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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1-08-07 21:52:46, Hit : 45, Vote : 12
  토요 살롱 329회 " 코로나 피서 "

성배가 영규에 이어 금년 들어 두 번째 동기 상이었다.
동기 일곱 명이 세상을 떠난 지난해에 비하면-그것도 상반기에만- 상당히 적은 수이지만
그래도 칠십 언저리의 나이를 감안하면 해마다 부고를 받을 정도는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720명이 입학하여 연락 두절인 동기 사, 오십 명과 여러 연유로 이미 세상을 떠난 동기를
제외하면 600여명도 채 안 남았는데 그 중에서 매년 몇 명씩 부고를 받는 건
뻑 하면 100세 시대라고 떠들어대고 또 그게 전혀 과장으로 여겨지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세상에 그리고 구지 100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80세가 훨씬 넘는 평균수명에 비해서도 아직은 너무 이르다고 할 수 있는 나이인데
이렇게 부쩍 자주 부고를 받게 되니까 혹시 우리 동기들이 특히 단명인 경우가
평균보다 더 많은 게 아닌가, 그렇다면 불공정한 게 아닌가 라는
누군가를 향한 항의 같은 의구심을 가져보기도 한다.

칠십 줄에 접어든 우리 나이에 설사 지금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요절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멀쩡한 나이다.
환갑잔치가 사라진지 오래됐고 칠순잔치도 아주 드물어졌다.
주변에 칠십 줄에 접어든 지인들이 즐비하지만 입 밖에 꺼내는 사람도 없다.
우리 장모님은 금년 88세이신데 칠순을 건너  뛰었기에 팔순 때 팔순 잔치를 하자고
여러 번 간곡히 말씀드렸지만 단호히 거절하시며 구순 때 하시겠다고 했다.

칠십 나이는 노인 축에 끼지도 못 한다.
나이만 많았지 노인이 되어 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요절은 아니더라도
애석하지 않을 수가 없고 유가족에게 커나 큰 슬픔과 아쉬운 마음을
남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금년도 아직 여러 달 남아 있지만 더 이상 부고를 받지 않길 바라고
바라는 김에 앞으로 최소한 10년, 우리 나이 팔십이 될 때까지 우리 동기 중 누구도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기를 소원해 본다.

이번 미국 방문 중 뉴욕은 다녀오려고 했었다.
LA의 범수가 재호도 가까이에 왔으니 이번에 LA도 다녀가라고 하여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돌아오는 일정을 확정하지 못 한 데다
미국이 아직은 그렇게 마구 돌아다닐 상황이 못 되는 거 같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뉴욕은 쉬엄쉬엄 달리더라도 집에서 5시간 거리니까 당일치기 또는 일박 일정으로
뉴욕에 거주하는 용호, 순구 등 신우 회 회원들,
그리고 옛날 문예 신문 반 동지였던 병채도 만났으면 했었다.
덤으로 핑계 삼아 오랜만에 맨해튼 거리를 으슬렁거리다 해가 지면 타임스퀘어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에 세계 각국에서 온 각양각색의 인파가 내품는 생기와 떠들썩함과
깜깜한 밤하늘을 현란하게 장식하는 휘황찬란한 전광판을
느긋하게 즐기는 여유도 갖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도 그렇고 연락 관계도 그렇고 하여 이마저 불발되었다.

신우 회 초대 회장인 종만 내외가 예고한대로 6월 말에 미국에 와
뉴저지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네에 머물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종만이는 아들만 둘인데 둘 다 미국에서 공부하였고 들 다 진작에  출가하여
종만이 부부야 말로 홀가분하게 만년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다.

큰 아들은 요즘 세태에 이른 나인인 스물여섯에 결혼을 하였고
둘째 아들도 3년 뒤에 스물일곱 나이에 결혼을 하였다.
두 번 혼사에 다 참석하였는데 아이들이 워낙 동안이라 고등학교 갓 졸업한 녀석들이
무슨 사고라도 쳐 부랴부랴 결혼하는 줄 알았다.
아들들이 일찍 결혼 한 덕에 큰 손녀가 벌써 열한 살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산호세에 살고 있는 큰 아들네가 뉴욕으로 와 전 가족이 다 같이 여행을 하다
종만 내외와 큰 아들네가 산호세로 같이 가서 거기서 7월 말에 귀국을 한다고 했다.
여행 일정 중에 7월 14,5일 워싱턴 방문 계획이 있다고 했다.
이 때만 하더라도 나는 7월 14일 미국을 출발하여 15일 한국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확정했기 때문에 종만 네가 워싱턴에 오더라도 못 보겠구나 했었는데
미국에서 화이자로 2차 접종을 하고 2주 후에 한국에 입국해야 격리 면제 대상이 된다고 해
출발 일을 이틀 늦추는 바람에 14일 종만이를 워싱턴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출발을 늦춘 대가로 모친이 위독하여 급거 한국에 갔다 상을 무사히 치르고 13일에 돌아 온
희경이도 한 번 더 만날 수 있었다.
14일 저녁에 종만네가 묵는 숙소와 가까운 DC 내 일식 점에서
종만이와 중학교 다닐 때부터 절친이었던 규용이, 명호와 넷이서
옛날 추억에 젖어 웃고 떠들며 헤어지기 너무나 아쉬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미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기들 대부분이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고국을 떠났으니까
미국 이민 생활이 어언 40년 내외가 된다.
그러다보니 대체로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막 마친 시점이라
한국에서의 사회경험이 없다고 봐야 한다.
결혼해서 간 친구들도 있고 미국 생활 중 결혼한 친구들도 있다.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려서 미국으로 가
미국에서 전 과정을 교육 받았기 때문에 한국 문화가 낯설고 한국말이 서툰 아이들도 많다.

지금은 아이들이 장성하여 대개가 출가를 하였고 그렇지 않더라도 거의가 독립해 떨어져 살아
대체로 부부 둘이서 단출하게 살고 있다.
물론 한국과 마찬가지로 손자들을 봐 주러 자녀들 집을 들락거리거나
손자들을 맡아 봐 주느라 자녀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일례로 일 년에 반은 한국에 와서 보내며 워싱턴 근교에 거주하는 재헌이 부부는
며느리가 하버드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 일 년 동안 손녀를 봐 달라고 해서
일 년 동안 단 한주도 거슬리지 않고 손녀 돌보러 매주 월요일 뉴욕으로 가서
주중은 뉴욕에서 손녀 돌보며 보내고 며느리가 보스턴에서 돌아오는 금요일에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아니, 손녀 봐주는 동안 아예 아들네로 들어가 있지 그 고생을 했냐.’니까,
‘아들네가 투 베드룸이라 여러 식구가 거하기에 협소해 아들부부가 주말만 같이 보내는데
혹 불편할까 봐 차라리 자기들이 불편을 감수하기로 했다,‘ 고 했다.

워싱턴에서 뉴욕은 5시간 드라이브 거리다.
우리 나이에 단숨에 운전하기에는 버거워 중간에 한번은 쉬어야 하는 거리다.
서울에서 부산 거리보다 조금 더 멀다고 보면 되니까 손녀 돌보러 서울에서 부산을
매주 일 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운전하고 다녔다고 상상해 보면 된다.

재헌이는 2000년대 초에 미국으로 이민 간 데다 매년 한국을 들락거리니까
한국에 대해 궁금해 할 거가 없지만 40여년 이민 생활을 한 친구들은 그렇지가 않다.
만나면 의례히 한국 소식부터 묻고 한국의 현황이 화제의 중심이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빈번히 밥상에 오르는 주제는 당연히 한국의 정치 이야기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국의 정치 현안에 대해 나보다도 훨씬 더 많이, 더 자세히,
더 잘 알고 있어 신문도 보지 않고 뉴스도 듣지 않은지가 20년도 넘은 나로서는
그냥 보편적인 이야기 외에 딱히 뭐라고 답 할 수도 없고 뭐라고 의견을 낼 수도 없는데
오히려 그 쪽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내가 무슨 새로운 소식을 전해 줄 주재가 못 돼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듣고 있으면서 맞장구나 쳐주는 역할밖에 할 수가 없는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충 종합을 해 보면
미국 거주 우리 동기들의 정치적 성향이 거의가 보수, 우익 일방으로 쏠려 있고
미국 공화당을 선호하고 트럼프를 지지하며
현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비판적인 시각으로 비난 일변도라는 사실이다.
듣고 있다 보면 비난을 넘어 인간적으로 증오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우리 서울 고 출신들의 성향 자체가 보수, 우익이지만 미국 거주 우리 동문들은
그 편중도가 훨씬 더 강한 거 같다.

몇 명이 모이면 즉시 현 정부 성토장이 된다.
수년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동기들이 저녁에 회식을 하다가 좌우 논쟁이 벌어져
결국은 판이 완전히 깨지고 논쟁 당사자들은 원수지간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현 정부를 미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 정부를 대통령부터 좌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요직을 독점하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규정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기야, 우리는 ‘반공이 국시’ 이고 공산당 빨갱이들이 우리의 공통의 적이었던 시절에
성장기를 보내고 교육을 받았던 세대라 좌파라면 이내 공산주의를 연상하고
공산주의자는 자동적으로 빨갱이와 동의어로 인지하게 되어 있다.
좌파, 즉 빨갱이가 된다.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 자 누계가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3,500만 명을 넘어서고
사망자 수가 확진자의 1.8%에 달하는 61만 명을 넘어섰는데도
그 원인을 제공한 트럼프를 변호하고 확진 자 누계가 인구의 0.4%인 20만 명에 불과하고
사망자 누계는 확진자의 1%밖에 안 되는 겨우 2천여 명인 한국정부의 코로나 대처 능력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있다.

“ 그런데 말이야, 트럼프가 한 가지 잘 한 게 있더구만.
  화이자가 백신 개발하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11조를 지원했다는 거야, 하하.
  역시 트럼프가 추진력이 있고 통도 커.
  그래서 덕분에 발발 1년 4개월 만에 백신을 개발했다는 거 아니야. “

어이가 없어 그 때는 아, 그래? 하고 말았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헛소리의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가 없다.
트럼프가 자기 개인 돈으로 지원했다면 몰라도 미국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특정 사기업에 투자를 하거나 론을 해 줄 수는 없다.
의회 승인이 날 리도 없고 그런 예도 없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대통령은 제 때 백신 확보 못 했다고 집중 포화를 하고 있다.

지난 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결과에 불복하여 의회 난입을 교사하고
지금까지도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며
민주주의 정치 제도의 뿌리를 흔들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나라의 현 정치상황을 좌파독재정치로 규정하고
오히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
그러니까 회복이라면 우리나라가 언제 민주주의를 하고 있던 때가 있어
그 때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인데 언제가 그 때였는지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독재라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군사독재시절에 성장하고 교육을 받아 독재체제와 그 시절의 가치관이
너무나 익숙하게 우리 몸에 배어 있어 독재에 무감각해져 그런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중국과위 관계도 자주 회자된다.
물론 미국의 대 중국 정책을 기조에 두고 작금의 미국의 대 중국 봉쇄와 압박 정책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보는 견해이다.
그러다보니까 현재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 중국 정책에 미국 편에 서서
선도적으로 앞장서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하게 기웃기웃하면서
오히려 중국 편으로 기운 거 같아 보여 가재는 게 편이라고
좌파정부가 중국 공산당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의구심도 가지고 있다.
중국 굴욕 외교라는 표현도 동원하고 있고
‘어느 편이냐. 확실하게 해라.’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있다.

그런데 좌와 우를 떠나 확실히 짚고 가야 할 게 있는데
그 첫째는 해방 이후 역대 정부 중 현 정부가 가장 미국과 소통을 자주하고
미국에 가장 우호적인 정부라는 점이다.
답답할 정도로 모든 사안을 미국과 먼저 상의하고 미국의 의사에 반 할 경우
여러 경로로 설득해보지만 안 될 경우 단 한 번도 거역한 경우가 없었다.
외교 안보의 경우 주권국가로서 그야말로 굴욕적일 정도로 미국과 먼저 상의하고
미국의 결정에 따랐다.

그 다음은 경제적인 측면인데 현재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 최근 몇 년간 수가 많이 줄었지만
수 만개에 달하고 중국에 상주하고 있는 우리 교민이 2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총 수출의 30%에 달하는 년 간 약 1,800억불어치의 상품을
중국에 수출하고 총 수입금액의 20%가 넘는 1,200억불 어치의 상품을 수입하고 있다.
단순 수치로만 본다면 중국으로부터 년 간 600억불 정도의 무역수지 흑자를 내고 있어
당연히 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흑자 국이다.
이 돈으로 기름도 수입하고 자급 율이 50%밖에 안 되는 식량도 사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우리가 미국에 연간 500억불 정도 수출하고 300억불 정도 수입하여
연간 200억불 정도 무역수지 흑자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일본과는 연간 500억불 수입하고
200억불 수출하여 300억불 가량 적자를 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과거에 우리나라의 일, 이 위 교역 국이었는데
지금은 이 두 나라와의 교역규모를 다 합쳐도 중국과의 교역 규모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시대가 변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삼성전자에서 수출하는 반도체의 70%가 중국으로 수출된다고 하면
실감이 날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 수치는 홍콩을 통한 우회수출입 규모는 포함되지 않았다.
양국 간의 관계가 삐끗하여 어느 한 곳이 잠겨버리면 우리는 생계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중국은 국가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나라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해
충격이 훨씬 클 수밖에 없고 대처능력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오랜만에 아이들과 델라웨어 주의 해변 휴양도시 르호봇에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지명이 Rehoboth라 생소하여 인디안 원주민들로부터 전승된 이름인가 했었는데
뜻밖에도 성경에 등장하는 Rehovot을 차명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여름이면 저수지든 강이든 바다든 물가에는 반드시 다녔는데
그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와 지지난해 여름에 물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넘어갔었다.

그래서 미국에 가 있으면서도 금년에도 그냥 넘어가나 하고 씁쓸해하고 있다가
워낙이 바쁜 녀석들이라 아니면 말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날도 더운데 어디 가까운 바닷가나 다녀올까.” 했더니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여 아이들이 편한 토요일로 날을 잡고 아이들이 장소를 정해
당일치기로 다녀오게 되었다.
큰 녀석이. “ 아빠, 대서양 바다에서 수영은 처음 아니야?”

“ 어. 그러네? 대서양에서 수영은 처음이네.”

작은 녀석이 씩 웃으며,

“ 아빠, 북극해에서도 못 해 봤잖아. ”

마침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에 햇볕이 강렬한 전형적인 여름날이었다.
집에서 3시간 거리인데 도중에 맥주 양조장에 들러 시원한 맥주와 샌드위치로 점심을 하고
세 번째 여름 만에 들어가 본 바다에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차가운 바닷물에 몸이 덜덜 떨리도록 원 없이 수영하고
아이들과 맛 집으로 알려진 근처 식당에서 맥주, 해산물 요리, 포도주로
저녁식사를 느긋하게 즐기고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가 넘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이라 맥주 양조장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대고
해변에 수영복 피서객으로 넘쳐났지만 매일 코로나 확진 자가
3만 여 명씩 발생하고 있는 데도마스크 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지난 주초에 느닷없이 흥면이가 전화를 해 이것저것 안부를 묻더니 뜬금없이,

“너 요즘 뭐하고 지내? 바쁘냐?” 묻기에,

“저녁 약속을 못하니까 심심하지 뭐, 점심 약속은 거의 매일 있는 편이고.”

“그렇지? 그런데 너 놀기 좋아하지?”

“그럼, 너도 알다시피 어디 놀러간다면 병원에 입원해 있더라도 도망쳐 나오지.”

“그래서 말이야, 실은 모래 목요일에 내 사촌하고 둘이서 지리산 한신계곡에 가기로 했는데
얘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못 가게 된 거야. 그래서 나하고 둘이서 지리산 가자고.“

“그래? 그런데 지금 어디서 전화하는 거야? 제주야?”

“아니야. 나 지금 서울 올라왔어. 코로나 땜에 이번 주, 다음주, 재판이 없어 나도 휴가야.”

그래서 흥면이와 둘이서 일박 이일 지리산 한신 계곡에 피서 다녀왔다.
피서 피크 때라 교통편도 가는 편은 흥면이가 미리 예약을 했다고 했지만
오는 편도 그렇고 숙소도 만만치 않을 거라 내심 걱정했는데 전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갈 때도 우등 고속버스 겨우 반을 채우더니 함양에서 다 내리고
종착지인 지리신 백문 동에는 흥면이와 둘이 내렸다.
계곡을 끼고 즐비한 숙소들이 텅 비었고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동해안쪽으로는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고 하루 숙박비가 30만원을 넘어도 만원이라
예약이 안 된다고 했는데 전혀 뜻밖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뜸한데도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지리산 입구에서도 마스크를 확인하고 쓰지 않으면 입산을 제한했다.
고속버스 중간 휴게소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다 들고 깜빡하고 마스크 하지 않고 타다
몇 안 되는 승객들로부터 집중 삿대질을 받기도 했다.

식당이 딸린 숙소에 여장을 풀고 비빔밥으로 간단히 식사한 후
5개의 폭포가 연 이어 있다는 한신 계곡 등정 길에 올랐는데
계속 오르막이라 쉬운 길은 아니었다.

내려오면서 계곡에 잠시 발 담근 시간 외에 거의 쉬지 않고 왕복 5시간 걸려
계곡을 4km 올라갔다 내려와 땀을 흠씬 흘리고 마신 생맥주의 청량감과 시원함은
아마 평생 못 잊을 추억이 될 것이다.
저녁식사에 곁들인 토속 막걸리인 마천 막걸리도 배가 불러 더 이상 안 들어갈 때가지
실컷 마셨다.
아침에 계곡에서 잡은 다슬기를 듬뿍 넣어 부추만 넣고 담백하게 끓인 다슬기 해장국도
아리한 다슬기 향을 입 안 가득 씹을 수 있어 가히 일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남원에 들어 평생 처음으로 춘향이가 그네 타고 놀았다는 광한루도 돌아봤는데
흥면이도 남원은 여러 번 와 봤지만 광한루는 처음이라고 했다.

바다도 가고 계곡도 갔으니 금년 여름 피서는 예기치 않게도 너무나 잘 했다.
오늘이 입추다. 다음 주는 말복이다.
그래서 그런지 낮에 열기와 뙤약볕은 여전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고
그저께부터 밤 기온도 25도 이하도 떨어져 자다가 일어나 선풍기를 꺼야했다.
그토록 요란을 떨던 여름도 정점을 지났다.  
2021.08.08.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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