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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8-02 00:33:30, Hit : 132, Vote : 7
  토요 살롱 308회 " 별난 여름에 겪은 별나지 않은 이야기들 "

이번 주 들어 어제, 그저께를 제외하고는 계속 비였다.
어제 밤부터 내린 비는 아침에 잠시 소강 상태였다가
점심 무렵부터 쏟아졌다 그쳤다 를 반복하고 있는데 오늘 저녁부터 내일 모래 이틀 동안
호우 주의보까지 내려져 있다.
이런 상태가 앞으로 열흘 동안 8월 10일까지 이어져 기상대 관측이후
최장 장마기간을 경신할 거라는 예보도 있다.

오늘이 8월 초 하루 날이다.
7월 한 달 동안 혹서의 기준점인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이 없었고
열대야의 기준 점인 최하 25를 넘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아직 선풍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예보대로라면 8월 10일까지도 뙤약볕도 없고 열대야도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8월 7일이 입추고 8월 15일은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복이다.

8월 10일 장마가 그친 이후 얼마나 더울지 모르지만 그래야 열흘 보름 남짓이다.
따라서 금년 여름이 유례없는 혹서일 거라는 기상대의 당초 예보는 완전히 빗나간 거 같다.
이런 현상이 우리 일상생활이나 건강에 장기 또는 단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혹서는커녕 유례없이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지난 해 개천절 공휴일을 이용하여 강원도 횡성에 있는 강 성원이네 농장에 가서
함께 초대받은 정 용모 부부, 김 치걸 부부, 유 재문 부부, 안 병우 부부,
LA에 거주하지만 잠시 귀국한 강 병곤 부인 등과 각 커플이 한 병씩 들고 온
최상급 포도주에 일등급 횡성 한우와 삼겹살 바비큐로 안주 하고
식사는 민물 매운탕으로 간식으로는 찹쌀 시루떡,
후식으로 강원도 찰옥수수, 귤 등 과일을 대접 받으며
과외로 높고 푸른 하늘에 청명한 가을의 정취를 만끽 할 수 있었던 거도 모자라
찹쌀 시루떡, 잘 삶은 찰옥수수, 매운 탕 봉지, 텃밭에서 딴 무기 농 고추 등
한 짐 지고 오는 푸짐한 신세를 졌지만 그 때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포도주 곁들인 바비큐는 물론 성원이와 용모의 기타연주와 듀엣 보컬이
마침 산 그림자 길게 드리운 황혼의 풍경과 함께
아련한 옛 추억에 마음이 애잔하게 젖어와 가끔씩 그때 그 정경을 떠올리며
아쉬워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성원이가 해산하기 전에
‘내년 봄에 다시 초대할게.’ 라고 한 인사가 염치없게도 봄이 되며 이제나저제나
성원이가 연락오기를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내심 3월은 여전히 찬기가 가시지 않고 들이고 산이고 아직 황량해
야외에서 뭐 하기가 이른 감이 있을 테지만
4월에는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가 산야를 물들이고
길가 가로수고 산기슭이고 벚꽃이 만발하여 눈을 심심치 않게 하고
날씨도 야외활동 하기 적절할 테니까
총선 투표로 임시 공휴일인 4월 15일쯤 날을 잡지 않을까 잔뜩 기대했지만
총선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가 2월에 모친상을 당한 재문이가
모친상을 치르고 감사의 뜻으로 4월 23일 용모, 성원이,  
LA에서 국적 취득 등으로 겸사겸사 귀국해 있던 유 영상과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    
간단한 반주로 느긋하게 한담을 나누던 중 성원이가,
‘아들 장가도 보냈고 하니까 다음에는 내가 자리를 만들게.
5월 말에 황성 농장에서 모이자..‘
성원이 아들 결혼식이 4월 19일이었다.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연락오기를 기다리는 중
5월초 황금연휴를 넘기고 중순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5월 중순이후부터 6월 초에 걸쳐 주말마다 무슨 일이 자꾸 생겨 혹 일정이 겹칠까봐
먼저 연락을 했다.

‘ 자봉, 5월 말에 농장 가자더니?’

‘ 농장에 골치 아픈 일이 생겨 해결하고 부르려고.’

무슨 일인지 본인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꼬치꼬치 물어 볼 수도 없어
‘별 일은 아니어야 할 텐데.’ 네심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6월도 한참 지나서야 연락이 와 같이 가기로 한 상호와 일정을 맞춘 날이
6월 28일이었지만 상호가 갑자기 일이 생겨 그 날 못 가게 되었다고 하여
다시 잡은 날이 7월 19일이었다.
상호와 나 이외에 김 진 부부가 올 거라고 했다.

지난 해 개천 절 멤버 중 용모, 치걸이, 재문 등 할배 들은 주말에 손자들 돌봐야 해서
그리고 병우는 장로님이라 주일날은 교회 일로 올 수 없었다.
횡성이 서울에서도 만만치 않은 거리라 갈 때는 이른 아침 출발이라 체증이 없어
느긋하게 쉬며 가더라도 두 시간 정도 드라이브면 충분하지만
돌아올 때는 일요일 행락객들, 골퍼들과 겹쳐 3시간은 잡아야 돼
일찌감치 출발하고 서둘러 돌아오더라도 하루 이빠이 잡아야 된다.
아침 8시 출발이면 나는 집에서 6시에 나와야 되고 서둘러 출발해 서울에 8시 도착이라도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는다.

그러나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당일 많은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올 거라는데 스케줄 변경 없어?’ 물었더니,
‘비가 오면 둘러 볼 곳이 많아 더욱 가 봐야 돼. 비 오면 술 맛도 죽이고, 흐흐’

전날 밤부터 많은 비가 내리고 있고 당일도 종일 비 예보라 우산을 챙겨 들고
약속 장소인 청담 역에 도착하니까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는데도
대기하고 있던 성원이 차에 상호가 이미 조수석에 승차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뒷좌석에는 성원이 부인이 앉아 반갑게 맞아주었다.

성원이 부인은 우리하고 학번이 같은데다 이웃 학교로 우리와 가장 인연이 많은
이화여고를 나와 비록 몇 번 대면은 못 했지만 오랜 친구 같이 별 어색함이 없다.
나는 성원이 연주회에 빠짐없이 다녔으니까 그러면서 몇 번
그리고 지난 해 농장에 동행한 게 성원이 부인을 만난 전부인데도
꼭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 같은 착각에 빠진다.
경구 회를 하며 고1때 만난 이화여고 친구들과 동기이고 그 중 한명과는 절친 사이라
친밀감이 더해지는 거 같다.
성원이 부인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성원이 부인의 기호인
신 맛이 강하게 나는 아라비카 커피와
성원이 왈, 우리나라에서 제일 맛있고 따라서 제일 비싸다는  
버터가 듬뿍 들어간 거와 덜 들어간 두 종류 크로와상을 아침 대용으로 준비해왔다.

우중의 드라이브는 별 다른 정취가 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빗줄기야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바짝 긴장해야 하느라
주변을 돌아 볼 여유가 없지만 적당히 내리는 비는 차창에 방울방울 맺히는 빗방울도 정겹고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누군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거처럼 정겹고
빗물에 흠뻑 젖어 물을 뚝뚝 흘리며 스쳐지나가는 가로수,
멀리 비안개에 뿌옇게 잠겼다 형체가 끊겼다 희미해졌다 하는 산야,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곤 하는 울타리도 없이 야트막한 양철 지붕
자그마한 시골집들이 비에 젖어 처마에서 물 떨어지는 풍경도 정겹다.
동승자가 있으면 더욱 좋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과 상대에 따라 대화 내용도 달라진다.

성원이 부부는 대학 때 미팅에서 만났다고 한다.
청량리 어디 다방에서였는데 먼저 와 있던 성원이 눈에
문을 열고 멀리서 걸어 들어오는 부인의 모습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고 한다.
첫 눈에 반해 연애하고 결혼하고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연애 중이다.
두 부부는 지금도 대화가 코맹맹이 소리다.
적응이 안 된 사람들은 온 몸이 다 간지러워 닭살이 돋는다.

성원이 단골 정육점에서 미리 주문해 둔 삼겹살과 횡성 한우 안심 부위를 넉넉하게 사고
마찬가지로 미리 주문해둔 떡집에서 찹쌀 시루떡을 픽업하고
농장에서 가장 가까운 하나로 매장에서 1.8리터들이 치악산 막걸리 한 통을 사는 동안
빗줄기가 계속 가늘어지며 오락가락하더니 농장에 도착하자 신기하게도 뚝 그치고 말았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낮게 깔렸지만 더 이상 비는 오지 않을 거 같았다.
바람이 적당히 불고 짙은 구름이 햇볕을 완전히 차단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아도 될 만큼
선선해 오히려 쾌적한 날이 되었다.

“ 날 잘 잡았네. 놀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고. 술 맛도 최고 일 거고. ”

농장에 도착하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상호는 싣고 간 짐 부리는 걸 도와주고
어디서 꺼내왔는지 장화로 바꿔 신고 익숙하게 마치 지가 가꾸어온 밭 인양
성큼성큼 텃밭으로 들어갔다.
밭에 들어가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딱히 뭐 할 일도 못 찾아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진이 부부가 도착하였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 장화로 바꿔 신더니 바구니 하나씩을 찾아들고
바로 텃밭으로 향했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장화를 신고 밭으로 들어갈까 했으나 가봐야 괜히 방해만 될 거 같고
그렇다고 다들 밭에서 열심히 일하는 거 멍하니 바라보며
차양 밑 의자에 혼자 어두커니 앉아 있기도 좌불안석이라  멋쩍게 우물거리다
그래도 뭐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거 같아 성원이 부인의 만류에도
신고 온 슬리퍼 차림으로 밭으로 어슬렁어슬렁 발길을 옮기는데,

“ 장화로 갈아 신어. 뱀 나올지도 몰라.”

그러고 보니까 농사일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었다.
농사일뿐 아니라 노동일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어 몸을 써서 하는 일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젬뱅이다. 괜히 섣불리 나섰다가 쓸데없이 다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 집에서도 망치, 뻰찌 등 tool은 애들 엄마 소관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른다.

토마토 몇 개 따는 시늉하는 동안 상호는 고추, 토마토, 상추를 몇 바구니나 채우고
진이 부인도 양배추를 죄다 뽑아 다듬고 있었다.
지l 마누라와 한 조를 이루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진이에게,
‘진아, 농촌 출신이라 농사일을 해 본 모양이구나. 잘 하네.’ 했더니,
‘아니야, 나는 아무 것도 몰라. 와이프가 시키는 대로 하고 와이프가 다 해.’

밭에서 수확한 각종 채소들을 다듬고 씻어 종류 별로 대야에 담아 놓으니
시장에 할머니들이 들고 나와 늘어놓은 좌판 못지않았다.

“상호야, 이거 싣고 온양 장에 나가자.”

“ 이 정도면 시장 좌판 할머니 사이에서는 거상 소리 들어. ‘

일은 역시 상호다.
너무 일을 안 하고 못해 민망한 마음으로 안심은 내가 구웠지만 상호가 역시 일꾼이었다.
상호가 구운 삼겹살은 겉이 별로 타지도 않았는데 속은 익고 육즙이 그대로 살아 있는데다
숯불 향이 가미되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또한 상호의 특별 레시피로 생 삼겹살 덩어리 통 째에 포도주를 뿌리고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맞춘 후 은박지에 싸 숯불 위 한쪽에 올려놓고
직화 구이를 다 먹는 동안 내버려뒀다가 맨 나중에 은박지를 풀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는데
이미 배가 부른대도 계속 집어들 정도로 절대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다.

상호가 술을 끊어 포도주  두 잔으로 절제 하고 진이는 운전을 해야 해 술을 못 마셔
성원이와 겨우 포도주 한 병 비우고 막걸리도 나 혼자 마시느라 채 다 비우지 못한 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성원이 부인이 이거저거 챙겨 싸 주었는데
부지런히 먹어 치우고 있는데도 떡도 아직 남아 있고
양배추 한 통, 배추 속 한 통, 고추도 아직 남아있다.
한보따리였던 상추만 겨우 비웠다.

지난 6월21일, 일요일에 오랜만에 백련산 혜인이네를 다녀왔다.
오랜만이라기보다 어쩌다보니까 금년 들어 처음 방문이었다.
코로나가 상대방을 신경 쓰게 하고 알게 모르게 행동을 위축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종정이 부인과도 안부 전화만 하고 있다.

“조심하시고예, 코로나가 진정되면 그 때 오이소.”

금년에 한성이 모친에게 인사드리려도 못 갔고 재효 부모님께도 인사를 못 드렸다.

혜인이 부인에게 의사를 물어보니까 자기들은 괜찮다며 반색을 하여
지난 해 봄에 수영이, 용술이와 한 번 다녀온 후
다음에 내가 갈 때 자기도 갈 테니까 연락 달라고 하던 흥수에게 의사를 물어보니
흔쾌히 같이 가자고 하여 둘이서 가기로 하고 돌아오는 일요일로 날을 정한 후
우연한 일로 덕성 재단 이사장인 병우와 만난 자리에서 친구들 동정을 나누다가
혜인이 이야기가 나와 그렇지 않아도 흥수와 한번 다녀오기로 했다니까
자기도 몇 년 전 혼자서 다녀온 적이 있다며 일요일 오후 4시 이후 약속이라면
동행할 수 있다고 하여 셋이서 다녀오게 되었다.
병우와 혜인이는 고 3때 같은 반이었고 혜인이는 강 희경, 김 일과 함께 사회학과,
병우는 종하, 두환이와 국사학과로 서울 대 문리대를 같이 다녔었다.

“ 조 박사님은 고만고만 하셔예, 더 나빠지지도 않고 좋아지지도 않고.
  알츠하이머가 병행 진행돼서 그 거 지연시키는 약을 박사님 모르게 유동식에 타서 먹이고
  또 파스 같은 거 있거든예. 그걸 가슴에 붙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거의 대부분 시간을 주무셔예. “

혜인이는 발병을 알고서는 모든 병원진료와 약물을 거부했기 때문에
부인이 병원에서 약을 타다 몰래 섞어 먹이고 파스는 약물이 아니라
혜인이가 뭔지도 모르고 붙이고 있다.
부인은 매일 보고 있어 변화에 둔하고 몸무게도 변함이 없다고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혜인이는 많이 수척해져 있었고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혜인이네 방문을 마치고 근처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수와 병우 사이에는 상상도 못 했던 뜻밖의 인연으로 연결된 걸 알게 되었다.

병우는 7년 전 텃밭과 정원을 널찍하게 가꿀 수 있는 대지 300평에 2층 단독주택을 짓고
용인시 고기리로 이사를 가 모친이 오래 다닌 고기 교회를 다니다 최근 장로가 되었는데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흥수와 대학 동창이자 대학시절 연극도 같이한 막역한 친구였다는
기막힌 우연이었다.

흥수는 그 담임 목사님이 부임한 초창기인 30여 년 전에 교회를 한두 번 방문한 후
친구 지간인데도 그간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연락도 단절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 끝에 흥수와 병우는 흥수가 일간 고기 교회를 방문하여
목사님과 점심을 같이하자는 약속을 하게 되었고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병우가,
‘흥수하고 점심할 때 너도 와라.’ 해서,
‘그러지 뭐.’ 하고 날을 잡은 게 지난 주 토요일이었다.

12시에 선바위 역에서 흥수가 나를 픽업하여 병우가 보내준 약도를 입력해
약속 장소인 고기리 음식점에 도착하니 토요일인데도 차가 밀리지 않아
약속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나로서는 고기리라는 지명이 생소할 정도로 처음 가 보는 곳인데
꼬불꼬불 2차선 길 따라 개천이 흐르고
개천 양 옆으로는 온갖 종류의 음식점, 커피 점, 제과점이 난립해 있고
가게에 딸린 주차장마다 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데다
개천에는 아이들과 물놀이 나온 가족들로 만원이라 어지간한 유원지를 방불케 해
서울 근교에 이런 곳이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천 건너 숲과 나지막한 산 사이에는 단독 주택과 빌라 같은 저층 공동 주택 단지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었고 개천 반대쪽도 길 건너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많은 단독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좁은 진입로에 유흥 객과 거주민이 뒤섞여
주말이나 휴일 같은 경우에 교통체증은 불을 보듯 뻔 한 데다
유흥 객들로 번잡하고 소란스러울 텐데
특이하게도 한가하고 조용해야 할 전원 주택단지와 유흥지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윽고 병우의 차가 나타나 병우와 목사님이 차례로 내리는데 뒷좌석에서 누군가가
또 꾸물꾸물 불편하게 내리고 있어 동행이 더 있나 하고 병우에게 일행이 더 있냐고 물어보자
병우가 실실 웃으며 쭈물대는 동안 뒷좌석을 열고 얼굴을 내미는데
아니 많이 본 모습인 거 같아 어? 하고 자세히 보니 홍표가 빵모자를 쓰고
입이 찢어지라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내리는 게 아닌가.

“ 아니 홍표 아니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

나중에 안 일이지만 홍표는 근처에 살고 있는 딸네에서 하루 묵은 다음 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사위 소개로 고기 교회에 예배 보러 왔다 예배를 마치고 나가다
우연히 병우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전에 이미 처음 온 교회인데도 숲과 나무와 꽃으로 둘러싸인 교회의 아름다운 전경,
18평의 작은 예배당에 방석을 깔고 옹기종기 앉아 예배를 보는
전형적인 옛 시골 교회의 정겨운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목사님 말씀에 매료되어 이미 교회를 옮기기로 결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 병우가 장로로 봉직하고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홍표도 서울 대 철학과에 입학하여 병우와 문리대를 같이 다녔었다.

식사를 마치고 구기교회를 방문하였다.
18평 예배당 옆에 50평 예배당을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설계는 건축사인 병우 동생이 하고 골격은 업자에게 도급을 주었지만
나머지 노동일은 모두 교인들의 노력 봉사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말에만 일을 할 수 있어 원래 5월 말 준공인데 언제 완공될지 기약이 없단다.

병우 말로는 교회부지가 1,200평정도 된다는데 내 눈 짐작으로는 훨씬 더 되는 거 같았다.
기존 건물로는 빨간 벽돌로 지은 아름다운 예배당 외에 목사관도 있고 식당도 있고
사택으로 쓰다 동네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으로 꾸민 주택도 있었다.
식당에서 건축을 총괄하는 집사 부인이 끓여주는 커피도 얻어 마시고 수박도 얻어먹었다.

도서관을 자랑하기에 들어가 봤더니 방을 다 터 40여 평쯤 되어 보이는 널찍한 공간에
내부가 정갈하게 잘 정돈되어 있고 사방 벽은 책 진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거실 한 가운데도 진열장으로 나누어 많은 책을 비축하였고
아이들이 숨바꼭질 하고 놀기 좋게 골방도 있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다락방도 있었다.

“ 항상 아이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아이들이 도서관을 들락거리고 마당과 숲 속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여기는 날마다 천국입니다. “

신도 100여명밖에 안 되는 시골 가난한 교회 목사님의 환희에 찬 말씀이다.

“ 시도 수 100여명으로 땅을 넓히고 교회를 신축하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절대 불가사의한 일이야. “

신축 건물 중에 용도가 특이한 건물이 있었다.
건평이 50평쯤 되어 보이는데 처음에는 예배당인줄 알았다가 신축 예배당이 따로 있어
무슨 용도의 건물인지 물어보니까 반은 카페 같은 상업시설로 교회 수익 사업을 하고
반은 뜻밖에도 목공소로 사용할 거라고 하여,

“아니 목공소? 교회에 왠 목공소?”

“목사님이 목수야. 정식으로 목공예 교사 자격증이 있는.
여기서 교인들이나 또는 목공예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목공예 기술을
가르치고 연습하고 전수하고자 하는 거지. 일종의 재능 기부라고 할까?
목사님이 말이야, 보통 훌륭한 분이 아니야.
세월 호로 유가족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안산으로 가서
학부모 20여명에게 목공예를 가르쳤어.
목공예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잊을 수가 있을 거라고 해서 말이야.
2차 피해를 방지하는 일을 하신 거야. “

시국이 지금처럼 어수선할수록 뭔가 두각을 나타내고 싶어 하고 잘 난 체 하고 싶어서
거짓말에 얄팍한 지식으로 진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중구난방 떠들어대며 어떻게든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실을 호도하려는
정치인을 포함한 소위 지도층 인사들 보다
또는 언제부터 우국지사가 되었는지 파를 가르고 무슨 뿌리도 없는 이념 논쟁에 몰두하며
쓸데없는 나라걱정으로 시간과 마음을 좀 먹고 있는 사이비 지식인들 보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실질적으로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2020.08.01. 송 종 호.




토요 살롱 309회 " B/C 와 A/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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