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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호(2022-04-30 17:47:49, Hit : 18, Vote : 5
  토요 살롱 352회 " 이토록 찬란한 봄에 "

4월 마지막 날이다.
하얀 벚꽃이 화려하게 온 천지를 뒤덮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느 날 감쪽같이 다 져버리고
종적도 없이 사라진 게 불과 얼마 전인데 벌써 아득한 옛일처럼 기억 속에 희미해져 가고
화려한 반면에 되바라질 정도로 활짝 핀 모습이 너무나 가볍고 방정맞았던 벚꽃에 대비해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며 우아한 자태로 통통한 꽃봉오리를
순결한 처녀처럼 잔뜩 오므린 채 다소곳이 그러나 꼿꼿하게 올렸던 형형색색 튤립도
어제 아침에 보니까 꽃잎이 벌어지며 그토록 탱탱하던 몸매도 그냥 아무렇게나 내버려둔
중년 여인의 허리처럼 두루뭉술해지며 시들시들 윤기를 잃고 있다.

대신 철쭉이 만개하고 있다.
아파트 입구, 숲길, 하늘 정원의 둔덕과 경계를 이루는 가장 자리,
둘러보면 어디에나 곳곳에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분홍색, 붉은 색, 하얀색, 보라색 철쭉이
계절의 첨병으로 왔다 제 임무를 다 하고 사라진 애벌레처럼 마른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 연두색 산유화, 화려하기만 했던 연분홍 벚꽃,
귀부인의 고상한 품격이 느껴졌던 하얀 목련에 이어 이제는 순수하지만 농염한 자태에
짝사랑하는 예쁜 소녀를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가슴앓이 소년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던 튤립 또한 쭈글쭈글 시들어가
그 아쉬워하는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흥분과 기쁨으로  채워주고 있다.

주 초부터 며칠간 공기가 탁했으나 그제께 밤새 내린 비가 대기를 깨끗이 씻어냈을 뿐 아니라
기온도 활동하기 알맞게 뚝 떨어져 주 초에 낮에 거의 30도 가까이 올라가며
일교차가 거의 20도나 돼 아침에 입고 나간 정장이 버거워 벗어 들고 다니면서도
땀이 삐질삐질 나며 더위에 무거워진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던 불편도 덜어주었다.

주 초에 며칠간 기온이 급격히 올라가서인지 공원에 느닷없이 모기가 날아다녀
순간 아연케 했었다.
처음에는 주변을 천천히 뱅뱅 돌며 날아다니는 새까만 것들이 파리나 날 파리인줄 알고
‘공원에 무슨 파리가.’ 하고 방심하다가 무심결에 손등에 한방 물리고 나서야
‘아, 이거 모기 아니야.’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래도 긴가 민가 하고 주변을 맴도는 녀석들이 경계를 풀도록 전혀 무심한 척 하고 있다가
한 녀석이 기회가 왔다 하고 다른 손 등에 사뿐히 앉아
잔뜩 굶주렸다 맛있는 먹 거리를 앞에 두고 덥석 물기 전에 입맛을 다시듯이
다리를 재빠르게 옴지작거리며 독침을 쏠 자세를 취하자마자 잽싸게 잡아보니 모기가 맞았다.
평소 같았으면 모기 한 마리 잡았다는 희열감이 앞섰을 텐데
‘아니 벌써! 아직 4월인데!’ 앞으로 반년이 넘도록 고통을 당할 생각을 하니
섬직 하기도 하고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가만히 생각을 더듬어보니까 화장실에 한두 마리 날아다니던 녀석들도
파리가 아니라 모기였다.

어쨌든 비 온 후에 기온이 떨어지며 척후병처럼 탐색하러 나타났던 모기도 일단은 사라졌다.
6월은 되어야 나타나던 모기가 이제는 5월도 되기 전에 출몰하고
10월 찬바람 불며 사라지던 모기가 영하의 12월 동지가 되어도 끈질기게 물어대며
생존기간을 늘이고 있다.
날이 갈수록  모기가 추위를 견디는 내구성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거 같다.
어쩌면 우리 살아생전에 일 년 사시사철 모기와 더불어 살아야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모기가 선호하는 체질인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절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바람직하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지난 해 8월 말, 이 마트에 쇼핑 갔다 전자파로 모기를 한 곳으로 유인하는 기구가
한눈에 들어와 집어 들었다 가격을 보고 한참을 망설이다 만만치 않은 8만 원 대라
‘이제 여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조금만 견디면 되는 걸 가지고’ 하며
돈이 아까워 다시 내려놓고 말았는데 이후 12월도 중순이 넘도록 몇 달을 더 모기에 뜯기며
그 때 구매하지 않을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가을모기가 더 독하다더니 겨울모기도 얼마나 독한지 모기 매트도 스프레이도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그런 끔찍한 고역을 다시는 치르지 않을 생각이라
모기가 더 극성을 부리기 전에 전자파 모기 퇴치 기구를 반드시 장만할 생각이다.

공원이고 정원이고 둔덕이고 숲길이고 가로변이고 화단이고 도처에 만발하고 있는 철쭉이
초록이 짙어가는 수목과 더불어 형형색색 오만가지 꽃들이 피어나며
날이 갈수록 주변 풍경이 화려해지고 있다.
초록 야생풀만 제멋대로 들쭉날쭉 자라나고 있어 심심해 보이던 하늘 정원 둔덕에는
군데군데 튤립 줄기처럼 볼록하게 솟은 줄기 위에 노란 꽃이 활짝 핀 나팔 수선화가
눈길을 끌고 둔덕을 받치는 콘크리트 벽 위에 가지런히 놓인 화분에는 노란 황매화,
야생들국화와 흡사한 한가운데 노란 화분에 꽃잎이 하얀 마가렛,
바닥에 납작 깔린 진보라 종지나물 등이 정원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바야흐로 화려한 봄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부드러운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가 코끝을 감미롭게 자극하며
들판과 숲의 초록 초목이 신선한 싱그러움을 더해가고
형형색색 온갖 기화요초가 눈을 현란하게 어지럽히면서
선선하고 맑은 대기가 폐부를 상쾌하게 하는 이토록 찬란한 봄날을 만끽하면서도
먼저 간 사랑하던 사람들의 익숙했던 모습들이 그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에 오버랩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우리 곁을 떠난 태수의 서글서글 미소 띤 모습이
여전히 눈앞에 어른거리고
종호야, 하고 부르던 쇠진 목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귓가를 맴 돈다.
언제 어느 때나 편하게 전화하고 편하게 만날 수 있었던 친구였었는데
아쉬운 마음, 그리운 마음만 더해 간다.
잘 가라, 태수야. 몇 번을 바이바이했는데도 쉽사리 떠나질 않고 있다.

오늘 아침에 느닷없이 경철이가 전화를 했다.
‘토요일 아침에 어인 일로?’ 경철이는 좀체 지가 먼저 전화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뭘 그렇게 힘들여 하려고 하지도 않고 뭐를 그렇게 바라는 거도 욕심도 없다.
고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고대 대학원으로 진학하며 한국사로 전공을 바꿔 석 박사 후
용인에 있는 강남 대에서 한국 고대사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했다.
교수들이 대개가 그렇지만 경철이는 아주 얼릴 때부타 자기 관심사 외에는
손끝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는 엄청 게으른 스타일이다.

취미도  술 한 잔하며 떠들어대는 거가 거의 유일할 정도로 아주 심플하다.
최근에는 운동이나 몸 쓰는 걸 극도로 싫어하던 친구가 그래도 건강관리를 한답시고
자주 등산을 다닌다고 했다.
위로 누나들이 있고 막내로 외아들인데 우리가 고교 다니던 때 작고한 경철이 부친은
고검장을 역임한 당대 유명 변호사이셨다.
따라서 집안이 부유했는데도 불구하고 바지가 발목이 들어날 정도로 짧아졌는데도 3년 내내
교복 한 벌뿐이었고 교우관계도 거의 비슷한 꼴로 다니는 친구들을 주로 사귀었다.
내가 알기로는 이 승종, 이 재억, 김 승헌, 유 갑호, 김 국신 등이
고교 때 친했던 친구들이었고 유 창열, 박 경춘이는 대학을 같이 다니며 친해 졌던 거 같다.
국신이는 대학도 같이 다녔었다.
나는 경철이네 집에 가 본 적이 없지만 위에 열거한 친구들은
당시 반포에 살고 있던 경철이네로 몰려가 최소한 한 번씩은 신세를 졌고 그 중에는
술 취한 친구들의 웃지 못 할 기상천외 주사가 아직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나하고는 고 2때 오래 전에 작고하신 달모 선생님 반이었다.
나야말로 후줄근한 패의 전형이었기에 나하고도 격의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졸업 후에는 학교도 나뉘고 하여 만남이 뜸했었다.
그러다 1989년 초 귀국 후 압구정동에 집을 정하면서 먼저 와 있던
경철이, 병규와 이웃이 되어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한번은 경철이가 저녁 무렵 우리 집으로 와 날이 밝을 때까지 밤새 술을 마신 일도 있어
애들 엄마도 경철이에 대한 기억은 뚜렷이 하고 있다.

술도 오로지 소주였다가 교수가 되어 중국 현지답사를 다니면서 고급 빼갈에 맛 들이고
입이 까다롭고 고급스러운 교수들과 우울리며 덩달아 양주, 그것도 싱글몰트만,
그리고 고급 포도주도 즐기게 되는 환골탈퇴를 하였다.
고교 때 경철이와 친했던 친구들은 경철이가 싱글 몰트와 고급 포도주를 좋아한다면
아무도 믿지를 않는다.
‘에이, 그럴 리가! 니가 뭘 못 잘 알아도 한참 잘못 알고 있구나. 경철이는 오로지 진로야.
그거밖에 마실 줄 몰라.‘

그러나 코로나 전에 나하고 강남 역삼 동 아주 오래 된 정통 중국요리 식당에서
둘이서 저녁을 할 때 집에 있는 재고라며 반주로 고급 고량주 ‘우량액’ 한 병을 가지고 왔고
다음에는 어디 분위기 좋은 양주 바나 포도주 셀러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직도 독신으로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으면서 취향도 고상하고 고급스레 바뀌고 있다.
학교 다닐 때의 구질구질했던 경철이가 아니다.

“어쩐 일이야? 토요일 아침에 전화를 다 하고.”

“어머니가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어.”

“아니 최근까지도 건강하셨잖아. 최소한 120세까지는 사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경희대 병원에 한 50일 입원하셨더랬어. 그리고 연세가 있잖아. 105세셔.”

“임종은 했어?”

“임종은 무슨. 맨 날 보고 있었는데.
그리고 니가 좀 알아서 친구들한테 연락하고 해라. 내가 뭐 모르잖아.”

말투에 슬픔이나 애도의 기색이 전혀 없다.
어쨌거나 경철이 모친은 천수를 다 하시면서도 죽음을 앞두고 별 다른 고통 없이
화려한 봄의 향연이 막 펼쳐지는 4월 마지막 날 새벽에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경철이 모친의 연세가 100세를 넘으면서부터 경철이를 만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모친의 안부부터 묻게 되었다.

“어머니가 말이야, 내가 장가들기 전에는 눈을 못 감으시겠다는 거야.
내가 효도하려면 장가를 가지 말고 계속 독신으로 살아야 돼.“ 하며 낄낄 거리기도 했고
언젠가는,
“그런데 있잖아. 어머니가 치매가 왔어.
아침에 어머니가 차려준 밥 먹고 나가는데 뒤에다 대고,
‘예, 경철아, 너는 아침도 안 먹고 어딜 간다고 나가는 거니?’ 하시잖아.” 하면서
또 낄낄댔다.

경철이는 압구정동 어머니가 계신 집에는 주말에만 들리고 주중에는 용인 학교 근처에
마련한 집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정년 후에도 학교 측의 요청으로 강의를 계속하다 지난해에야 그만뒀지만 그러고도
평일에는 용인에 거주하고 있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이나 그런 시설에 모셔야 되는 거 아니야? 니가 돌 봐드리지도 못하고.”

“뭐 그런 건 누나들이 다 알아서 해. 누나들이 집에 간병인을 둘이나 붙였는데
구지 요양병원에 갈 일이 있겠어? “

경철이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제법 되는데다 연금도 받고 하여
경제적으로는 아무 걱정이 없는데도 누나들이 혼자 사는 외아들 동생이 걱정되어
가끔씩 용돈을 보내준다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툭 내뱉는 그 금액이
어지간한 월급쟁이 연봉을 훨씬 넘는 금액이라 잘못 들었나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모친이 100세를 넘으며 혹시 국가에서 뭐 주는 게 없나 하고 동 사무소에 들렀더니,
담당자가 쓴 웃음을 지으며 전에는 100세가 되시면 기념품도 드리고 했는데
요즘 100세 넘는 고령자가 너무 많아 그게 없어졌다고 하더라며 낄낄댔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100세를 넘기신 분은 실지로는 흔하지는 않다.
적어도 내 주변에 생존해 계신 분 중에 100세를 넘기신 분은 우리 동기 김 용환 부친이
금년 100세이시고 옛날 내가 데리고 있던 현장 소장 장모님이 101세로 두 분 정도밖에 없다.
그래서 경철이 모친께서 105 세로 향수를 누리셨으니 자식들도 크게 아쉬운 마음은
없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막내인 경철이가 일흔을 넘었으니 경철이 큰 누님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연세가 여든이 넘었거나 그 근방이 아닌가 추측된다.

갑호는 연락이 되지 않고 재억이와 승종이, 승헌이에게 전화해 내일 같이 조문하기로 했는데
승헌이는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오겠다고 해 일단 만류했는데 상황 봐서 오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경조사 참석 여부에 대한 나름대로 원칙을 세웠는데 자녀들 결혼의 경우
청첩장을 받던가 혼주로부터 직접 초대를 받는 경우에만 참석하기로 진작부터 작정했고
조사의 경우 당사자인 경우 평소의 친소를 떠나 유가족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될까봐
가급적 조문하러 가고 부모님 상일 경우 지금쯤은 연세들이 아흔을 넘기거나
아무리 조산을 하셨더라도 80대 후반이라 거의 천수를 다 하셨기 때문에
뭐 별로 위로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기에
상주와 특별한 관계이거나 부모님들과 친분이 있던 관계가 아닌 한 조문하러 가지 않는다.
그런데 경철이는 특별한 경우이다.

승종이나 재억이나 부모님들이 꽤 오래 전에 다 돌아가셨다.
재억이 왈,
“아무리 105 세로 천수를 다 누리셨지만 아마 두고두고 생각이 날 거다.
더구나 경철이는 외아들에다 장가도 안가 모친과 70년을 함께 해서
그렇게 쉽게 잊어지지 않을 거야. “

하기야 경우가 다르겠지만 나는 부친과 함께한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았고
부친이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넘게 흘렀고 내 나이 칠십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그리운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2022.04.30. 송 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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