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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1-05-29 17:50:18, Hit : 226, Vote : 64
  토요 살롱 324회 " 의리와 자존심의 사나이 고 박 영 규를 추모하며 "

“ 그 많은 눈물이 샘이 되고,
  그 많은 기도가
  기적이 되기를.“

철홍이가 5월 17일 새벽 5시 반에 보내 온 톡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전에 좀 한가해지는 대로 철홍이에게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
10시쯤 전화를 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는데 10시에 병원진료가 예약되어 있다면서
9시쯤 전화가 왔다.

“ 오늘 오전에 전화를 하려고 했었어. 영규 문상을 못 가봐서.
  그저께 토요일에 토요살롱 쓰느라 핸드폰을 열지 못하다가 토요살롱 올리고
  밤 10시가 넘어 보니까 영규 부고가 와 있었는데
  그 날은 이미 늦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또 다음날인 어제는 지방에 갈 일이 있어
  아침 일찍 움직여야 돼 빈소에 들릴 시간이 안 됐거든.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너희들 구우 회 멤버 중에
  그래도 내가 제일 편한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었지. “

철홍이는 학교 다닐 때는 몰랐지만 30여 년 전부터 이런 저런 연고로 가끔씩 만나게 되어
가깝게 지내게 되었는데 특히 갑섭이가 회장이던 때부터
흥남이, 그리고 나까지 3대 회장을 거치는 동안 6년째 신우 회 총무로 수고하고 있어
더욱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편한 사이이다.

“ 그랬구만. 송 회장이 안 보여서 어쩐 일인가 했지.
  영규가 2012년부터 파킨슨 씨 병 일종인 진행형 핵상마비라는 희귀병을 앓아왔는데
  그저께 심부전에 호흡이 곤란해 입원했지만 결국은 폐렴으로 임종했어.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땜에 문상 온 동기들이 많지 않았고.
  우리 구우 회도 시간 맞춰서 다 함께 가지 못하고 각자 편한 시간에 다녀오기로 했거든.
  그리고 송 회장, 영규 추모 글을 써야 할 테데 말이야.
  유가족들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해서.“

“ 아 그래서 그것도 너한테 물어보려고 했지.
  너희들 구우 회 멤버 중에 고 1때 나하고 같이 문예 신문반원이었던
  영재와 영호는 글을 잘 써.
  특히 문학 소년이었던 영재는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쓰고 어쩌다 치과의사가 됐지만
  아직도 문학에 대한 꿈과 열정이 옛날 소년시절 못 지 않은 거 같더라.
  반세기를 함께 했으니 서로를 잘 알 거고 쌓인 추억과 에피소드도 많을 거고
  하고 싶은 이야기, 아쉬운 이야기, 미처 못 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냐.
  영재가 구우 회 대변해서 잘 쓸 거야. “

“ 그렇긴 한 데 글 잘 쓰는 거 하고 추모사를 쓰는 거는 다를 거야.
  영재가 우리 구우 회 단 톡 창에 올린 게 있기는 하지만
  이때까지 동기들 추모사를 니가 다 써 왔으니 이번에도 니가 좀 썼으면 좋겠다.
  대신 자료는 모두 보내 줄 거고 궁금한 거 있으면 내가 아는 대로 다 이야기 해 줄게. “

철홍이가 보낸 온 조문 객 명단에 의하면,
구우 회 멤버들인,
김 명환, 김 영호, 어 환, 어 수갑, 이 영일, 유 영재, 김 철홍, 박 승순, 서 현, 김 동국,
그리고 영규가 우리 동기 불자들 모임인 이사 불 회원이라
이사 불 회장인 김 경현, 총무 황 우성, 윤 준영, 우리 동기 총무 김 대진,
강남 모임 총무 이 윤재, 그 외에도 이 정규 부부, 육 동신, 김 학수, 김 수종 등
19명이 조문을 다녀갔다고 한다.

우성이에 의하면 영규가 아프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사 불에 나오기 시작했지만
그냥 조용히 있다 가기만 해 이사 불에 특별한 에피소드나 이야기 거리는 없다고 했다.

정규는 배제대학 교수로 옮기기 전에 건축사로 개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부터 자기가 설계하는 건축물의 조명 공사는 무조건 영규에게 도급 주었다고 한다.
영규가 세운상가에서 막 조명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였으니까 40년도 더 됐다고 하고
자기소개로 많은 우리 동기들이 인테리어 공사 시 영규가 조명 공사를 했을 뿐 아니라
자기 처갓집 조명 공사도 영규가 도맡아 해 정규 부인이 영규를 잘 알아
소식을 듣고 정규부인이 같이 가겠다고 해 부부가 동반해서 조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규가 공사를 깔끔하게 하면서도 약속 기일을 철저히 지키고 금액도 받을 만큼만 받아
발주자들로부터 신뢰도 받고 평도 좋았다고 한다.

“ 영규가 겉으로는 짙은 눈썹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말도 거침이 없어 터프하게 보이지만
  실지로 사귀어보면 그렇게 착할 수가 없어. 너무너무 착해. 엄청 가정적이고.
  또 부인이 그렇게 남편에게 헌신적일 수가 없고. 그게 그냥 느껴져. “  

조문 다녀 온 강남 모임 종신 총무 윤재에 의하면 영규가 거동이 이미 불편해졌을 때도
부인이 데리고 오고 가며 부인의 부축을 받아 강남 모임에 참석했다고 한다.
동기모임이라면 여하한 일이 있어도 참석하려고 했고 그만큼 동기 일에는 열성이었다고 한다.

“병원에 완전히 들어 눕기 전까지 모임에 나왔어.
그런 몸을 하고 모임에 오는 영규의 열성도 대단했지만 영규를 데리고 오고 간 부인은
정말 대단한 부인이야. 남편에 대한 헌신도 그런 헌신이 없어.“

동신이는 평소 영규와 별 교류는 없었지만 정규 소개로 병원과 용인에 지은 주택에
영규가 조명 공사를 한 인연이 있는데다 마침 영규가 입원한 문래 동 요양병원이
동신이 한의원에서 도보 거리밖에 안 돼 한 번 면회를 갔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문도 갔었는데 빈소에서 영규 부인이 그 때 일을 잊지 않고
동신이가 혼자서 면회가 준 일을 상기해주었다고 한다.

수종이는 7,8년 전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다 세브란스 병원에 수술 날을 잡아 놓고
당시 동기 총무단 회의에 참석했다 오가는 이야기 중에
자연스럽게 자신이 허리 수술을 하게 됐다고 털어 놓았더니
마침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영규가 수술하기 전에 어 환에게 일단 진료를 받아보라며
어 환에게 연락을 하고 진료시간을 잡아주어 갔었는데
어 환이가 가져간 그 간의 진료 자료와 기록을 살펴보더니
이렇게 복잡한 경우는 수술하더라도 큰 효과를 볼 수 없다며 수술을 만류하고
대신 몇 가지 운동 방법을 알려주어 수술을 취소하고 어 환이가 알려준 대로 한 결과
그 이후 지금까지 멀쩡하게 잘 걸어 다니고 있어
그 때 그렇게 나서 준 마음이 고마워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구우 회를 빼고는 영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3년 전에 작고한 동훈이 땜에 구우 회란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훈이 빈소에서 구우 회 멤버들을 처음으로 다 만나보게 되었다.
그 중 서 현이는 현이가 변호사를 개업하면서부터 가끔씩 오다가다 스쳐 만나기도 하고
비록 여럿이 같이 한 자리지만 골프도 같이 친 적이 몇 번 있고
술자리도 같이 한 적이 몇 번 있어 자주는 못 보더라도 변하는 모습이 익숙해져서인지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데 영일이는 나하고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영재와 영호는 1학년 때 만난 같은 문예신문 반 반원이었는데도 흘러간 세월이 세월인지라
변한 모습에 놀랄 정도로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70줄에 가까운 노인이 되어 얼굴에 주름도 많고 머리, 체형 다 변했지만
아직도 말 하는 투와 표정에 그리고 미소 짓는 모습에 소년시절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철홍이가 보내준 자료와 들려준 이야기에 의하면,
1969년 1학년 11반에서 만난 김 명환, 김 영호, 김 철홍, 박 승순, 유 영재,
이상 다섯 명으로부터 구우 회가 태동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듬해 2학년 여름 방학 때 이 다섯 명이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놀러가
거기서 이들과 마찬가지로 단체로 캠핑 온 위생 반원들인 김 동훈, 박 영규, 어 환, 어 수갑,
이 영일, 서 현 등 여섯 명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의기가 투합 되어
멤버가 11명으로 늘어나게 되고 졸업 후 1973년 부친이 코트라 런던 지점장이라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김 동국이 합류하여 비로소 12명 완성체가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에 영재가 모임의 명칭을 구우 회 (龜 友 會)로 지었는데
흔히 오해하기 쉬운 아홉 구자가 아니라 장생 동물로 알려진 거북이처럼 오래가라고
거북 구자를 썼다고 한다.
나도 처음에는 아홉 명의 모임인줄 알아 동훈이 빈소에서 아무리 세어 봐도 열 명이 넘어
처음에는 아홉 명으로 시작했다 나중에 늘어났지만 명칭은 그대로 쓰거나
정회원은 아홉 명이고 나머지는 준회원이거나 옵저버 같은 건가하고 의아해 했었는데
철홍이 설명을 듣고서야 이제야 비로소 그 의문이 풀리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동호 모임이나 대대로 내려오는 서클 모임이 아닌 순수 친목 모임으로서는
거북이 구우 회는 우리 동기들 모임 중에서 용자 모임(정식 명칭 遠志會)이나
충우, 종만, 원철, 희권, 남철 등의 또 다른 구우 회,
(남철에 의하면 이 모임도 아홉 구자가 아닌 어리석을 구자를 쓴다고 한다.
즉, 어리석은 친구들의 모임),
정운이, 자윤이, 순업이, 상규, 재철이, 경영이, 광희, 정섭, 세원 등이 멤버인
또 다른 구우 회,(이 모임은 아홉 친구들의 모임으로 아홉 구자를 쓴다.)
만큼 역사가 오래 된 모임이다.
모두 고1때 결성된 모임들이고 한 결 같이 반세기 풍상을 함께 겪었다.

용자들은 일찌감치 90년대 중반에 용찬이를 필두로, 하마 성환이,
홍일점 용자인 유 영상 부인 양 세희 씨, 그리고 지난 해 작고한 김 영훈 등
무려 네 명이나 먼저 떠나보냈지만
거북이 구우 회도 동훈이에 이어 두 번째로 영규를 떠나보냈다.

다들 동훈이나 영규나 둘 다 오랜 세월 투병을 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겠지만
철모르던 개구쟁이 소년시절부터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 든 노년까지
인생의 거의 전부를 서로 얽히고설키며 때로는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고
때로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뻐기기도 하고 그러다 찜빠도 당하고
때로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때로는 매순간 그리워하며 우정에 목말라도 하고 때로는 다시는 안 볼 듯이 미워도 하며
희, 노, 애, 락, 애증의 세월을 함께 나누어 온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는
그 비통함과 아쉬운 마음이야 어디에 비 할 바가 있겠는가.

조문 간 동기들 명단에 뜻밖의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띄었다.

“태수야, 오랜만이다. 그런데 너 영규 문상 갔더구나, 나는 못 갔어.
평소 영규와 친했던가 보지?“

“아, 그래, 그렇지 않아도 동기 본인 상에는 빠지지 않는 니가 안 보여 궁금했었지.
영규가 2012년에 병명을 알게 되었는데 이건 나도 문상 가서 들은 이야기지만
영규가 머리에 꽈리 주머니 같은 거를 달고 태어났다는 거야.
그래서 이 꽈리주머니에 물이 차면 그게 주변의 조직이나 신경을 눌러서
그것들이 관장하는 몸의 기관의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거지.
들은 바에 의하면 영규 부친도 비슷한 병을 앓았다고 하니까 유전이 아닐까 하는 거야.

영규하고는 오래 됐어. 30년도 더 됐지 아마? 85-6년 경 부터니까.
학교 다닐 때는 서로 성향이 달라 그냥 얼굴만 아는 정도였는데
85년경에 당시 내 거래처가 전라도 어디에 호텔을 짓는데
시골이지만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하고 싶다며 서울의 조명업자를 소개시켜달라고 해
동기들 수소문해보니까 영규를 추천하는 거야.
영규가 조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 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영규를 잘 몰랐기 때문에 망설이다가 이왕이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영규를 추천했지.

그러고 나서 나는 현장이 전라도 시골이라 가볼 수도 없고 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영규가 찾아와 공사를 끝냈고 덕분에 돈도 벌었다며 술 한 잔 사겠다는 거야.
그래서 술 한 잔 했는데 그걸 계기로 만나고 하다보니까
내가 일방적으로 영규에 대해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가 완전히 정반대인 거라.
그렇게 착할 수가 없고 의리가 있고 무엇보다 굉장히 가정적이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삶의 전부 일 정도로 극진한 거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부가 같이 만나게 되고 언제부턴가는 매년 연말에
두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정례모임도 했었는데
그게 영규가 완전히 일어나지 못 하게 된 4,5년 전까지 이어졌었어.
지난 3월에도 우리 집사람이 문병 가보자고 해 갔었는데
대면면회가 안 돼 영규 부인하고 셋이서 차 한 잔하고 오기도 했고.
말이 나온 김에 말하는데 부인이 참 대단해. 그렇게 헌신적일 수가 없어.
학창시절에 배구 선수였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음도 넓고.
그야말로 옛날 대가 집 맡 며느리 스타일이야.

영규 부인이 영규가 속 많이 썩혔는데도 일체 내색 않고 그 때마다 조용히 처리하고
가정을 잘 지켰거든.
그리고 영규가 보기와 다르게 또 말도 못 할 정도로 대단한 효자였었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가 영규 아래 동생과 두 형제를 키웠는데
영규가 어머니를 돌아가시실 때까지 지가 직접 끝까지 모셨어.
모시는 거야 실제로 영규부인이 다 했겠지만 영규가 어머니가 조금도 서운치 않도록
무슨 일이든 무조건 어머니 편을 들었다는 거야.
말은 안 해도 영규 부인이 억울할 때도 많았을 거야.

그리고 큰 딸은 출가하고 둘째 딸과 막내로 아들이 있는데 애들에 대한 사랑이 말도 못 해.
가족애, 가족에 대한 사랑이 영규의 삶의 전부였어.
애들도 아버지에 대한 정이 마찬가지고.
둘째 딸은 SK 그룹에 다니고 아들은 건축과를 나와 취업했다 코로나로 그만 두고
재취업 준비 중인데 둘 다 아빠한테 그렇게 잘 해.
아들 녀석은 거동이 불편한 아빠를 업고 다니다시피 했고
둘째 딸은 마지막에 직계가족 모두가 서명해야 되는 연명치료 포기 서에
아빠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데 그럴 수 없다며 혼자서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다는 거야.

부인의 지극정성은 말 할 거도 없고.
영규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 폐렴이 도질 때마다 순천향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고
괜찮아지면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부인이 영규 불편을 덜기 위해
위치가 병원 가까우면서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로 집안까지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특수 구조 아파트로 아예 거주지를 옮겼어.
마지막에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부인이 임종을 지켰는데
영규가 부인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더라는 거야.
그런데 죽어가는 사람이 꽉 잡는 손에 힘이 실려 있더래.“

태수가 영규를 떠나보내며 못내 아쉬운 마음을 글로 적어 보내왔다.

“  계절의 여왕 꽃 피는 오월에 먼 길 떠날 마음을 먹었구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을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그 마음
   가족들을 잘 보살펴야 하는데 못 해 주는 그 마음
   바라만 봐도 환한 웃음을 주는 사랑하는 아내를 이 험한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두고 갈 수밖에 없는 그 마음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그 강을 건너려 하는구나.
   그래서 그날 오랜 억 겹의 순간 동안 붙잡은 아내 손을 부둥켜 잡고 놓지 못했구나.
  
   꼭 잡아라.
   꽉 잡아라.
   더 꽉 잡아라.

   사랑
   그 마음으로 이제 편안히 떠날 마음을 먹었구나

   애썼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영규야!
   잘 가시게 내 친구
   2021년 5월 15일 “

철홍이에 의하면 영규가 학창시절이래로 살살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활달하고 쾌활하고 친화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오지랖이 너무나 넓어 친구들 일이라면 홍 길 동 인양 아무 때나 아무 데고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 영규가 위생 반이었다는 게 의아해 물어봤더니,

“ 하하, 그게 말이야, 나도 나중에야 물어봐서 알았는데 그 때 양호 선생님, 서 선생님이라고
  국어 김 훈 선생님과 결혼했잖아? 그 서 선생님이 얼마나 예뻤어?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양호 반에 들었다는 거야, 하하.“

하기야 고2때 만리포로 캠핑 간 위생반원들의 면모를 보면 서울 의대를 간 어 환과
고1때부터 의사가 꿈이었던 영일이를 제외하면 나머지 4명은 위생 반에 들어간 저의가
꽤나 의심스럽긴 하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대학을 갓 졸업한 미모의 처녀 여선생을
혈기가 최고조 때인 남자 고등학교에 발령을 낸 당시 서울시 교육청이나 문교부가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무책임하게 인사를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고가 나지 않고 무사히 김 훈 선생님과 결혼을 하게 된 것만도 천만다행이었지 않나 싶다.
서 선생님은 경기여고와 서울 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부임했다고 했으니
우리와 몇 살 차이가 나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철홍이도 영규를 떠나보내는 마음을 보내왔다.

“  하늘나라에서도 가만히 안 있으리라고~~~~~
   그래도 이제는 편안히 영면 하소서
   우리 24회의 큰 별이었던 영규 그리며
   다시 만날 때까지
   이제는 더 이상 육신의 고통 없는 곳에서
   부디 영면 하소서. “

철홍이가 다른 친구들의 추모 글도 전달해주었다.

“  백운산에서 영규가 추워서 못 가겠다고 주저앉을 때
   달래가면서 데리고 하산 할 때가 눈에 선하다!
   사모님도 우리랑 함께 총산 산행 많이 하셨는데!
   (Fr.안 영 송/산우 회) “

“  영규랑 오래 전에 술 한 잔 한 적이 있는데 친구들이 두 번 놀랬다고들 했다.
   첫 번째는 영규가 술을 산 거고, 두 번째는 내가 술을 먹은 거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내도 영규를 좋아했었다.
   이렇게 가네.
   잘 가시게.
   (Fr.김 의 영)

“  친구들 다 보내고 아무도 배웅해 주는 사람 없을 때 떠나는 게 날까,
   배웅 받으며 떠나는 게 날까?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먼저 죽는 놈이 억울한겨.
   근데 영규는 더 이상 고생 안 하고 떠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기억하되 아파하는 것은 오늘까지로~~~
   (김 영 호) “

“  올 때는 한 사람만 아프면 되는데 떠날 때는 여러사람 아프게 만드는 게 인생이구만.
   가족이든 친구든 죽고나서 눈물 흘리는 것 보다는 살아 있을 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밥 한 끼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서로 아끼고 도우며 살아가세.
   (김 영 호)

영재에게 문자를 보내고 통화를 했다.

“ 영재야, 니가 나보다 글도 훨씬 잘 쓰고 너희들은 고1때부터 절친 들인데
  니가 추모사를 써야 하는 거 아니야? “
“ 무슨 소리야, 니가 쓴 동훈이 추모사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데.
  내가 써서 이사불과 구우 회 단 톡 창에 올린 게 있는데 그거 다시 정리해서 보내줄 테니까
  나머지는 니가 알아서 해라.
  그러고 이번에 느꼈는데 볼 사람은 좀 보고 살자.“

영재가 아직도 멍하다며 자기가 쓴 영규 추모사를 보내 왔다.

“  영규가 떠났구나. 는 명환이 문자를 받고 잠시 눈을 감자 녀석이 좋아했던 노래,
   ‘과거는 흘러갔다.’ 는 여 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고 박 영규 별세라는 글자 앞 부분을 떼어 내 이름을 붙여본다.
   고 요 영재.
   ..... 이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았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
   문득 친구들 이름 앞에도 고 자를 붙여본다.
   빙긋 웃음이 나면서도 갑자기 가슴 한 가운데 퍽 맞은 것처럼 아릿해진다.
   슬픔도 아니고 이 감정은 무엇일까....그저 흘러가는 강물의 한 흐름일 뿐인가.
   왔으니 가야지 하는 자연 현상의 하나인가.
   회고해 본다.
   고 박 영규. 녀석과 처음 만나 함께 한 곳은 서울 중학교 3학년 2반.
   이 희복 담임선생님에게 무던히도 귀싸대기를 많이 맞았다.
   녀석은 맞고서도 돌아 들어오며 학동들을 향해 낼름 혀를 내밀어 웃음바다를 만들었고
   그 바람에 다시 불려나가 또 다시 경을 치곤 했다.
   그리고 고교시절을 장식한 만리포 바닷가와 함께 누비던 지리산 화엄사 노고단이 떠오르고
   홀랑 벗고 알 탕을 하던 오대산의 추억이 눈에 어린다.
   양양학원 재수 시절부터 치과 인테리어 조명 설치까지
   친구 일이라면 팔을 둥둥 걷어 부치고 나서서 끝을 보고 마는 그러면서도 늘 웃음 띤 얼굴
   고인을 나타내는 글자.
   의리와 자존심.
   친구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과 야! 나 박 영규야! 새끼들 감히 얻다 대고!
   외치며 들이박으며 눈을 부라리던 모습.
   수술 후 서서히 마비...그로 인해 넘어져 깨진 응급실의 피투성이 모습.
   그래도 절룩거리며 치과와 한의원을 다니던 모습.
   요양병원에서도 친구! 하면 반가움에 말은 못하고 손등을 꼬집어 대며 눈물 고이던 큰 눈.
   괜히 소리만 벅벅 지르지 정이 많아 아들 군대 간다는 소식에도 꺼이꺼이 울던 녀석.
   이젠 더 이상 그 모습 못 보겠네.
   안녕.
   안녕 내 친구.
   안녕 우리들의 어린 시절.
   유 영 재. “

유골은 영규 어머니가 생전에 다니시고 어머니를 수목 장으로 모신 서대문 이대 근처
봉원사라는 절에 모셨다고 하는데 영규 부인이 몇 개 없는 자리 중에 가장 좋은 자리를
미리 매입해 두어 아주 잘 모셨다고 하고
우리 동기 중에는 김 명환, 김 동국, 한 태수, 김 대진, 고 준수, 한 효재 등이
마지막까지 배웅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영규 부인의 인사말을 인용함으로 영규 추모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감사합니다.
   좋은 친구 분들 덕분에 더불어 행복했습니다. “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과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정다운 친구들의 절절한 배웅을 받으며
먼저 떠난 영규의 명복을 빈다.

졸필을 용서바라며,
2021.05.29. 송 종 호.




토요 살롱 325회 " 영규를 떠나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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