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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10-17 21:03:15, Hit : 705, Vote : 196
  토요 살롱 317회 " 葛 藤 "

새벽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고 낮에도 20도를 넘지 않아 날이 급격히 쌀쌀해지며
높고 파란 하늘의 청명한 가을날이 지속되고 있다.
비록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공기가 그렇게 맑고 상쾌할 수가 없다.
이렇게 가을이 깊어 가는 날 당장 어디론가 길을 나서고 싶지만
이 나이가 되어서도 그러지 못 하는 처지가 아쉬울 뿐이다.

영철이의 부고를 받은 날이 지난해 10월 14일이었다.
당일 저녁에 빈소에 가서 많은 동기들을 만났지만
이틀 후인 16일, 발인하는 날 아침 7시에 영결미사를 드린다고 해
영철이가 마지막 가는 길 배웅하기 위해 새벽같이 빈소에 갔었다.
경기고, 서울 의대를 나와 서울 의대 교수로 정년퇴임하신
영철이 형님이 인도하는 영결 미사에서 영철이와 서울중학교 때부터 절친 이었던
임희와 우성이를 만났었다.

LA에 거주하는 임 희는 부고를 받자 그 길로 비행기를 타고 전 날 밤에 도착해
인척 집에서 잠깐 눈 붙이고 날이 밝자 바로 빈소로 달려왔다고 했다.
임 희가 서울 중학 입학하면서부터 영철이와 부랄 친구였다는 걸 알 턱이 없었던 나는
바로 옆에 같이 서서 미사를 같이 봤는데도 임 희를 못 알아봤다.

거기서 임 희를 만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임 희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게다가 장거리 비행이지만 친구를 잃은 슬픔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거고
잠깐 눈 붙였다고 했지만 눈만 붙였지 그게 잠으로 이어지지는 못 했을 터였다.
시뻘겋게 충혈 된 눈 가에 눈물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두 눈에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했으니 옆에 누가 있는지 정신이 있을 리가 없었을 거다.
면도도 못 했고 머리도 마음대로 구겨져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알아보지 못했던 거 같다.
희도 나와 같이 가톨릭이 아닌지 영철이 형님이 인도하는 미사에
두 손에 순서 지를 펼쳐 들고는 있었지만 형님이 선도하는 구절을 따라하지는 못 하고
눈가에 번지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미사가 끝날 무렵에 나타난  우성이가 와서 임 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걸 보고서야
‘아니, 희 아니야?’ ‘ 어 종호구나.’ 할 수 있었다.

유수 같은 세월이 흘러 영철이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영철이와 같이 나누었던 시간도 추억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영철이의 생전의 모습, 영철이와의 추억을 한 순간도 소중히 붙잡아두려
몇 번에 걸쳐 토요 살롱에 써 올렸지만 이 마저도 흘러간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하기야 이 나이가 되다보니까 이별이란 게 희귀하지도 않고 낯설지도 않은
오히려 점점 더 익숙해져 가고 있는 일상의 한부분이 되어가고 있어  
어지간해서는 덜 놀라고 덜 충격을 받기에 마음에 새겨지는 상처의 깊이도 얕아져
통증도 덜 하고 빨리 아물기도 해 금방 덤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년 들어 동기들 일곱 명이나 떠나보냈으니까
그 전에 떠난 동기들은 최근에 떠난 동기들로 오버랩 되어
그 추억이 덮어지고 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가 되지 않나 싶다.
세월이 갈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화 될 것이다.
앞 서 떠난 동기들을 기리고 추억에 잠길 여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철이가 떠난 후 영철이와 동기들 몇이서 소래 미순 네에서 부정기적으로 만나던 모임도
자연히 중단 되었다.
영철이, 안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형곤이, 영식이가 고정 멤버였고
태수도 한두 번을 빠졌지만 거의 매번 참석해 고정이나 마찬가지였다.
형곤이가 못내 아쉬워하며 몇 번 연락이 왔지만
영철이가 없는데 영철이를 추모하는 자리라면 몰라도 늘 영철이와 함께 하던 자리에서
우리끼리 만나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한다는 게 영 내키지가 않는다.

영철이 일주기를 넘겼는데도 동기들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어 혹시나 하고
영철이와 가깝던 동기 몇 명에게 전화를 해 봤다.

“ 벌써 그렇게 됐나?”

“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어.”

일주기라 납골당에라도 다녀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리고 나한테도 연락이 오지 않을까 했는데
괜한 기대였던 거 같다.

만 4년 전인 2016년 10월 15일 자 토요 살롱 192회 제목, ‘만남’에서
잠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우리가 누구와 만날 때는 그냥 아무렇게나 만나지는 않는다.
나에게 도움이 되거나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거나 내가 위안을 받고자 만난다.
이런 경향은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지는 거 같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그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내가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또는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서도 만나지만
반대로 이런 경우는 나이가 들수록 그런 선한 일을 하는 경우는 점점 더 드물어진다.
자기가 불편해지니까 자기 자신부터 챙기느라 다른 데 관심이 가지지가 않는다.

이런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만나기 때문에
상대방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기대치가 있게 되는데 어쩌다 한 번이라도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 해 그 만남에서 자기가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되면
그 만남으로 만들어진 여태까지의 좋았던 추억은 일거에 싹 지워지고
그 자리를 기대치를 벗어난 열악한 추억이 차지하게 된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는 16세기 영국의 경제학자인
Thomas Gresham의 명언이 이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나 할까.

‘그 때는 좋았지’ 라고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자마자 바로 나빴던 기억이 그 위를 덮어버린다.
그 괴로웠던 추억이 그대로 가만히 자리 잡고 있으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그게 더 나쁜 방향으로 진화를 시키고 덩치를 키우며 침소봉대를 하거나
있었던 일 그 자체와 전혀 다른 엉뚱한 돌연변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자기 기대에 부합치 못했던 만남에 섭섭한 감정이 생기게 되고 그게 발전하여
괘씸한 생각이 들게 되고 급기야는 분노하고 원망하게까지 된다.
상대방은 영문도 모르고 있는데 알더라도 별 대수롭지 않게 잊고 있을지 모르는데
자기 혼자서 속을 부글부글 끓이며 누군가와의 갈등의 원인을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 키우게 된다.

인간이 천륜이던 인륜이던 서로 마주하고 부대끼고 살아야 되는 이상
서로 간의 관계에서 이런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애정이나 우정 같은 정으로 얽힌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단순한 이해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는 그 발생하는 원인도 그렇고 발전하는 과정도 그렇고
해소하는 방법도 상당히 다른 거 같다.

이해관계로 생긴 갈등의 원인은 서로간의 이해의 불평등에서 발생하게 된다.
서로간의 관계에서 물질적인 면에서 누군가는 손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물질 때문에 일방적으로 원한이 쌓이고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그러니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피해를 입었다고 여기는 쪽으로부터
발생하는 갈등이다.
그래서 그 갈등의 원인을 누구나 알 수가 있어 중재나 간섭을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화의를 강제로 종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갈등은 증폭하겠지만 갈등의 원인이 제거되는 즉시
그 과정에 있었던 원한관계는 씻은 듯이 없어지게 된다.
해소방법도 비교적 간단하다. 타협하거나 한 쪽이 양보하면 된다.
아니면 손해를 봤다고 여기는 쪽에서 ‘까이거“ 하고 툴툴 털어버리고 관계를 복원하거나
싫으면 관계를 단절해버리면 된다.
일단 갈등의 원인이 해소되면 다시 보던 안 보던 후유증이 거의 없다.

정으로 얽힌 관계에서의 갈등의 원인은 물론  물질로 인한 경우도 있겠지만
상대방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변화로 인한 경우가 주를 이룬다.
제3자가 보기에는 별 거도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워낙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미세하고 섬세한 것들이
갈등의 원인이 될 수가 있다. 자기만이 느끼는 감정이다.
그래서 이야기 해 봐야 이해를 못 구할 거 같아
갈등의 원인을 자기 혼자만 삼키고 있는 경우도 많고
제3자에게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당사자 외에는 제3자가 갈등의 원인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때문에 제각기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른데 일반적인 감정의 표준치를 들이대며
잘잘못을 따지고 누구 편을 들거나 어줍지 않게 중재한답시고 나서면
오지랖이 되기 십상이다.
당사자 외에는 해소할 방법이 없어 당사자에게 맡기고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정으로 맺어진 관계에서 발생한 갈등은 설사 봉합이 된다 하더라도
그 상처가 쉽게 아물지가 않는다.
트라우마처럼 기억 속에 뿌리를 깊이 박고 있다가 살짝만 건드려도 비집고 나와
속을 온통 뒤집어 놓는다.
그렇게 한 번 다친 상처는 평생 고질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이 떨어져 꼴도 보기 싫어지면 아예 감정 자체가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갈등이고 뭐고 있을 수가 없다.
“너 왜 그래?”
“나도 몰라.”
누가 뭐라던 구차하게 이러니저러니 설명하기도 변명하기도 싫어진 거다.
상대방에게 뭐 요구하는 거나 바라는 거가 아예 없어져
아무런 미련도 남아 있지 않음은 물론 생각조차 하기 싫어졌는데 갈등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정을 뗄 수가 없거나 정을 떼기에 아직 미련이 남을 때 갈등이 생긴다.
상대방에게 바라는 거도 있고 원하는 거도 있는데 그걸 받을 수 없으니까
조금씩 미워하게 되고 그렇게 태어난 미움이 쌓여 증오하게 되고 갈등이 유발된다.
이렇게 정으로 맺은 관계에서 일단 갈등이 한번 생기면 갈등이 해소되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서로 화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미봉책에 불과하다.

한 번 감정에 골이 생기면 그 골을 누가 대신 메워줄 수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가 메우지 않는 한 메워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정으로 맺은 관계에서는 갈등의 싹이 트기 전에 그 싹을 자르지 않으면
이내 그 뿌리가 깊이 내려져 박혀버리기 때문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그 뿌리를 안은 채로 관계를 유지하던 가
아니면 관계를 청산하던가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앞서 이야기 한 이해관계에 의한 거도 아니고
정으로 맺은 관계도 아닌 데도 양 진영 두 집단으로 나뉘어
서로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 종호야, 너하고 나하고 정치적 신념은 다르더라도 우리 사이에 우정은 변치말자.”

소위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걸 전제로 하고 이로 인해 그 동안 수 십 년 친구 사이가
훼손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려하는 말이다.
한 발짝 더 나간다면 너하고 수 십 년 쌓은 우정도 자기의 정치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져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치적 견해 어쩌고 하지만 우리는 정치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정치를 전문으로 하는 정치인들은 따로 있다.
그런데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란 게 그렇게 소중하게 지켜야 되는 가치가 있는 걸까.

우리가 누구는 독서를 좋아하고 누구는 음악을 좋아하고 누구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등
서로 좋아하는 기호가 다르다고 갈등이 야기되지는 않는다.
세끼 밥만 먹어야 되는 사람과 면을 더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유발되지 않는다.
소주만 마시는 소주파와 막걸리 좋아하는 막걸리파가 서로 자기가 옳다고 다투지도 않고
그로 인한 갈등도 일어나지 않는다.

요즘 한참 프로야구 페넌트 마지막 무렵이라 팀마다 총력전을 펴 재미를 더해가고 있다.
우리 동기들은 거의 서울 연고 구단인 LG 와 김 진이가 구단 사장을 역임한 두산 팬이지만
나는 아주 오래 전 현재 ‘키움 히어로즈’ 의 전신인 현대 구단이
인천에 연고를 둘 때부터 ‘키움 히어로즈’ 팬이 되었다.

각종 스포츠에 달인이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고교 야구부 선수 출신에 야구 마니아인데다 우리 고교가 야구 명문으로 거듭나 있어
특히 야구에 관심이 많은 용혁이가 10여 년 전,

“종호, 넌 삼성 응원하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확인 차 묻기에,

“아니, 난 히어로즈야.”

“아니 왜? 넌 대구가 고향이잖아?”

“프로 야구 초창기에는 삼성 응원했는데 바꿨어.”

용혁이는 시종일관 열렬한 LG 팬이다.

또 한 명의 열렬한 LG 팬이었던 승헌이가 얼마 전부터 우리 고교 후배 강 백호가 속한
KT로 응원 팀을 바꿨다고 한다.
승헌이는 KT 연고지인 수원과도 아무 상관이 없고 KT 회사와도 아무 관계가 없다.
오로지 자기가 좋아하는 후배가 속한 팀이라 수 십 년 지조를 꺾었다.
그렇다고 LG 팬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지도 않고
그들과의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도 않는다.

용혁이와 승헌이가 같은 팀을 응원하고 있다가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게 되었고
하필이면 이 두 팀이 포스트 시즌 출전권을 두고 치열한 순위 싸움을 하고 있는데도
용혁이가,
“승헌아, 우리가 비록 응원하는 팀이 갈렸더라도 우리 사이에 우정은 변치말자.”
웃자고 하는 소리라면 몰라도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작금의 우리 현실은 두 패로 딱 나뉘어
서로 증오심을 키우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강남의 집값을 잡기 위해 강남 부자들과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 라는 기사를 보고
대경실색을 한 적이 있었다.
‘부자들은 국민이 아닌가. 자기 국민과 전쟁을 하겠다니!’
이런 사람이 우리 5천만을 대표하고 이끌어가는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고
스스로가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면서 내건 슬로건이 ‘적폐청산’ 이다.
적폐란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을 말한다.
폐단의 유형을 보다 구체적으로 열거한다면,
아마 부정부패, 권력남용, 인권유린, 빈부격차의 심화 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폐단을 개선하겠다는 건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역대 정권들이 모두 하나같이 내 건 슬로건들이고
어느 나라의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모두가 내 거는 슬로건이고
반드시 이루어야 되는 기본적인 정책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수립 이후로 따진다면 그런 적폐가 엄청나게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될 문제지
어느 특정한 정권이 짧은 시간에 발본색원하고 아예 씨를 말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슨 강력한 특별법을 만들든지 법을 소급        적용하던지 해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기와 견해가 다르다고 ‘적폐세력’ 이라고 몰아버리는 데 있다.
‘적폐세력’ 우리가 어릴 때 무서워하던 ‘공산당 빨갱이’ 만큼 무시무시하게 들리는 말이다.
자기 국민을 자기와 견해가 다르다고 적폐세력으로 몰아 청산하겠다?

어느 조직이던 어느 집단이던 아무리 소수 인원의 단체에도 여러 의견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각양각색의 다른 의견으로 인해 갈등이 조장되지 않도록
여러 의견을 청취하고 조율하고 조정안을 내고하여 화합을 주도하는 일이
리더가 할 역할인데 그 반대로 자기편만 들어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공한다면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야구 응원하는 팀이 달라도 그게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듯이 ‘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고 오랜 세월 쌓아 온 인간관계가 금이 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날이 하루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2020.10.17.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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