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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2-04-10 20:57:03, Hit : 53, Vote : 13
  토요 살롱 349회 " 태수야, 잘 가거라. "

지난 월요일인 4월 4일, 강원 도 원주 시 지정 면 안창 숙모네 댁에서
큰 조카가 끓인 청국장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12시까지는 렌트카를 반납해야 해
부지런히 돌아오는 길에 이 마트 송림 점에 들러 몇 달 먹고 사용할 생필품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렌트카에 연락하여 입고 확인 시키고 짐 정리하며
몇 군데 급한 전화부터 몇 통화 하고 점심으로 라면에 김치만두 몇 개 넣어
간단히 요기를 하고서야 겨우 엉덩이를 소파에 붙이고 커피 한잔 할 수 있었다.

지난 주 토요일 아침 일찍 성묘를 떠나 영천을 거쳐 대구에서 남철, 대식이와  
저녁에 만나 한잔하고 일박한 후 지난 설에 숙모님과 약속한대로 돌아오는 길에 안창에 들러
조카들과 치악산 막걸리 걸쭉하게 마시며 일박을 더 하고 막 귀가한 참이었다.
2박 3일 일정이라 금요일에 출발해 일요일에 돌아오려고 했으나 대식이가 금요일에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해 하루 늦췄었다.
언제부터인가 대식, 남철과의 일정을 일단 맞추고 그에 따라 성묘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성묘 가는 길에 대식, 남철을 만나 술 한잔하는 게 그만큼 소중한 행사가 되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고속도로는 차들로 꽉 차 있었다.
예정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게 도착한대다 영천에서 대구로 오는 국도도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부친 산소가 있는 두류공원은 만발한 벚꽃놀이 행락객들로 인산인해라 차량이 뒤엉켜
또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 숙소에 여장을 풀 겨를이 없어 바로 약속장소로 가야했다.
그러니까 성묘 하면서 잠깐씩, 칼국수 집에서 잠깐, 고속도로 휴게소에 한 번 들러
화장실 갔다 커피 한 잔 뽑느라 잠깐 외에는 거의 10시간을 운전대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또 종일 운전해 강원도에 갔다 쉴 새 없이 다음 날 아침 일찍 돌아왔기 때문에
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소파에 늘어져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 발신자를 보니까
철홍이었다. 철홍이는 코로나와 이로 인한 폐렴과 호흡장애로 입원해 천신만고 끝에
기적적으로 완쾌해 퇴원한지 며칠돼지 않았었다.
입원하면서부터 부인과 교신을 하고 철홍이가 좀 수습이 되면서는 직접 통화도 하고
문자는 수시로 주고받으며 과정을 함께 했기 때문에 상황을 잘 알고 있어
별 일은 아니겠지 하고 무심결에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철홍이답지 않게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 그런데 저 송 회장한테 먼저 알려야 될 거 같아서 말이야.”

그러면서 또 머뭇거리기에,

“아니 뭔데. 이야기 해 봐 머뭇거리지 말고.”

이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평소의 철홍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풀이 다 죽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 태수가 죽었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기 때문에 순간 뭘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무슨 말이야. 잘 못 들었어. 다시 말해 봐. ”

“태수, 한 태수가 죽었어. 태수가 소천 했어.”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멀쩡했잖아. 며칠 전만 해도 너 완쾌하라고 톡도 올리고.”

“자세히는 나도 잘 모르지만 격리 중에 자다가 심장마비가 왔대. 오늘 새벽이래.
장례식장을 못 구해 내일부터 아산병원에 빈소를 차린대. “

신우 회에 공지를 하기 전에 좀 더 확인하고 싶어 김 문일 에게 전화를 했다.
문일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태수는 몇 년 전부터 김 성주 목사가 주도하는 성경 공부 모임에서 문일 목사, 박 영손 등과
일주일에 한 번씩 오전에 모여 성경공부를 하고 점심을 같이 한 후에는
어울려서 당구를 치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태수 부인에게 전화를 하니까 연결이 되지 않아 메시지를 보냈다.
태수 부인과는 신우 회 모임에서 여러 번 인사를 나누었고
지난 해 가을 둘째 아들 혼사에서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어서 서로 어색한 사이는 아니었다.

“창졸간에 당한 일이라 얼마나 경황이 없으시겠습니까.
애통하고 비통한 마음은 또 어떠시겠습니까.
신우 회 회장 송 종호입니다.
놀란 마음 진정시킬 수도 없고 믿기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뜻이라지만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고 어디에다 매달려 볼 여지도 없네요.
그러나 사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지만
사실이라면 태수를 하나님 곁으로 보내야 할 거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수가 급히 필요 하신 가 봅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원망스럽네요.
우리 모두 애도를 같이 하며 태수의 영면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송 종 호 드림. “

부인한테서도 밤 9시 넘어 감사하다는 인사말과 함께 기도 부탁한다는 답신이 왔다.
장례식장 관계로 다음 날부터 조문객을 맞을 수 있어 밤도 늦었지만
부인께 다음날 찾아뵙겠다는 말 외에 그 날은 더 이상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날이 밝자 우선 24회 신우 회 담임목사인 구 자경 목사에게 문자를 보내 신우 회 관례인
유가족 위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와 구 목사 일정이 어떤지 물어보고
신우 회 명의의 조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하러 흥수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좀 있다 흥수가 응신을 했는데 어떻게 된 게 흥수도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라 고 했는데도
태수 빈소에 조화는 구지 자기가 보내겠다고 하며 오히려 다음 주 화요일에 있을
신우 회 영상예배를 걱정했다.

구 목사는 정식 예배는 못 드리더라도 기도는 할 수 있을 거 아니냐고 반문 하며
5일 저녁 7시에 빈소에 도착할 수 있겠다고 하여 그렇게 공지를 하고
나는 그 날 일정을 부지런히 마무리하고 오후 5시 반쯤에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그날 인천에서 점심 선약이 있었고 오후에는 마침 아산병원과 가까운 건대 역 부근에서
약속이 있었다.

2호선 잠실나루 역에서 하차하여 2번 출구를 나와 성내천변 뚝 위를 따라 동쪽 방향으로
5분 정도 걷다 처음 마주치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아산병원이다.
뚝 길 오른쪽 가장자리에 끝 없이 늘어 선 가로수 벚나무에 연분홍색 벚꽃이 만발해 있었고
왼쪽으로는 노란 개나리가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숲을 이루고 있었다.

빈소에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박 용기가 맞아 주었다.
빈소 입구 왼쪽 테이블에 헌화할 국화가 수북이 놓여 있었고
영정 사진이 차지한 가운데를 중심으로 오른 쪽으로 부인과 두 아들이 나란히 서서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영정 사진 아래 제단은 기독교식으로 차려져 ‘성도 한 태 수’ 라고 쓴 위패 아래
두꺼운 성경책이 놓여 있었다.
영정 속의 태수를 보자 비로소 실감이 나기시작하며 울컥해졌다.
태수는 항상 웃는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한 동안이었다.
백발인 머리를 깔끔하게 염색을 하고 다니다 한 때 염색을 안 한다고 선언하며 탈색하는 동안
이상한 색깔의 머리를 하고 다녔지만 주변에서 워낙 난리를 친다며 다시 염색을 시작해
지난 가을 둘째 아들 혼사 때 보니까 염색한 티가 전혀 안 나게
아주 자연스런 머리색을 하고 있었다. 영정 속의 머리색도 둘째아들 혼사 때 머리색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봐서 그런지 평상시의 웃는 모습 그대로였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한,
뭔가 석연치 않아 하는 기색이 미소 띤 입 언저리에 언 듯 보였다.
헌화를 하고 묵념을 하는 동안 생전의 태수 모습이 떠오르고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짓고 ‘종호야.’하고 부르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러고 보니 작년 10월 둘째 아들 혼사 때 본 이후로 만나지를 못했었다.
코로나로 만남 자체를 자제한 데다 곧 연말이 닥쳤고 내가 1월 20일 미국에서 돌아 와
열흘간 격리하니까 바로 설이었고 그러면서 우물쭈물 세월이 흘렀었다.

그러다 지난 3월 초 오 영호가 뜬금없이 세상을 떠나 친구들 몇몇과 통화를 하다보니까
다들 이구동성으로 태수가 학창시절부터 영호와 절친 이라고 해 겸사겸사 통화를 했었다.
오 영호 추모사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태수는 슬픔에 젖어 말문이 막혀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를 않으려고 했고 지금은 아무 말도 하기 싫으니
추모사도 한두 달 지나고 쓰라고 했다. 추모란 말 자체를 거부했다.
그 정도로 심하게 쇼크를 받았던 거 같았다.
태수에게는 ‘그래, 알았다. 네 뜻에 따르마.’ 했지만 나는 그 주에 오 영호 추모사를
대충 마무리해 올려버리고 말았다.

태수로부터 들을 이야기도 많았겠지만 그 때 그 당시가 지나면
일단 그런 복받치는 감정이 약화 돼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기가 십상이다.
설사 쓴다 하더라도 글에 감정이 없이 신문기사처럼 팩트를 나열하기만 하게 된다.
그게 3월 7일인가 이었으니까 불과 한 달 전이다.  
태수는 영호가 별안간 떠난 충격에서 체 벗어나기도 전에 자신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묵념을 마치고 유가족을 향해 돌아서며 내가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보자
부인도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이미 시뻘겋게 충혈 된 눈이 새삼 그렁그렁해졌다.
간단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인사를 마치자,

“며칠 전부터 코를 많이 골아 제가 잠을 설쳐 일요일에 따로 잤거든요.
자다 새벽에 깨 보니까 코 고는 소리가 안 들려 오늘은 코를 안 골고 자나보다 하고
들어가 보니까 이미 심장이 멎어 있었어요.“

“시내 장례식장이 다 차 있고 화장장 예약도 안 된다고 해 어떡하나 했는데
둘째가 다니는 한국 타이어 상조가 아주 잘 돼 있더라구요.
거기서 하루 늦었지만 장례식장도 구하고 화장장도 3일장에 맞춰 예약했어요.
그렇게 다 알아서 해 주니까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납골당도 ‘엄마가 자주 가 볼 수 있게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소원에 따라
큰 애가 분당 메모리얼 파크 옆 ‘봉안 당 홈’ 이란 곳에 위치 좋은 장소로 예약을 하고
왔다고 했다.

조문을 마치고 유가족들에게 발인에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돌아보니

`효송이와 동원이가 차례를 대기하고 있었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용기가 혼자서 기다리고 있는 접객실로 들어섰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 하는 용기는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용기도 심장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거 같았다.
워낙이 다들 만나면 병치레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하도 병명도 많아 죽을병이 아니라면
대체로 흘려듣고 말아 흔한 병은 기억도 잘 못 한다.
심장 수술한 동기가 수십 명은 되어 아주 가까운 몇몇 외에는 기억을 할 수가 없다.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효송이와 동원이가 조문을 마치고 합석을 했다.

동원이는 24회 산우 회 종신 총무 겸 회장이다.
산우 회는 우리 동기 산하 모임 중에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회원 간 결속력 또한 최고다.
효송이 왈,
“그게 모두 동원이의 리더십과 추진력 때문이야. 회장 말뚝 박는 거지.”

효송이와 태수는 매주 만나 점심을 했다고 한다.
원래 승종이와 셋이서 모였다가 승종이가 모임에 자주 빠지는 바람에
몇 년 전부터는 둘이서 만났다고 한다.
그러니 둘 사이에 얼마나 많은 추억이 쌓이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태수네 식구들과도 친밀한 효송이가 부인이 들려 준 이야기와 대동소이했지만
자초지종을 자세히 다시 한 번 이야기 해 주었다.
효송이가 ‘소주 한잔할래?’ 해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둘이서 세병을 비워버렸다.

그러는 사이 종락이가 부인과 함께 들어오고 필구와 최종호도 나란히 나타났다.
종락이 부인은 오랜만이었다.
몇 년 전까지는 신우 회 월례예배에 거의 매번 부부 동반했었는데 그 후로는
부인의 건강이 안 좋다면서 종락이 혼자서 참석했다.
종락이는 신우 회 개근회원이다. 나는 자주 빠졌지만 내가 참석할 때마다
종락이가 반드시 있었으니까 종락이는 아마 유일한 신우 회 개근 회원이지 않나 싶다.
종락이는 산우 회도 모든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개근 회원이라고 한다.

부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종락이가,
“우리 집 사람이 태수 부인과 사랑의 교회를 같이 다니고 해서 친해.”
종락이에 의하면 부인이 오래 전 심장수술을 했지만 이번에 다시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 날짜도 잡았는데 처음 집도한 서울 의대 교수 박 표원이가 이야기를 듣고
검진 자료를 살펴보고는 좀 더 기다려보자고 해서 수술연기하고
상태를 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건너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용기, 필구, 종호를 보고는
‘저 친구들 모두 우리 마누라와 같이 모두 심장수술 동기들이야, 하하’  

이어서 완진이와 철홍이가 합석하고 7시 정각에 수종이와 구 목사가 들어왔다.
이어서 우리 신우 회 회원들과 유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빈소에서
구목사가 태수 영혼의 안식을 구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부인이 목사님을 반가이 맞으며,

“태수 씨가 생전에 세례를 못 받았는데 천국 가는데 지장이 없을까요?”

아쉬움과 후회와 근심이 가득한 눈으로 목사님을 바라보자 옆에 있던 철홍이가,
태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았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 라고 하자,
구 목사가 고개를 크게 끄떡이며 부인을 안심시켰다.
이어서 모두들 가장자리에 둘러 앉아 착석을 하고 구목사가 일어서서 기도를 드렸다.
친구를 떠나보낸 구 목사의 기도 내용이 얼마나 절절한지 나도 울컥했지만
여기저기서 숨 죽여 흐느낌을 삼키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들이 보였다,

다시 접객실로 돌아오자 둘째 아들이 지난 해 결혼한 신부를 데리고 와 새삼 소개를 시켰다.

“제 첩니다. 코로나 걸려 격리하고 있다가 어제 해제가 되어 되도록 사람들과 떨어져 있고
그래서 빈소에도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소개 안 해도 알지, 지난 해 식장에서 봤잖아?
그런데 이렇게 시집 와서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을 당해 어떻게 해?
시아버지가 엄청 예뻐했을 텐데. “

슬픔에 차 있던 새신부의 초롱초롱한 눈에 순간 생기가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예뻐하셨어요. 그런데 식사도 몇 번 같이 못 해 보고.
4월 29일이 어머니 생신이시거든요.
그래서 기념 겸해 5월 초에 가족들 다 같이 제주도 여행가기로 했었는데.“

둘째가 말끝을 잊지 못하고 핏발 선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발인 날인 4월 7일, 목요일, 발인시간인 11시보다 좀 일찍 도착할 요량으로
시간에 맞춰 전철을 탔다.
이른 아침에는 날이 흐렸으나 해가 올라오면서 구름이 걷히고 점차 날이 개더니
잠실나루 역에 도착할 즈음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셨고 기분 좋게 닿는 쌀쌀한 공기 또한 깨끗하고 상큼했다.
밤새 물기를 먹은 개나리, 벚꽃이 싱싱한 생기를 한껏 뽐내며 송이 송이가 터져 나올 듯이
탱탱하게 활짝 피어 있었다.

발인실로 바로 갔으나 아직 빈소에서 올라오지 않았다고 하여 빈소로 내려가니까
한참 발인예배가 마무리 중이었는데 부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었다.
부인은 조문 온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특히 태수가 많은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며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효송이, 대진이, 치삼이가 먼저 와 발인예배에 참석하고 있었다.
부인에 의하면 치삼이는 태수 장남에게 장문의 추모사를 써서 보내며
화장할 때 같이 태워달라고 부탁해 입관할 때 태수 안주머니에 넣었다고 했다.

효송이와 치삼이는 발인하면서 작별을 하고 동기로는 대진이와 둘이서 장의버스에 동승했다.
양재 동 서울 화장장에 도착하니까 형곤이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형곤이와 태수는 각별한 관계였다.
최근까지 부인들에게 오해를 받을 정도로 거의 매일 30분 이상씩 통화를 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을 한 적도 있었다며 중학 때부터 친했다고 하니까 청소년기 이래로
55년, 인생의 거의 전부를 함께 나누어 온 그야말로 부랄 친구다.
형곤이에 의하면 태수가 안압이 높아 최근 수술을 했는데 경과가 좋지 않아
한쪽 눈이 실명상태가 되어 재수술을 하려고 했고 담석 수술도 앞두고 있었다고 했다.
또한 상일 동에 33평 아파트가 당첨되어 로또 맞았다며 좋아했는데 며느리도 보고
아파트도 생기고 이제 마누라하고 손잡고 놀러 다니며 즐길 만 하니까 가버렸다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내가 얼마 전 담석 수술을 했는데 태수도 나 따라서 5월 말에 수술하기로
날까지 잡아 두었지, 아마? “

화장 중에 대기하는 동안 마침 옆에 있던 부인에게 동의를 구하자 부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아들이 여수에 있잖아. 그래서 이 달에 부부가 여수 여행 다녀오라고 우리 아들이 스케줄을
  다 잡아줬는데 결국 못 가고 말았네.“

형곤이 아들이 여수 호남 정유에 다니고 있다.

“사실 큰 애가 계획을 짜서 다음 달 초에 작은 애 부부 포함해서 우리 식구들이 모두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거든요. 제가 봄에 제주도를 못 가봤다고 일부러 그렇게
일정도 잡고 비행 편하고 숙도도 다 예약을 했었는데.“

부인의 눈이 또 흐려졌다.
빈소에서 작은 아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졸업 40주년 행사를 하던 2012년까지 나는 형곤이를 잘 몰랐다.
행사를 마치고 지철이와 눈꺼풀 수술 상의하러 고대 안산병원으로
박 영철을 만나러 갔을 때 지철이가 영철이는 손님이 올 때는 자기 방이 아니라
어디 따로 마련된 구석진 방에서 영접한다며 처음 오는 사람들은 헤매기 십상이기 때문에
길잡이가 필요한데 안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고 영철이와 수시로 만나는  형곤이한테
안내를 부탁했다고 하여 병원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형곤이와 처음으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영철이, 지철이, 형곤이, 그리고 인천에 있는 영식이를 포함해 대여섯 명이
인천과 안산의 중간 지점인 소래의 내 30년 단골 횟집인 “미순 네”에서 두어 달에 한번씩
저녁에 반주 곁들여 부정기적으로 회식을 하게 되었다.
싱싱한 자연산 회라 다들 좋아했지만 특히 영철이가 마음에 들어 하여
이후로 ‘미순 네’에서 자기 병원 식구들과 회식을 자주 하곤 하게 되었다.
이 모임에 하늘나라로 먼저 간 동우와 용혁, 병우 부부, 광석이, 최 종호 등도 다녀갔지만
거리 관계 등으로 다들 한두 번 오다 말았고 영철, 형곤, 영식이와 나만 남게 되었는데
이때쯤 태수가 합류하게 되었다.

태수는 어느 모임에 가더라도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금방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지만
이 모임의 경우 누구하고도 친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서먹서먹하거나 어색해하기는커녕
웃고 떠들며 오리지널 멤버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분위기도 태수로 인해 훨씬 부드러워지고 화제도 다양해져 2차로 생맥주 한잔하고
헤어질 때는 언제나 아쉬워해야만 했다.
태수는 2시간 이상 걸리는 가장 먼 거리에서 오는 데도 항상 제일 먼저 왔다.
이 모임은 영철이가 떠나기 전까지 계속 되었었다.

태수와는 십 수 년 전 오래 지속 되지는 못 했지만 승종이와 셋이서 거의 정기적으로
점심 모임을 한 적도 있었다.
아무 주제 없이 간단히 소주 한잔하며 한담을 나누다 헤어지는 모임이었다.

유골을 수습하고 분당 ‘봉안 당 Home’에 도착하자 변 도식, 서 남석, 김 승민이
한 결 같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울먹울먹한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화장장에서 둘째 아들이 분당 봉안 장소에 친구 분들이 기다린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해
누군지는 몰라도 동기들 몇이 기다릴 줄은 미리 알고 있었다.

태수 유골을 안치할 봉안 장소는 6단 책장의 모양으로 각 단마다 책꽂이처럼
여러 칸을 만들어 칸 하나에 유골 하나를 안치하는 책꽂이 식 봉안 실이었다.
도식이 왈,
“여기가 서울에서 가까워 납골당 중에서는 제일 비싸. 저거 한 칸에 3천만 원이래.
우리 동기 중에 누구는 저거 여섯 칸을 일억 팔천만원 주고 샀어. 가족들 다 들어가려고.“

태수의 유골을 안치할 위치는 책장의 한 가운데 눈높이의 두 칸이었다.

부인이,
“저 자리가 앞에서 바로 바라 볼 수 있어 제일 좋은 자리인데 하나 남았다고 해서
바로 계약했습니다.
저기 빈자리는 나중에 제가 가려고 두 칸을 샀어요.”

봉안식을 진행하며 유골을 안치하기 전에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서가 되었다.
부인과 아들들이, 새 며느리가 눈물과 흐느낌으로 차례로 작별인사를 고하고
형님, 동생 등 친 인척들의 순서가 끝난 후 마지막으로 우리 친구들 차례가 왔다.
도식이가 우리 모두 같이 하자며 나보고 대표로 작별인사를 고하라고 했다.
앞으로 나가 나를 중심으로 나란히 섰는데 이제 태수와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비로소 그 동안 막혀있었던 감정이 복 받쳐 올랐다.
‘태수야.’ 하고 불렀지만 눈물이 솟구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야 임마, 이렇게 가버려도 되는 거야?”

하고는 또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나도 안경 넘어 눈물을 훔쳐야 했지만
우리 친구들의 어깨들이 다 들썩였고 여기저기서 나직한 흐느낌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언제나 전화하면 목소리 들을 수 있고 언제든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구나.
잘 가라, 태수야. 부디 천국에서 평화와 안식을 취하고 굽어볼 수 있으면
니가 엄청 빚지고 간 네 마누라 잘 보살펴 주거라. 우리도 기도 열심히 할게.
태수야, 잘 가거라.“

삼우제인 어제 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장례 때 와 주시고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수 씨가 자신도 친구들을 사랑했지만 친구들로부터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서 24회 동기회와 신우 회에 감사 표시로 특별 회비를 낼까 하는데
신우 회 계좌가 농협 김 흥수 명의 계좌가 맞죠?“

“아니, 부의금도 사절하셨는데 무슨 특별 회비입니까. 저희가 뭐 한 게 있다고요.”

극구 만류하였는데도 장례 때 와 주신데 대해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작으나마 저희가 답례하는 거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항상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서글서글한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우리 친구, 태수의 선하고 선했던 모습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지만
우리들 마음속에는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태수의 안식과 명복을 빈다.
우리 24회 신우 회에서는 다음 달 정례예배를 태수 추모예배로 대체할 예정이다.
2020.04.10. 송 종 호.




토요 살롱 350회 " 가슴 아픈 이별 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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