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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1-05-15 21:25:00, Hit : 107, Vote : 31
  토요 살롱 323회 " 참된 안식 "

금년 봄은 비도 자주 내린다.
최소한 한 주 이상을 넘기지를 않는다.
주 초에 비록 한나절이었지만 주룩주룩 제법 많은 양이 내렸는데
오늘도 새벽에 몇 방울 찔끔하다가 그치더니 한낮부터 제대로 내리는 비는
모래 오전까지 계속될 거라는 예보다.
어제 예보로는 오늘 새벽부터 한낮까지 내리다 그치고 저녁에 다시 시작할 거라고 해
새벽에 걷기라도 할 요량으로 우산을 들고 나갔지만
다행히 비를 맞지 않고 운동을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비가 잦으면서 대기가 습하니까 우리 같은 비염환자들은
매년 이맘때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고통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어
그야말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다.
이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해야 하고 살맛이 난다고 해야 할까.

봄 가뭄에 대기가 마르고 황사에 꽃가루 날리는 4월 중순이면
마침 3월말로 법인 결산 신고가 끝나기에 필리핀으로 도망갔다
5월 말 개인 소득세 신고 전인 5월 중순에나 돌아오던 나보다 아홉 살 아래 세무사 녀석은
지난해 봄에는 코로나로 꼼짝 못하느라 눈은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가지고
시도 때도 없이 콧물을 달고 목도 부어 꺼이꺼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낮에는 그런대로 견디는데 밤에 잠을 못 자겠으니까 그게 아주 죽겠어요.”

어깨는 축 쳐져서 눈곱 끼고 시뻘건 눈 가리느라 도수 없는 안경까지 쓴 모습이
가련하기 짝이 없었는데 지난 주 안부 차 전화를 해,

“어째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네?
약간 감기 든 거 같이 옐로보이스가 오히려 목소리가 섹시하다 야.”

“아이고 형님도, 흐흐. 비가 자주 와 꽃가루도 가라앉히고 습하고 하니까
그런대로 살 만하네요, 흐흐“

“잘 됐다. 술 한 잔 해도 되겠구나.”

“그럼요. 형님 뵌 지 오래됐는데 형님 편한 날로 날 잡으십시오.
요즘은 저녁 약속이 거의 없습니다.”

이친구와 의형제 맺고 호형 호형한지 25년도 더 됐다.
나는 한참 바쁠 때였고 이 친구는 국세청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하늘 정원은 일주일새 면모를 싹 일신했다.
둔덕에 한자씩 자란 풀 섶 사이사이로 소담스런 목련 송이처럼 노랗게 피어 있던
나팔 수선화도 다 떨어지고 아직 줄기에 매달려 있는 녀석들은
색도 바래지고 쭈글쭈글 시든 채 매가리 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
지난주 처음으로 줄기는 코스모스만하고 꽃잎은 국화를 닮은 샤스타데이지가
드문드문 하얀 꽃잎을 들어내더니 노란색 나팔수선화를 밀어내고 둔덕을 온통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튤립이 만개하던 자리에 새로 심은 노란 천수국, 오렌지색 만수국,
하얀색, 핑크색, 진홍색, 진보라, 4색 페튜니아가 색깔 별로 한 무더기씩 차지하고
조화를 이루며 화려하게 자리 잡았다.
넝쿨장미도 새파란 잎이 무성하게 돋아난 싱싱한 녹색 줄기를 쭉쭉 뻗어가고 있고
가시 도친 장미나무에 어느샌가 연두색 몽우리가 망울지고 있는데
살펴보니 새빨간 장미 두어 송이가 성급하게 피어있다.
  
군데군데 분홍 잔디 꽃이 아직은 여전하고
바로 어린 시절을 회상케 하는 풀 섶 사이 하얀 토끼풀은 반갑기만 하다.
형형색색, 각양각색, 오만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꽃꽂이하듯 정연하게 가꾼
대 소형 화분과 아기자기한 화단으로 잘 꾸며진 산책길이 끝나는 공원 정상 입구에 서면
진동하는 꽃내음 사이로 어디선가 아카시아 향기가 바람에 실려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오늘은 비가 내려 선선하지만 그저께부터 온도가 급상승해
연 이틀 낮의 최고 기온이 30도에 육박했었다.
새벽에 운동 나갈 때는 쌀쌀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선선해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갔다가
점심 이후에는 비록 하절기용으로 홑겹이지만 콤비 자켓을 벗어 들고 다녀야했다.
점심도 하필이면 얼큰한 부대찌개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어
이로 인한 몸의 열기도 아마 체감온도 상승에 한몫 했을 터였다.

대략 열다섯 살쯤 연하인 건축사 사회후배와 약속이었는데
이 친구와는 2,3년 전에 우연히 일 관계로 알게 되어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통화를 하고 이 친구가 술을 전혀 입에 대지도 못해 저녁 약속은 하지 않고
한 달에 한번쯤은 만나서 점심을 같이 한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마른 체격에 키는 나하고 비슷할 정도로 크지만
이 친구가 이빨도 뻐드렁니고 머리도 마구 기른 산발에 눈도 겨우 단추 구멍만 하고
나이에 비해 이마고 얼굴이고 주름이 깊게 패여 나보다는 확실히 못 생겨서
마음 푹 놓고 스스럼없이 대하게 되었고
성격이 워낙이 직선적으로 솔직한데다 성품이 터발터발하고
뻐드렁니 다 들어내고 웃는 모습이 너무나 순진무구해
일도 일이지만 마음이 끌리고 대화가 편해 거의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격의 없이 가까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관련 정보교환과 아직 한 건도 성사는 못했지만 일이 주요 화제다.

둘이서 점심 식사 약속을 하게 되면 ‘뭐 먹을지 따로 고민도 상의도 할 필요가 없다.
그 친구 사무실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오리 고기 전문음식점이다.
오리전문집이지만 점심이라 오리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고 오로지 된장전골이었다.

“ 오늘도 된장전골?”

“된장 전골만 드셨는데 부대찌개 한 번 드셔보시지요.”

점심메뉴로는 된장전골과 부대찌개가 주 메뉴인데 처음 갔을 때 된장전골을 먹어보곤
요즘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구수한 시골된장에 차돌베기가 듬뿍 들어가
푸짐한 내용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데다 국물이 일품이라
그 이후로는 일편단심 된장전골이었다.
주인아줌마가 직접 불 피워주고 반찬을 챙겨주고 말도 걸어주는 서비스도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 갈 때부터는 아는 체 반갑게 인사말도 먼저 걸어 줘 더욱 마음에 들었고.
홀이 제법 넓은 데도 피크 시간에는 빈자리가 없어 대기표 들고 밖에서 줄을 서야 된다.
코로나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음식점 중 하나다.
그래서 한참 점심시간을 피해 1시쯤에 가지만 그 시간에도 빈자리가 없을 때도 있다.

지난해 12월 초에 왼쪽 윗니 사랑니부터 어금니를 포함해 나란히 4대를 뽑고
임시 틀니를 하고 다녔는데 지난 월요일에 제대로 된 틀니로 바꿔 끼웠다.
임플란트 할 거 아니냐니까,
‘임플란트할 건데 그건 8개월 내지 10개월 후야. 그 동안 임시로.
틀니가 잘 맞으면 그냥 틀니로 갈 수도 있고. ‘
원래는 지난 주 금요일 오후 예약이었지만 갑자기 그날 진료를 못하게 되었다고
간호사가 연락을 해 와 다시 잡은 날이 이번 월요일이었다.
성원이는 와이프와 아직도 연애를 하고 있어 매주말은 둘이서 횡성 자봉 농원에서 보내고
뻑 하면 병원 문 닫고 둘이서 여행을 다닌다.
5월 초에도 주말을 끼고 어린이날까지 5일간 휴진하였기 때문에
주말에 마누라 데리고 갑자기 어디 또 여행 다녀왔나 해서,

“ 어디 다녀왔어?”

“ 아니야, 망막이 뻐근해서 안과에 다녀오느라고.”

“그랬구나, 괜찮대?”

“다행히 괜찮대, 흐흐”

“아이고 다행이구나. 자봉은 이빨 아픈 중생들 돌봐야지 지 마음대로 아프면 안 돼.
그리고 말이야 강 원장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치과 계속 열고 있어야 하니까
제일 오래 살아야 돼. 마음대로 먼저 죽으면 안 돼. “

우리 나이에 자기 이빨 다 가지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싶다.
10여 년 전부터 두어 달마다 거의 정례적으로 일보, 광석이와 점심을 같이 했는데
몇 년 전에 우물쭈물하다보니까 별 이유도 없이 모임이 단절됐다가
지난해 11월 중순에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같이 한 후 5개월만인 지난 4월 중순에
일보 소개와 예약으로 서대문 골목 안 꽤 이름났다고 하는 한 한옥 한정식 집에서
점심을 같이하게 되었다.
예약 손님만 받고 예약도 접심은 12시, 1시 이렇게 시간을 정해서 2차례만 받는다고 한다.
메뉴도 요리하고 상차리기 편하게 한정식 딱 한 가지이다.

그 날 점심 후 근처 커피 점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광석이가 치과 예약이 있어
먼저 일어나야한다고 해 이빨 뽑냐 고 물었더니,

“아니야, 나는 여기저기 때우기는 했지만 이빨 하나도 안 뽑았어.”

광석이가 워낙 건강체질이지만 이빨도 건치로 타고 났는가 보다.
주변 친구들 사이에 아직 제 이빨을 다 가지고 있는 경우는 지철이 외에 광석이가 두 번째다.
지철이는 아직 치과진료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오복 중에 하나를 타고 났다.

내가 네 살 때 겨울, 강원도 영월 큰아버지 댁에 계시던 할머니 환갑에 참석하러
부모님들이 돌도 되지 않은 동생을 포대기에 싸고 영천에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버스타고 기차타고 또 버스타고 어슴프레 저녁이 되어 큰아버지 댁에 도착해
낯선 환경에 어머니 곁에 찰싹 붙어있는데
이빨이 하나도 없는 합죽할머니가 웃으면서 손자라고 안으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무서워
대성통곡하면서 도망쳤던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도 환갑 전에 이빨이 다 빠지셨고
나보다 18세 위인 막내삼촌도 나이가 일흔일 때는 이빨이 없었다.
둘째 고모의 한 때 소원이 할머니에게 틀니를 해 드리는 거였고
어머니도 외할머니 틀니 해 드리고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고
막내 숙모님도 남편 틀니해주는 거가 자기의 최대 의무이자 소원이었었다.
그 때는 보험도 없는데다 틀니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었다.

그러나 어쨌든 틀니 낄 나이까지 살았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민망하기도 하다.
‘도대체 뭐 하면서 틀니를 껴야 하는 나이까지 살았을까.
돌아보면 세월만 길었지 한줌 추억거리도 남아있지 않은
보잘 것 없는 하찮은 삶이지 않았던가.’

나는 일보와 학교 다닐 때는 몰랐지만 직장 초년 시절에 만난 꽤 오래 된 인연이 있다.
서울 대 화학과를 졸업한 일보는 80년대 초 삼성물산 비료수출 팀에 소속되어 있었고
나는 제세산업을 거쳐 78년 말부터 (주) 선경 화공부에서 비료와 시멘트 수출을 담당해
회사는 경쟁관계였지만 동기동창인데다 같은 아이템을 맡고 있어서 처음 인사를 나눈 후로는
일을 떠나 어쩌다 만날 때마다 서로 반갑게 맞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보가 찾아와 상사로부터 지시라며
삼성으로 이직을 권유하는 메시지도 들고 왔었다.

그러다 내가 1982년 봄에 먼저 인도네시아로 떠나고
뒤따라 이듬해 일보가 삼성물산 자카르타 지사로 파견되자
내가 수마트라에 거주하고 있어 비록 만날 수는 없었지만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며 안부를 나눌 수 있었고
또 한 번은 내가 삼성물산 본사와 합판 수출 계약 후 삼성물산에서 신용장을 개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는 바람에 계약물량 생산도 마치고 싣고 갈 선박도 계약한 상태라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발 벗고 나서 해결해주기도 했었다.

광석이는 성대 상대 통계학과를 다니고 나는 경제학과를 다녀
같은 건물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인연이 훨씬 더 오래되고 깊다.
또한 삼성자동차에서 근무한 광석이와 물산에서 근무한 일보는 삼성출신들이라 가깝다.
그런저런 인연으로 10여 년 전부터 셋이서 격월 정도 사이를 두고 거의 정기적으로
점심을 같이 했었다.
일보가 회사 일을 맡고 있을 때는 12시에 만나 점심 먹고 바로 헤어졌지만
일보가 회사를 그만 두고는 점심 후 차 한잔 하며 느긋하게 한담을 즐기곤 해
나는 셋이서 만날 때면 오후 일정을 아예 비워두는 경우가 많았었다.

지난해 11월에 만났을 때는 예기치 않게 치삼이도 동석했었다.
광석이가 무슨 일로 치삼이와 통화 중에 광석이가 우리 모임 이야기를 하니까
‘종호 본지 오래 됐다.’며 ‘오후에 약속이 있어 오래는 못 있지만 점심은 같이 할 수 있다.’
며 나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까 2년 전쯤에 선배가 부탁한 일로 치삼이와 통화는 한 적이 있고
내가 신우 회 회장이 되고서 신우 회 일로 몇 번 문자는 주고받았지만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렇게 세월이 부질없이 흘러가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기간이 한정되어 있어 한 때 인연이 있었던 관계라도
생전에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을 수가 있다.
그나마 그립고 보고 싶은 감정이 남아 있을 때 이야기지 육신이 더 노쇠해 그마저 사라지면
꺼져가는 생명 아무리 오래 붙들고 연명하고 있어도 다 의미 없는 일이 된다.
아쉽지 않을 수가 없다.

5월 신우 회 정례예배 설교 제목은 ‘주일을 거룩하게’ 였다.
20여 년 전 24회 신우 회 창립하면서부터 신우 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서대문 창천교회 담임목사 구 자경 목사는 지난 해 8월 첫 영상 예배이후
지난달 김 문일 목사의 설교를 제외하고 9회에 걸쳐 줄곧
요한복음 5장 38년 병자 이야기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지난 해 4월 타계한 기선이 일주기라
지난해 기선이 추모예배를 주관한 문일 목사가 기선이 일주기 추모예배 겸해서
설교를 맡았었다.

“ 우리가 이 나이가 되어서 특히 우리 세대들에게 공통된 특징은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누구나 할 거 없이 그냥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바로 그랬거든요.
  매일 매일을 긴장 속에서 내일 할 일만 생각하고 살았던 거 같습니다.
  진정한 휴식이 뭔지 생각도 해보지 못 했던 거지요.
  그런데 창세기 일장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일 동안은 열심히 일을 하시고 일곱째 날은 하던 일을 모두 마치고 안식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 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빛과 어둠과 태양과 달과
  이것저것 땅과 바다와 하늘에 필요한 걸 창조하시며 일을 마치실 때마다
  보기에 좋았더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7일째 안식일만은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마치고 안식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날이 된 거지요.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사람을 언제 창조했습니까? 6일째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창조되자마자 그 다음날 안식부터 하게 된 거지요.
  일을 하기 전에 안식부터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 캘린더에 보면 빨간 색으로 일요일이 맨 먼저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안식을 하기 위해 일을 하는 거지 일을 하기 위해 안식하는 게 아닙니다.
  거꾸로 된 삶이지요.
  그럼 안식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룩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일주일에 하루 교회에 가는 걸로 족하지 말고 하루만큼은 자기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그 하루만큼은 자기 스스로에게 복되고 거룩한 날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우리 세대는 일곱 살에 유치원에 또는 늦어도 여덟 살에는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평생을 아침에 출근하면서 살아왔다.
그게 습관이 되어 정년퇴직하거나 현역에서 은퇴한 지금도
평일에는 아침에 어디론가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난감해하고
심지어 어쩌다 졸지에 어디 나갈 데가 마땅치 않으면 심적으로 불안해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거 같다.
그렇지 않더라도 휴일 날 TV나 시청하며 빈둥빈둥 시간을 때우거나
친지들과 등산을 가거나 기껏 가족들과 외식을 하는 걸 휴식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안식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거다.

오늘 아침에 총무 대진이가 박 영규의 별세 부고를 공지했다.
지난해는 우리 동기 일곱 명이 운명을 달리했는데 금년 들어서는 첫 부고다.
오늘은 토요살롱 탈고하느라 내일은 지방에 선약이 있어 영규 빈소에는 못 들리지만
지면을 빌려서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저녁에 3학년 5반 담임 선생님이셨던 안 규 선생임께서
별세하셨다는 부고가 공지되었다.
5반은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안 규 선생님을 모시고 매년 3월 5일 반창 모임을 가졌었다.
대부분의 반들이 반원들끼리 비슷한 모임을 하고 있지만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모임을 가지는 반은 5반이 유일하다.
5반의 중심 봉재에게 물어보니까 향년 92세시라는데 오늘이 마침 스승의 날이라
카네이션을 보내드렸는데 2시간 후에 부고를 받았다며 황망해 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2021.05.15.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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