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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7-18 21:31:18, Hit : 25, Vote : 2
  토요 살롱 307회 " 觀 照 "

7월 중순을 넘고 초복이 지났는데도 아직 선풍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새벽에는 21,2도, 낮에도 30도를 넘는 날이 없어 여름 더위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주 초, 월, 화 이틀에 걸쳐 돌풍을 동반한 비가 제법 많이 내렸고
내일부터 다음 주 내내 비가 오다 그쳤다 한다니까 마른장마도 아니다.
이웃인 중국과 일본은 홍수로 난리를 겪고 있다는데 비록 남쪽 지방에 많은 비가 내렸다지만
그 정도는 결코 아니다. 피해가 없을 수야 없겠지만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하는 수준이다.

비가 좀 내리면서 습기로 눅눅하다 싶으면 바로 쨍쨍 햇빛이다.
서늘한 여름을 보낸 지난 해 여름보다 오히려 더
현재까지의 기후 상으로는 더 할 나위 없는 최적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로 어디 함부로 나다니지도 못 하는데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게다가 공기도 너무나 깨끗하다.
연일 청정 공기를 마시고 있다.
새벽에 눈을 뜨면서부터 마음껏 심호흡을 하고 있다.
날이 축축해지면 비염 증세가 현격히 완화되어 나 같은 만성 비염 환자들은
여름 장마철을 학수고대하기도 하는데 더하여 공기마저 맑아
비록 당분간이겠지만 비염증세가 시원하게 사라졌다.

자다가 몇 번씩 코가 막혀 호흡곤란과 관련된 일련의 악몽에 시달리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일어나 불도 못 켜고 비척비척 화장실로 가 더듬더듬 수도꼭지 틀고
코를 청소하고 축이고 하기 일쑤인데
요즘은 방광 비우러 한두 번 일어나는 외에 아주 푹 잘 자고 있어
오히려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나야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만 마스크를 하지만
누구나 할 거 없이 이렇게 맑은 공기를 두고 혼자 걸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집밖으로만 나오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이고 답답해 보인다.
다닥다닥 붙어 다닐 리가 없는 데도 새벽에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
심지어 찻집 같은 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마주 앉은 사람을 대하면
답답해 숨이 다 턱턱 막혀 온다.

그래서 운동 객들이야 넓은 공간에 거리가 뚝뚝 떨어져 있어 그런대로 넘어가 주지만
마주하여 대면하고 있는 상대방에게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다는 핑계로
마스크 벗으라고 요구를 한다.
그러면 대답하거나 가부를 표시하기 전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우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휘둥그레 주위를 살펴보기부터 한다.
어디서나 누군가가 있는 곳에서는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 나이쯤 되니까 동호인 모임이나 지역 모임 등 사적인 모임의 참석 율이 점점 떨어지면서
모임이 활기를 잃고 시들해지다 못해 심지어 회장이 공석인 모임도 더러 있다고 한다.
이런 모임은 명색만 남아있지 이미 유명무실해졌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모임의 참석 율이 저조해지는 데는
나이가 들면서 당초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을 때의 명분이
세월이 가며 변화해 온 자신에게 점점 약해지고 자녀들이 결혼함에 따라 새 식구가 늘고
손자가 태어나는 등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는 데다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리더십 부재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명분도 별로고 그 보다 더 흥미를 끄는 일이 생기고 젊을 때의 열정도 없고
대중 앞에 나서서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던 권위욕도 퇴색해
누구도 시간적으로 물질적으로 일방적으로 헌신만 해야 하는
사적인 모임의 장을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

게다가 모여도 옛날만큼의 열기도 없는데다 늙어감에 따라 감성도 얇아져
오랜만에 만나도 언제 만났는지 기억도 잘 못 하고 별로 반가움도 못 느낀다.
외려 까탈스러워 지고 강퍅해져 자기는 말을 함부로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무심결에 내뱉는 별 거 아닌 말에도 삐지고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러니 모임에 나가기가 싫어지는 거다.

비교적 자주 만나고 친했던 동기들과의 만남의 횟수도 간격이 벌어지게 된다.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만나던 사이였는데도 일이년 못 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면 몇 년 후딱 지나가고 그러면서 보고 싶은 마음도 그리움도 다 사라지게 된다.
그러다 잊혀지고 추억 속에 묻히고 말게 되면
자신은 멀쩡히 살아 있지만 자신과 교류하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이미 무덤 속에 들어 간 사자나 다름없게 되어 있다.
신체적인 죽음만이 사망이 아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꼴 보기 싫은 얼굴이 있더라도 별로 재미가 없더라도
새로운 모임에 가입은 못 할망정 자기가 속한 모임에라도 부지런히 나가
자기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이런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모든 모임이 2월 이후 중단 됐다.

봄에 아들을 장가보낸 성원이는 하문 객을 일체 받지 않고
양가 가족들과 신랑신부 친구들만 참석한 조촐한 결혼식을 치르는 등
자녀들 결혼식은 그렇다 치더라도
장례의 경우 동기 본인 상인데도 빈소에 조문객이 손을 꼽을 정도라
동기들 얼굴을 찾으려면 텅 빈 접객 실을 한참을 둘러보아야 할 정도다.
경조사에 가면 못 보던 동기들을 만난다는 기대도 있는데 이런 기회도 상당부분 줄어들었다.

2009년 초부터 햇수로 12년째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인 자유분방 친목모임인 평가옥 모임도
금년에는 두 달에 한 번 짝수 달에 가지는 정례 모임을 한 번도 가지지 못 했고
매달 두 번째 화요일이 월례 모임인 신우 회도 2월까지는 모임을 가졌으나
3월에는 지난 해 탄자니아에 선교 갔다 잠깐 귀국한 배 건웅 전 한동 대 교수 핑계로
번개 점심 모임으로 대체하고 4월은 건너뛰고 5월에 간신히 기선이 추모예배를 드렸지만
6월 이후 모임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까 평가옥과 신우 회 멤버들과는 그래도 단 톡 창을 통해 소식이라도 주고받고
전화도 자주 하게 되고 형편에 따라 점심 약속도 하고 저녁 약속도 하며
꾸역꾸역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외의 동기들과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날이 갈수록 만남은커녕 전화도 뜸해지고 점점 관심도 사라지고 있다.
어쩌다 생각이 떠오르면 궁금도 하지만 이내 다른 상념에 밀려 사라지고 만다.
지난 5월 말 강원도 번개여행 팀도 결국 평가옥 모임 멤버들이었다.

자주 또는 정기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사이라면 그냥 세월에 맡겨두더라도
자연스럽게 과거의 인연들과 단절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코로나가 그 세월에 가속도를 불어 넣고 있다.

금년 들어서만 동기 일곱 명의 추모사를 쓰다 보니까
죽음을 보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여생에 대해서도
멀찍이 에서나마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누구나 죽는다는 불변의 사실을 자신에게 대입하고
진정으로 인식하는 단계부터가 시작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죽는다가 아니라 ‘내가 반드시 죽는다. 그것도 멀지 않은 장래에.’
가 명제가 된다.
그런데 이런 절대 불변의 사실을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거처럼
가급적 회피하고 모른 척 하려는 경향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이런 친구도 있다.

“나는 말이야, 그래서 요즘 들어 아예 부고장을 안 봐. 누구 부고인지 알고 싶지도 않아.
조문 하러 도 안 가.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거도 싫고 말 꺼내기도 싫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중단시키고 화제를 돌려.
앞으로의 삶이 훨씬 중요하잖아? 그렇지 않아? 그런데 죽은 사람을 왜 이야기 해?“

죽음이 삶의 일부분이고 먼저 간 사람이 남기고 간 추억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건지
그런 거가 남은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죽음을 가장 혐오스럽고 추악한 징벌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거 같다.
자기도 반드시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되어 있고
자기에게도 남겨질 유족, 친지들뿐 아니라 누군가 간직할 자신과의 추억도 있다는 걸
애써 외면하려고 하고 있다.

이와는 사뭇 다른 케이스지만 가까이 지내는 3년 선배는 심지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야, 말이야, 어디 인터넷에서 읽었는데 일단 현재 인간의 최대 수명은 120세지만
의술이 급격히 발달해  20년 이내에 수명을 200세까지 늘일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100세 인생이 아니라 200세 인생이 우리세대도 해당된다 이거야.  
낡은 건 교체하고 고장 난 데는 수리하고 그런 논리지. “

이 양반은 200세까지 살 생각을 하고 있어 죽음은 먼 훗날 이야기로
자기가 우선 걱정해야 일이 아니라고 자신하고 있다.
아직 130년 후의 일이고 그 사이 의술이 계속 발달할 거니까 수명은 계속 늘어나
앞으로 최소한 500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로 아주 낙관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선배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향후 20년 동안 불치의 병에만 걸리지 않도록 식 생활, 몸에 좋은 건강식품,
규칙적인 운동 등 몸과 건강관리에 온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도대체 500년을 살면서 뭐를 하고 싶을까. 오로지 목표가 장수인 사람에게
비아냥거리는 거로 비춰질까봐 대 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런 이야기 듣고 있자니 짜증이 나는 걸 참을 수도 없고
그래서 그 쪽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 한 먼저 연락은 하지 않고 연락이 오더라도
‘아, 언제 봐야지?’ 하면, ‘ 그럼요, 서로 편한 날 잡아보지요, 뭐.’ 대충 그러고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나는 죽는다는 게 너무 무서워.” 이러는 친구도 있다.
죽음이 두렵지 않고 무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무섭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가 신과 함께 해 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옛 선각자들의 가르침을 간단히 예로 들자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3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는 거 같다.
우선 불가에서 일컫는 해탈이다.
불가에서는 고행과 수행을 통해 생과 사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득도를 하여 이런 경지에 이르면 생과 사의 경계를 마음 내키는 대로
이웃 집 드나들 듯이 들락거릴 수 있게 되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고 뭐고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공자는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어,
‘格 物 致 知’, 즉, 사물의 이치를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우주 만물의 진리를 터득하게 되는 몇 가지 단계를 거쳐
나이 칠십쯤 되자 최종으로 ‘從 心 所 欲 不 踰 矩 ’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만물의 이치를 터득하여 지 마음대로 하더라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고 하니까
만물의 이치 안에는 생사의 이치도 당연히 포함 된다.
죽음의 두려움은 물론이고 그 따위 생사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가르침은 아주 간단명료하다.
인간이 자기 혼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태어날 때부터 잠재된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아무리 혼자서 가부좌 틀고 수행이고 고행을 해도
그리고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공부와 연구를 열심히 해도
혼자서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고 한다.
즉, 스스로는 죽음의 공포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단정한다.
오로지 빛이요 진리인 자신을 통해서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다.
즉 이 세상의 유일한 영생불멸의 진리는 예수 크리스트라는 거다.

죽음이 그렇게 두렵고 무섭다면 이쯤에서 그렇게 일부러 모른 척 하거나 달달 떨고 있지 말고
어느 방법인가는 택해야 할 거 같다.
불가에서 권하는 면벽하고 참선 수행을 하던지
공자 왈 맹자 왈 인간의 이성으로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는 성리학에 몰두해 보던지
자신의 미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신에게 귀의를 하던지 해서
적극적으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자칭 철저한 무신론자로 자처하는 우리 친구 중에
이제야 종교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지 조금은 알게 된 거 같다고 한발 물러나는 친구도 있다.

물론 ‘그냥 주어진 대로 하루하루 살다 가면 되지 골치 아프게 뭘 그렇게 복잡하게.’
해버릴 수도 있다.
그런다면 삶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하루살이 같이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삶은 그 하루가 뭘로 채워지더라도
똑 같은 하루가 무의미하게 반복되기에 그냥 목숨을 이어가며 연명하는 거에 불과할 뿐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10년 더 사나 20년 더 사나 아무런 차이가 없는 삶이다.
심하게 이야기 하자면 영혼이 없는 시체가 돌아다니고 있는 거와 진배없지 않을까.
악착같이 본능적으로 생명체를 유지하면서 죽기 위해 사는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게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이 내적으로는 더욱 병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쟁이 들이 많지 않나 싶다.

죽음을 대하는 자신의 의지가 서면 나머지 삶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큰 그림은 그려진다.

얼마 전 나보다 아홉 살 아래로 금년에 육십이 된 사회 후배와 술 한 잔 하다
이 친구가 뜬금없이,
“ 회장님,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나이가 벌써 육십이에요. 믿기지가 않아요.
  이러다 죽으면 뭐냐 라는 생각에 화들짝 놀랄 때가 있어요.
  죽으면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끝이잖아요?
  회장님 알다시피 제가 머리만 대면 자는데
  요즘은 이런 저런 생각에 잠 못 이룰 때가 많아요. “

이 친구와의 역사는 내가 인천에 사업체를 시작할 때부터이니까 30년 가까이 되었고
이 친구도 인천에서 일찍부터 사업을 하면서 나와 비슷한 흥망성쇠를 경험하며
이런 저런 일로 태국도 두어 번 같이 다녀오고 카자흐스탄을 같이 여행했고
중국은 여러 해에 걸쳐 여러 도시를 여려 차례 같이 다녀오는 등
아주 친밀하게 터놓고 지내는 사이이며
15,6년 전 인천에서 잡다한 직종의 잡다한 연령대가 모여 무슨 친목 모임을 한 적이 있는데
내가 그 모임의 회장을 맡은 이후로 나를 무조건 회장님으로 호칭하고 있다.
  
“ 돌이켜보니까 나를 위한 삶이 별로 없었어요. 회사 꾸리고 직원들 챙기고
  마누라 애들 부족하지 않게 해 줘야 되고 내 삶이란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이제 애들 다 학교 마쳐 지들 밥벌이는 하고 있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내가 그래도 건강하게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게 앞으로 얼마 남았겠어요? 제 자신을 위해 살고 싶어요.
  제가 여행을 좋아하니까 훌훌 마음 내킬 때면 아무 때나 여행도 다니고.“

이 친구도 오래 전에 가족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다.

박 원순 서울 시장의 갑작스런 자살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008년에는 노 회찬 의원, 지난해는 정 두언 전 의원, 금년에는 박 원순 서울 시장,
정치인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세분은 다 경기고등하고 출신들이다.
노회찬의원은 56년생이지만 57년생과 같이 다녀 경기 72회로 이 종걸 전 의원,
황 교안 전 총리와 동기 동창이고 정 두언 전 의원은 57년생이지만 생일이 빨라
56년생인 박 원순 시장과 경기 71회로 졸업했다.
그러니까 경기고등학교 일 년 선후배이거나 동기들인 동년배들이다.

나는 박 원순 시장을 만나 본 적도 없고 박 시장이 이끌던 시민단체와 어떤 연관도 없어
사실 박 시장에 대해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 외에 직접적으로는 아는 바가 전무하다.
오히려 몇 번 나를 보고 박 원순 시장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럴 때마다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며, ‘아니, 이 사람들이 눈이 삐었나. 내가 그렇게 못 생겼다니.’ 하고
엄청 실망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나와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간접적으로 들은 이야기는 있다.

10여 년 전 쯤 우리 동기 조 태연이가 처음 박 원순 시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미 20년도 전부터 신문도 끊고 뉴스도 안보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동정이나 우리나라 정치판에 대해서는 거의 깡통 수준이라
그 때까지 박 원순이가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전혀 몰랐었다.

태연이는 경기 중학을 나와 재수하여 우리학교를 들어왔고
고3때 휴학하고 25회로 졸업하며 서울 대 법대를 들어갔기 때문에
서울대 사회계열로 입학한 박 원순과는 대학에서 두 학년 차이였다.
태연이에 의하면 박 시장은 대학 1학년부터 활발한 학생 운동을 하며 제일 저학년인데도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무엇보다 항상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대단히 예의 바르고 대단히 겸손했다고 한다.
태연이는 상상을 초월 할 만큼 머리가 뛰어나다.
그런 만큼 자존심, 자부심이 대단히 강해 태연이가 누구를 칭찬하는 경우를 못 봤는데
박 시장만큼은 예외였다.
더구나 태연이는 극우 보수 반공주의자라 약간 색깔만 비춰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데도
박 시장에 대한 평가만은 뜻밖이었다.

8,9년 전 박 원순 시장이 서울시장 취임한 지 1,2년쯤 지났을 때쯤이었다.
인천에서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던 인천 시 모 국장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육사 출신이었다.
박정희 시절 현역 육군 대위를 대거 예편시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부 공무원으로
편입시켰을 때 자원하여 고향인 인천 시로 전임한 친구였다.
이 친구는 육사 출신답게 물론 뼛속 깊이 반공 보수 우익 성향이었다.

어느 날 전화가 와 자기와 친한 육사 동기가 서울 시 국장으로 있는데
가끔 만나 식사를 한다면서 다음 만날 때 동행하겠냐고 물어와 선 듯 응하고 약속을 정했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박 시장과는 이념이 서로 다를 수도 있을 텐데
애로사항이 없느냐고 슬쩍 물어보니까,

“ 물론 처음에는 이러다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니냐 싶었어요.
  우리 대한민국의 수도가 빨갱이에게 점령당했다는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절망했고 시장님과 무조건 대립하고 반대했습니다.
  어떻게든 흠집을 내고 빨리 4년이 지나가 시장을 새로 뽑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시장님이 참 끈질긴 거예요. 반대 의견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반박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지시도 하지 않고 밤에 전화가 오는 거예요.
  전화로 차근차근 설명하고 그 일이 합의점에 도달할 때까지 그런 식으로
  밤이고 낮이고 토론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목적은 한 가지 아닙니까. 서울시와 시민을 위해 최선이 뭐냐 아닙니까.
  결국은 합의점에 도달합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다보니까
  시장님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일이 재미있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생각이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시장님을 만나 같이 일하게 된 걸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경구 회 친구는 참여연대 시절부터 박 시장과 공적, 사적 인연으로 얽히며
20여년 고난을 함께 한 측근 중의 측근이라 이번에 가장 충격을 받은 지인 중 한명이었다.
박 시장이 실종되고 변시체로 발견되는 날 이 친구는 지방 여행 중이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아는 박 시장은 모든 여자들에게 친절하고 겸손하게 대하지만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리고 부인이 너무 좋은 분이고 부부 간의 금실도
다들 부러워 할 정도로 좋은데 너무 실망했다며 조문하러 가기도 싫다고 했다.
그리고 왜 죽냐, 그런 거 하나 차고 나갈 배짱도 없었느냐는 원망 속에
아쉬움과 섭섭함이 짙게 배어있었다.

“ 글쎄, 당사자가 저렇게 돼 버렸으니까 자초지종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박 시장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평생 한 가지 목적으로 일에만 매달려왔으니까 지칠 때도 있었을 거고
  아무리 부인이 있고 가족이 있더라도 자신을 가장해야 할 부분도 있었을 거고
  누군가에게는 다 들어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외로울 때도 있었을 거고
  옭아 매인 틀 속에서 일탈하고 싶을 때도 있었겠지.
  막상 터지게 되자 그 사람이 선택할 길이 뭐가 있겠냐.
  사실 여하를 고사하고 사방에서의 집중 포화, 그 망신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냐.
  가족들의 명예는 또 어떻게 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수밖에.  
  내 생각에는 지금은 이미 가고 없는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러쿵저러쿵 씹고 짓이기고 할 때가 아니고 우선은 친구라면 아니 친구가 아닌 원수라도
  고인을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 하지 않나 싶다. “

이 친구는 다음 날 상경하여 그 날 저녁에 박 시장 조문을 마치고
술 한 잔하고 들어가는 중이라는 톡을 보내왔다.

이 친구가 20여년 옆에서 지켜 본 박 원순 시장에 대한 평을 다음과 같이 한 줄로 요약했다.

“ 항상 약자의 편에 서려고 했고 일밖에 모르는 워크홀릭, 일 중독자였다.”

고인의 간단한 한 줄의 유서, ‘ 모든 사람에게 미안하다.’ 가 모든 걸 대변해 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다음 주는 주말 이틀 동안 약속이 있어 토요살롱 쉽니다.
2020.07.18. 송 종 호.




토요 살롱 308회 " 별난 여름에 겪은 별나지 않은 이야기들 "
토요 살롱 306회 " 추모사를 쓰다 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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