤는데. “  

“ 그럼 용혁이에게 추모사 쓰라고 해야겠다. 용혁이가 글을 잘 쓰니까. ”

“ 그렇지 않아도 용혁이가 오늘 아침에 써 올린 게 있는데 그거 읽고 한참 울었어.
  용혁이가 글을 잘 쓰지만 추모사는 용혁이하고 일단 상의해 봐.“

용자들의 트레이드마크는 과묵이다. 용혁이, 용모, 병우나 좀 이야기를 할까
나머지들은 혼자서 10분을 떠들어야 겨우 한마디 대꾸를 들을 수 있을까 말까다.
이 친구들과 마주하고 있으면 5분도 안 돼 그야말로 속 다 터진다.

언젠가 용혁이에게,
‘너희들 만나면 무슨 재미가 있냐.
말을 해야 깔깔 웃든, 치고 박고 싸우든 무슨 일이 있을 거 아니야.
입 다물고 앉아 있으면 재미는커녕 답답할 텐데 그러면서 뭐 하러 만나냐. “
했더니,
‘그래서 우리가 오랜 세월 의 상하지 않고 같이 올 수 있었던 거 같아.
서로 불평도 없고 논쟁도 하지 않고. ‘
하기야, 입 다물고 있으니 논쟁이고 불평이고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비록 전화상이지만 감정이 복받치는지 재복이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처음 봤다.

“그리고 영훈이가 하와이 있을 때 나는 못 갔지만 우리 멤버들이 모두 부부동반해서
일주일간 하와이가서 잘 놀다 온 적도 있어. “

그러고 보니 용혁이와 통화한지도 오래됐다.
단톡 창에서 소식을 주고받으니까 아무래도 전화는 덜 하게 된다.

“ 용혁아, 상심이 크겠다. 재복이가 니가 쓴 글을 읽고 울었대.
  그거 그냥 추모사로 해서 동기회에 올리는 거로 하자. “

“ 그거, 영훈이 부인에게 쓴 건데. 재복이는 어려서부터 영훈이를 알고
  영훈 부부의 살아 온 과정을 속속들이 아니까 그랬을 거야.
  내가 톡으로 보내 줄 테니까 참고해서 추모사 잘 좀 정리해 다오. “

“ 내가 뭐 영훈이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지. 미국에서 처음 봤을 때
  영훈이가 용자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
  용자들 기본 이미지가 있잖아. 키가 다 큰 건 아니지만 다들 덩치가 우람하잖아.
  남자다운 모습들이고. 영훈이는 왜소한데다 모습도 섬세하고
  그리고 첫 눈에 딱 봐도 너무 순순한 거야.
  아니 이런 친구가 어떻게 세파를 견뎌왔나 싶을 정도로.
  용모 말이 영훈이가 팔방미인이었다며?”

“ 여러 가지 잘 했어. 아는 거도 많고.
  그런데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라 뭘 꾸준하게 열심히 하지를 못 해.
  그냥 하고 싶을 때 적당히 즐기는 정도까지야.
  알기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지만 그 때는 아직 우리하고 어울릴 정도가 못 됐고
  집이 같은 동네라 같이 다니다보니까 성격이 조용하고 내성적인데 굉장히 순수한 거야.
  그래서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우리 모임에 데려왔지. “

“ 영훈이는 친구가 용자들이 유일하겠네?”

“ 아마 그럴 거야. 영훈이가 사교적이지도 못 했고 또 누구 사귀고 하는데
  신경도 안 썼으니까.
  서울에 서울 의대 나와 의사인 영훈이 손위동서가 있는데
  그러니까 와이프 언니가 경기여고 나왔는데 언니 남편이지.
  영훈이가 서울에 왔을 때 우리 용자들이 돌아가며 모든 걸 케어하는 바람에
  손위동서하고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었거든.
  그리고 나중에 손위동서를 만났는데 그러더라고.
  ‘자기는 영훈이하고 시간을 못 보내 개인적으로는 서운하지만
  이런 친구들이 있는 영훈이가 부럽다.‘고. “

용자가 결성된 건 중1부터였다고 하니까 우리 동기 모임 중 가장 오래된 모임이다.
용혁, 용상, 용모 세명의 용자들과 용자들과 하마 성환이, 재복이 이상 5명이 중학입학하며
이후 반세기 이상 서로의 운명이 된 1학년 7반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이 다섯 명의 용자 원조들은 아직 솜털도 안 벗어진 애송이들인 중1 첫 여름 방학에
겁 대가리도 없이 황야의 5인처럼 부산 해운대로 내려가 텐트 치고 20일을 보냈다고 한다.
용혁이 왈,
‘그랬으니 무슨 공부를 했겠냐. 공부와는 일찌감치 담 쌓지.’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용혁이와 같은 야구부원으로 우리 학교 야구부와
나중에 서울 대 야구부의 부동의 에이스 피처였던 최장신 191cm 기우가 합류하고
용자들과 역도부원이었던 병우, 대현이, 용혁이 사촌 용찬이, 일현이,
그리고 영훈이가 들어오고 용자들이 경기여고와 혼성 서클을 했던 경기 여고의 양 세희씨가
유일한 홍일점으로 나중에 합류하여 용자들의 최종 진용이 갖춰지게 되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1993년인가 94년에 용자 모임을 오랫동안 변하지 마라며 격조 높고 고상하게
‘遠志會’로 이름 지어 준 용찬이가
아직 40대 초반의 창창한 나이에 어린 아이들 둘을 두고
LA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2006년에는 하마 성환이가 역시 LA에서 지병으로
2017년에는 오래 심장과 폐 질환을 앓고 있던 여자 용자 세희씨가 또한 LA에서
그리고 이번에 영훈이가 애틀랜타에서 네 명이나 용자들이 세상과 이별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미국 거주 용자들이었다.
이제 미국에 용자라고는 기우 홀로 남아 있다.

“전에는 LA 가면 뭔가 꽉 찼거든. 친구들이 득실댄다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아주 황량해. 다 떠나고 없다는 느낌.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어.“
용혁이의 탄식이다.

재복이도 아직 비탄에 잠긴 젖은 목소리로,

“세상에 뭐 이러냐. 이제 몇 명 안 남았어.”

재복이가 가장 충격이 컸던 거 같았다.

“ 재복이 말로는 영훈이가 하와이에서 자리 잡았을 때 용자들이 부부 동반하여
  하와이에서 단합대회도 했다며? “

“ 그랬지. 14,5년 전 인거 같은데 그 때가 우리 전성기였던 거 같아.
  서울에서 용상이부부, 용모 부부, 우리 부부가 가고 LA에서 기우 부부, 세희 부부,
  병곤이 부부가 와 일주일간 잘 놀았지. “
  
“ 이 친구는 출세나 돈이나 그런 세속적인 명예나 욕망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
  그냥 그 때 그 때 즐기며 사는 스타일이야.
  술, 담배, 엄청 마시고 피우고,
  LA 있을 때 교통사고로 고생하고 그 후유증으로 장애도 있고
  7시간, 8시간 장시간 심장 수술도 해 몸이 엉망이 된 데도 별로 개의치도 않고.
  그렇게 아무 욕심도 없고 무심한 친구가 와이프를 만나고서는 한 여자에게 올인 한 거야.
  영훈이가 끌고 가다시피 미국으로 데리고 갔어.
  
  그런데 다행인 게 둘이가 잘 맞는 거야. 세상사에 무관한 게 둘 다 또 같아.
  인생관이 같은 거지. 하고 싶은 거 하며 당장의 인생을 즐기는 거.
  그러다가도 싸울 때는 사네 안 사네 무지무지하게 싸우고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붙어 다니고.
  아무리 부부라도 꺼리는 게 있는 법인데
  이 둘은 서로의 장단점을 한 점 남김없이 서로에게 다 들어내 놓고
  그러니까 둘 사이는 아무 것도 가리는 게 없는 적나라한 관계라고 할까.
  정말 영훈이는 와이프를 만나 평생 한 여자만을 치열하게 사랑하며 살았다고 할까. “

“ 도연 엄마하고 이화여고 동창이라며?”

“ 이화여고 다닐 때 같이 한반도 했대.
  나는 우리 와이프를 결혼하기 직전에 만났으니까 영훈이 와이프를 먼저 알고 지냈어.
  둘이 동창이란 걸 알 게 된 건 내가 결혼 하고 후야.
  그런데 서로 굉장히 가깝게 지냈어. “

“ 영훈이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간 거야?”

“ 그렇지 군대도 안 갔고. 처음에는 LA 로 갔어.
  그러다 둘이서 라스베이거스로 가서 둘 다 카지노에서 딜러를 했거든.
  그러면서 gamble에 빠져 완전 거지가 된 거야.
  두 부부가 맨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하와이로 건너갔을 때
  당장 먹을 쌀 살 돈도 없었다는 거야.
  그런데 거기서 과일과 야채 장사를 악착 같이 열심히 해서 돈을 보아
  어느 정도 노후가 보장 되자 애틀랜타로 건너온 거야.
  우리가 뉴욕에서 만났을 때 애틀랜타로 넘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야.
  그 때 이미 몸이 안 좋았어. “
  
다음은 용혁이가 영훈이 비보를 접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용자들 단톡 창에 올린 글이다.  

“ 오늘은 평소 보다 더 이 새벽에 눈을 뜨게 되었다.
  잠결에 수신 된 카톡을 열어 보고 이게 뭔 소리지 하며
  멍 했던 가슴이 하루 종일 먹먹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임마에게는 통용이 안 되는 개소리였구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세상을 살았던 위인이다.
  범인들이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본인 만의 특별한 세상을 구축해 낸 남자,

  크리스털보다 더 맑고 순수했던 남자.
  임마는 이 여인을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다가
  떠난 거라고 보아야 할 거다.
  
  어려서부터 정순 씨를 그리도 좋아하더니
  결국 정순씨 곁에서 눈을 감았다.
  사랑하는 정순 씨를 두고 우찌 미리 눈을 감울 수 있었을까.
  
  미리 떠나야만 했던 임마는
  어떤 마음을 갖고 떠났을까.

  나는 임마와 정순 씨를 볼 때마다
  가식 없고, 허물 없는 진짜 사랑을 하게 되면 저런 모습이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근데 임마는 참 웃기는 넘이다.
  나보고 건강 잘 챙기라고 그토록 잔소리를 하더니... 나보다 먼저 갔다.

  오늘은 너무 슬픈 날이네요.
  친구들을 그리도 보고 싶어 했다면서요.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시간 되는 친구들이 미국에 가서...
  힘 내라고 응원을 해 주고 왔을 텐데.

  그랬으면 빙긋 웃으면서 흡족해 했을 임마의 모습이...
  눈물 속에서도 넘 분명하게 어른 거려...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네요.

  그렇게 보내주지 못 한 게 미안하고... 넘 아쉽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랑했던 정순 씨가 곁에서 지켜 주고 있었으니
  임마는 아주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거다.
  그래서 이기적인 넘이라고 쥐어박아 주고 싶은데...

  넘 슬픈 밤입니다.
  잠은 안 오고... 대신 눈물만 흐르고 있네요.

  정순 씨... 힘내세요.
  2020. 06.22.23.50

그렇게 평생을 치열하게 사랑한 연인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게 된 미망인의 슬픔을 위로하고
반세기가 넘도록 정을 나눈 친구를 먼저 보낸 용자들과 함께
오직 한 여자에게 인생을 걸고 사랑하며 자유롭게 살다 간 자유 영혼의 소유자,
영훈이의 명복을 빌며,

다음 주 토요일은 모임이 있어 토요 살롱 쉬니 독자님들 양해 바라고
바야흐로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드는바 모두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시길,
2020.06.27. 송 종 호.




토요 살롱 306회 " 추모사를 쓰다 보니 "
토요 살롱 304회 " 일상의 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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