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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1-08-14 21:32:54, Hit : 51, Vote : 10
  토요 살롱 330회 " Plan for the Rest of our Lives "

말복을 지나면서 그토록 기승을 부리던 찜통더위도 한풀 꺾였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한결 다르다.
우선 바람에 실려 오던 후덥지근한 열기가 기분 좋은 시원함으로 바뀌었다.
열대야도 사라져 선선한 새벽 공기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어제 밤에는 어디서 빨가벗고 엄동설한 한풍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악몽에 시달리다
비몽사몽 일어나 선풍기도 끄고 바람이 불어오는 동쪽 베란다 창문을 닫아야만 했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모기도 사라져 미국에서 돌아 온 날부터 모기 매트를 꽂았는데도
모기에 뜯기느라 잠을 설쳤는데 간만에 편안하게 푹  잘 수 있었다.
요즘 모기들은 각종 모기 퇴치 제에 적응되었는지 항체가 생겨 진화했는지
어지간한 살충제나 모기향으로는 잘 퇴치가 되지 않는 거 같다.
모기매트를 두 개나 꽂았는데도 불을 끄고 자리에 눕자마자 ‘웽~’ 하고 공격 나팔을 불어
다시 일어나 팔이고 다리고 목이고 노출되는 몸의 모든 부위에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잔뜩 뿌리고서야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

목청이 터지라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자자들고 있다.
하기야 7월 중순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울고 있었으니까
6년을 땅 속에서 애벌레로 지내다 탈피한 후 땅 속에서 기어 나와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성충이 되어 한 달 이상을 암컷에게 어필하기 위해 목에서 피가 나도록 울어대는 동안
목청 좋은 순서대로 짝 짓기를 마친 녀석들은 이미 소멸해버렸을 터라  
울어대는 수컷 개체 수도 줄어들었을 거고 게다가 가장 성량이 큰 녀석들부터 짝짓기를 마쳐
목청이 비교적 열등한 녀석들만 남았을 테니까 총체적인 볼륨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거다.

그나마 매미 소리가 그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은 낮 최고 기온이 30도에서 내려오고 있지 않지만
7월 초에 잠깐 형성되었다 소멸된 장마전선이 다시 형성되어
지금은 제주, 남해안과 동해안 위주로 많은 비를 뿌리지만
수도권도 다음주말부터 영향권에 들어 주말 내내 비가 내릴 거라니까
이 비가 더위도, 여름도 데려가고 가을을 문턱으로 데리고 오지 않을까 싶다.

2002년 7월에 가족이 미국으로 떠났으니까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한 지
금년이 햇수로 20년째다.
이주 이듬해인 2003년 12월부터 정기적으로 미국을 들락거리게 되었는데
어쩌다가 일 년에 한번밖에 미국을 다녀오지 못한 적도 있지만
거의 매년 애들 방학에 맞춰 여름,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 홀리데이 시즌인 겨울,
이렇게 두 차례씩 30번이 넘도록 미국을 다녀왔다.

가족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가장인 내가 먼저 떨어져 살게 되었는데
아이들 또한 모두 사내 녀석들이라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
‘각자 어디에 살더라도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장소는 엄마가 있는 곳’
이 것만은 지키자고 나도 다짐을 하고 다짐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미국으로 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가족과 함께 보내는 스케줄은
일단 무조건 변함이 없고 여름 방문은 아이들 상황을 봐서 유동적으로 일정을 정했었다.
이를테면 미국은 졸업이 대체로 5월 말, 6월 초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졸업이 낀 해는 졸업식 참석 겸해서 좀 일찍 다녀오고 아이들이 학업을 마친 후에는
구지 여름에 갈 이유가 없어 상황을 봐서 추석 연휴를 이용해 다녀오곤 했었다.
이렇게 매년 한 차례 이상은 미국을 다녀왔는데 일 년을 통째로 그냥 넘어간 적은 없었다.

다 합하면 오고간 비행기 삯만도 상당한 금액이다.
‘공중에다 돈 다 뿌리고 다니는구나. 오고가고 얼마야?
게다가 비행기 값만 달랑 들고 오가지는 않을 거 아니야?
비행기 열 몇 시간씩 타고 밤낮이 바뀌는 시차에 그 개고생하면서.‘
라는 일말의 동정기가 아주 없지는 않은 빈정거림을 들을 만도 하다.

물론 지금 와 계산해보면 꽤 되는 금액이다. 단순 계산만 하면 아깝기 그지없는 숫자다.
그러나 돈이란 써야 가치가 인정된다.
돌이켜보면 나와 가족들의 행복한 순간들을 위해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지출이었다.
가성비로 따진다면 그 값어치를 측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까울 리가 없다.

그리고 열 서너 시간 비행기 타고 내리면 머리가 멍한 게 진이 다 빠진 느낌이다.
시차 땜에 며칠 고생하다 겨우 적응되었다싶으면 다시 또 열 몇 시간 비행기 타고 돌아 와
마찬가지로 시차적응에 돌입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돌아와서는 시차적응이 빨라 그나마 다행이다.
하루 밤 자고 다음 날이면 거의 정상 생활, 정상 활동을 할 수 있다.
반은 미국에 있고 반은 한국에 와 있는 재헌이는 시차 극복하는데 미국으로 돌아가서든
한국에 와서든 각각 3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얼마나 성가시고 불편할까.
경구 회 친구는 시차 극복하는데 여행한 날짜만큼 걸린다고 한다.

주변에 비슷한 입장으로 기러기 생활하는 지인들이 더러 있지만
처음 몇 년간은 몰라도 그렇게 오랜 세월 지극정성이다시피 연례행사로 한해도 그르지 않고
매년 두 번씩이나 가족을 방문하러 다니는 경우는 흔하지가 않다.
더구나 비행시간이 직행을 타더라도 열 서너 시간이나 되는 장거리 여행이다.
오히려 아빠는 가끔 다니지만 가족들이 주기적으로 한국으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담이지만 매년 미국을 두 번 다녀오는 외에 나는 매년 나만의 정해진 일정이 있다.
4월 5일 한식에 성묘를 다녀오고 9월 초에는 산소에 벌초하러 간다.
5월 마지막 일요일에는 옛 직장 sk 후배 호성이 성묘하러 가고
추석과 설에는 안창에 계신 숙모님 뵈러 간다.
이 일정들이 최우선이라 이 일정들과 겹치는 일이 없도록 미리 작정을 한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미국을 들락거린 가장 큰 이유야 물론 아직 한참 성장 중인 아이들과
반 생과부가 되어버린 애들 엄마와 한번이라도 더 자주, 그리고
잠시라도 더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지만
영주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영주권을 유지하려면 일 년에 6개월 이상을 미국에 거주해야만 한다.
그래서 편법이나마 핑계 삼아 미국 출국 6개월 이내에 입국을 하여왔었다.
지난 20년 동안 한 두 번은 출국 후 6개월을 넘긴 적도 있었고
한두 번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입국한 적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그럴싸하게 둘러대고 어찌어찌 요행으로 넘어갔지만
지난해 12월에는 출국한 지 일 년이 넘어 어떤 이유, 핑계도 통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출국하여 일 년이 넘을 경우 미리 re-entree permit을 신청하여 받아두면 되는데
그럴 상황이 못 되었었다.

지지난해인 2019년 9월 추석연휴를 이용하여 미국을 다녀온 후 원래는 그해 12월 20일 전후해 다시 다녀오려고 했으나 11월에 차기 신우 회 회장 직을 수락하는 바람에
신임 회장으로서 연말 송년 모임과 년 초 신년 모임에 참석은 물론 주관을 해야 하는데
흥수가 자기가 백업을 할 테니 염려 말고 다녀오라고 했지만
일단 회장 직을 수락한 이상 취임 초부터 그런 무책임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고
또 신임회장으로서 주요한 행사를 진두지휘하는 리더쉽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고심 끝에 도미 일정을 취소해야만 했었다.

물론 그 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가족과 함께 보낼 수도 없게 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당해 연도인 2002년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쓸쓸하게 혼자서 보내야 했다.
가족들에게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아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의아했지만
나중에는 아빠가 없는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는 처음이었기에
모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우 회 신년 모임에 참석하고 미국을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설 연휴 이전에 돌아오는데 너무 여유가 없어 설을 지나고 다녀와야겠기에
그래도 6개월 이내인 3월로 연기했는데
2월 들자마자 전 세계로 번지기 시작한 코로나 때문에
미주 비행 노선이 거의 전면 취소되어 미국에 머물던 유학생, 여행객들의 발이 묶여
급기야 전세기까지 동원되는 마당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며 차일피일하다
일 년을 넘기고 말았다.
그래서 해를 넘기면 미국에 입국하지 않은 지 이년 째로 접어들어 더 이상 미뤘다가는
영주권이 취소될 지도 모르겠다는 우려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부랴부랴 미국행에 올랐다.

미국 이주 초창기에는 워싱턴 직항인 대한항공이 일주일에 3번밖에 뜨지 않은데다
가격도 너무 차이가 나 미국 비행기인 United Air Line이나 Delta Air Line을
주로 이용했었다.
Delta 는 가격이 가장 저렴한 대신 동경에서 한번 갈아타고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국내선으로 한 번 더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에
동경에서 한번만 갈아타면 워싱턴으로 직행하는 Unite Air Line을 더 자주 이용했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대한항공의 워싱턴 직행 노선이 주 7회로 증편되고 요금도 많이 내려
마일리지까지 감안하면 미국 비행기와 별 차이가 없어 대한항공을 타고 다니게 되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 요금은 대한항공 직항이 왕복 260만원,
디트로이트 한번 경유의 델타가 82만원으로 차이가 너무 나는데다
대한항공과 델타는 미주 노선을 공유하여 델타를 이용하더라도
소정의 대한항공 마일리지가 적립되어 디트로이트에서 3시간을 lay over 해야 하고
대한항공 직항의 기착지인 덜레스 공항에서 집까지는 30분 거리인데 반해
디트로이트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기착지인 볼티모어 국제공항에서 집까지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등의 이런저런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델타를 타고 익숙지 않은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받게 되었다.

아예 각오를 하고 immigration 창구에 패스포트와 영주권 카드를 내밀자
창구 직원이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사진을 대조하고 기록을 살피며
몇 마디 물어보더니 바로 사무실로 데리고 갔는데 이미 십 여 명의 입국자가
비좁은 사무실에 앉거나 서서 초조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 6개월을 넘긴 영주권자들이었다.
우선 6개월 넘겼지만 일 년 미만인 영주권자들부터 인터뷰를 하여 사연을 듣고는
주의를 주고 경고를 한 후에 별 조치 없이 영주권과 패스포트 돌려줬지만
일 년을 오버한 경우에 일단은 모두 한쪽에 대기를 시켰다.
영주권 취소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함께 connecting flight를 놓칠까
노심초사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내 차례가 빨라 인터뷰를 시간 내 마칠 수 있었고
처벌도 비교적 가볍게 받았다.

미국 거주 지인들로부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구동성으로 나는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들 했다.
영주권을 소지하고 정당한 사유나 허가 없이 일 년 이상 미국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취소라는 게 중론이었다.

당연히 일 년이 넘도록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은데 대한 심문과 변명과 싱갱이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영주권 효력 18개월 waiver에 580불 charge 를 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벌금이냐고 물었더니 싱글거리며 벌금이 아니라 waiver charge라고 했고
즉석에서 지불하라며 수납창구로 데려갔는데
마침 미국에서 사용하는 체크카드를 소지하고 있었기에 그걸로 지불했다.

그 사건으로 과연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구지 미국 영주권을 유지해야만 해야 하나 라는
그 동안은 당연시 여기고 있었는데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라는
근본적인데 의문을 품고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이 나이에 이제는 생활 패턴을 좀 더 단조롭고 간단하게 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최근 들어 우리 동기들이나 지인들로부터 나중에 어디서 살 거냐는 질문을 자주 받고 있다.
대개는 송 종호가 언젠가는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떠날 거라는 걸 당연시 하며
그게 언제냐, 언제 보따리 쌀 건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반세기 절친 최 영식이는 아예 대 놓고,

“ 종호야, 나이 칠십이다. 독거노인이 무슨 낙이 있노.
  고생도 할 만큼 했는데 그만 궁상떨고 마누라한테 가거라.
  이제부터라도 마누라 해 주는 밥 먹고 편하게 살거라. “

얼마 전 무슨 일로 병규와 통화를 하던 김에 친구들 근황에 대한 소식을 주고받던 중
병규가 뜬금없이,

“그런데 종호야, 너는 retire 후 어디서 살 거니?
애들이 모두 미국에 있으니 와이프가 애들 두고 오지는 않을 거고 천상 니가 가야겠네?“

대학에서 만나 절친이 된 길우는 대광을 나왔지만 중학은 서울 중 23회로
길우와 중학 동기인 우리 동기들은 물론 한해 후배인 24회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는데  
지가 내 결혼식에 사회를 본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인지 만날 때마다 꼬치꼬치 캐묻는다.
혹시 부부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어 사실상 별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부부가 이렇게 오랜 세월 떨어져 살 수 없다는 게 길우의 상식이다.

“너 보면 참 답답하다. 너는 니가 해 먹는 밥이 맛있냐?
부부가 같이 살을 맞대고 살아야지 견우직녀도 아니고 너는 왜 그러고 사냐?
애들도 다 컸는데 니가 가던지 와이프가 오던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부부라도 떨어져 살면 정도 멀어지는 법이야. “

하기야 아이들 다 성장하여 제 갈 길로 가고 있으니 아이들 뒷바라지 핑계를 댈 수도 없고
나도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은퇴할 나이를 훨씬 넘겼기에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다.
그래서 길우를 만날 때면 ‘이 친구가 언제 또 그 이야기를 꺼내나.’ 항상 조마조마하다.
한참 설교를 들어야 할 일이 따분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오늘은 무슨 핑계를 대야하나
머리를 굴리게 된다.

이때까지는,
‘내가 너를 두고 보고 싶고 걱정이 돼서 어떻게 떠나냐.’ 라며 얼버무리지만
보다 집요하게 물어오면,
‘지금 당장은 아직 여기 하는 일이 있어 못 가.
그리고 와이프는 의대 다니는 작은 애가 지 엄마를 꽉 붙들고 있어서.
작은 애가 졸업하고 레지던트 시작하면 그 때 결정할 거야.‘

길우는 이 정도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그래도 니 마음속으로는 뭔가 결정을 하고 있을 게 아니냐. 그게 뭐냐고.’
마지못해 한마디 더 나아갈 수밖에 없다.
‘글쎄, 내가 아직 사지육신이 멀쩡하고 어디 아픈 증상도 없고 체력도 그런대로 받쳐주는데
미국 가면 뭐하고 보내냐.
너도 알다시피 나는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뭐라도 하고 있어야지
가만히 멍 때리고 있는 스타일이 못 되잖아?
미국은 또 부부가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저녁에 술 한 잔 나눌 친구도 없고.
골프도 매일 치면 질릴 거고 아마 엄청 심심할 거야.
그렇다고 마누라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면 백퍼센트 한국으로 다시 쫓겨 날 거야.
와이프도 아직까지는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하지는 않고 있고.‘

그런데 사실은 칠십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 우리 나이쯤에는
어디서 누구와 살 건가를 결정하기 전에 남은 인생을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 건가가
먼저 규정되어 져야 한다. 나머지는 그 다음 문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친구 중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건 지를 일찌감치
당당하고 떳떳하게 만천하에 천명한 친구가 있다.
용혁이다.
수년 전 ‘나는 여생을 와이프에게 바치겠다. 와이프를 위해 살겠다.’ 라는 내용을 써서
가까운 친지들에게 일괄적으로 메일로 보내 여생에 대한 자신의 결심을 공개해버렸다.

이런 친구가 또 있다.
기수가 5개월간 요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40년 전 자기한테 시집와
결혼한 이듬해 갓 서른이 된 기수가 이제 막 백일 된 아들을 두고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하자 가장역할을 떠맡아 경제를 책임지고
그 와중에 두 아이를 키우며 시어머니 모시고 온전치 못한 남편을 돌보며
온갖 곡절을 겪고 역경을 이겨내며 가정을 이끌어 온 아내가 가벼운 뇌종양 수술을 받자
그 절절한 마음을 담은 글을 친지들에게 보냈다.

‘주님이 나에게 부여한 여생을 아내를 위해 바치겠습니다.’

지난 편에 잠깐 언급했듯이 흥면이도 여생 설계를 다 마쳤다.
2023년 말에 변호사를 폐업하고 2024년 1월부터 6년간 주유천하를 하며
미리 발췌해 둔 국내 명승지를 다 돌아보고 가끔은 꼭 가보고 싶은 해외 명승지도 다녀온 후
2030년부터는 오래 전부터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이 주지인
해남의 한 선사에서 조용히 여생을 마치겠다고 한다.
주지스님이 그 때를 대비해 흥면이가 거처할 황토 방을 미리 마련해두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조 성리학의 대가 두환이도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확고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준비하고 있다.
우선 고향은 아니지만 외가로 어릴 때부터 방학이면 놀러 다녀 고향처럼 익숙한 고장인
서울에서 가까우면서 산수 수려한 양평으로 이사하고
서고로 사용할 컨테이너와 서재 겸 주거용 이동식 주택을 앉힐 땅 200평을 구입하여
지금 한창 공사 중이라며 8월 말까지 공사를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폭염으로 늦어지고 있지만
늦어도 추석 전에는 완공될 테니까 가을에 놀러오라고 한다.

‘너희들 말이야, 내가 술도 주고 밥도 주고 재워도 줄 테니까 가을에 꼭 와라, 하하하.’

두환이는 생전에 이조 충신 열전 집필을 마치겠다는 각오다.
이조시대 충신이 2백 명은 된다니까 일인당 한 권씩 써도 200권을 써야한다.

한동 대 교수이던 배 건웅이는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떠났다.
당초 혼자 떠나려고 부인에게 의사를 묻지도 않았으나
남편을 험한 오지에 혼자 보낼 수 없다며 부인도 따라나섰다고 한다.
탄자니아에 한인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선교활동도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보수는 없고 자비 부담이다.
정년퇴직 후 교회 장로로서 지역사회에서 존경 받고 가끔 초빙교수로 강의도 하고
손자들 재롱에 기뻐하며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영유할 수 있는데도
칠십 줄에 접어든 나이에 절대 어울리지 않는,
강력한 정신력과 육체적 건강과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게다가 자기 돈 써가며
힘들고 험난한 길을 택했다.
헐벗고 굶주리고 무지몽매한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지식을 불어넣어주고
희망의 등대가 되어 주며 여생을 보내겠다고 한다.

KAIST에서 정년 후 국방대학원 교수로 3년간 재직하고 지금은 은퇴한 재억이가
내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인 6월 초에 승종이, 경철이와 넷이서
저녁 겸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술이 몇 잔 돌아가서 혀가 매끄러워지자
학창시절부터 강력한 이빨들인 경철이와 승종이가 둘이서 뭐라고 주고받으며 떠들어대는데
대화에 끼지도 않고 듣고 있는 거 같지도 않으면서 별 흥미 없이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마침 옆에 앉아서 적당히 맞장구치고 있던 나에게 둘이 떠들어대는 건 깡그리 무시하고,  

“종호야, 내가 지금은 그래도 쓰던 책 마무리한다고 시간을 때우고 있지만
책 다 쓰고 나면 뭐하고 보내야 할지 난감하다.
연금 받는 거 가지고 이럭저럭 생활이야 하겠지만 오늘이 내일과 똑 같이 되풀이 되고
모래도 글피도 그렇다면 이건 그냥 목숨만 연장하는 거, 말하자면 연명하는 거잖아.
병원에 줄 잔뜩 꽂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드러누워 있는 거와 다를 게 없는 거 아니야?
그렇게 여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은데 그거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고.“

“책을 계속 쓰지 그러냐?”

“그래서 지금 마무리하고 있는 거 서둘러 출판하던지 논문집에 올리던지 하려고.
그러면 강의 부탁이라도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서.
강의는 그래도 내가 제일 자신 있는 분야니까. “  

재억이만 초조한 게 아니다.
이제는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울 때가 된 거 같다.
2021.08.14. 송 종 호.




토요 살롱 331회 " 夏 中 小 考 "
토요 살롱 329회 " 코로나 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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