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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1-05-08 22:06:56, Hit : 120, Vote : 42
  토요 살롱 322회 " 특별한 송별 여행 "

날이 부쩍 길어져 새벽 5시면 벌써 숲 속에서 재잘대는 새소리가 시끄럽고
희끄무레 사방이 훤하게 밝아지고 있다.
봄 치고는 비도 자주 와 지난 주 금요일에는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자정 무렵에는 돌풍을 동반하여 쏟아지기까지 하며 제법 많은 양이 내렸는데
이번 주 화요일에도 막 운동을 마칠 무렵인 7시 좀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오전에 잠시 그쳤지만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쉬지 않고 내렸고  
어제도 아침나절에 여름철 소나기처럼 잠시 퍼붓다 지나갔다.

지난주 금요일에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는,
2010년 경 부터니까 10여 년간 형, 아우하며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내고 있는
아홉 살 연하 사회 후배네 농장겸 별장에 초대받아
마침 이른 저녁부터 둘이서 한참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던 참이었다.

이 녀석도 한잔 하는 걸 워낙이 좋아해 만나면 반드시 한잔 걸치게 되어 있고
깡촌에서 6남매 막내로 태어나 지방 대학을 졸업하고 맨몸으로 상경해 일가를 이룬 녀석이라
한잔 들어가면 할 말도 많다.
주량이 비슷한데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맞장구도 잘 쳐 주니까
속에 담아 둔 별 이야기를 다 늘어놓는다.
자기 말로는 자기 친 형들이나 누나들보다 내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한다.

비록 지방대학이지만 막내인 자기만 대학을 졸업하고 일찌감치 자수성가 하여
겉보기에는 부유하게 보이니까
집안 대소사를 도맡을 수밖에 없고 형제들, 조카들도 뻑 하면 손 내밀고 의지하려 하고
들어주면 당연하게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대놓고 욕을 해대니까
이제는 자기도 지쳐서 어떤 때는 형제간의 인연을 싹 끊어버리고 싶기도 하다고 했다.
‘너는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 나오고 사업에 성공하고 잘 살잖냐. 이것 좀 들어 줘.’
‘니 친 조카야. 너는 혈육의 정도 없는 놈이냐.’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윽박지르면 한두 번이면 몰라도 늘 상 그런 식이면
하기야 넌더리가 나지 않을 수가 없을 거 같다.

술 한 잔 하다 나도 모르게 막말을 마구하거나 애 취급을 하면,

“형님, 저도 금년에 환갑입니다. 하하”

넉살도 좋고 느긋한 성격인 반면 약속은 칼 같이 지키고 선배에게 예의도 바르다.
약속 시간보다 언제나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
술값도 항상 자기가 먼저 내려고 한다.

검단 산 입구까지 5호선 전철이 연장 개통 되어 교통도 많이 편리해져
전철 개통 후 벌써 두 번째 방문이었다.
그 전에는 금요일에 가게 되면 그 친구 퇴근길에 회사 앞에서 만나 같이 가거나
주말일 경우 9호선 종점인 중앙보훈 역으로 데리러 오곤 했는데
역에서 농장까지 자동차로 20분 이상 걸리는 상당한 거리였다.
지금은 검단산역이나 하남시청 역까지 전철로 갈 수 있게 되어
어느 역에서든 자동차로 7분 정도의 거리다.
보통 저녁 5시쯤에 만나 들어가는 길에 저녁거리, 안주거리, 다음날 아침 해장거리로
장을 보는데 주로 해물 위주고 술은 언제나 서울 장수막걸리다.
6통을 사 들고 가면 둘이서 딱 맞다.

수년전부터 자기 농장에 와 보라고 노래를 하다시피 졸랐지만
토요일에는 별 일이 없으면 토요 살롱을 쓰느라 짬을 낼 수 없었고
일요일에는 빨래 등 밀린 집안일에다 교회도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어, 그래 알았어, 날 잡을게’ 라고 대답은 언제나 주저 없이 시원하게 했지만
건성으로 한 대답이었지 실지로는 갈 수 있는 입장이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고 평일에는 그 친구도 회사 출근해야 하고
나도 제법 일정이 있어 더욱 가능하지가 않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더 이상 미루면 오해받거나 원망 받을 거 같아
마지못해 어느 토요일 토요살롱 미루고 처음 방문한 게 2년 전 이맘 때였다.

하남에서 수원으로 가는 왕복 8차선 국도를 따라 달리다
신도시 개발지구로 지정된 교하지역의 끄트머리와 맞물리다시피 하여  
왼쪽으로는 줄줄이 이어지는 주택가 저 멀리 검단 산이 솟아 있고
그 맞은편 개발이 제한된 임야 지역에 겨우 차 한 대 비껴 다닐 수 있는 농로로 들어서서
오른쪽으로는 수풀이 우거진 야트막한 야산으로 막혀 있고
왼쪽으로는 야산을 끼고 물이 흐르는 좁다란 계곡과 사이에
임자마다 구획이 나누어져 품종도 다양하게 밭떼기가 일구어진 꼬부랑길을
3-4km 들어가다 막다른 길까지 가면
막힌 끄트머리 왼쪽으로 열댓 평 남짓 슬레이트 지붕 단층짜리 살림집이 있고
그 바로 전면에 바닥 평수 50평에 높이가 6m인 창고가 지어져 있는데
그 앞으로는 계곡 따라 길쭉하게 블루베리 나무가 심어져 있다.

명색이 블루베리 농원이고 그 저장 용도로 허가를 받아 창고를 지었다고 한다.
지난 해 가을 수확 철에 한나절 블루베리 따주었는데
내가 딴 거보다 더 많이 가져와 냉동해 두고두고 실컷 먹었었다.
자기가 직접 담근 블루베리 잼도 몇 통 받아왔는데
때마침 지난 가을에 한국에 다니러 온 애들 엄마의 평에 의하면
블루베리 순도 100%의 최상품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껴 먹느라 아직도 조금 남아 있다.

찻길과 블루베리 과수 사이에는 철 맞춰 토마토, 배추, 상치, 마늘, 파 등 채소를 심어
자급자족도 하고 가까운 친지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친구는 금요일 퇴근하면 바로 농장으로 달려가 주말을 농장에서 보내고
월요일 아침 출근을 농장에서 한다.
버릇이 되어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 농한기가 되어도 주말에는 무조건 농장이다.
10여년 이상 그러다보니까 농사일 잘 알고 잘 하는 농사꾼이 다 되었다.

지난 주 금요일은 비 예보가 없었기 때문에 아침에 나가며 우산도 챙기지 않았었다.
오후가 되며 날이 점차 흐려졌지만 비가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 했다.

그것도 산중이라고 어둠이 빨리 깔리면서 기온이 뚝 떨어진다.
해가 떨어지면 하늘에 달만 덩그렇지 주변에 인가가 없어
간간히 밤벌레들 부스럭대는 소리 뿐 사방이 유난히 깜깜하지만
막걸리 잔을 기울이기 시작할 때만 해도 밖이 훤했었다.
바깥에 지붕을 이어 차양을 늘이고 바닥에 마루를 깔고
그 위에 창이 넓은 파라솔 달린 4인용 원탁 테이블을 뒀는데
거기다 술상을 차리자고 하니까,

“아따, 형님, 아직도 청춘이네요. 해 지면 밤바람이 찹니다.
평균 기온도 서울보다 몇도 낮고요. “

막걸리를 반쯤 비웠을 때쯤 현관 마루를 사이에 두고 별채로 연결 된 화장실에 가려고
현관문을 여니까 깜깜한 어둠 속에서
후두둑 슬레이트 지붕을 때리는 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밖을 보자 방안에서 새어나온 형광등 불빛에 빗줄기가 급하게 흩어지고
흙 마당 패인 곳마다 물방울이 통통 튀기고 있었다.

“아우야, 술상 밖으로 옮기자.
야, 지붕에 비 떨어지는 소리, 마당에 빗방울 퐁당거리는 소리, 술 맛 끝내주겠다.
비 소리 들으며 바깥에서 술 마셔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날 잘 잡았네.“

“아이고, 형님, 추워요.
그러고 할머니라도 치마 두른 여자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비 맞고 덜덜 떨면서 독거노인 둘이서 이 무슨 청승입니까. “

입이 한발은 나와 투덜대는 녀석을 재촉해 파라솔 아래 테이블로 술상을 옮겼다.
파카를 걸쳐 입고 심드렁하게 쭈그리고 있는 녀석에게 가득 채운 막걸리 잔을 건네며,

“자자, 아우야, 얼마나 낭만이냐. 우리가 앞으로 이런 날이 얼마나 더 있겠냐.
기분 좋게 쭉 들이키자. “

이렇게 막걸리 6통을 다 비우고 막걸리보다 비 소리에 더 취하고
후배 녀석 코고는 소리 자장가 삼아 등짝이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이불 깔고
술 떨어지자마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데 비록 잠은 설쳤지만
새벽에 일어나니 숙취는커녕 몸이 그렇게 가뿐할 수가 없었다.
밤새 내린 비는 줄기가 가늘어졌지만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형님, 비가 와서 일을 못하게 됐는데 여기서 저하고 막걸리나 마시며 주말 보내고
월요일 아침 일찍 저하고 같이 올라갑시다.
어차피 혼자 계시고 뭐 반겨 줄 사람도 없잖아요?“

생각이야 굴뚝같았지만 토요일 12시에 강 성원 치과 예약이 되어 있고
일요일에는 오 성진이와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혜인이 대면 면회를 가기로 되어 있었다.
3월부터 한 달에 두 번 대면 면회가 허락되어 3월 말에 혜인이 처와 한 번 다녀왔고
4월에는 한성이와 같이 한 번 다녀왔다.
5월에 두 번 면회 중 한 번은 성진이, 한 번은 서울의대 교수를 정년퇴임한 최 명식이와
다녀오기로 해서 지난 일요일에 성진이와 먼저 다녀왔다.
두 명밖에 면회가 허락되지 않아 누가 동행하면 혜인이 부인은 로비에서 대기해야 한다.
혜인이가 다행히 성진이를 알아봤고 다음 주에 명식이가 올 거라니까 감정이 복받치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혜인이는 볼 때마다 눈에 띄게 쇠약해지고 있다.
내일 명식이와 갈 텐데 제대로 알아나 볼지 걱정이다.
지난번에는 한쪽 눈이 완전히 감겨 있었다.
다리를 못 쓴지는 오래됐는데 이제는 팔도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 한다.
신체기능이 거의 상실한 쇠잔한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찡할 뿐이다.
혜인이 부인이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2013년 7월에 결혼했을 때 혜인이는 환갑 나이였고 부인은 17세 연하였다.
둘 다 초혼이었고 결혼한 지 4년이 조금 넘은 2016년 12월에
혈관성치매라는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으니 지금 투병한지 4년 반이 되었다.

튤립이 지고 그 화려하던 모습이 잊어질까 지워질까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마음을 아리게 하기도 전에
그 빈자리를 진홍과 연보라의 철쭉, 철쭉과 모양은 같지만
꽃잎이 좀 더 넓은 하얀 색의 개 벚이 산책길이고 둔덕이고 정원이고를 뒤덮으며
채워주는가 했는데 봄비 한두 번 내리더니
그토록 사방을 삼색으로 물들였던 철쭉과 개 벚도 시들시들해지며 한 시대를 마감하고 있다.
촘촘히 피어 있던 꽃잎이 거의 다 떨어지고 군데군데 듬성듬성 몇 송이만 남아있다.

언제부터인가 줄기는 수선화줄기인데 꽃잎은 목화송이처럼 수북하고
색깔은 샛노란 나팔수선화가 하늘공원 둔덕을 노랗게 수놓고 있고
길가 풀 섶 사이에는 노란 민들레가 온통 초록 가운데 도드라지게 눈에 띄고 있다.

천연색 필름이 고속으로 돌아가듯이 꽃들이 피고지고 그만큼 세월도 고속으로 흘러
쌀쌀한 날일망정 절기상으로 금년 봄도 이미 절정을 지나 반환점을 돌았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금년 봄도 지난해 봄처럼 그럭저럭 넘어가나 조마조마했었는데
황사는 발원지가 고비사막이라고 알고 있지만 오비이락이랄까
중국이 코로나를 극복하고 산업 생산 시설을 풀가동한 탓으로 돌려야하는지
기어코 불청객이 찾아왔다.
이번 주 들어 비가 내린 후인 그저께 새벽부터 대기의 먼지 농도가 심상치 않더니
어제부터 중국 발 사상 최악 황사가 봄 하늘을 덮쳤다.
일단은 내일 오후에는 물러간다는 예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당분간 비소식도 없어 꼼짝없이 당하고 있어야 할 거 같다.
날이 더워져 동남풍이 불어와 서쪽에서 날아오는 먼지를 밀어내는 방패가 될 때까지
더 이상 황사가 날아오지 않는 요행을 바랄 뿐이다.

재호가 불쑥 ‘나, 미국으로 이민 가. 5월 16일 떠나.’ 라고 했을 때
뭔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주변 가까운 친지들과 하나 둘 이별을 해야 하는 나이이고
언젠가는 스스로가 작별을 고해야겠지만 70평생 살아오며 수많은 이별을 겪었고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간접 경험을 하여 이런 이별 정도는 익숙해져 있어야 하는데도
어떠한 이별을 막론하고 이별이란 언제나 또다시 새롭게 뭔가 잃어버리는 거 같은 아쉬움,
뭔가 아직도 미진한 게 있는 거 같은 여운,
그리고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휑하고 구멍이 뚫리는 거 같은 아픔을 안겨 준다.

미국으로 이민 간다고 해서 아주 못 보는 거도 아니고
버지니아 집에서 재호가 정착한다는 라스베가스 까지 4,000km,
서울-부산 거리의 거의 열배에 달하는 먼 거리지만
정 보고 싶으면 미국 갔을 때 넉넉히 시간 잡아 차 끌고 한 번 가 볼 수도 있는 거고
요즘 세상에 생각나면 전화도 할 수 있고 영상으로 모습도 볼 수 있고
SNS로 문자도 주고받고 이메일로 서신 교환도 할 수 있겠지만
같은 하늘 아래에 있어 언제든 만나 밥 한 끼 같이 먹고 차 한 잔 하며 수다 떠는
일상의 자그마할지라도 소중한 행복이 있었는데
‘이제는 재호와 그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가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아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재호는 우리 24회 신우 회 창립멤버이면서 중추역할을 하고 잇다.
많이 그리울 거다.

“ 매년 여름에는 올 예정이야. 손자들 ESL 학원이 미국보다 한국이 훨 낫다는 거야,
  그래서 애들 여름 방학에는 데리고 오려고. 와이프가 스케줄 이미 다 짜 놨어. 흐흐 “

그러나 나이가 더 들어가며 우리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후일을 기약할 수가 없다.
재호가 여름마다 오더라도 여름철이라 서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아마 다시는 대면하지 못 할 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그 기간만큼 쌓인 인연도 많아 주변에 사람들이 더글더글하고
만나 볼 사람도 더 많을 거 같은 데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인 거 같다.
아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만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늙으면 친구밖에 없다고들 하지만 친구든 친지든 정기적으로 만나
그 시간만큼은 같이 즐거울 수 있기가 여의치 않다.
설사 그런 모임이 형성되더라도 의례적인 모임으로서 서로 조심조심하며
오래 지속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언제나 기대되는 모임이 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재호, 준호와 가끔씩 만나 점심 먹고 차 마시며
아무 부담 없이 한담하다 헤어질 때면 기꺼이 다음을 기약하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된 게 아쉬운 거다.

“송별회를 크게 해 줘야 할 텐데 서울에서는 5인 이상 모임을 할 수가 없으니
어때, 속초로 갈까? 속초에 희근이, 수택이, 영철이, 현익이가 있어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들 얼굴 한번 볼 수 있고
송별여행 겸 떠나기 전에 고국의 산야, 동해 바다를 눈에 담을 수도 있고.
아예 공지를 해서 차 몇 대 나누어 타고 가지 뭐“

“좋지, 추진해 봐.”

다음 날 희근이와 통화해 본 결과 속초도 모임이 4인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고 했다.

“3명이 내려와야 해. 그래야 나까지 해서 4명이야.”

“그럼 여기서 4명이 내려갈 테니까 그 쪽 4명해서 두 테이블로 나누자구.”

신우 회 영상예배 진행자들이어서 지난해 8월 첫 영상예배 이후 매달 만나고 있는
흥수, 수종이, 나, 그리고 영상예배를 방영하는 신우 회 밴드를 만들고 관리하고 있는 재호,
이렇게 4명으로 여행 팀을 구성하고 당사자인 재호가 날을 정하기로 해
재호가 복수로 알려준 날 중 모두가 가능한 5월 3일 12시에
희근이 단골인 고성, 아야 진 횟집에서 만나 점심하기로 하고
당일 날 아침 8시 30분, 압구정동 호산 병원 앞에서 집합하여 고성으로 출발하였다.

고성까지 3시간이면 중간에 쉬는 시간을 넉넉히 감안하더라도 충분해
당초에는 9시에 출발할까 했으나 차량 제공자인 수종이가 출근시간 혼잡을 피해
일산인 집에서 7시 전에 출발해 늦어도 8시 반에는 출발지에 도착하겠다고 해
약속 시간을 30분 앞 당겼다.

나도 좀 일찍 도착할 요량으로 일찌감치 집을 나서 1호선 특급을 타고
고속터미널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노량진에서 9호선 급행을 타고 가는데
수종이가 톡을 보내왔다. 아직 8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수종이가 7시 40분에 도착해 보낸 톡이었다.
오랜만의 친구들과 나들이가 설랬는지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1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재호는 이미 도착해 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3년 전 기수, 정규를 태우고 문경 봉재네 다녀온 낮 익은 차라 반가웠다.

도중에 홍천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하고 충분히 여유를 부렸는데도 아야 진 횟집에 도착하니
약속시간 30분 전이었다.
나로서는 아야 진 횟집이 세 번째였다.
2014년 8월에 대학 친구인 서울 중학 23회 길우, 길우와 중학 때 단짝이었던 정준이와
셋이서 강원도 여행하며 희근이의 안내로 처음 들렀었고
지난해 6월 초, 이 명식, 최 지철, 구재수와 강원도 여행길에
속초 동기들 네 명 모두와 함께 점심인데도 거나하게 술잔을 기울였던 게 두 번째였다.
그래서 음식이 익숙하다. 차려지는 모든 해산물이 자연산으로 최상급이다.
그런데 아무도 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 반주가 없었던 게 옥의 티였다.
나로서는 평생 맹물로 회를 먹은 건 처음이었는데
생선회는 역시 반주가 필수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 경험이었다.

점심 식사 후 아야 진에서 차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인 영철 네 농막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를 주차하고 농막 전면으로 아기자기 아름답게 잘 꾸며진 정원으로 들어서자
뜻밖에도 희근이 부인이 농막 현관문 앞에 서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맞아주었다.

“아니 어떻게?”

오신다고 해서 우리 다 먼저 와서 준비 좀 하고 있었지요.”

그러고 보니 현익이 부인도 주방에서 나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급한 볼일이 있어 서울로 출타한 수택이 부인을 제외하고
감격스럽게도 속초 친구들 사모님들이 총출동하였다.
누구보다 당사자인 재호가 감격에 겨워 감정이 복받치는지 울컥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부인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과일, 현익이 부인이 식구들도 안 주고 선물로 받았다는 찰떡,
영철이 부인이 전날 새벽까지 손수 만들었다는 카스테라,
점심을 잔뜩 먹어 배가 부른데도 다들 젓가락, 포크를 쉬지 않고 움직이며
가득했던 접시들이 거의 다 비도록 너무나 맛있게 잘 먹었다.

“너희들, 우리 마누라가 밤새 만든 거니까 이 빵 남기면 안 돼.”

그런 협박 때문이 아니더라도 짜구가 날 정도로 배불리 그리고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그리고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다는 영철이가 끓여준 커피도 일품이라
나는 아이스커피까지 한 잔을 더 얻어 마셨다.

귀경 길에 현익에네 저택에 들렀다.
말 그대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 저택이었다.
여러 종류의 싱싱한 초록 나무와 각양각색 화려한 화초로 잘 꾸며진 2,000평 대지에
건평이 100평은 족히 넘어 보이는 2층 건물 3동이 나란히 서 있었다.
들어가면서 맨 왼쪽 건물 일층이 현익이가 취미로 하고 있는 목공예 작업실인데
전문가 뺨치게 모든 공구가 다 갖추어져 있었고 가운데는 살림 집, 그리고
맨 오른쪽 일층은 놀랍게도 화실이었는데 방안 사방 벽이 그림으로 꽉 차 있었다.

“우리 바깥 사돈어른이 화가야. 큰 며느리 아버님. 나 보다 세 살 위셔.
지난 해 여름 홍수로 작업실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부랴부랴 여기로 작품 다 옮겨
말리고 하던 참에 그냥 여기에 계시라고 했지.“

예술가라 그런지 우리 중 누구보다 젊어 보였다.
현익이도 늙지 않아 내가 현익이를 처음 만나 게 2006년이니까 15년 전인데
그 때보다 몸만 좀 더 났지 그 때나 지금이나
약간 웨이브 진 머리카락도 젊은이 못지않게 풍성하고 흰머리도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얼굴도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해 변함이 없지만
키가 좀 작지만 잘 생긴 미남형의 사돈어른도 못 지 않았다.

현익이는 지가 늙지 않은 거만 생각하고 나를 볼 때마다,

“종호야, 너 왜 그렇게 폭삭 늙었냐?”

사돈어른이 직접 끊여 준 커피는 품격이 달랐다.

“야, 이 커피, 신선하고 향이 격이 다르네. ”

“응, 사돈어른이 원두 골라 와서 직접 볶아.”

점심을 포식한데다 디저트로 과일에다 떡에다 빵을 너무 많이 먹어 좀체 배가 꺼지지 않았다.
서울에 저녁 7시 좀 넘어 도착해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었지만
누구도 저녁 먹자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재호 송별여행에 특별한 추억을 담아주고 의미를 더 해 주고 정성을 다 해 환대해 준
속초 친구들과 사모님들에게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리며,
2021.05.08.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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