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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수  

   2011년 3-5 반창회 후기

2011년 3학년 5반 반창회가 경복궁역 옆 근처의 식당골목 안에 있는 ‘동궁산채’에서 3월 5일 토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있었다. 모임장소인 동궁산채는  우리들의 배움터인 서울고등학교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연로하신 안규선생님과 신체가 불편한 신기수반창의 접근성도 고려하여 이명식반장이 추천하였다.
우리 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1972년) 종로 한일관에서 첫 반창회를 시작한 이래 거의 끊임없이 만나고 있으며 재작년부터는 담임선생님이신 서해(西海) 안규선생님도 초대하여 함께 하고 있다. 대학시절 봄철에는 수원의 서울농대 딸기밭에서 축산과 하윤원반창이 막 짜온 우유에 딸기를 띄워 먹은 적도 있었다.
6시 반에 도착해보니 김윤섭, 김인상, 김진왕, 김춘식, 이명식, 이종렬이 이미 도착하여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고 뒤이어 이봉재, 이양연, 이의표, 박용기가 시간에 맞춰 모였다. 얼마 안 되어 안규선생님께서 84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홀로 지하철을 이용하여 도착하셨다. 원래는 일산에 사는 김수종이가 차로 모시고 오고자 하였으나 선생님께서 극구 사양하시는 바람에 혼자 오시게 하는 불경함을 저지르고 말았다. 손덕주가 대전에서 반창회에 오랜만에 참석하였고 박재승, 장용구, 신기수, 방천환의 순서로 속속 도착하여 이날 참석인원은 16명이었다. 작년에는 한동설이 목포에서 참석하여 longuest였는데 금년에는 문경 사과밭에서 올라온 이종렬이 되었다. 주말 개인적으로 바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반창이 모인 것은 신기수반창의 열성 덕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락처를 찾아내어 참석을 독려하였고 못 오는 이유까지 꼬치꼬치 따졌으니 말이다. 반장의 제청으로 모두들 박수로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참석한다고 응답한 5명이 불참하고 대신 못 올 것처럼 얘기한 2명이 와 주었다.
작년 모임에서 선생님께서도 회원으로 참석하고 싶으시다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봉투에 회비와 함께 거액의 참조금까지 내미신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카드를 준비하여 선생님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글을 적고 그날 참석한 반창들이 직접 서명하여 작은 정성과 함께 모임의 후반에 선생님께 드렸다.  동궁산채에서는 토속음식과 막걸리를 주종으로 시작하였다. 막걸리가 싱겁다는 반창은 별도로 소주를 마셨으며 식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진짜 청국장에 공기밥으로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막걸리를 좋아하셔서 모든 제자들이 돌아가며 따라드리는 것을 기꺼이 드셨으며 한 열잔 이상 드신 것 같은데 나중에 선생님께서 보내신 이메일에서 ‘맹물을 마신건지 집에서 소변 한번 보고나니 아무렇지도 않았네’라고 하셨다.
웬만큼 배를 채운다음 오랜만에 나온 친구들도 있고 예년과 마찬가지로  돌아가며 ‘1 minute speech'를 통하여 각자의 근황과 의견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경에서 사과농장을 시작한 이종렬이 고3 때 선생님(안규선생님은 절대 아님)한테 억울하게 따귀를 여러 대 맞고 도서관 옆에서 30분 동안 울었던 얘기, 이봉재가 고 1때 큰 주먹의 선생님으로부터 세찬 따귀를 세대 맞은 일을 환갑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쓰라린 기억으로 , 이명식이 도덕선생님으로부터 이유 없이 따귀를 심하게 맞았는데, 후일 명식이가  교수가 되어 서울고 재학생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주어져 고교시절 체벌을 당했던 얘기를 하는데 마침 당시 선생님께서 교장선생님이 되시어 앉아계셨단다. 안규선생님의 차례가 되자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고 하시며 “나는 선생하며 한번도 매질을 한 적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근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한번 때린 적이 있었네” 하신다. 내용은 23회 담임을 하실 때 운동장 조회시간에 안나온 3명이 교실 뒤편에서 흡연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시고 교편으로 빠따를 한대씩 치셨단다. 당시 교칙으로 하면 그들은 정학감인데 한대씩 맞고 끝내 주셨으니 그들은 행운아인 셈이다. 손덕주가 고교시절, 대학시절 어려운 가운데 어머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졸업할 수 있었던 일, 이제는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아 남들과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한편 하느님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다고 한다.
나머지 반창들의 근황은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이메일에 한명도 빠짐없이 재미있게 기술되어 있다.
안규선생님께서 가신다음 우리는 인근 호프집에서 김진왕이 주도하는 폭탄주를 돌리며 못 다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차 계산을 하려하니 이의표가 미리 지불하고 사라졌으며 10시 반쯤 되어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내년 3월5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신기수/이봉재 정리)


<다음은 안규선생님께서 다음 날 보내신 이메일 내용이다>

어제는 여러 친구들이 주는 대로 마신 막걸리가 꽤 많았던가봐요.
의사인 이봉재교수는 생각했을거요. “여섯 잔을 마신 후에도 계속
마셨으니 무슨 일이나 일어나지 않을까”하고. 나는 기분이 좋았고
배만 부르지 그저 물 마시는 것과 다름이 없었어요. 혹시 感覺이
둔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분위기도 좋고 산채 음식도 맛이 있었어요.

이명식교수의 백발과 눈썹도 인상적이고,
봉자이교수의 텃밭에도 해동이 되고 있겠다 싶었어요.
Saudi Arabia에서 왔다는 김윤섭공, 더운 곳에서 오랜 세월 고생했소.
김인상공의 눈썹도 인상적이었고,
다음 주부터 강의 나간다는 장용구교수도 학년 초 활기에 넘쳐보였어요. 잘 해봐요.
학생시절엔 말수가 적던 김진왕공도 이젠 활기 넘치는 眞王이 된 듯했어요.
별로 말이 없든 김춘식교수 새 학기 구상에 바쁘신 듯 했고
박용기공도 더욱 용기백배하여 국가를 위하여 봉사하기를 바라오.
박재승교수, 92세의 자당님 건강히 더욱 잘 모시기 바랍니다.
방천환 아직 혼자 산다니 독신주의자는 아니겠지, 나이 들면 더 외로울 텐데!
얌전한 손덕주공 (친구들 중엔 아직 손덕수가 아닌가? 하던데---) 만나서 반가웠소.
신기수(새로삶) 3학년5반을 위해서 수고가 많았소. 그동안 성당에 다니며 기도하며 노력한 결과 언어 장애가 많이 교정이 된 것 같아 반가웠소.
이양연공, 53년생이면 만 58세인가? 그런데 왜 혼자 젊었는가? (How come you ever stay young?).
이의표사장, 새로 일을 시작했다고? 오랜 공직생활 후라 사회에 적응하기가 어떠한지? 매우 건강해 보이니 새 출발에 큰 성공 있기를!
이종렬, 문경새재 멀기만 한 줄 알았는데 버스로 2시간 거리라고. 요즘 사람들은 縮地法을 쓰는가? 과수원이 잘되기 바라오.
작년엔 목포에서 한동설교수도 왔었는데 학년 초라 일이 많았던가! 건강하시기를!


1952년 중공군 포로 (18세?)가 부르던 노래의 한 구절이 떠오르네!

호화부창까이 (好花不常開): 아름다운 꽃은 언제나 피는 것이 아니고
호껭부창자이(好景不常在): 아름다운 경치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다
니스워드안렌(니스我的愛人): 그대는 나의 사랑
긴쇼리베허우(今宵離別後): 오늘밤 이별한 후엔
허이 긴자이라이(何日君再來): 어느 날 그대 다시 오련가!

어제 밤 모임 고마웠고 반가웠소. 인연 있으면 또 만나겠지. 모두 건강하기를!


이종렬

3-5반 반창회에 참석하시어 좋은 말씀 들려주시는 안규선생님이 너무 고맙다. 선생님께서 참석하시는 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참석하고자 한다. 모든 동창들에게 참석을 독려한 기수야 수고많았다.
 201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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