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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2-03-27 16:03:10, Hit : 117, Vote : 30
  토요 살롱 348회 " 어느 특별한 결혼식 "

날이 부쩍 길어지고 춘분이 지난 지 거의 일주일이나 되어 3월 말로 접어들었는데도
새벽에는 여전히 맨살에 닿는 공기가 차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제법 많이 내린 비가 따뜻한 봄바람을 동반할 줄 알았는데
비가 그친 후 오히려 찬 공기가 내려와 다음 주 내내 쌀쌀한 날씨가 이어질 거라고 한다.

그러나 남녘에는 이미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부산에 거주하고 있는 이 천복 전 경성 대 교수가 부산 평화공원에서 찍었다는,
막 잡초가 돋아나고 있는 숲가를 따라 아직도 살얼음이 군데군데 떠 있는,
양안을 돌로 축대를 쌓은 걸로 봐 아마 인공으로 조성된 듯 한 야트막한 시냇물에
두 발을 담그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뒤뚱뒤뚱 거니는 왜가리 사진 한 장과
하얀 꽃이 만발한 흑 자두나무 사진 두 장, 그리고 하얀  벚꽃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천복 부인 사진 한 장을 올려주었다.
봄은 이렇게 진작 반도 남단에 상륙하여 소리 없이 빠른 속도로 북상 중에 있다

뿐만 아니다.
이쪽 산야와 숲은 연도의 누렇게 메말랐던 풀 섶에 그나마 자세히 들여다봐야 감지할 수 있는
초록의 기미가 보이는 거 외에 아직 길고 길었던 황량한 겨울 풍경에서 조금의 변화도 없지만
공원 정상 분수대가 있는 아담한 광장에서 하늘 정원으로 내려오는 오솔 길 입구에는
제비꽃 모양의 진보라 종지나물, 꽃잎이 탐스럽게 넓은 샛노란 피나물,
토끼풀 크기의 앙증맞은 하얀 꽃잎에 한가운데 노란 화분을 담은  옥스 아이 데이지,
하얀 바탕 꽃잎에 자주색이 한가운데서 퍼져 나오며 색이 점점 엷어지는 실버메꽃,
분홍색 꽃잎이 솔방울처럼 여러 겹으로 겹쳐 봉오리를 이루고 있는 알리솜 등
이른 봄꽃들이 땅에 바짝 붙어 마치 땅에서 바로 솟아난 거처럼 아름답게 피어나
잿빛, 색 바랜 누런 황토 빛의 메마르고 낡고 단조로운 색에만 익숙해 있던 눈을 어지럽히며
윤기가 반질반질하고 물기를 가득 품어 생명이 넘치는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들이 장식할
신세계의 도래를 선구자가 되어 미리 알리고 있다.

종정이 부인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몇 번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더. 전화 주셨기에 바로 전화 드린다고 하면서도
  막상 이거저거 하다보니까 또 까먹고 했네예.”

“이번에도 통화가 안 되면 희택이한테 전화해보려고 했습니다.
  가끔 하는 전화지만 안 받으시면 무슨 일이나 있는 건 아닌 지 걱정이 되거든요. “

“죄송합니더. 코로나 땜에 더 조심하고 더 청결해야 하고 그러다보니까
  할 일이 더 많아졌어예.
  애기 아빠가 기저 환자다 보니까 걸리면 바로 위중해지는 거 아입니꺼.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습니더. 애기 아빠도 여전하고예.
  그런데 잘 지내셨습니꺼? 인사가 늦었네예, 하하.“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미국을 세 번 다녀오느라
  코로나 검사 열 두 번 하고 백신 네 번 맞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감기도 안 걸렸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는데 항상 건강 조심하셔야 됩니더.
  무리하지 마시고예. 특히 나이 들어 머리가 차면 안 된다 캅디더.
  모자 꼭 쓰고 다니이소.“

“제 걱정보다 택이 엄마가 이제는 좀 쉬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2004년에 쓰러졌으니까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할지,
그냥 뭐 쉽게 기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싱거운 거 같고.
택이 엄마가 붙잡고 있으니까 종정이가 못 떠나는 거 아닐까요?
이제 그만 놔 주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예? 제가 그런 힘이 있는지 몰라도 저는 아직은 못 보냅니더.”  

지난주는 예식이 있다는 걸 깜빡했었다.
한 달 전쯤에 25회 후배로부터 청첩장이 날아왔다.
둘째 아들의 결혼 소식이었다.
이 친구는 장년 한 아들이 둘이라고 들었는데 혼사 소식이 없다가
둘째 소식을 전하는 거 보니까 둘째부터 먼저 보내는 거 같았다.

이 후배와는 대학을 같이 다녔으니까 오랜 인연이다.
법정대와 상대는 정문을 들어서며 길 우측에 있는 첫 건물을 같이 썼다.
저학년 교양학부 시절에는 각자 선택과목과 성대만의 필수 교양과목인 유학 수업 들으러
문과대로 올라가야 했지만 전공 위주가 되는 고학년이 되면
도서관 가는 외에 위로 올라갈 일이 없었다.
그래서 법정, 상대 학생들은 다른 전공 학생들과는 오다가다 부딪칠 일도 거의 없는 대신
자기들끼리는 협소한 공간에서 4년을 부대끼다 보니까 대충 얼굴들은 알고 지내게 된다.

그래서 신문방송학과를 다니고 있던 이 친구와는 오다가다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자주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불과 일 년 선후배사이지만 나한테는 유별나게 깍듯했었다.
키는 나하고 엇비슷했지만 생김새가 나하고 판이하게 호남 형으로 이마가 시원하게 넓고
쌍꺼풀 진 커다란 눈에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게 잘 생겼고 군살 없는 쭉 빠진 몸매에
차림새도 청바지에 유행에 맞춰 멋지게 하고 다녀 멀리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항상 싱글싱글 웃는 표정에 목소리가 맑고 우렁찬데다 넉살도 좋아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따라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거로 추측된다.

졸업 후 상당히 오랜 세월 거의 15년 이상 격조하며 사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90년대 초반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인천에서 건설업을 하고 있었고 이 친구는 당시 (주) 한양에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 후배가 (주)한양에 근무하고 있는 줄 꿈에도 모른 채
일 관계로 (주) 한양 본사를 방문하였다가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이 친구가 나를 먼저 알아봤다.

“ 어, 종호 형 아입니꺼? 여긴 우짠 일입니꺼?”

이 친구는 부친이 월남하였고 학교를 서울에서 다 다녔지만 어릴 때 부산에서 산 적이 있어
나를 만나면 일부러 경상도 억양과 사투리를 흉내 내곤 했었다.
학창시절부터 우리 끼리만의 대화 방법이었다.

나는 졸업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줄곧 해외 출장이 잦아 국내보다 해외 체류가 더 길었고
82년부터 89년까지 7년간은 일 년에 한번 보름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 잠시 귀국하였기에
국내 체류 동안에 사실 일 관계 사람들과 친 가족 이외에는 누구를 만나고 어쩌고 할 형편이
못 되었었다. 그러니까 이 친구만 연락을 못하고 지낸 건 아니었다.

이 친구는 졸업 후 바로 (주)한양에 입사하여 성실과 실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 승진을 거듭해 마흔도 안 된 나이에 부장으로 승진하여 한 부서를 책임지고 있었고
나는 1989년 귀국하여 진로를 바꾸어 인천에서 건설 회사를 창업하여 경영하고 있을 때였다.
.  
이 친구도 상당한 주량에 애주가라 그 이후 간간히 격의 없이 술자리를 하곤 했었는데
90년대 중반 (주) 한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다시 주택공사의 자 회사로 편입되었다가
파산을 하는 등 회사가 변혁을 거듭하는 사이 이 친구가 퇴사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다시 연락이 뜸해졌다가 그 이후로는 이 친구가 회사를 옮길 때마다
연락이 한 번씩 오긴 했지만 서로 안부를 확인 하는 정도였지
정작 만나서 회포를 풀고 하지는 못 했었다.
나 또한 2,000년대 들어 격변을 겪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13년 늦가을에 문득 생각이 나 전화를 했다.

“아, 형님, 오랜마입니더. 잘 지냈능교.
  제가 먼저 연락드려야 하는데,
  그건 그렇고 형님, 형님 시간 되실 때 오랜만에 술 한 잔 하입시더,
  언제가 좋겠능교.“

이렇게 해서 며칠 후 이른 저녁 강남 어디 허름한 대포 집에 마주 않게 되었다.
첫 잔을 채우자마자 서로 안부를 나누기도 전에 이 친구가 불쑥 먼저 말을 꺼냈다.

“형님, 마, 저는 제 반려자를 먼저 떠나 보냈십니더. 며칠 전에 상 치렀습니더.”

오랜만에 만나 한잔하는 자리라 기분도 좋고 조금은 들뜬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아무런 대비도 없이 오히려 즐거운 상태에서 툭 던지듯 내뱉는 말에
순간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친구는 쾌활한 성격이지만 절대 농담을 하거나 쓸데없이 장난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니, 이 친구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며칠 전이라니?
  왜 연락을 안 했어? “

“뭐, 경황이 없었심더. 자, 한 잔 하입시더.”

그러고 보니까 입 언저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웃고 있지만 안경 넘어 커다란 두 눈은
물기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아니 어쩌다가 그런 일이.”

“마, 오래 됐십니더. 원인도 모르는 불치병으로 입원한 지 7,8년 됐십니더.
  제 하루 일과가 아침에 출근하며 들리고 퇴근하며 들리고
  휴일에는 거의 종일 병원에서 보냈는데 이제 그 시간을 어떻게 때워야 할지
  허전하고 그게 막막합니더. 오랜 병환에 불치라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하니까
  멍한 게 아무 거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더.
  제 처가 저한테는 천사였심더. 천사를 떠나보냈습니더.“

날짜를 짚어보니까 상호 부인이 세상을 떠난 다음날이었다.

“아,예 저도 그이야기 얼핏 들었심더.
  24회 선배 한 분도 비슷한 시기에 부인상 당했다고.”

“아들들이 충격이 크겠구나. 얼마나 슬프겠냐.”

“이제 우리 집에는 남자들만 남았심더. 아내가 아프고서 늘 하던 일이지만 제가 살림 살고
마음이 텅 빈 거 외에는 일상생활에 뭐 큰 변화는 없읍니더.“

그러고서 가끔 전화도 하고 만나서 술 도 한 잔 하고 하다
이 친구와 동기로 성대 법대를 나오고 나와 대학 이후로 계속 인연을 이어오며
비교적 자주 만나고 있는 검사 출신 변호사와 4년 전쯤에 점심을 같이 하며
서로 잘 알고 있는 24회, 25회들에 대한 소식을 나누던 중,

“ 형님, 그럼 그런 모임 하나 만들까요?
  24회와 25회만으로 서로 격의 없이 술 한 잔 할 수 있는 모임으로요.
  우선 25회 중에 형님이 보고 싶은 후배들 추천해 보십시오. “

이렇게 해서 부정기적이지만 대체로 분기별로 한 번 정도 만나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는데
당연히 이 친구도 포함이 되어 이 친구와 별도로 만나지 않더라도 별 일이 없는 한
모임에서 일 년에 적어도 몇 번은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변화가 있었다면 이 친구도 각종 성인병으로 술을 자제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코로나로 지난 2년 동안 일시적으로 모임이 중단되었지만
코로나 사태가 호전되면 모임이 재개될 것이라 별 일이 없는 한 일 년에 몇 번은
이 친구와 만나게 될 것이다.

청첩장을 받고 우선 축하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마누라도 없이 홀아비 혼자서.“
한편으로 애잔한 마음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를 하여 축하를 하고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예식이 아침 11시에 학동 건설회관이라 집에서 9시에는 출발해야했다.
한 달 가량 가뭄이 심하다 마침 비가 오락가락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예보에는 월요일까지 사흘 내리 내린다고 했는데 내리다 말다 했지만 얼추 그 정도로 내렸다.
‘혼인 날 비 오면 잘 산다던데 이 녀석들 앞날을 축복하는구나.’
괜히 기분이 좋았다.

이 친구는 권 색 양복에 빨간 색 넥타이를 맨 수수한 차림으로
혼전인 큰 아들과 나란히 서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 동안 무심결에 지냈는데 그러고 보니까 한 때 40,50대에는 배도 나오고
살이 좀 풍성했었는데 코로나로 2년여 못 보는 동안
배가 다 들어가고 얼굴의 볼도 훌쭉해져 있었다.

“아이고, 형님, 먼데서 어려운 걸음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하하.
예가 큰 애고 저기 쟤가 이번에 결혼하는 작은애입니다.
인사해라. 아빠 선배님이시야.“

“축하한다. 그리고 수고했다. 마누라도 없이. 그런데 작은 애가 너를 많이 닮았구나.”

순간 눈가에 물기가 핑 돌며 쓸쓸한 기색이 스쳐갔지만 이내,

“아, 예 작은 놈이 나를 닮고 큰 애는 지 엄마. 하하.”

25회라 아는 얼굴이 없을 거 같아 바로 식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어, 종호 형, 하하, 오셨네요.”

25회로 서울 대 정치학과를 나와 영호와 같이 산자부에 근무하던 녀석이다.
딸, 아들 둘 다 일찌감치 출가시켰고 국장으로 퇴임 후 산하 단체장을 몇 년 더 하고
충청도 어디에 있는 대학에서 교수로 정년퇴임 했다.
나하고는 20여년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바로 그 전주 대선 다음 날
다른 25회 한 명과 셋이서 점심을 같이했었지만
그 때의 주제는 영호의 돌연사와 대선 결과 같은 대형소재였기 때문에
이 친구 혼사 이야기를 다들 깜빡하고 누구도 꺼내지 못해 참석 관계를 확인하지 못했었다.

“어, 너도 왔구나.”  

“아, 그럼요. 당연히 와야지요. 그런데 저는 죄송하지만 식은 못 보고 바로 가 봐야겠습니다.
다른 일정이 있어 와이프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

식장 안에는 왼쪽 신랑 측은 이미 자리가 다 차버려 할 수 없이 빈자리가 드문드문 보이는
신부 측 좌석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예식 순서 자체는 요즘 유행하는 결혼 의식과 별반 차이가 없는 평범한 결혼식이었다.
성혼 선서를 양식에 따르지 않고 자기가 직접 써 온 대본을 각자 읽었고
주례 없이 하객들에 대한 감사 인사는 신부 아버지가 신랑 신부에 대한 당부의 말은
신랑 아버지가 주례를 대신했다.

신랑 아버지가 아기를 빨리 가져라 는 등 두 신혼부부에게  여러 말로 당부하던 중,

“ 하늘에 계신 너의 엄마도 기뻐하실 거다.”

이 대목을 읽는 신랑 아버지도 목이 메었지만 순간 나도 울컥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빠가 없는 결혼식은 가끔 있었지만 엄마가 없는 결혼식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나로서는 김 훈 외아들 혼사 이후로 두 번째 엄마 없는 아들 결혼식 참석이었다.
훈이는 그래도 손자를 키우다시피 애지중지한 친 할머니가 엄마 자리를 대신했었다.
부모 자리에 훈이와 나란히 앉아 신랑신부 절도 받고 손자며느리를 환한 미소로 반기며
두 팔을 활짝 벌려 얼싸안고 등을 토닥여주기도 했었다.
게다가 훈이 어머니는 아들과 친한 동기들은 거의 다 잘 알고 있어
혼주로 인사를 주고받는데 전혀 스스럼이 없어 엄마의 빈자리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25회 이 친구는 신랑 부모 석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었는데
옆의 빈자리가 그렇게 넓게 보일 수가 없었다.
신랑신부의 인사를 받고 양팔을 가득 벌여 두 신혼부부를 한꺼번에 품안으로 껴안는 모습에
또 다시 짠해지며 울컥 나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쳤다.

이 친구 둘째 시열이는 키가 지 애비보다 더 커 180cm 훌쩍 넘어보였고
지 애비를 많이 닮았지만 지 애비가 선이 굵은 호남 형이라면
둘째는 인상이 훨씬 부드러운 미남형이었다.
몇 년 간 연애를 했다는 신부는 앳 되 보이고 밝고 귀여운 사랑스런 모습이었다.
집에서의 별명이 ‘행복 바이러스’ 라 는데 그런 별명을 구지 붙이지 않더라도
항상 떠나지 않는 환하고 밝은 미소만으로도 능히 주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을 때는 얼마나 높은 하이힐을 신었는지 신랑과 엇비슷해
키가 늘씬한 아가씨구나 했는데 나중에 평상복을 입고 신랑과 나란히 인사하러 왔을 때는
머리가 신랑 어깨 밑에 매달려 있어 그 모습이 또한 더 귀여웠다.
이 신혼부부의 결혼을 축하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 행복한 삶을 이어가길 기원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애들은 언제나 저런 규수를 데리고 오려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며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졌다.

다음 주말에 성묘를 다녀 올 예정이라 토요 살롱 못 올리니 양해 바라며,

2022.03.27. 송 종 호.




토요 살롱 349회 " 태수야, 잘 가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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