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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2-04-23 22:46:59, Hit : 35, Vote : 5
  토요 살롱 351회 " 無 常 "

동기들 추모사 몇 번 쓰고 어쩌고 하다보니까 지난주에 올린 토요살롱이 350회째였다.
100회, 200회, 이런 것들이 뭐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가 없고 ‘몇 회에 뭘 하겠다.’ 든지,
‘한 해에 몇 회를 쓰겠다.’ 거나 ‘언제까지 몇 회를 쓰겠다.’ 든지,
‘앞으로 언제까지 쓸 거’라는 등의 목적의식이나 쓸데없는 각오 같은 거가 없기 때문에
사실 회수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전혀 없고 단지 쓴 연대별로 순서를 분류하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게 전혀 무의미하지만은 않나하는 생각도 든다.
회수에 따라 같이 묻어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 그 숫자에는 지난 온 평범한 일상뿐만 아니라
특별했던 에피소드와 추억이 실려 있다.
2009년 6월부터 쓰기 시작했으니까 13년 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러는 사이 아직도 50대 말이었던 우리도  60대를 거쳐 어느 듯 70대에 이르러
누구나 할 거 없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생각해 보면 많은 동기들이 추억만 쌓아 놓고 세상을 떠났고 세태도 급격한 변화를 거쳤지만
무심히 흐르는 세월은 무상하기만 해 한 세상 산다는 게 너무나 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돌아보면 순식간이다. 눈 깜짝할 새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세월이란 흐르는 시간을 의미하지만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지나 온 세월을 10년, 20년 단위로 되돌아 봐도 회상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별 차이가 없다.
그것도 또렷한 기억은 별로 없고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연대도 뒤죽박죽이 되고 기억도 희미해진다.
세월이 갈수록 기억하는 시간은 오히려 점점 더 짧아진다.

밤잠을 설치며 불 같이 뜨거웠던 정열도, 그토록 절절했던 가슴 아픈 이별도  
‘아, 그 때 그랬었지’ 기억 속에 기록으로만 남아 있지 그때 동반했던 감정은
마음 어느 구석에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감정이 메말라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되는데 나이가 들면서 마음의 크기도 작아지고
그 씀씀이도 줄어들다보니까 자기가 소유한 거에 대한 집착만 더 강해져
감정보다 현실적인 계산, 이성에 더 의존하게 된다.
마음을 열지 않고 머리만으로 하는 계산, 이성, 이런 건 지나면 그야말로 수자 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아 추억이 될 수가 없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감정이 실린 추억, 격정적인 추억이 쌓일 수가 없어
새로운 추억은 잘 형성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토록 감정이 깊게 베였던 추억이 희미해지고 색이 바래지면서
되돌아보는 시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지나온 세월의 의미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토요살롱이 우리의 지나온 세월에 그래도 얼마간이라도 소중했던 추억에 덧칠이라도 입혀
색이 희미해지거나 바래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세월이 가며 글 자체가 몰입도의 감퇴와 총체적인 총기의 결핍으로 오락가락해지고
감정이입이 불충분해 문장이 건조해지면서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감겨오는 눈을 부릅뜨고 필사적으로 몰입해 감정을 이입하고
관련 참고 자료를 뒤적이며 오류를 줄이려고 하고 싶지도 않다.

나이가 들고 몸과 마음이 노쇠해져 간다는 걸 인정하고
그냥 붓 가는대로 졸리면 잠시 눈 붙였다가 다시 시작하고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면 그런대로,
틀리면 틀리는 대로 이야기 순서에 상관없이 그때그때 생각의 편린이 스쳐 지나가는 대로,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내 마음대로 엄청 게으른 자세로
마음 내킬 때마다 쓰는 게 나나 독자들에게 보다 자연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동기들 추모사를 쓰다보니까 이런 질문을 나한테 하게 된다.
‘언제까지 추모사를 쓰지? 앞으로 10년이면 80인데 그 때까지?’
글쎄, 그것도 지금 정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언젠가는 그만 쓸 때가 있을 테니까 그 때까지다.
태수의 유골을 안장하고 돌아올 때 전철역까지 남석이가 몰고 온 SUV 차량에
도식이, 대진이와 함께 탔다.
도식이가,
“종호가 둥기 들 추모사를 다 썼는데 태수 추모사도 쓰겠구나.”

“이번 주말에 쓰려고. 그런데 내 추모사는 누가 써 주지?”

“하하, 승헌이가 쓰면 되잖아. 승헌이가 글을 잘 써.”

“승헌이가 글을 잘 쓰지. 문학적 재능이 있고 시를 쓰는 거 보면 재치도 있고 순발력도 있고.
승헌이가 내 추모사를 쓰려면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할 텐데.
그것도 추모사를 쓸 정도로 제정신에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좀.
승헌이한테 아직 멀쩡할 때 미리 써 두라고 할까? “

그래서 지금 현재로는 내가 아직 정신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PC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먼저 간 우리 동기들을
그나마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추모사는 계속 쓸 생각이다.

새벽에는 아직도 쌀쌀하지만 공원과 정원은 하루가 다르게 화려하게 변모하고 있다.
개나리, 벚꽃을 대신해 연보라, 주황색 철쭉이 활짝 피고 있고
노란 튤립이 꽃봉오리를 막 터뜨리고 둔덕 언저리는 분홍 꽃 잔디가
초록 이파리를 온통 뒤덮으며 바닥에 깔렸다.
숲 속 수풀 사이에 노란 민들레도 수줍은 듯이 고개를 내밀며 바람에 하늘거리고
이름 모를 야생초가 여기저기 하얀 꽃잎을 피우고 있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매년 한식을 전후하여 성묘 겸 대구에서 대식이, 남철이와 만나 저녁에 한잔 하는 일정은
나한테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소중하고 중요한 연중행사 중 하나이다.
대식이 남철이를 만나는 즐거움 이외에도 아직 이른 봄, 남행하는 동안
새 생명이 움 트는 산야를 바라보며 그 변화를 느끼는 즐거움이 있고
휴게소에 들러 비로소 다리를 펴고 커피 한잔하며 봄의 상쾌한 날씨와 쌀쌀한 바람,
두터운 겨울옷을 벗어 던지고 경쾌한 차림으로 오가는 행락객들의 들뜬 모습들,
봄의 싱싱한 향기가 품어 나오는 주변 산야,
이런 것들을 만지듯 피부에 느끼고 냄새에 취하고 느긋하게 관망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번에는 4월 5일이 화요일로 주중 어정쩡한 날이라 그 전 주 금요일인 4월1일에 떠나
이튿날 강원도 원주에 들렀다 일요일에 돌아오려고 했으나
대식이가 금요일에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해서 하루 늦춰 토요일인 4월 2일에 떠났다.
그러면 원주에 일요일에 도착해 월요일에 돌아와야 하는데
서울에 거주하는 작은 조카부부가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 해 미리 일정을 알려주고
양해를 구했다. 이 녀석들은 나 때문에 월요일 새벽에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는데도 토요일이라 제2경인 고속도로를 지나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하면서부터 일찌감치 정체가 시작되었다.
내비가 보통은 제2경인-영동 고속도로-중부내륙-상주 영천 고속도로로 안내하는데
이 번에는 중부내륙이 얼마나 막히는지 제2경인 지나면서 경로를 바꾸어
영동 고속도로-경부 고속도로- 평택 제천-음성에서 문경새재까지 국도,
문경새재에서 중부내륙으로 상주-상주 영천 고속도로로 안내 했다.

도중에 한 번만 쉬고 내쳐 달렸는데도 가다서다 하다보니까 집에서 출발해
6시간 이빠이 운전해 평소보다 2시간이나 늦어 영천 호국원에 도착했다.
금년에 유난히 겨울이 길었고 3월까지도 영하의 날이어서 그런지
예년 같으면 호국 원 일대가 산야와 가로 양변에 연분홍, 하얀 벚꽃이 흐드러졌을 텐데
바람은 쌀쌀하지만 쏟아지는 햇볕이 강렬해 날은 따뜻한데도 벚꽃이 필 기미도 보이지 않고
겨울 모습 그대로 쓸쓸하고 황량하기만 했다.

“오빠, 오셨능교. 차 많이 맥혔지예. 이번에는 좀 일찍 오셨네예.”

창성 공방 아줌마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오라버니라고 부르더니
이제 대 놓고 오빠라고 부른다. 거기에 코맹맹이 소리까지 추가 했다.
20년 전에 30대 초반 정도 나이였으니까 나보다 스무 살 가까이 어릴 텐데 가관이 아니다.

“이번에는 한식이 어정쩡해서 주말에 오느라. 그런데 잘 지냈어요?
지난번에 허리 때문에 고생한다고 하더니.“

“허리는 멀쩡합니더. 미리 전화 좀 하시지 그러셨어예.”

“오면서 전화하려고 했는데 차가 워낙 막혀 마음이 급하다보니까 까먹어버렸네.
그런데 오늘은 아저씨가 안 보이네?
자기는 손 끝 하나 까딱 안 하고 마누라한테 잔소리 엄청 하더니만. “

아줌마가 입을 삐쭉거리며,
“오늘 볼 일 본다고 영천 나갔심더.
오빠는 참 똑 같아예.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히려 더 하예졌어예.
무슨 보약 드십니꺼?“

이 정도면 병원에 가서 눈에 뭐가 씌었는지 검사를 해봐야 할 텐데
차마 그렇게는 말 못 하고,

“무슨 말을, 칠십 넘은 노인네한테 무슨 그런 농담을.”

아줌마가 주섬주섬 챙겨주는 꽃다발, 생 막걸리 두병, 북어 두 마리, 잔과 종이 쟁반,
돗자리 등을 차에 싣고 장인어른 묘지에 들러 서둘러 성묘를 마치고
석계 손칼국수집에 도착하니까 오후 2시가 넘어 있었다.
오후 어정쩡한 시간인데도 자리가 반은 채워져 있었다.
자리를 잡자 동생이 잽싸게 달려 나와 주문을 받았다.
차림표를 훑어보는데 주 메뉴였던 칼국수와 순두부는 보이지 않고
전부 치킨 요리로 채워져 있었다.

“아니, 이제 칼국수  안 해? 메뉴판에 안보이네?”

“합니더, 칼국수 하고 두부는 워낙 손님들이 다 알아서 치킨도 드시라고 그래서예.”

“장사 수완 좋네. 이젠 싼 칼국수 전문이 아니라 단가 나가는 치킨 전문집이 됐네.
이번에는 내가 바빠서 그렇고 다음에는 치킨 한 번 먹어볼게.“

“그러실랍니꺼? 칼국수 드실 거지예?”

수줍어서 눈도 못 마주치고 뭔 말 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던 어린 처녀 아이가
이제는 말도 맞장구를 쳐주고 마스크 위로 애교가 넘치는 눈웃음까지 흘리고 있다.

“시집갔다고 했지? 그런데 몸매가 날씬한 게 그냥 처녀 때와 똑 같아.
마스크 썼지만 더 이뻐졌어.“

가늘어진 눈매에 또 애교 넘치는 웃음을 가득 품고,

“아이라예. 애가 둘인데 큰애는 내년에 학교 가예.”

“재미있겠네. 일찍 시집 가 아이 둘 낳고 아이들 잘 크고 돈도 잘 벌고.”

“그냥 그래예. 그냥 열심히 하고 있습니더.”

“언니가 주방을 맡고 아예 안 나오는구만. 분업이 잘 됐네.”

그러고 보니까 주방 쪽으로 문을 만들어 주방과 식당을 완전히 차단시켜버렸다.
일부러 문을 열고 들여다보지 않는 한 주방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자매가 맡은 이후 올 때마다 뭔가 하나씩 달라지고 있다.

“이제 가시면 가을에나 오시겠네예. 운전 조심하시고 살펴 가이소.”

칼국수 한 그릇에 지난해는 3천원이었는데 4천원으로 올렸다.
원래 1,000원으로 시작했다 돌아가신 아줌마 시절에 1,500원까지 올렸고 며느리가 떠맡자
바로 2,000원으로 올리고 2년 전 식당과 화장 실, 주방을 깨끗이 개조하더니 3,000원,
금년에는 4천원이다. 물론 음식이 정갈해졌지만 아줌마가 손수 반죽한 손칼국수는 아니다.


석계 칼국수에서 영천 가는 국도로 5분쯤 달리면 금호가 종점인 포항-대구 간
우회 산업도로를 타게 된다.
이 도로는 대구 포항 간 고속도로도 있고 영천 시내를 관통하는 일반 국도도 있어 그런지
중간 중간에 속도 측정기를 피하기만 하면 마음 놓고 달릴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상당히 한가하다.
그런데 종점에 내려서면서 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금호, 하양, 반야월, 경산을 지나야 대구 경내로 들어서게 되고 그러고도 동촌, 동대구,
범어로터리, 대구 도심 한 복판을 관통해 서문시장, 달성공원을 지나 좌회전하면
두류공원으로 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석계손칼국수에서 넉넉 잡아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데
2시간도 넘게 걸려 두류공원에 도착했다.

금호를 지나 대구로 진입하자 비로소 활짝 핀 벚꽃이 맞아주었다.
영천 호국원의 고도가 높아서인지 벚꽃 피는 시점이 이삼일 차이가 나는 거 같았다.
영천부터 대구로 가는 국도 변 전체 가로수가 벚나무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그야말로 하얀, 연분홍 꽃잎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두류공원은 주말이라 차를 어디다 들이밀 데가 없을 정로도 차로 양변이 차로 빽빽했고
산자락은 행락객들로 빈 공간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양산 아래 젊은 연인들이 음식과 음료수를 나누며 소곤대기도 하고 서로 내외를 하며
부끄러워도 하는 모습이 저절로 웃음을 짓게 했다.
산소로 올라가는 입구의 대로 변 민물고기 매운탕 국수 전문 음식점 주인에게 사정을 하고
양해를 구해 차를 음식점 전면에 주차하고 막걸리와 안주를 챙겨 산소를 올라가며
행락객이 너무 많아 모포부대 할머니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은근히 조바심했지만
산소 앞에 이르자마자 안면이 익숙한 맡 언니 할머니가 숲 속에서
아예 돗자리를 챙겨 들고 마중 나왔다.

“아이고 오셨능교. 힘 드셨지예. ”

그러면서 재빨리 돗자리를 깔아주고 조용히 예를 올릴 수 있도록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산소가 60년이 넘다보니까 잔디도 다 죽고 풀도 잘 나지 않아 헐벗고 볼품이 없어졌다.
가을에 벌초를 하러 와도 밸 풀이 별로 없다.
60년, 모진 세월이었고 그 안에는 가슴을 쥐어뜯는 슬픔도 있었고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웠던 후회막심한 일들도 있었고 줄줄이 이어지는 이별도 있었고
기쁨의 순간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그들과의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게 한낱 한 순간에 불과했다.
혼자서 실컷 울기도 했었는데 이 번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막걸리 한 병을 비우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대식, 남철과 2차 생맥주까지 마셨는데도 아직 10시밖에 되지 않았다.
남철이가 꾸벅꾸벅 졸아 서둘러 자리를 파했다.
여느 때와 달리 오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돼 숙소를 정하지도 못하고
바로 약속장소로 가는 바람에 숙소부터 정해야 했다.
차를 공영 주차장에 파킹해 둔 체로 대식이와 주변 모텔을 찾아다녔으나 주말이라
빈 방이 없었다.

대식이가 병원은 경산에 있지만 수성구에서 쭉 살았는데
2년 전에 병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구지 수성구에서 만나지 않아도 돼
지난번부터 대식이가 경산에서 나오기 편한 범어 로터리 부근으로 약속장소를 바꿨고
메뉴도 생고기 대신 양 곱창으로 바꿨다.
대식이와 헤어지고 공영주차장으로 와 대리기사를 부를까 했으나 수성 못까지는 자동차로
10여분 거리밖에 안 되는 데다 주량이 급격히 떨어진 남철, 대식에 맞추다보니
별 취기도 없어 차를 슬슬 끌고 언제나 묵던 수성 못 근처 모텔로 가니 마침 빈 방이 있었다.

수성 못의 야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그 중에서도 벚꽃이 만발할 때가 절정이다.
호수 변을 따라 널찍한 보도 양 옆으로 쭉 늘어선 아름드리 벚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가
아치를 이루고 하얀 꽃잎이 아치를 완전히 덮고 하늘을 가렸다.
빨강, 노랑, 보라, 초록 형광 불빛이 번갈아 조명하며 꽃잎의 색을 바꾸는 그 길은
청춘남녀들의 천상의 데이트 장소가 된다.
소녀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야밤인데도 싱그럽기만 하다.

가로등 불빛이 물결 잔잔한 시커먼 호수 위에 반짝이고 호수 건너편 불 밝힌 빌딩들이
물속에 거꾸로 잠겨 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인데도 청춘 남녀 인파는 조금도 줄지를 않는다.
이제는 칠십 노인이 되어 이방인처럼 그들과 섞여 걸어보며
지나온 무상한 세월 속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는 낡고 헤어져 고물이 된 이야기들을
하나 둘 끄집어내어 되씹으며 아쉽기만 한 상념에 젖어 보았다.
2022.04.22. 송 종 호.




토요 살롱 352회 " 이토록 찬란한 봄에 "
토요 살롱 350회 " 가슴 아픈 이별 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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