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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1-04-10 21:53:33, Hit : 213, Vote : 59
  토요 살롱 320회 " 봄의 향연 "

아침저녁으로는 여전히 쌀쌀하지만 사방천지의 색깔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메말라 불그죽죽 퇴색한 채 온통 쓸쓸한 황량감만 더해주던 철쭉 이파리가
어느 샌가 윤기 품은 초록으로 싱싱함을 더해 가고 있고
지난 주말쯤에는 일 년 내내 핀다는 베고니아가 언제 심었는지
슬그머니 산책 길 구석 한 켠을 차지하고 진홍 붉은 색이 두드러지게 피어있어
무심결에 지나치다 흠칫 놀라게 하더니
불과 며칠 사이에 꽃 잔디가 연보라색 꽃무늬 타일을 깐 듯이 땅바닥에 다닥다닥 피어있고
공원 정상 광장을 둘러 싼 대형 항아리 화분들에는 흰색, 노란색의 데이지,
흰색과 연보라가 조화를 이룬 팬지, 노랑 코스모스, 짙은 주황색 베고니아 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빽빽이 담겨 있고
무미건조하기만 하던 공원 산책길은 양 연도를 따라 앞면에 튤립을 필두로
뒤로는 오만 색의 기화요초 꽃들이 무작위로 현란하게 만발해 있다.

보잘것없는 그믐달 달빛에도 하얗게 눈이 부시던 벚꽃이 다 떨어지고
가지에 첫눈 내린 눈송이처럼 순결하게 얹혀있던 하얀 목련도 다 떨어지고
떨어진 자리는 새 잎이 돋아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무성한 초록색으로 덮여
그 마음을 설레게 하던 화려한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직도 길바닥에 드문드문 깔려 있는 꽃잎들이 겨우 지난 과거의 영광을 회상케 하지만
아쉬워하거나 그리워할 겨를도 없이 형형색색 튤립이 하늘공원 정원을 온통 차지하고
공원길 양 옆 연도에도 진홍색, 주황색, 노란색, 하얀색, 색에 따라 줄과 열을 바꿔가며
꼿꼿한 봉오리를 탱탱하게 솟구치고 있다.
튤립의 유혹, 튤립의 계절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지 끝에 무슨 열매가 달린 거처럼 빨간 꽃망울만 빼꼼 보이던 철쭉이
오늘 아침에는 곳곳에서 연분홍색, 연보라의 청순한 꽃잎을 터트리고 있었다.
지난주까지 극성을 떨치던 미세먼지와 황사도 물러나 따사롭고 청량하고 화창한
매일 매일이 꿈같은 봄날이다.
코로나로 중국의 공장 가동 율이 떨어져서인지
미세먼지 유입과 황사 현상이 현격히 줄어들었던 지난 해 봄에 이어
거의 생전 처음으로 2년 연속 잔인한 계절이기는커녕 그 반대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봄날을 맞이하고 있다.

게다가 3주 연속 주말마다 비가 와 겨우내 언 땅을 녹이고 대지를 적시고
새 생명을 잉태케 하고 성장하게 하는 젖줄을 대어주고 있다.
이번 주말은 맑은 날이라고 하지만 바로 다음주 월요일부터 이틀간 또 비소식이 있다.
이렇게 때마침 내려주는 비가 황사를 씻어내고 겨우내 마른 대지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가라앉혀 대기를 정화시켜 간간히 불어오는 봄바람이 상쾌하기만 하다.

이렇게 푸른 생명의 대지 위에 초록 내음이 신선하고
온갖 꽃들이 형형색색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 눈을 어지럽히고
청명한 하늘아래 따사로운 햇살이 간지럽고
상쾌한 바람에 실려 오는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켜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어볼 수 있는 경이중 하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바야흐로 봄의 축제, 봄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매년 한식 성묘를 4월 5일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주말이거나
주말이 아닌 경우는 대구 친구들의 일정에 따라 편리한 날을 잡아 떠난다.
대식이가 토요일에 진료를 일찍 마치고 다음 날은 휴진이라 보통은 토요일에 약속을 하지만
토요일이 5일을 넘기는 경우는 평일에 만나게 되는데 가급적 금요일에 약속을 하게 된다.
그래도 3,4,5일 중이지 그 이전에 떠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전 주말인 3일 아침 일찍 떠나 그날 성묘를 마치고
저녁에 대구 친구들인 대식이, 남철이와 만나기로 하였으나
대식이가 마침 불가피한 일이 생겼다고 하여 남철이와 둘이서만 만나야 되어서
남철이와는 구지 주말에 만날 이유가 없어
하루 당겨 금요일인 2일에 떠나고 저녁에도 일찌감치 만나기로 하였다.
그러니까 불과 하루 이틀 사이지만 한식 성묘 가는 날 중에
이번이 가장 빠른 날이 아니었나 싶다.

왜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냐하면
해외에서 돌아온 1989년부터 매년 한식에 성묘를 다녔으니까 금년이 32년째인데
그 동안 단 한해도 서울에 벚꽃이 핀 걸 보고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년보다 하루 이틀 일찍 떠난 2일 날 이른 아침,
지난겨울 그 혹독했던 추위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침을 뚝 떼고
유례없이 빨리 손바꿈을 한 계절의 변화에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아파트 단지 내 단지 울타리를 둘러싸고 심겨진 벚나무들,
그리고 큰길가 가로에 늘어 선 벚나무들의 가지에 하얗게 만발한 벚꽃의 전송을 받으며
그것만으로도 들뜬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또한 금년이 부친이 돌아가신 지 60년이 되는 해고 장인어른 20주기 되는 해다.
나름 의미가 있는 성묫길이다.

금요일이라 교통 체증을 각오하고 평소보다 좀 일찍 출발했으나 기우였다.
좌우 산야를 눈이 어지럽도록 하얗게 수놓은 벚꽃을 감상하며
문경새재 휴게소까지 영동고속도로, 중부 내륙 고속도로를 내쳐 달릴 수 있었다.  
시간을 많이 단축했기 때문에 문경 새재 휴게소에서 잠깐 여장을 풀고
느긋하게 커피 한잔을 마시며 남철이에게 전화를 해 현 위치를 알리고
아쉽게도 이번에 못 만나는 대식에에게도 전화를 했다.

그러고 되돌아보니까 지난 수 십 년 세월, 성묘로 가든 다른 일로 가든 대구에 가며
대식이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 온 경우가 없었던 거 같다.
대식이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대구에서 다닌 연고가 있지만 그 때는 학교가 달라 몰랐고
그래도 고1때 입학하며 만났으니까 50년이 넘는 세월 풍파를 함께했다.

“야, 대식아, 임마, 내가 대구 와서 니 못 보고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 그래 말이다. 미안해서 우짜노. 이번 주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래 됐다.
다음 주말에는 괜찮은데.“

“다음 주말에는 혜인이 부인하고 혜인이 면회 가기로 했다.
지난 주말에 다녀왔는데 언제 면회가 금지 될지 모르고
혜인이가 그나마 의식이 좀 남아 있을 때 가보려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대식이에게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영천 호국 원으로 접어드는 길 가 가로수와 경내 가로수는 전부 벚꽃이다.
그건 약과다.
호국 원 훨씬 이전에 상주-영천 간 고속도로에서 동 영천 톨게이트를 벗어나
영천-포항 간 국도에 들어서면서부터 도로고 산야고
간간히 차창을 스치고 지나가는 옹기종기 몇 가구뿐인 마을을 둘러싸고도
온통 천지가 분홍빛을 띤 하얀 벚꽃 천지다.

“ 서울 오빠, 오셨능교. 안 그래도 이번 주말에 오실 기라고 기다렸어예. ”

창성공방 아낙네는 지난해만 하더라도 ‘서울 오라버니’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대 놓고
아예 ‘오빠’다.
주섬주섬 챙겨주고는,

“오빠, 전화번호 좀 주이소. 가끔 안부전화 드릴게예.”

"아니, 이 여편네가? “

잠시 어이가 없었지만 똑 바로 쳐다보는 눈에 전혀 가식이나 장난기도 없고
그렇다고 술기운을 빌린 거라고는 할 수 없는 말짱한 얼굴이라 얼떨결에 가르쳐 주고 말았다.

“ 그러고예, 가게 앞에 적힌 번호는 지 남편 거라예.
  지 번호로 전화드릴 거니까 창성공방 이라고 입력해 두이소.“

하기야 내려오기 전에 미리 연락해두면 편리한 점도 있을 거 같았다.

자매가 운영하는 석계 칼국수 집도 여전했다.
그러나 점심때가 갓 지난 시간인데도 의외로 한산해 본채에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오후 3시 무렵이었는데도 본채가 꽉 차
달개로 달아 낸 별채에 안내받아 쌩쌩 날아다니는 자매들과는
겨우 한 두 마디 인사말 외에 휙휙 지나치는 실루엣만 고개를 돌려가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었다.

“왠 일이야? 이 시간에? 한가하네?”

“아이라에. 금방 한바탕 전쟁 치렀어예, 칼국수 드실 거지예?”

철철 넘치게 담아 온 칼국수는 곱빼기가 아니라 3인분은 족히 되는 거 같았다.
칼국수 맛도 훨씬 좋아졌다.
육수가 맹물이 아니라 쌀 뜬 물인데다 대파 등 야채를 푹 우려내 국물이 달고 구수해졌다.
돌아가신 아줌마 때 김치는 젓갈을 넣지 않고 소금과 고춧가루만으로 양념을 한 짠지였지만
자매들이 맡은 후 새우젓이 들어가는 대신 소금 량을 줄여서인지
덜 짜고 맛이 많이 개선되었었는데 이번에는 훨씬 더 좋아졌다.
잘 익은 김장김치의 깊고 시원한 맛이 거의 수준급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가마솥의 국수를 젓고 있는 아저씨 모습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줌마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부터 언제 갈아입었는지 초라한 행색에
며칠째 세수도 하지 않았는지 꾀죄죄한 얼굴에 근심을 잔뜩 실은 낙담한 표정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핏발 선 눈으로 처마 끝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피우는지 피우는 걸 깜빡했는지 담뱃불은 붙였는데
타들어가는 담배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안쓰럽고 처량하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정갈한 옷차림에 셔츠 팔을 걷어 올리고 이마에 하얀 천을 두르고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연신 싱글거리며 힘차게 가마솥을 젓고 있었다.
그렇게 보여서 그런지 얼굴에 주름도 펴지고 혈색도 불그레 생기가 돌고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시집 간지가 언젠데 점점 더 이뻐져?
몸매도 처녀보다 더 날씬하고. 누가 아줌마라고 하겠어?
장사가 재미있어서 그런 거야, 신랑이 잘 해 줘서 그런 거야?“

국수 젓기를 잠깐 멈추고 고개를 들고 환하게 웃는 시아버지를 힐끔 쳐다보고는,

“예쁘게 봐 주셔서 고맙십니더. 남편이 잘 해줘서 그런가봐예.”

얼굴을 붉히며 눈을 내리깔고 수줍게 고개를 떨구는 순진한 모습이 참 예쁘다.

“동생도 이제는 처녀티가 나네. 자매 아니랄까봐 점점 언니를 빼 닮아가는구나.
두 미인 자매가 미인계로 동네 손님을 다 끌어 모으고 있구만.“

“아이라예. 어머님 하실 때가 손님이 더 많았어예.”

옆의 시아버지도 정색을 하며 고개를 끄떡인다.

“그렇지 참, 돌아가신 아줌마가 참 후덕했지.
그러고 보니 금년이 호국 원에 모신 우리 장인어른 20주기니까
나도 이 집을 다닌 지가 20년이 됐네.
그래서 돌아가신 아주머니도 내가 올 때마다 반겨줬었는데, 참“

“그렇십니꺼? 그럼 거의 초창기부터네예. 그렇게 오래 되셨는 줄 몰랐어예.
그런데 바로 서울 올라 가십니꺼?”

“대구 가서 하룻밤 자고 올라가려고.”

“그라문예, 제가 선물 하나 드릴게예.”

그러고는 냉장고 문을 열고 제법 묵직해 보이는 꾸러미 하나를 끄집어냈다.

“지들이 만든 순두부라예. 대개 맛있어예.”

상호는 칼국수집이지만 두부가 더 많이 팔린다고 했다.

두류공원 할머니 모포부대는 여전했다.
낯익은 할머니들이 반색을 하며 반겨주고 주변을 정리해주고 돗자리도 깔아 주고
혼자서 조용히 예를 차릴 수 있게 멀찌감치 자리도 비켜주었다.
60년, 이제는 풀도 자라지 않는 민둥 산소를 참배하고 막걸리 한통 비우며
이런저런 생각에 시간을 보내다 남철이와 만나기로 한 정해둔 숙소에 도착하니
약속시간 10분 전이었다.

셋이서 늘 가던 생고기집 ‘거기’가 문 닫았기 때문에
지난번에는 셋이서 숯불고기 집으로 갔지만 이번에는 숙소 근처 같은 생고기 집인
‘두산일번지’ 로 갔다.

원래 대식이와 늘 가던 곳이 ‘두산일번지’ 였었는데 남철이가 합류한 후
남철이의 단골이었던‘거기’로 옮겼었기 때문에
‘두산일번지’가 오히려 우리 조촐한 모임의 원조 장소였던 셈이다.
메뉴나 밑반찬이나 서비스 요리나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생고기 전문집으로는 ‘두산일번지’의 역사가 더 오래됐다.
이 집은 두자매가 경영을 하고 있는데 언니가 카운터를, 동생이 주방을 맡고 있다.

남철이와 둘 만인데도 이야기가 끝이 없다.
이차로 늘 가던 스쿨이란 7,80년대 팝송을 틀어주는 바에서
늘 마시던 마가리타 한잔씩을 마시고 밤 10시 문 닫는 시간이 돼서야 미적미적 일어났다.
코로나로 영업시간이 밤 10시로 제한됐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쉽게 자정을 넘겼을 거다.
아무리 일찍 만나도 아쉽긴 마찬가지라 헤어질 땐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그 유명한 앞산 대덕식당에서 선지 해장국으로 배를 넉넉히 채우고
다음 행선지인 금강 휴게소로 나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김천을 지나 추풍령을 지나면서 장맛비처럼 쏟아져
와이퍼가 감당을 못해 앞이 안 보일 정도가 퍼부었다.
하루 일찍 출발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우중이라 베란다를 폐쇄해 늘 가는 커피 매점에서 샷을 추가한 진한 커피 한잔 사들고
식당 안 강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에 앉아 비 내리는 강을 바라보며
잠깐 아이들 어렸을 때 바로 저 강가에서 있었던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남철이에게 전화를 하고 대식이한테도 전화를 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셋은 공교롭게도 오랫동안 독거생활을 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친구라면 좋은 일이 있을 때 같이 기뻐해주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곁에 있어주어
위로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새삼 해 본다.

엉뚱한 전화도 받았다.

“오빠, 비가 많이 오는데 운전 조심해서 잘 가이소.
가끔 안부 전화 드릴겁니더.“
아 예,예 하고 얼버무렸지만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오히려 슬슬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전화를 기다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안창에 도착할 때까지도 비는 그치지 않았고 빗줄기가 가늘어지긴 했지만
밤새 쉬지 않고 내렸다.
지난 설에 이어 이번에도 슬레이트 지붕위로 비 떨어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큰 조카가 미리 지펴 둬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오랜만에 푹 곯아떨어질 수 있었다.

다음주말에는 지방 일정이 있다.
부득이 토요살롱 건너뛰게 됨을 양해바라며,
2021.04.10. 송 종 호.




토요 살롱 321회 " 희소식이 아닌 무소식 "
토요 살롱 329회 " 어김 없이 봄은 다시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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