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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09-12 21:27:37, Hit : 32, Vote : 2
  토요 살롱 313회 " 초 가 을 "

태풍이 한 차례 더 휩쓸고 지나가자 아침저녁으로 선들선들 부는 바람의  
피부에 와 닿는 촉감이 확연히 달라졌다.
뿐만 아니다.
숨을 들이킬 때 마다 청량하고 시원한 공기가 호흡기를 시원하게 관통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문단속을 해야 하고 홑이불이라도 챙겨야 한다.

절기상으로도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는 지난 지 오래 됐고
모기 입이 아직 비뚤어지지는 않았지만
밤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떨어져 찬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가 지난 지도 며칠 됐다.

어제 새벽부터 오늘 오후 내 찔끔찔끔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처럼 내린 비가
그나마 미적댈지 모르는 잔서의 흔적조차 말끔히 씻어버릴 거 같다.
오늘 새벽에는 여름 들어 처음으로 아침 기온이 20도 이하로 떨어져
갑작스런 기온 저하에 미처 적응 못한 반팔 반바지 아래 맨 살이 으스스 시려와
가볍게 몸서리를 쳐야 할 정도였다.
잠깐 꺼냈던 선풍기를 다시 집어넣고 여름 내 잘 입었던 양복을 세탁소에 맡겼다.
매미 울음도 완전히 그치고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았고 비도 많이 왔던 올 해 여름도
이렇게 지나가는가 보다.

다음은 진규가 단 톡 방에 올린 시 한 편이다.

백 로
              홍 사 성.

태풍 몇 지나가자
겨드랑이 서늘하다.

풀벌레 울음소리
창문 타고 넘어오는데

흰 이슬
무슨 뜻 있어 맺혀 있는

초가을.


여름 내내 티셔츠 바람이었던 아홉 살 아래 사회 후배가 일전에 집에 들렀다 벗어 두고 간
여름 용 얇은 겉옷을 집어 들며,

“이제 양복 입고 다녀도 되겠네요.”

이 친구도 나이가 육십이다.
지난 주 뭐 상의할 일이 있어 전화를 했으나 연결이 안 돼
의아하기도 하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일말 걱정도 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새벽같이 전화가 와,

“ 죄송합니다. 어제 전화를 못 받아서.”

“ 뭐 바쁜 일이 있었던가 보지?”

“ 아니에요. 눈썹 문신 하느라고요.”

얼마 전 이 친구보다 여덟 살 아래로 아직 50대 초반인 한참 후배와 셋이서
저녁 겸 술 한 잔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막내가 무슨 이야기 끝에
자기가 눈썹 문신을 잘 하는 데를 알고 있다고 하자
이 친구가 그렇지 않아도 눈썹이 엷어져 고민하고 있었다고 하면서
그 집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던 일이 떠올랐다.

“ 눈썹 문신이라니? 그런 건 여자들이나 하는 거 아니야?”

“ 하하, 요즘은 남자들도 많이들 합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동기 중에도 몇 년 전 눈썹 문신을 한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눈썹이 거의 없어져 보기에 금방 표시도 나고 얼굴에 눈썹이 없으니까
모르는 사람이라면 쓸 데 없는 오해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충분히 이해가 되었었다.

그래서 은결 결에 나도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 동안 전혀 무관심하던 눈썹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눈가 쪽 가장자리의 눈썹은 다 없어지고 흰 털도 몇 개 섞어 있지만
다행히 그래도 아직 검은 눈썹이 반은 남아 있다.
‘나도 이 참에 눈썹 문신을?’ 순간 생각이 스쳐지나갔으나
‘나이 칠십에?’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명식이는 몇 가닥 남은 머리털도 눈썹도 다 하얗지만 눈썹만 까맣게 염색을 하고 다닌다.
나는 머리도 갈색 털이 몇 개 섞여 있어 완전 백발은 아니고
눈썹은 숱도 엷어지고 길이도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양 눈썹 다 길다랗게 자란 흰 털 두어 개 외에 모두 검은 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미장원에 갈 때마다 미용사가 이 흰털을 잘라주고 있어
언 듯 보기에 눈썹만은 그래도 검은색이다.

한 달 전 청담 동 성원이네 치과에 들린 김에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정준이와 점심을 한 적이 있었다.
정준이와는 금년 초 정준이 아들 셋 중 막내아들 결혼식에 초대 받아 갔었고
2월 초 아들 장가보낸 뒤풀이에 초대받았고 4월에 선호 상가에서 만났으니까
금년에 벌써 네 번째 만남이었다.
평가옥, 신우 회 모임 모두 휴업 상태라
단 톡 방에서 안부 교환 외에 만남이 뜸 할 수밖에 없어
어쩌다보니까 최근 기준으로만 본다면 신우 회 관계로 매달 한번은 만나는
흥수, 수종, 구 자경 목사를 제외하고는 정준이가 가장 자주 만나게 된 동기가 되어버렸다.

흥수는 신우회 예배를 못 보던 지난 6월에는 덕성 재단 이사장인 병우와 셋이서
혜인이 문병도 다녀왔고
7월에는 병우가 초대하여 둘이서 병우가 유일한 시무장로로 봉직하고 있는
용인 고기교회를 방문하기도 했으니까 금년 들어 흥수와는 최소한 매달 한번은 만난 셈이고
앞으로도 영상 예배 땜에 매달 만나야 되는 사이가 됐다.

정준이는 아주 오랫동안 새까맣게 염색을 하고 다녀 본래 머리털 색깔을 알 수가 없었다.
‘ 장준아, 너는 머리털 숱도 많고 흰 머리도 없구나.’
‘아니야, 나도 염색 하지 않으면 너만큼 하예.’
씩 웃으며 그렇게 말은 했지만 백발 친구들을 위로하려고 민망해서 하는 겸손인 줄 알았다.
그런 정준이가 지난해부터 염색을 그만 두어 얼룩덜룩한 채 다니다
금년 초 막내아들 장가보내느라 다시 염색을 했다가 이후로는 더 이상 염색을 안 하니까
드디어 본색을 들어내게 되었다.

내 머리 털을 앞뒤로 살펴보던 정준이가,
‘그래도 종호 넌 뒷머리에 검은 털이 좀 남아 있구나.’

60된 후배가 내가 끓여준 커피 한잔 맛있게 마신 후 겉옷을 챙기고 일어서며,

“ 참, 보세요, 문신한 거. 하하하.”

“ 이미지가 확 달라졌네. 훨씬 젊어 보여. 새 장가 가도 되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내 눈에는 새로운 모습이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얼굴을 완전히 버려 놓은 거 같았다.
인공적으로 그린 모습이 역력해 중국 경극 무대 배우를 연상시킬 정도로
너무 부자연스러웠고 어색했다.
전혀 여성스럽지 않은 얼굴에 반달형의 예쁘게 그려진 아주 여성스런 눈썹이었다.

코로나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 확산 되는 바람에 대체로의 약속들이 모두 취소되어 버렸다.
동기들 두세 명씩 부정기적으로 점심을 하는 모임이 특히 그렇다.
무슨 특별한 일 없이 그냥 만나서 밥 먹고 커피 한 잔 하며 한담하다 헤어지는 모임이라
구지 무리를 해 가며 만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를 별 개의치 않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런 친구들만 별도로 추려내서
뭐 어쩌고 하기도 번거롭다.

십 팔세 순이라면 모를까 나만 늙은 게 아니라 지도 늙어 배 나오고 엉덩이 쳐지고
느릿느릿 팔자걸음에 볼품없이 찌그러진 데다 재미없고 기억도 잘 못 하고
한 말 또 하고 남의 말에 귀도 안 기울이는 쭈글쭈글한 늙은이들이
그렇게 애타게 그립고 보고 싶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종호야, 나는 언제나 시간 되니까 이틀 전에만 알려 줘.’
‘그래, 알았어.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 다시 연락할게.’
선 듯 만나자는 이야기가 안 나올 뿐 아니라 이럴 땐 오히려 코로나가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자주 연락하자.’
자주 연락할 일이 없다.
그런 주제에 자기가 먼저 전화하거나 연락하지는 않는다.
지가 무슨 황진이라고 전화 기다리고 있다.

다른 동기들 안부를 묻는 경우도 많다.
‘니가 전화해 봐.’
‘나는 그런 거 잘 할 줄 몰라서.’
세상에 전화를 잘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나.
‘동기들이고 친구들인데 궁금하면 전화해 보면 될 거 아니야.’
‘그게 잘 안 돼서.’
왜 먼저 전화를 못 할까.

지난 번 일부 개신교 단체 지도자들이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면담 중
여러 얼토당토않은 말들을 많이 했지만 그 중에서도
교회를 일반 사업장과 같은 취급을 하지 말아 달라 는 엉뚱한 강변과 요구에는  
실로 아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었음은 물론 ‘아니 이런 인간들이’ 뭐가 치밀어 오르고
창피해서 낯이 다 뜨거워졌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누구나 아무렇게나 드나들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열린 곳이어야 하는데 교회를 아주 뭐 대단하고 신성하고 제한되고
무슨 자격을 갖춘 사람들의 전유물로 착각하고 있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고 휴식이 되고 평안을 주는 곳이 되어야 하지
근접하기 꺼려지고 뭔가 어색하고 무슨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자기들만의 장소가 되거나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면 이런 교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낮은 곳으로 임한 이유를 도외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기독교의 만민 평등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와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어 심하게 이야기 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기독교를 자기 마음대로 변질시켜 사교 화한 사교도라고 매도 될 수도 있다.
일반 사업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업장 주나 종사자들과 차별을 두고
더 나아가 교회와 구분하여 비하하는 듯 한 이런 말을 낯짝도 없는지
어떻게 떳떳하게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대통령 면전에서.

일 년에 두 번 성묘 가는 날은 매년 정해져 있다.
봄에는 4월 5일 한식을 전후하여 가급적 주말을 앞둔 날을 택하고
벌초는 절기 상 처서와 백로 사이, 대체로 8월 25일부터 9월 5일 사이 날씨와 상황에 따라
물론 가능한 주말을 앞둔 편한 날을 택한다.
그리고 보통 예정일 한 달 전에 대식이와 남철에게 일정을 알리고 선약 여부를 확인하고
그 중 누구와도 일정이 겹치면 셋이 다 가능한 날로 다시 조정한다.
그렇게 하면서 거의 20년 이상 매년 두 번 대식이, 남철이와 셋이서
대구에서 저녁에 만나 술잔을 기울여왔다.
그 동안 대구가 처가 집으로 장모님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 용모가 두 어 번 조인했었고
마찬가지로 대구가 처가인 수영이도 처가에 들리는 날을 맞춰 두 어 번 조인했었다.

이번에도 9월4일이나 5일 중 편한 날을 물었더니 대식이가 토요일이 편할 거라 해서
토요일은 대식이 진료가 일찍 마쳐 저녁 일찌감치 만나기로 하고
당일 날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했지만 7일 오전에나 남해안에 상륙할 거라고 해
벌초하고 저녁에 술 한 잔 하고 다음날 강원도 안창에 도착할 때까지
비를 만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그 전 며칠 전에 작은 조카가 전화를 해 태풍이 올라온다는데 일정 변경이 없느냐고 물어와
별 지장이 없을 거 같으니 예정대로 벌초하고 올라오는 길에 안창에 들러 일박할 테니
막걸리나 몇 통 충분히 사두라고 해 두었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영동 고속도로에서 중부 내륙으로 접어들기 전에 여주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하며 쉴까 했으나
도중에 졸음 쉼터에서 소변만 보고 내친 김에 충주를 지나고 괴산도 지나
충청북도를 관통한 후 경상북도에 접어들어 첫 휴게소인 문경 휴게소까지 달린 후에야
한숨 돌리고 휴게소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다.  

주차장이 텅 비었다 할 정도로 한산해 아직 아침시간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게소 전체에 비계를 걸고 리노베이션 중이었다.
다행히 화장실은 오픈하고 있었지만 빵집 한 군데를 제외하고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방광을 비우고 커피 한잔 마시는 거 외에 다른 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다행히 빵집에서 커피도 팔아 커피 한잔 사 들고 휴게소 옆에 산등성이를 등지고
놀이기구 몇 개가 설치된 아이들 놀이터 벤치에 걸터앉았다.

탱탱하게 부어오르는 오줌보를 눌러 앉히며 문경까지 참고 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비록 이번에 들리지는 못하지만 문경에는 종렬이가 사과 과수원을 하고 있고
종렬이네 과수원과 붙어서 200여 평 땅을 마련해 이동식 컨테이너 주택 하나 갖다 놓고
사과나무 몇 그루 심고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는 봉재가 있어 비록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잠시 문경에서 봉재, 종렬이와 보낸 추억에 잠겨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봉재에 의하면 문경 근처 점촌에 동윤이가 살고 있다고 하고 또 문경에서는 상당한 거리지만
같은 경상북도 북부지역인 봉화에 지난 2월 서울 생활을 정리한 재선이가 터를 잡고
독거노인 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 소식을 물어 보면 목소리가 훨씬 밝아지고 경쾌해 진 거로 보아
재선이는 우려와는 달리 시골생활에 아주 잘 적응하여 건강히 잘 살고 있는 거로 보였다.

재선이가 궁금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해 이번에 올라오는 길에 들러볼까 했으나
재선이를 만나면 그래도 술 한 잔 얼큰하게 주고받으며 밀린 이야기 다 쏟아 붓고
하룻밤 동숙하고 와야지 얼굴만 삐쭉 보고 오기에는 안 가느니만 못 할 거 겉아
아쉽지만 부득불 다음 기회로 미뤄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까 기수 데리고 수종이, 정규, 명구와 봉재 이동식 주택에서 하룻밤 자고 온지도
그게 2018년 12월 초였으니까 거의 2년 전 일이다.
돌아보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갔다.
봉재가 놀러오라고 하여 금년 봄에 계획을 잡았으나 코로나 땜에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청성공방 아줌마는 여전했다.
‘오셨능교? 차 안 막혔십니꺼? 뭐 좀 드릴까예?“
말은  묻고 있지만 손은 이미 종류별로 꽃송이 몇 개를 주어 들고 잽싸게 색깔에 맞춰
주섬주섬 조합을 하고 줄기를 벌려 수북한 다발을 금방 만들었다.
‘괜찮십니꺼? 뭐 한 가지 더 끼우까예?’
그러면서 힐끔 쳐다보고는,
‘얼굴 좋으시네예. 좋은 일 있으신가 봅니더.’
오라버니라고 부르지 않는 걸 보니 술은 확실히 안 마신 거 같았다.
맨 정신에 빈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럼 이 아줌마가 늘그막에 눈이 삔 게 아닌가.

석계 칼국수 집 자매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홀 서빙 하고 계산하는 아줌마를 두고 주방에서 주문받은 음식 담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주방을 슬쩍 들여다보니 국수 삶고 젓고 퍼고 하는 아저씨가 또 있었다.
종업원 두 명을 더 두고 별채뿐 아니라 예전에 살림집이었던 방들까지 모두 터
신발 벗고 들어가는 홀로 개조했다.

부엌도 반으로 줄이고 나머지를 홀로 확대했으니까 홀이 예전에 비해 3배쯤으로 늘어났는데도
손님들로 북적댔다. 더구나 점심때도 지난 시간이었다.
가옥이 드문드문한 시골에 어디에서들 나타났는지 참 희한한 일이었다.
내가 가면 의례히 철철 넘치게 담아왔는데 자매가 주문을 받지 않으니 양도 반 밖에 안 된다.
그런데 반찬은 확실히 업그레이드되었다.
전에는 김치가 아니라 짠지 수준이었는데 시큼시큼 잘 익은 김치가
깊고 진한 젓갈 맛이 배어있어 맹탕인 칼국수 맛을 완전히 커버해주었다.

여하튼 눈도 돌리지 못하고 땀에 젖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어린 자매들에게
괜히 알 하는데 지장이 될까봐 아는 체를 못하고 돌아서려니 뭔가 섭섭했지만
대견해 보여 마음으로나마 성원을 보내며 흐뭇한 마음 금할 수가 없었다.

두류공원 모포부대 할머니들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지난 4월 초에 한분도 없었기에 코로나에 혹시 하고 염려했었는데 기우였다.
가랑비가 뿌리는데도 한 분도 빠지지 않고 모두 모여 있었다.
이미 술이 떡이 된 손님도 한분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보자 얼른 자리를 정리하고 방향도 가늠하지 못하는 취객을 일으켜 세워
멀찌감치 자리를 이동하여 주었다.
한 할머니가 돗자리를 가져다주며,

“전에는 관리소에서 이맘때는 주변 풀을 베며 벌초도 해 주었는데
금년에는 코로나 때문인지 관리소에서 아직 안 나왔네예.  
비도 오고 혼자 힘들 텐데 지가 좀 도와드릴까예?“

풀베기는 보통 백로가 지나야 하니까 아직 며칠 남았다.

“아닙니다. 봉분에 풀이 별로 없어 혼자서도 금방 합니다.”

반 년 만에 만나는 대식이와 남철이는 변함이 없다.
내가 늘 묵는 숙소 앞에서 5시 반에 만나 택시로 이동하였다.
일차는 지난봄에 갔던 싸고 신선하고 푸짐한 고기 집이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고 했는데 이 번에도 대식이가 미리 예약을 해 두었었다.

지지난해 문 닫기 전까지 우리 십 수 년 단골이었던
생고기 집 ‘거기’ 사장에게 미리 연락해 참석여부를 물었더니,
‘벌써 반년이 지났네요. 코로나도 잠잠해졌으니 기꺼이 참석하겠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뵐게요.’ 하며
잊지 않고 연락 줘 감사하다고까지 하였으나 그 이후 수도권 중심으로 다시 확산하는 바람에
이 번에도 애석하지만 참석할 수 없다며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첫 잔을 다 같이 소맥으로 말아 시원하게 한잔 쭉 들이 킨 후,

“야, 너그들 행복이 따로 있나.
이렇게 늘 그립고 보고 싶던 오랜 친구들 만나 얼굴 보며 웃고 떠들고
술 한 잔 나누는 이 순간이 바로 행복 아이가. “

일차를 마치고 2차로 간 곳은 지난봄에 갔던 맥주 전문집이었다.
그 전에 이차로 의례히 들려 남철이와 마가리타를 마시던 스쿨이라는 곳은
항상 자정이 되도록 젊은이들로 들끓어 자리도 잘 안 나는 데다
대식이가 젊은 애들이 코로나에 무방비하다며 꺼려 지난번부터 옮긴 대식이 10년 단골집인데
남철이도 분위기가 좋다고 하고 특히 주인이 직접 끓여준 커피가 일품이라며
이 번에도 자리에 앉자마자 주인을 불러 맥주 외에 커피도 주문하였다.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 앞산 중턱에 자리 잡고 수 십 년간 따로국밥 하나로
아마 경상북도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맛 집이라고 불릴 수 있는
선지 해장국 전문점 대덕식당에서 따로 국밥 한 그릇 깨끗하게 비우고
다음 행선지인 경부 고속도로 금강 휴게소로 향했다.

대구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드라이브 거리니까 중간 기점으로
커피 한 잔 마시며 용변도 보고 잠깐 휴식하기 알맞은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에 매년 성묘 때마다 오며 가며 들러
금강에서 오리배도 타고 길 건너 마을 음식점에서 도리뱅뱅이를 먹던 추억이 서린 곳이라
오며 가며 한 번은 들러 커피 한 잔 들고 강변에 앉아 무심히 흐르는 푸른 강을 바라보며
옛 추억에 젖는 곳이다.

안창으로 가는 내내 잔뜩 흐린 하늘에 비를 뒤에 달고 달렸다.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해 조카들이 기껏 준비한 숯불은 피울 수가 없었다.

“지난 5월에 숙부님 다녀가신 후 할머니가 병원에 두 주간 입원하셨어요.
팔 다리가 붓고 아프다고 하셔 정형외과에서 약을 타다 드셨는데
약을 토하시고 정신을 잃으시는 거예요. 그 때 마침 할머니가 서울에 계셔
119에 연락해 부랴부랴 경희대 병원에 모시고 갔거든요.
그런데 검진 결과 약물 복용 부작용이라고 하고
할머니 팔 다리 아픈 게 신장이 약해져 그런 거라는 거예요.
정형외과에서 오진한 거지요.
지금은 신장 약 먹고 해서 괜찮아지셨어요.  
할머니가 이번에 잘못 될 줄 알았는데 고비를 넘기시고 해서 앞으로 10년은
그냥 넘기실 거 같아요.“

“ 예,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있잖아, 나보고 어디 나쁜 데가 한 군데도 없대.
  이런 경우는 처음 봤대.“

나하고 나란히 앉아 마늘을 깠는데 나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빨랐다.
93세의 나이에 맨눈으로 바늘도 꿰고 씨알보다 작은 글자를 다 읽는다.

내가 늘 자는 곳은 달개지붕을 달고 방을 새로 들인 곳이다.
재수 씨 생전에는 재수 씨가 거했었고 지금은 큰 조카의 침실이다.
내가 오면 큰 조카는 근처 자기가 관리하는 캠핑장으로 가거나 할머니와 같이 잔다.

그런데 달개지붕이 양철지붕에 판자를 댄 얇은 지붕이라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다.
조카들과 한 되들이 치악산 막걸리 몇 통을 비우고 불콰해져 잠자리에 드니까
지붕 위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한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너무나 정겹다.
언제였는지 기억에도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에 들었을
양철 지붕 위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조카가 미리 군불을 때 뜨뜻한 방바닥에 머리를 누이고 기분 좋게 잠을 청 할 수 있었다.
2020.09.12.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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