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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0-10-24 21:11:53, Hit : 756, Vote : 217
  토요 살롱 318회 " 줄 탁 동 시 "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날도 부쩍 짧아졌다.
아침 6시 반이 되었는데도 어둠이 가시지 않아 공원 가로등 불빛이 산책길을 밝히고 있고
저녁에는 겨우 6시가 넘었는데 땅거미가 깔리고 있다.
공원 숲의 활엽수들은 반질반질하던 윤기도 광택을 잃고 촉촉하던 습기도 메말라
새파랗던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잎들이 색이 바래지고 낙엽송은 벌써 노랗게 물든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있다.
시원하기만 하던 높고 파란 하늘이 시리게 다가온다.
오늘 새벽에는 체감 온도가 영하로 떨어졌다.

이렇게 날이 짧아져 해가 아직 서쪽에 한참 남은 줄로만 알고 무심히 걷다 보면
오렌지 색 석양이 고속 촬영처럼 스쳐 지나가며 잠깐 사이에 어둠이 느닷없이 덮쳐오고  
한 줄기 획 어둠을 뚫는 찬바람이 온 몸을 휘감으며 남기고 간 싸늘한 한기에
화들짝 놀라 소스라치듯 옷깃을 여미게 되면 따끈한 정종대포 한잔이 간절해진다.

얼마 전 나처럼 가족들 모두 미국에 보내고 혼자 살고 있어 동병상린 가끔 만나
소주 잔 기울이는 10년 아래 사회 후배와 오랜만에 양 꼬치구이 안주로
빼갈 한잔 하고 문밖을 나서자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고
쭉 늘어선 가게마다 손님이 드문드문해 쏟아지는 형광 빛이 더욱 차가워 보이는데
쌀쌀하게 불어대는 밤바람에 술로 데워진 몸이 갑자기 식으며 오싹 한기가 돌자
전율이 지나가듯 부르르 떨며 몸을 움츠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잔득 움츠린 후배가 곱은 목소리로,
“어 추워, 왜 이렇게 추워요? 이거 아직 여름 양복이거든요.  
어디 따끈한 정종 대포 파는 데 없을까요?”

술꾼들만의 이심전심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먹자골목을 다 뒤져도 정종대포 파는 집은 없었다.
먹자골목은 고객이 젊은이들 위주로 형성 되어 있다.
정종대포 찾는 젊은이들이 있을 리가 없다.
입에 익숙한 안주 한 접, 소주 한 잔, 대포 한 잔으로 옛 이야기 나누며
노땅들 추억을 되살릴만한 주막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하늘이 점점 높아지며 찬 기운이 돌고 낙엽이 뒹굴며 찬바람이 불면  
따끈한 정종 대포와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한편
마음도 아직 채울 빈 공간이 너무나 넓은 거처럼 쓸쓸해지며
돌아보면 아쉽기만 하지만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회한 가득한 추억에 잠기게 된다.

다시는 못 볼 머나먼 곳으로 떠나 간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없을 리 없겠지만  
구태여 찾으면 만날 수는 있겠지만 추억 속에서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 사람들,
인연의 매듭이 꼬여버린 사람들과의 추억은 떠올릴수록 회한과 아픔만 더해간다.
자신의 불찰이나 옹졸함, 용열함과 교만 때문이었다고 자괴하고 자책하기에는
너무 멀리 가버렸고 너무 늦어버렸다.
이런 아픈 추억들은 하나하나가 다 아물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이렇게 쓸쓸한 가을에는  
더더욱 애잔해진 마음에 쓰라린 통증을 일으킨다.

10월도 며칠 남지 않았으니 금년 한 해도 겨우 두 달 여 남았다.
새해 인사를 하고 덕담을 나눈 지가 엊그제 같은데 한 해가 다 저물어 가고 있다.

새해 들어 뭔가 결심도 새롭게 하고 새로운 계획도 짜 보고 야심찬 계획들도 많았을 텐데
그런 덕담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새해를 막 시작하자마자 덮친 코로나 사태로
그런 결심과 계획들이 일장춘몽, 말짱 도루묵이 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도루묵 정도면 그래도 현상유지란 말인데 현상유지는커녕
존립 자체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경우도 많을 것이다.

고층 건물 옥상이나 측면 벽을 임대하여 전광판을 설치하고 광고업을 하는 후배는
금년 들어 중국 관광객도 슬슬 늘어 사드 사태 이전으로 회복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금년에 사업을 확장하려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으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자
신규 계약은커녕 기존의 계약조차 이행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파기하여
현재 전광판의 광고는 전기료 겨우 커버할 수 있는 공익광고 외에는 전무하게 되었는데도
임대료 등 고정비는 지불하지 않으면 안 돼 매달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며,

“ 형님 큰일입니다. 수입은 없는데 지출은 해야 하고.
  은행 한도는 다 찼고.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

10여 년 전 그 동안 나나 우리 가족이 해외여행을 다닐 때마다 비자며 티케팅이며
관련 일을 도맡아 처리해주던 사촌 동생이,
다니던 여행사를 그만 두고 다른 일로 업종 전환을 하는 바람에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어 새로 거래를 시작한 여행사의 담장 직원이 회사를 그만 두고
독립하여 여행사 대리점을 차리게 되자 나도 자연히 그 직원을 따라가게 되었다.

당시에 30대 중반의 처녀였으니 지금은 40대 중반쯤 되었을 거다.
10년 동안 알고 지낸 지인 사이이지만 전화로만 통화를 하고 만나보지를 못 해
모습이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업무를 똑 소리 나게 하고 언제나 최저가로 항공권을 구해 줘 신뢰하고 맡길 수 있었지만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전혀 애교라는 게 없는데다 자기 업무에 너무 자신감이 넘쳐
상대방 의견을 듣기는커녕 핀잔까지 마다하지 않아 어떤 때는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내려누르느라 극도의 인내심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어
그런 거로 봐서는 생긴 모습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심술덩어리 노처녀로 상상되었다.
처음 거래를 시작하며 내가 뭐 하는지를 모르니까

“제가 선생님을 뭐라고 호칭해드려야 해요? “ 해서,

“아, 그거, 지금 부른 거, 선생님, 그거 좋네. 그냥 그렇게 불러요.”

뭐라고 정확히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아버님 이라고 부를까 봐 얼른 그냥 어정쩡하지만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혹시 교수님이세요? ”

“어 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의사 선생님?”

대충 그 정도에서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일 년에 두 번은 미국을 다녀오고
중간 중간에 여기저기 다닐 때마다 아주 노인네 취급        하고 한 번 했던 설명을
매번 너무 자세하고 장황하게 계속 반복해 짜증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일 하나만은 아주 확실하고 그리고 가장 저렴하게 처리해주었다.
그래서 지난 해 인가 언젠가 그 동안 너무 고마워서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해야겠다고 했더니,

“어머, 오세요. 저희 여기 종로에요. 오실 때 전화 주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차일피일 못 가봤고 지난 해 추석에 미국을 다녀 온 후
지난 연말에 미국을 못 가는 바람에 코로나로 발이 묶여 일 년이나 연락을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 최근 영주권 유지 때문이라도 연말에는 미국을 다녀와야 해 사무실로 전화를 했더니
신호만 가고 연결이 되지 않았다. 두 어 번 더 시도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한참 후에 리턴 콜이 왔는데 사무실 번호가 아니라 개인 휴대폰이었다.

“선생님, 전화하셨어요? 못 받아서 죄송해요. 사실 사무실 잠정적으로 문 닫았거든요.
여름 되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 믿고 버텼는데 지금으로 봐서는 기약이 없잖아요.
백신이 나오더라도 2,3년 더 걸릴 거라고도 하고.
수입은 없고 지출은 해야 하고, 큰일이에요, 선생님. “

“애기 아빠가 뭐 그래도 도움이 되지 않나?”

“어머, 선생님, 저 아직 결혼 안 했어요. 혼자예요.”

아니, 지금 나이가? 입에서 막 튀어나오는 말을 겨우 집어삼켰다.

“대학 졸업하고 20년간 쭉 이 계통에서 한 갈만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앞이 캄캄해요.“

출국하는 내국인도 없지만 입국하는 외국인도 없다.
해외에서 입국하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무조건 2주간 격리라서
어지간해서는 해외여행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제일 많은 여행객이 들락거리는 중국이 완전히 막혀버린 게 가장 큰 타격이다.

중국에 사업체가 있어 매달 보름은 중국에 가 있어야 하는 데도 일 년이 다되도록
꼼짝도 못하고 있는 흥수에 의하면 중국도 입국하면 2주간 격리라고 한다.
그래서 큰 맘 먹고 가더라도 거기서 2주, 돌아와서 2주, 한 달을 격리해야 한다.
엄두가 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 되다보니 우리나라에 그 수많던 여행사들 큰 데고 작은 데고
거의 다 망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단체여행보다 개별 여행을 선호하게 되어 가고
티켓을 인터넷으로 싸게 구매하고 숙소도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추세라
여행사의 일감이 많이 줄어 사양화 되고 있던 터였다.

100년이 넘는 역사로 우리나라 개신교 선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유서 깊은 신촌 창천 교회 현 담임 목사이자 20여 년 전 신우 회 결성 초기부터
담임 목사로 헌신하고 있는 구 자경 목사의 세 번째 영상예배 설교도
첫 두 영상예배의 설교와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5장이었다.  
설교 서두에,

“우리가 환경에 적응도 잘 하지만 잊기도 잘 합니다.
코로나 이전에 어땠습니까?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힘들어졌다고 불평불만에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닥치자 이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길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다고 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

코로나가 우리에게 미치는 가장 큰 고통은 불확실성이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지내야 되는 지 기약이 없어 무슨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여름이면 끝날 거로 기대했고 늦어도 연말에는 사라지겠지 했는데
미국은 누적 확진 자가 800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가 22만을 넘고
하루 확진가가 8만 명을 넘는 등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조만간 확진 자 수가 1,000만 명이라는 초기에는 누구도 상상도 못했던 수자를
돌파할 거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언제까지 얼마나 더 많은 환자가 발생할지
도대체 앞일을 예측 할 수도 없고 그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유럽도 재 확진 되어 확진 자 수가 처음보다 오히려 더 빨리 늘고 있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독일 등 주요 국가의 확진 자 수가 하루에도 몇 만 명에 달하고 있다.
동남아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하루에 확진 자가 수천 명에 이르고
멀쩡하던 미얀마, 말레이시아도 하루 확진자수가 천명을 넘고 있다.
인도를 비롯한 서남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는 속수무책인 거 같다.
그나마 우리는 선방을 하고 있지만 세계가 이런 판이라 우리만 멀쩡할 수가 없다.
코로나가 이때까지의 삶의 루틴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예수님이 38년 병을 앓은 환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라고 이르시는데
이 말씀은 세 개의 동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선 스스로 일어나야 되고
다음에는 자기가 깔고 누워 있던 자리를 들어야 되고
그리고 연못으로 걸어가 천사가 나타나 연못의 물을 움직일 때
남보다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병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
깔고 있던 자리를 들어라 고 이르시는 건 다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결의를 하라는 겁니다.
무기력하게 젖어 있던 일상에서 탈피하라는 겁니다.
편의에 빠져 있으면 38년 고질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좀 의아하게 여길 부분이 있습니다.
육신이 병약해 물이 움직일 때 먼저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차지해버려
자기 차례가 돌아오지도 않고 누가 처지를 불쌍히 여겨 데려다주지도 않아
38년을 자리 깔고 연못까지 기를 쓰고 가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한 한 병자입니다.
그런 병자에게 스스로 일어나 자리를 들고 연못으로 걸어가라 라고 하십니다.
어떻습니까? 이왕 도와주는 거 자기기 부축해 연못으로 데리고 가던지
아니면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해 연못으로 들어다 놓던지 하면 될 텐데
38년을 앓아누워 있던 병자에게 일어나 자리까지 들고 걸어가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 한자 사자성어에 ‘줄 탁 동 시’ 라는 말이 있습니다.
‘줄’은 달걀이 부화하려 할 때 알 속에서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연약한 부리로
껍질을 두드리는 소리를 말하고 ‘탁’ 은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그 부위를 정확하게 쪼아 깨뜨리는 걸 말 합니다.
알 속에서 금방 부화한 병아리가 무슨 힘이 있어 껍질 안에서 그 두꺼운 껍질을
깰 수 있겠습니까? 그냥 어미가 감지할 수 있도록 한 곳을 열심히 두드리는 겁니다.
어미 닭은 귀 기울이고 있다가 소리 나는 자리를 정확히 쪼아 껍질을 깨어
병아리가 나올 수 있게 합니다.
어미가 할 일은 병아리가 부화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거 바로 거기까지입니다.

38년 환자의 간구가 예수님께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껍질을 깨뜨려 주셨습니다.
그 다음은 자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하지도 못 했고 좋아하지도 않아
뭐 특별히 잘 하는 과목도 없었지만 한문은 정말 취약과목이었다.
글자 자체도 복잡해 마음에 안 들고 무작정 외워야 하는 게 게을러빠진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그래서 한문 시험 만점은 도맡아서 하고
한시를 좔좔 외고 일필휘지로 휘갈겨 쓰는 한성이가 너무 멋있게 보였었다.

한성이는 지금도 한지에 자기가 직접 이름을 한문으로 쓴 명함을 사용하고
연말이면 그 해 해당하는 12지를 희화화한 경구를 자기가 특별히 주문한 한지에
초서체 비슷한 자기만의 독특한 서체로 붓으로 쓰고 도장까지 날인하여
친지들에게 일일이 보내주고 있다.

내가 지철이한테 꼼짝 못하고 주눅이 드는 이유도
지철이가 아직도 그 긴 제갈 량의 출사표 전 문장을 줄줄 외고 쓰고 하는데 질렸기 때문이다.
중국 가서도 출사표를 좔좔 읊어 중국 토박이들을 기 다 죽였다고 한다.

그래서 ‘줄 탁 동 시’를 찾아봤더니 원래 불교 용어라고 한다.
줄은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하기 위해 껍질 안에서 내는 소리라고 하며
졸병할 때 졸자 왼쪽 변에 구(口) 를 붙인 글자인데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지 않아
한자로 바꿀 수 없고 啄은 부리로 쪼다라는 뜻이고 그리고 같은 때 라는 ‘同時’이다.
껍질 안에서 내는 병아리의 신호를 듣자마자 어미가 부리로 껍질을 깬다는 뜻으로
제자가 수행 끝에 어느 지경에 이르면 스승이 그 걸 알아차리고
단박에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 우선은 간구하는 게 있어야 합니다.
  이 나이에 뭘, 하고 원하고 간구하는 게 없으면 나머지 인생은 의미가 없는 삶입니다.
  그냥 하루하루 연명하는 겁니다.
  원 하는 게 있고 열심히 간구하면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답을 실행하여 원 하는 걸 성취하는 건 각자의 몫입니다. “

‘ 줄 탁 동 시’, 처음 듣는 사자성어지만 그런 뜻의 사자성어라는 게 천만 뜻밖이었다.
그리고 자그마한 감동과 충격으로 와 닿았다.
껍질 속에서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은 연약한 부리로 껍질을 두드리며
어미에게 신호를 보내는 알 속의 병아리의 간절함과
이제나저제나 귀를 곤두세우고 알 속에서 두드리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어미닭의 초조함이
가슴에 그대로 와 닿아 아무리 머리가 노화되어 기억력과 암기력이 쇠퇴하더라도
노망이 들지 않는 한 쉽게 잊혀 지지 않을 거 같다.

다음 주부터 몇 주간은 개인 적인 사정이 있어 토요살롱 게재를 못 할 거 같으니
미리 독자들 양해를 구합니다.
환절기 감기, 건강 유의하시기 바라며,
2020.10.24.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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