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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8-29 22:18:10, Hit : 42, Vote : 5
  토요 살롱 312회 " 철을 잊은 장미 "

폭풍 전야의 고요라더니 폭풍 전야의 폭염이었다.
그저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기 직전까지 주초부터 며칠간
낮에는 35도 가까이 올라가는 폭염에 밤에도 좀체 달궈진 열기가 식지 않아
30도를 육박하는 열대야가 지속되었다.
며칠이나마 제대로 된 여름을 맛 볼 수 있었다고 해야 할지.
폭풍이 지나가면서도 더위를 데리고 가지는 못 했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지나온 긴긴 여름 예년에 비해 잦은 비에 시원한 날씨로
얼마나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는지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는지 단 며칠의 폭염에도
지난 세월 홀라당 다 까먹고 지금 경험하는 찜통더위에 전전긍긍 하고 있다.
몸은 지나온 과거는 기억하지 못 한다. 저장 능력이 없어 다시 끄집어 내 재생할 수가 없다.
머릿속에 일련의 사건으로만 남아 있지 해당 부위에 다시 복원하지는 못 한다.
그래서 과거의 말초신경 적인 쾌락, 즐거움, 순간들을 다시 실감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는 부질없이 흘러갔다고 하는 거다.

세월이 지나면서 신문에 실린 기사처럼 머릿속에 프린트만 되어 있다.
그렇다고 아쉬워 할 거는 없다.
좋았던 경험뿐 아니라 고통, 아픔도 복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러나 태풍이 지나가며 그래도 자국은 남았는지 어제 새벽부터 아침나절까지 비가 내린 후
더위가 많이 수그러들었다.
기상청 예보에 의하면 오늘도 간헐적으로 비가 왔다 갔다 하며 더위를 식혀줬지만
내일 새벽에 잠깐 내리는 비 이후 더 이상 30도를 넘는 폭염의 늦더위는 없다고 한다.
다음 주 중반에 한차례 더 비가 온 후
다음 주말부터는 아침 기온이 20도 내외로 뚝 떨어진다는 예보다.

따라서 잠깐 기승을 부렸던 늦더위가 태풍과 함께 사라지지는 못했지만
금년 여름도 이쯤에서 끝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동 트기 전에 잠깐 꺼이꺼이 울어대는 투박한 매미 소리도
가늘게 떨리는 소프라노 톤을 날마다 높이고 있는 쓰르라미 소리에 점점 묻혀 지고 있다.
슬슬 계절이 바뀌고 있다.

경사 길을 대 여섯 자 넓이의 나무판자를 촘촘히 깔아 계단을 이룬
산책길 양 연도와 양 숲 가장자리 사이를 분홍색, 핑크색, 진홍색이 무작위로 섞여
온통 붉은 단일 색이지만 강약의 변화로 강열한 단색의 천박함과 지루함을 덜어주며
오히려 부드럽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던 페튜니아가 차지하던 자리를
한동안 잡풀들이 마음대로 자라게 내버려두더니 언제 심었는지 앞줄에는 노란색,
뒷줄에는 주황색 짧은 잎 백일홍이 되바라지게 하늘을 향해 활짝 피어
둔덕이고 숲이고 초록 일변도의 주위 사방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뚜렷하고 신선한 풍경으로 눈 안에 확 들어 와 온 몸에 우선 시각을 자극한 후
온 몸을 돌며 짜릿한 전율을 전달한다.

정원에는 짙다 못해 빨강에 가까운 베고니아 꽃이 다닥다닥 붙어 피어 있는 화단이
아직도 한 켠을 차지하고 있고
산딸기 열매보다 작고 새끼손가락 마지막 마디보다 작은 콩알 만한 보라색 꽃이
줄기 끝에 수줍게 매달려 있는 천일홍도 여전히 군락을 이루고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새파랗던 철쭉 이파리들 중에는 벌써 변색하여 자주색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고
천일홍 밭을 둘러싸고 있는 연두색 대 싸리도 노란색으로 색이 바래지고 있는데도
철딱서니 없는 넝쿨장미는 줄기에 이파리마저 다 떨어지고 가시만 불거져
앙상한 모습을 하고는 철사로 얼기설기 엮은 지붕을 덮고 있는 넝쿨 꼭대기에
색이 바랜 주황색 장미 몇 송이를 피웠다 지웠다하고 있다.

목책 정원 쪽으로 길 따라 심겨진 장미나무도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볼품없어진 가녀린 줄기에 가시가 촘촘히 튀어나온 모습에
잘못 건드렸다가는 뭔가 해를 입을 거 같아 선 듯 다가서지 못하게 하면서도
드문드문 줄기 꼭대기에 새빨간 꽃잎을 달고 누구를 유혹하려는지
한참 때의 강열하고 아름답고 고혹적인 모습은커녕
가시만 남은 앙칼지고 표독스런 모습에 혹 누가 넘어가길 기다리는지
불어오는 바람에 향기도 실어 보내지 못하면서
철지나 추해진 줄도 모르고 꽃잎을 좌다 열고 하늘을 향해 뭔가를 항변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 확진 자가 급격히 늘자
공원의 운동 기구에 죄다 테이프를 붙이고 사용을 금지했다.
게다가 보도 보수 공사를  한답시고 구간 일부를 부시고 그 위를 마대로 덮어뒀는데
무심결에 다칠 위험도 줄이고 보행에 불편도 덜어주긴 했지만
표면이 울퉁불퉁해 뛰는 데에 여간 성가시지가 않다.

새벽에 운동을 나가면 한 시간을 뛰고 기구 운동과 스트레칭을 한 시간가량 하는데
기구 운동을 못하게 되자 기껏 새벽에 나왔는데 너무 아깝고 아쉽고 시간도 많이 남아
숨도 차고 허벅지가 뻐근해지는 데도 장마 때 못 뛴 거 벌충 겸 해서
몇 바퀴 더 뛰었다.

그냥 아무 일 없이 무사하게 몇 바퀴 더 뛴 게 아니다.
힘이 빠져 다리를 들어 올리는 각도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마대 위로 솟아 오른 깨어 놓은 보도조각 턱에 걸려 앞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크게 다칠 법도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은 일어나는 일이라 요령이 생겨
무릎이나 팔꿈치가 까지는 경미한 정도로 방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냥 연습을 하거나 배워서 터득한 요령이 아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2년 전 미국에서 아침에 조깅을 하고 거의 집에 다 도착해
도로와 경계를 하고 있는 보도 턱에 걸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앞니 두 개가 깨지고
왼쪽 위 어금니를 포함해 이빨 몇 개가 흔들거리고
얼굴, 무릎, 팔꿈치를 갈아 피투성이가 되는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날은 애들 엄마와 2주 동안 자동차로 캐나다 동부와 뉴잉글랜드 6개주를 돌아
뉴욕을 거쳐 돌아 온 다음 날인데다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그래서 여행하느라 못한 운동 벌충하려는 욕심에
그리고 비행기 간에서 푹 잘 요량에 평소보다 3,40분 더 뛰어 집 가까이 와서는
지쳐서 다리가 잘 올라가지지 않는 상태였었다.

새벽 5시에 집에서 나가 2시간을 뛰었으니까 7시쯤이라
출근하는 차량으로 양방향 도로가 번잡할 때였다.
내가 철버덕 고꾸라지자 길 건너편에서 반대편으로 주행하던 하얀색 SUV 차량에서
먼저 발견하고 경적을 울리더니 경고등을 켜고 급정거를 하고서는
운전석에서 누군가 뛰쳐나와 길 건너 나한테로 달려오는데 언 듯 보기에
30대 초, 중반쯤으로 보이는 몸집이 굵은 평범한 차림의 백인 여성이었다.

‘Are you okay? Do you want me call 911?'
걱정 가득한 얼굴로 여기저기 살피는데 아프고 뭐고 고사하고
우선 창피해서 어디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양 도로변으로 오가던 차들이 다 서는 바람에 교통이 완전 차단되고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후
‘집이 바로 몇 발자국 앞인데 나 혼자 집에 갈 수 있으니까 집에 가서 처리하겠다.’고 하고
부축을 사양하고 피투성이인 채로 절뚝거리며 집으로 향하는데
몇몇 사람들은 안심이 안 되는지 눈길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근심스럽게 보고 있어
돌아서서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어주어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누구도 현장을 비켜 지나가지 않았고
양 방향으로 첫 번째 정차한 차 뒤로 쭉 정차해 있던 차들은
첫 번째 차가 움직이자 비로소 차례대로 뒤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집에 들어 가 샤워하고 집에 있는 구급약들로 대강 응급 처치하고
그 날 비행기로 돌아와 다음 날 바로 성원이 치과에 가서 깨진 이빨은 때웠지만
흔들거리던 이빨 몇 개는 성원이가 콘크리트 기초도 하고 철사로 묶기도 하여 고정시켰는데도
주기적으로 말썽을 부려 그럴 때마다 성원 네에 들러 임시방편 조치를 취해야만 했었는데
얼마 전 더 흔들리는 거 같아 치석 제거 겸 성원이내 들렀더니,

“ 이제 더 이상 고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이빨 4개의 뿌리가 걸쳐만 있고 떠 있는 상태야.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뽑도록 하자. “

버틸 수 있을 때 까지란 치통으로 견디지 못하거나 이빨이 저절로 빠질 때까지이다.

그 때 사고 후 원인을 분석해 본 결과 물론 첫 번째 이유는
나이를 망각하고 만용, 무리를 한 결과였다.
그 다음은 노화에 따른 반사 능력과 순발력의 저하였다.
중학교 때 유도와 태권도를 해 기본적인 낙법이 몸에 배어있고
순발력도 둔하지는 않는 편이었는데 오랜 세월 써 먹지를 않다보니까
노화로 인한 자연적인 퇴화와 더불어 정작 유사시에는 전혀 반응을 하지 못했던 거였다.  

그러나 내가 뛰기를 그만 두지 않는 한
안경을 쓰지 않고 뛰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인식력이 떨어지는 데다
뛰는 동안 이런저런 잡생각에 몰두하느라 조심을 할 수가 없고
체력 저하로 다리 올리는 각도도 점점 내려가고 있어
어디에 걸려 넘어질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일 년에 두 어 번은 넘어지지만 옛날 익혀둔 낙법을 되살려
넘어지는 순간 ‘옳지, 바로 이거지’ 하고 낙법을 쓰기 때문에 크게 다치지는 않고 있다.
이 번에도 넘어지는 순간 대비하고 있던 대로 몸을 한 바퀴 굴렀기 때문에
무릎만 약간 까졌을 뿐이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면 이마저도 다치지 않았을 거다.

내가 넘어질 때는 마지막 바퀴를 돌 때라 6시 반 가까이 되어 무리를 지어 걷는 등
운동 객이 제일 많을 때였다.
내가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도 대부분 모른 척 하며 무덤덤 자기들 갈 길만 갔고
몇몇 아줌마들은 놀란 비명을 지르기도 했지만
흘끔흘끔 곁눈질만 하고 혹시 무슨 일에 연루될까봐 서둘러 사고 현장을 비켜갔는데
그래도 한 두 명은 아는 채를 해 줬다.

그러나 기껏 건넨다는 말이,
‘괜찮으세요?  연세도 드셨는데 조심하셔야지.’
뭐 잘못한사람을 나무라는 듯 자못 짜증이 섞인 힐난조였다.
말투로 봐서는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야 할 판이었다.
누가 불행을 당했으면 진정한 위로와 도움이 필요하지
원인을 찾고 충고하고 가르치려고 하면 부아만 더 치밀어 오르게 된다.

우리 동기 상가에 갔을 때다.

“ 이 친구 말이야. 자기관리를 소홀히 한 거야.
  관리를 잘 했으면 앞으로 20년은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러 와 따지고 있다.

혜인이가 불치의 병으로 병상에 누워 기동을 잘 못하게 되었을 때다.
여러 친구들이 전화를 해 와 나름 자기들이 주어들은 처방 법을 알려주고
비슷한 경우의 사례를 들어 병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 주고
이름 난 병원과 명의를 추천해주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해 주었다.
‘혜인이 만나면 절대 병에 관한 이야기 입 밖에도 내지 말고 그냥 놀아 줘라.
옛날 학창시절 이야기하고 지난날 같이 겪었던 재미났던 에피소드 이야기 하고
선생님들 골탕 먹이던 이야기하며 티내지 말고 평소에 우리 만나 술 한 잔 마시며
웃고 떠들고 하던 그대로 해라.
절대로 충고하고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아는 체 잘난 체 하지 말고.‘

‘그럼 내가 갈 필요가 없네. 난 안 갈게.’ 하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가 사회에 대해서, 국가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여러 의견을 가지고 있고
불평도 하고 심지어 증오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내가 과연 내가 바라는 선진 사회에
적합한 인간인지 내가 그렇지 못한 주제에 남들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닌지
비록 이제는 노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나에게만 오만 핑계거리를 갖다 붙이고 이유를 달며
변명을 늘어놓고 관대할 게 아니라 스스로를 비판대위에 올려놓고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자아비판을 한 번 철저하게 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내가 그렇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못하는 주제에 누구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내가 넘어졌을 때 미국에서 당한 경우와 여기에서 당한 경우를 비교해보면서
우리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거 같아 해 본 이야기다.
인간이란 게 사회를 형성하고 공동체에 속해 더불어 같이 살아야하기 때문에
단순히 경제적 부의 척도만 가지고 선진국 운운 할 수는 없는 거다.

마지막 바퀴를 돌며 ‘이제쯤 젊은 친구가 앞지르겠구나.’ 했으나
다 돌 때까지 겹치지 못해 이 친구가 도중에 화장실에 갔나하고 의아했지만
운동 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뛰기 시발점이자 도착점에 도착하자
젊은 친구는 이미 뛰기를 마치고 죽겠다는 듯이 숨을 핵핵 대며 몸을 풀고 있었다.

“ 다 뛰었어?”

“ 한 바퀴 덜 돌았어요. 힘드네요. 더 뛰면 죽을 거 같아서요. 석 달을 쉬었으니까.”

“그래도 속도는 정상 회복한 거 같은데?”

“아니에요. 멀었어요.”

“두 달 쉬고 처음 나왔을 때는 반쪽이 다 돼 몰골이더니 살이 많이 붙었네?
다치기 전보다 더 나가는 거 아니야? 배도 좀 나왔고.
역시 젊어서 회복이 빠르구나.‘

“뼈에 좋아라고 잘 먹었더니. 육식을 자주 하고요.”

“한 번 찐 살을 빼려면 엄청 힘든데 먹는 거도 조절하고 운동 열심히 해야겠네?”

“먹는 거는 잘 먹어야 돼요. 살은 안찌고 근육은 붙게 단백질 섭취 위주로요.
어르신도 잘 드셔야 돼요. “

“아니야, 젊었을 땐 그런데 나이 들면 단백질이고 뭐고 많이 먹으면 다 살이야.
근육이 붙을 리가 없지. 근육은 빠지고 배 살만 붙는 거야.
배는 나오는데 몸무게는 그대로인 이유가 대신 근육이 빠져서 그런 거래.“

“하하, 그런데 어르신은 그대로시잖아요.”

“아니야, 나도 장마로 운동 못하고 게으름 피웠더니 몸무게는 그대로인데
허리가 좀 늘어난 거 같아. 평소에 끼우는 혁대 구멍이 빡빡해.
이거 원상복귀 시키려면 먹는 거, 술, 줄이고 뛰는 양 늘이고
망가지는 건 금방이지만 아마 몇 달간 엄청 고생해야 할 거야.“

몇 년 전 정치에 관심이 많은 우리 동기 중 누가,
내가 무슨 이야기 도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토론에 익숙하지 못해 토론을 잘 못한다고 하자,

“ 팩트를 인정하고 팩트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합리적이 되는데 뭐가 어려워?”

어떤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할 때 어느 쪽이나 팩트를 들고 나오고 팩트에 근거해
이야기를 하지 상상이나 소설을 들고 나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누구도 자기가 비합리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원활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정도 하지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
물론 팩트 자체가 허위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팩트가 검증된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팩트를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 시각 차이 때문에 견해가 달라진다.
역사적인 사전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더라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다르고
사건, 현실, 정책을 어느 편,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그런데 팩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지 마음대로 만든 팩트 가지고
빡빡 우기는 황당한 경우도 있어 우리를 아연실색케 하기도 한다.

“예배는 기독교인의 생명입니다.”
“우리나라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50%가 넘는데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려고 합니까?”
“종교를 탄압한 일제 강점기에도 예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는 게 기독교의 생명이란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교회는 나중에 인간들이 만든 곳이다.
반드시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지 않아도 되니까 어디에서고 편한 곳에서 예배드리면 된다.
그리고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는 걸 원천 금지 시킨 거도 아니다.
코로나가 진정될 때가지 한시적이다.

3년 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무신론자의 비율이 전체인구의 50%를 넘었다고 했다.
대략 전체 인구의 20% 정도가 불교도이고 개신교가 20% 미만, 가톨릭이 10% 미만으로
그나마 불교도와 개신고도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가톨릭은 미세하나마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불교와 가톨릭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정부 시책에 잘 따라주어 그 쪽으로부터
코로나 확진 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자기들이 종교 자유와 민족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일제 강점시대 개신교 순교자들과 자기들을 동일 선상에 두는
얼토당토 않는 착각에 빠져 있다.
착각이 아니라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망상 수준이다.

개신교 교회를 통해 2차 확산이 번지고 있어 대통령이 협조해 달라고 부른 자리에서
소위 개신교 대표라는 자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교회 지도자들이라는 인간들이 이러고 있으니 아마 어이가 없었을 거다.
분통을 터뜨리지 않은 거만도 대단한 인내심이라고 경탄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뻔하잖아?, 염부 돈 때문 아니야? 교회에서 예배를 봐야 헌금이 들어오니까.
교회고 목사고 다 장돌 배기들보다 더 한 놈들이야.
하나님을 빙자해서 등쳐먹는 놈들이지.
교회를 팔고 사는 시가가 있는데 신도 한 명당 얼마 쳐서
신도 수에 따라 값이 정해진다는 거야. “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개신교가 싸잡아서 이런 욕을 얻어먹어도 싸다고 생각한다.

지난 8월 2일이 온 누리 교회 하 용조 목사님의 9주기였다.
매년 추모 예배에 참석했었는데 이 번에는 참석할 수가 없었다.
하 목사님이 생전에 하신 말씀 중에,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성직자라면 플래카드 들고 길거리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직자란 영적 치유의 매체이고 영적 메시지의 전달자입니다.
권력, 돈,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둬서도 안 되고 관여해서도 안 됩니다.
세속적인 일에 일단 발을 들이면 스스로가 유혹에 빠져 탐욕하게 되고 혹세무민하게 됩니다.
아예 초연해야 합니다.
그런 거 하고 싶으면 옷을 벗어야 합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2박 3일 일정으로 벌초도 하고 대구에서 대식이, 남철이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안창에 들릴 예정이라 토요살롱도 쉰다.
코로나와 늦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라며,
2020.08.29. 송 종 호.  




토요 살롱 313회 " 초 가 을 "
토요 살롱 311회 " 늦 더 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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