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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수  

   2012년 3-5 반창회 후기
2012년 3학년 5반 반창회가 경복궁 근처의 식당 골목에 있는 한정식집 ‘동궁산채’에서 3월 5일 월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있었다.
모임장소인 ‘동궁산채’는 우리들의 배움터인 서울고등학교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금년 85세이신 안규 담임선생님과 신체가 불편한 본인의 접근성도 고려하여 이명식 반장이 추천하여 작년에 반창회 모임을 했던 자리다.
우리 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72년 종로 한일관에서 첫 반창회를 시작한 이래 거의 끊임없이 만나고 있으며 2009년부터는 西海 안규 선생님도 초대하여 함께 하고 있다.
조금 늦게 도착해보니 안규 스승님, 이명식, 김수종, 김진왕, 박용기, 이양연, 이의표, 조승준이 와 있었다. 이어서 이종렬, 김인상, 장용구, 이봉재, 이정규, 심일보가 왔다. 작년에는 한동설이가 목포에서 참석하여 longuest였는데 금년에는 이종렬이 문경에서 비오는 날인데도 상경하여 상품은 없지만 longuest가 되었다. 이종렬은 문경 주흘산 기슭에 귀농하여 사과밭을 직접 만들었고 부인과 둘이서 열심히 가꿔서 금년부터는 상당한 수확을 할 걸로 예상한단다.
이날 모임 참석 인원은 15명이었다. 참석한다고 응답한 5명이 불참하고, 대신 못 올 것처럼 회신한 이정규군이 고맙게 참석하였다. 지금까지 모임에 한 번도 나오지 못한 이종원이 나올 듯 했었는데 반창회 전날 이러한 문자가 왔다. ‘미안하다. 기수야. 내일 저녁 재건축 설계 관련한 주민회의 참석해야 해. 반동기들에게도 잘 얘기해줘.’라고. 그리고 경민대 교수인 김춘식은 ‘야간수업이 있어서 참석이 어렵네’란 문자가 왔고 오기로 했던 박재승, 방천환, 이윤재, 이제권이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였다.  
음식은 한정식으로 우리들이 좋아할만한 반찬과 술안주거리가 나왔으며 막걸리를 주로 마셨는데 이양연을 비롯한 일부 소주파는 간단히 각1병을 돌파하였다. 선생님 옆에는 이명식과 이봉재가 앉아서 조곤조곤 대화하면서 막걸리잔이 여러번 왔다갔다하니  선생님께서 너무 많이 드신 것 같다며 걱정하시는 눈치다. 이봉재가 두세 차례 술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이젠 그만 마셔야겠네, 취하겠어” 하신다. 이봉재가 “선생님, 작년에는 10잔을 드시고도 끄떡없이 댁에 가셔서 소피 한번 보고나니 아무시렁도 않드만 하셨잖아요. 오늘은 아직 여덟 잔밖에 안 드셨어요” 하면서 한잔을 더 따르려 하자, 선생님께서는 “내가 그랬나? 내가 기력이 떨어졌나보네” 하시면서 더 드셨다.
대략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우리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1분 speech time'을 갖기로 하였다. 1분 speech는 각자 돌아가면서 지난 1년동안 있었던 일이나 고교시절의 추억을 짧은 시간동안 발표하는 시간으로 담임선생님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 반창들에게 연락하면서 알게된 반창들의 소식과 출결에 대한 보고를 하였다.
장용구가 선생님께서 예전에 쓰신 책 ‘나의 자전적 에세이’에 있는 ‘세월의 뒤안길에서’라는 수필의 줄거리(뒤에 소개)를 말할 때 선생님께서는 감개무량하신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배운 '오헨리'의 'After 20 years'라는 글을 생각할 떄 고등학교 졸업 40년을 맞는 우리들은 어떻게 변했는지 자신에게 물어 보자며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낭송하였다.
이정규 첫째 딸이 오는 4/21(토) 13:30에 방배동성당에서 혼인성사를 올려 참석 가능한 반창은 모두 참석하여 축하하기로 했다. 이명식은 상명대에서 대학원장을 맡아서 아직도 바쁜 교수로 일하고 있단다. 선생님께서 옆자리의 이봉재에게 은밀히 “그동안 회비를 내려고 해도 안받아서 못냈으니 오늘 밥값은 내가 내는 것으로 해주게” 하셨다. 선생님의 고향이 안면도인데 어릴 적에는 절구통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았는데 지금은 가기도 싫을 정도로 훼손되었다고 하신다. 아직도 그곳에 농지를 소유하고 계시다니 속으로는 애정이 많으신게 틀림없다. 처음 반창회에 참석하셨을 때는 내가 젊은 사람 사이에 끼어 혹시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생각하셨었는데 이제는 함께 하시는 것이 편하신 듯 앞으로 50년 더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봉재의 차례가 되었을 때 선생님의 저녁값 제안을 공표하면서 “저희는 선생님께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면도 땅 파시면 한번 쏘십시요” 하고 정중히 사양하였다. 심일보가 잠시 쉬었다가 얼마전부터 사장을 맡아 출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금일 반창회 저녁값을 선뜻 내겠다고 하여 모두 박수로 감사를 표했다. 조승준도 역시 한동안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희소식을 전했고 박용기 치과의사는 안성에서 하던 개원을 정리하고 신림동에서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이의표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회사가 큰 건설공사를 따내어 바빠지게 되었다고 하여 모두들 부러워하였다. 김진왕은 40대의 얼굴피부와 몸매를 과시하였고 작년에는 저녁 식대를 지불하더니 이번에는 심일보가 내는 바람에 대신 남은 친구들을 데리고 2차를 샀다. 김수종이 선생님을 모시고 오고자 하였으나 선생님께서 극구 사양하시는 바람에 본인도 대중교통으로 왔단다. 차가 없으니 오늘은 장로님으로서 그동안 굶주렸던 음주를 이양연과 함께 소주 각일병을 간단히 해치웠다. 어차피 주님을 섬기는 것은 같은 것이니까. 김인상이 무슨 말을 하였는지 생각이 안나지만 인상좋은 사람, 일찌감치 영감이 되어 그냥 그대로네.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봉재가 준비한 Thank you card에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문구와 함께 참석한 반창들이 직접 서명하여 작은 정성과 함께 스승님께 드렸다.
아홉시쯤 동궁산채에서 나와 선생님과 본인을 포함한  몇 명은 귀가하고 나머지 반창들은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려 2차로 호프집으로 향하였다.
선생님을 택시로 귀가시켜 드리려는 반창들과 본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과 나는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대화역까지 갔다. 선생님께서는  택시를 잡아 나를 우리 아파트 앞에 내려 주시고 가셨다.  “스승님, 제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랑을 베풀어 주시옵니까?
스승님의 제자에 대한 사랑 어찌 이리도 크신지요? 스승님의 그 크신 사랑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장용구가 반창들에게 구연한 것은 안규 선생님의 <자전적 에세이> '세월의 뒤안길에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1994년 선생님께서 퇴직 후 담담한 필치로 기술한 에세이집으로 고향 안면도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유년시절부터, 학창시절, 동국대학교 영문학과 재학시 전쟁이 발발해서 통역장교로 대위까지 보낸 군생활(후에 무공훈장도 받으셨던 유공자이심), 장기간 교직생활을 하시면서 학생들에게 체벌 한번 가하지 않았던 소신 있는 교직생활의 소회, 40세가 넘어서 가족과 떨어져 하와이 대학교 대학원과 워싱턴DC의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수법을 연구할 때의 절제와 조국애, 가족에 대한 사랑 등을 담담하게 기술하였고, 마지막 부분은 교직생활 틈틈히 적어 놓으셨던 시를 수록하고 있다.
그 시중에 하나 봄을 맞이하여 골라본 ‘봄을 기다리며’를 소개하였다.

            
봄을 기다리며

눈싸움을 하는 골목 아이들을 지나칠 때면,
陽地를 찾아 봄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차가운 눈보라를 헤쳐갈 때면
까닭 없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합니다.

夕陽을 바라보는 눈시울엔
少女처럼 가슴 설레던 일들이 비쳐옵니다.

먼길을 떠나는 철새들의 긴 행렬이
索漠한 겨울이 다한 것을 말해 줍니다.






<다음은 안규 선생님께서 반창회에 참석한 제자들에게 다음날 보내신 이메일 내용이다>

Dear friends,
이렇게 불러보았네.
1년만에 또 만났지.
모두 낯익은 얼굴들이 되었어. 60대가 되었다니 많이 근접했어.
처음 만났을 땐 내 나이가 公들의 나이 배도 더 되었었는데 이젠 6080으로 한데 묶어 표시하게 되었으니 그래서 [친구]같은 생각이 드는가?

이명식 대학원장, 이봉재 교수. 이정규 교수, 장용구 교수...
그리고는 누가 사장이고 상무인지 모르지만 이의표(건설회사 회장), 김진왕(30번 왕), 이종렬(OK목장주인), 신기수(자유인), 박용기(치과의사), 이양연(젊은이), 김인상(인상 좋은 사람), 조승준(거인), 김수종(사업가), 심일보(사장), .그렇게 14명과 Kyu Ahn.

궂은비 내리는 월요일 밤
1년만에 작년 그자리에서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일,
늙은이에게는 이렇게 오늘까지 살아남은 것에 대한 감사와 기약할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네.

언제나 그렇듯이 초대해 주어 고맙고 감사하면서도 나로 해서 동기들의 모임에 걸림돌이 되지나 않나 생각하게 되고 특히 떠날 때 교통비까지 얹어 주는 것은 앞으로는 없으면 좋겠다 생각했어.

이봉재 박사의 통계에 의하면 내가 막걸리 8잔을 마셨다니...아무 생각 없이 주는 대로 반사적으로 마신 행동일거야. 그리고 잘난체하는 객기(客氣)이었을거요(健在하다는 것을 誇示하려는 심리랄까).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며 하는 일마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여. 어제 '1-minute speech'할 때 보니 Volonti公이 아주 침착하게 말 더듬지도 않고 잘 해서 고마웠고 심일보공의 안색이 아주 좋아보여 마음이 놓였어.
오늘(화요일) 장용구교수는 06:30에는 집을 떠나 강의 시간에 대어야 한다 했는데 지장이 없었는지. 비가 왔지만 강우량이 적어서 이봉재 교수네 텃밭이 촉촉하게 젖었을지...촌놈인 내 머리 속을 스쳐가는 생각일세.

생각하니 따라주는 대로 술을 받아 마시기만 하고 [반배]도 하지 않은 것 같아, 내가 취했었나봐!  여러가지로 나의 노추(老醜)를 이해해주기 바라며 어제 일 감사합니다. (Kyu Ahn)


이연희

기수의 맛갈나는 글, 영구가 구연했다는 안 규 선생님의 essay구절, 그리고 안 규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왜 이리 아련하게.. 그리고 눈물이 핑 돌라하는지... 우린 참 좋은 선생님들 모시고 좋은 환경의 학교에서 좋은 친구들과 지냈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지낸다는 사실에 너무나 뿌듯하다.
 2012/03/29  

이연희

아니, 어무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우리 장 용구 장군님의 성함을
다른 이름도 아닌 '영구'라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장 장군님..
 201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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